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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7

       *** ***

         

       수적들의 습격으로 입은 피해를 수습한 소가포목점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나와 일행들이 소가포목점에 머문 이래 계속해서 닫혀 있던 문이 열리자 마치 지금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소가포목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가장 서둘러 들어온 것은 역시 청년들이었으나 그 청년들의 뒤로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이들이 뒤를 이었다.

         

       뭐 남녀노소 가릴 것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남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긴 했다.

         

       그야 오늘 소가포목점에 몰려든 저 인파는 다 소연화의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온 구경꾼들이었으니까.

         

       무엇을 숨기랴.

         

       오늘 소가포목점의 정문이 개방된 것은 지금까지 흑묘를 만나겠다고 생때와 온갖 난리를 피웠던 청년들을 모두 만나주겠노라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흑묘에게 마음이 있는 악양의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대체 소연화가 얼마나 아름답길래 이 난리가 벌어지는지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는 구경꾼까지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소가포목점의 무인들과 하인들이 나서 그런 청년들과 구경꾼들을 통제했다.

         

       “자, 소연화 소저와 대면하고자 하는 자 이쪽에 줄을 서시오!”

         

       “물러서세요! 물러서!”

         

       소가포목점 식구들의 악다구니에 몰려든 청년들과 구경꾼들 사이에 간신히 질서가 자리잡았고 이내 흑묘가 나타났다.

         

       “오오…!”

         

       “세상에 정말로 놀라운 용모로다!”

         

       평소 쓰던 모자나 면사 등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포목점의 딸답게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의복을 입은 흑묘의 모습에 구경꾼들이 탄사를 터트렸다.

         

       흑묘는 그런 구경꾼들을 둘러보며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미소를 띄우며 포권을 해 보았다.

         

       “손미옥의 딸, 소연화라 합니다. 여렸을 시절 이 악양에서 나고 자랐으나 일신상의 사정으로 잠시 이곳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흑묘의 인사에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소연화에게 환호를 보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

         

       늘 흑립과 면사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한 발자국 뒤에 