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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6

    <536 – 백만의 생사를 책임질 거짓말>

     

    손오천은 본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실시간으로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들으라. 황태자전하께서 황제폐위의 요청을 듣고 몸소 이 자리에 찾아오셨노라!”

    “나는 파케 히우그마그. 신성중앙제국의 적법한 황위계승자이자 그대들의 간절한 청원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우와아아!”

    “정말로 황제가 폐위되는 거야?”

    “믿기지가 않아. 그 황제를 우리들의 힘으로 내려보낼 수 있다니…”

     

    순수하게 감탄을 흘리는 시위대에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황태자.

    그가 시위대를 향해 재차 물었다.

     

    “그대들의 실권자는 누구인가. 이 혁명을 주도하는 자가 있다면 일의 성사를 위해 나서도록 하라.”

    “태자전하의 용안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젤지라고 불리는 몸으로 제국의 결투공증인으로 현재는 시민들의 정의와 황제의 폭정 사이에서의 결투를 공증하는 중입니다.”

    “과연. 목숨이 몇 개라도 되는 것처럼 두려움 없이 사는 인물임은 알겠구나. 그 정도 배짱은 되어야 감히 황제폐위를 입에 담을 수 있겠지. 다른 이들은?”

    “이사벨이야. 혁명군의… 보급을 담당하고 있어.”

    “손오천이다. 어… 음… 그러니까… 그게… 어… 군사. 그래, 군사를 지휘하고 있지.”

    “그대가 혁명군을 이끄는 대장군이란 말이군.”

    “응? 어어, 그게 그렇게 되나?”

    “군의 지휘는 대장군이 맡아야 마땅하지. 그래도 제국에는 제국십구강이나 고관대신들이 있으니 황위계승 전까지 혁명군을 잘 다독여주며 민간인들은 민생으로 되돌리고 남은 군은 적절한 합의를 거쳐 적당한 선에서 편제를 줄이도록 합의해주게.”

     

    황태자의 시원스러울 정도로 신속한 인정은 졸지에 손오천을 온갖 고수와 고관들이 즐비한 가신단의 선두에 서도록 만들었다.

     

    “저 수인이 백만대군을 지휘하는 대장군인가.”

    “제법 기골이 장대하군. 무골은 있어.”

    “야수화 없이도 이 정도의 투지라. 나쁘지 않아.”

    “그런데 영역은 왜 느껴지질 않지?”

    “우리 정도의 하찮은 것들에게 영역을 겨룰 마음도 들지 않는다는 오만이겠지. 원숭이수인들의 투지는 그 투신 손오공부터 유명하지 않은가.”

    “그렇군. 그 오만에 걸맞은 실력을 얼마나 감추고 있을지 아주 기대가 돼.”

     

    졸지에 힘을 숨긴 대장군이 되어버린 손오천!

     

    “어이, 샌님. 이건 좀 아니지 않냐? 지금이라도 나는 그런 대단한 영역은 다루지 못하고 별것 아닌 놈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망신을 덜 당하지 않겠냐?”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윽. 뭐냐 그 눈은? 정당한 항의를 했다고 그렇게까지 심한 눈으로 노려볼 필요는 없잖아.”

     

    지젤은 손오천을 노려보며 엄히 꾸짖었다.

     

    “꼬마숙녀는 황제에게 끌려가 흉계에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지금도 의식불명인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단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내 깜냥에는 너무…”

    “과하다, 이겁니까? 그렇게 당신의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고자 진실을 밝힌다면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이 어찌 될지는 생각해보셨습니까?”

    “망신은 좀 당해도 오해가 풀리지 않겠냐?”

    “혁명군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백만대군이 모여도 결국 민초들은 민초들일 뿐이구나. 아바마마께서 한 일을 황태자이자 차기황제가 될 나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겠구나. 오크노디를 죽이는 일을 저질러도 되겠다. 그런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없겠습니까?”

    “…!”

    “이런 사고방식도 있습니다. 내가 혁명군을 이용해 황위계승을 받을 수 있다면 동생들도 같은 짓을 할 수 있겠지. 장차 황위를 위협할 혁명군과 황녀들을 모두 죽여 후환을 제거해야겠다.”

    “그,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할 사람들입니다. 황제가 양녀로 들인 황녀를 사경에 몰아넣거나 방조할 정도의 나라가 신성중앙제국이라는 나라란 말입니다.”

     

    지젤의 단언에 그건 과하다, 라는 말을 손오천은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그도 가슴 깊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지젤의 말은 무엇 하나 틀리지 않았음을.

    자신의 변명이 얼마나 나약한 소리로 들렸는지를.

     

    “저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혁명군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황태자의 손에 살해당할 인물이 바로 저, 신 혁명군의 수장이자 2대 혁명가 젤지입니다.”

    “미안하다… 그런 깊은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어.”

    “이해합니다. 자기 자신 한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기도 힘든 것이 인생입니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 노릇도, 사업체를 책임지는 사장 노릇도, 장원을 책임지는 기사 노릇도, 도시와 영지를 책임지는 시장과 영주 노릇도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는 세상입니다. 백만대군은 그리 간단히 짊어질 인원이 못 돼죠.”

    “내가 해내야만 하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오히려 저는 손오천 씨가 이렇게 부담감을 드러내 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젤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자신이 짊어진 생명의 무게를 오롯이 느끼고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사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믿음을 저버리는 정치인들, 부패 관료나 악덕 귀족들과는 다르다는 확신을 제게 주었습니다.”

    “하… 이 새끼 갑자기 비겁하게 감동으로 얼버무리려고 하네.”

    “하지만 감동했죠?”

    “그래, 했다.”

     

    손오천이 씨익 웃었다.

    지젤 역시 급박하게 흘러가는 정세를 따라가느라 잊고 있던 미소를 지었다.

     

    “태어난 시대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억압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시대를 초래한 원흉이 바로 저 앞에 있습니다. 그 시대를 다시 한번 초래시킬 원흉이 저희와 동지의 행세를 하며 그 잔혹한 마수를 드러낼 시기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입니다.”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이지? 안데르센 대공자에게 들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런 불편한 수면도 취해야 할 때도 있다고.”

    “좋은 말을 배웠군요. 손오천, 그 동침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서 연기해주십시오. 제국의 강자들도 진심으로 만만하게 여길 수 없는 강자를. 백만대군을 이끌만한 관록을 지닌 대장군을.”

     

    지젤이 주먹을 내밀었다.

     

    “제가 제 2의 혁명가가 되겠습니다. 당신이 저와 혁명군 모두의 생사를 책임질 대장군이 되어주십시오.”

    “으하하핫. 역시 배운 샌님은 말솜씨부터 달라. 이런 말을 듣고 어떻게 싫겠다는 대답이 나오겠냐?”

     

    지젤과의 독대 이후, 손오천의 마음가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거짓말은 나쁘다.

    거짓말쟁이는 환대받지 못한다.

     

    사회는 그렇게 말하지만 거짓말과 변명을 일삼으며 부정한 이득을 축재하는 이들은 잔뜩 있다.

    그들과 같은 삶을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손오천의 내면세계에서 거짓과 악에 대한 강박증적인 거부감으로 굳게 걸어 잠근 도덕심의 문이 활짝 열렸다.

     

    거짓도 무기가 될 수 있다.

    축재가 아닌 사람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 위태롭고 급진적인 혁명군을 오크노디를 살리기 위해 이제부터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겠다.

     

    “쥐방울 녀석이 깨어나거든 녀석에게 부끄럽지 않을 모습을 보여줘야지.”

     

    오크노디는 나쁜아이를 넘어서 무서운아이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아무리 나쁘고 무서워도 그 아이는 자신들을 입학동기로 챙겨주었다.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며 버리지 않았다.

    그래, 오크노디는 훨씬 전부터 깨달았던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거짓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을 돕는 나쁨과 무서움도 있음을.

    나쁘지만 착하다.

    무섭지만 친절하다.

    이것이 오크노디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선함이라면, 자신의 선함도 그에 뒤처지지 않음을 혁명군을 통해서 증명해내겠다.

     

    “손오천 장군. 혁명군의 장군으로서 혁명동지들을 이끌어나갈 책무는 이해하지만 귀공 혼자 이 많은 혁명군을 모두 거느리지는 못할 것이다. 90만의 군세는 우리가 나누어 지휘하게 도와주지 않겠나?”

    “성밖에는 몬스터군단이 있고 제국의 혼란에 기회를 틈타 국경으로 군을 주둔시키는 변방의 군대들도 있네. 혁명군이 수도에 오래 머무르는 일은 나라를 위해서도 좋지 못하네.”

    “선황께서 물러나신다면 새로이 황위를 물려받을 파케 황제전하를 위해서라도 치적 하나는 세워야하지 않겠나. 자네의 용기 있는 결단과 양보가 황실에 힘을 실어주고 폐하께서도 결코 자네의 공을 잊지 않을 거라네.”

     

    협력을 논하지만 그로 인해 초래되는 결과는 하나같이 혁명군의 규모축소와 와해.

    손오천은 자신이 고집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이 그대들의 한계인가.”

    “…!”

    “하찮구나. 수인이 아닌 인간들의 한계란.”

     

    손오천은 세상 그 누구보다 오만한 얼굴로 마치 천하대장군이 된 것처럼 담대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 장군의 한계를 이 몸의 한계와 같다고 여기지 마라. 백만대군조차도 한없이 부족하다. 혁명군이 쥐어야 할 것은 세상의 반절. 군의 규모 또한 지금의 열 배 이상은 되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미친 것인가?! 그 많은 병력에게 공급할 군량은 어디서 나고 황제폐위의 목적을 이루고도 해산하지 않는다면 명분을 잃은 군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모르겠는가? 상대를 이용하는 것은 너희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황태자가 제국의 황권을 위해 혁명군과 손을 잡았듯이 혁명군도 필요에 의해 황태자와 손을 잡았을 뿐.

    황태자 또한 추이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음을 선언했다.

     

    “자네, 선을 넘었군.”

    “그 오만을 관철할 힘은 있는가?”

     

    황태자를 따르는 고관 대신들이 일제히 손오천을 향해 살기를 분출했다.

    그 모든 살기를 손오천은 전신의 털 한올조차 세우지 않고 받아넘겼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이겠지.

    하지만 그는 혁명군의 생사를 책임지는 거짓말쟁이.

    이 거짓말에는 백만 이상의 생사가 달렸다.

     

    “태자가 슬퍼하겠군. 대신들을 잃고 의지할 곳이 혁명군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될 테니.”

     

    손오천은 기능 <따라하기>를 발동했다.

    그것은 투신 손오공의 주력기술이나 다름없는 분신술에서 파생된 한없이 미약한 기본기능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 1년, 기프트 아카데미의 1학년으로서 손오천이 위로 올라가고자 직접 보고 따라했던 상대들은 결코 약한 자들이 아니었다.

     

    암흑상회의 암흑상인.

    서부연합의 대공자.

    고독한 동방검객 싱.

     

    수많은 강자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겪으며 쌓인 경험이 기능의 수치를, 따라할 수 있는 순간과 그 순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보충했다.

     

    <싱의 살기>

    <대공자의 독기>

    <암흑상인의 여유>

     

    고관대신들을 감히 따위라고 부를 정도로 창창한 미래를 지닌, 차세대 신진고수들의 주역의 기세.

    이를 전부 끄집어내는 손오천의 진심을 발휘하는 <따라하기>와 <거짓말>은 금기연구소에서 버튼이나 딸칵거리고 영지에서 자동으로 수집하는 경험치 따위와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손오천의 기백이 고관대신들의 살기를 압도합니다.]

     

    오크노디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히 목격했을 알림과 함께 고관대신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손오천의 기백이, 따라하기가, 백만 혁명군의 생사를 책임지는 거짓말이, 깨어날 오크노디에게 부끄럽지 않을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가 고관대신들의 압박을 단신으로 압도해낸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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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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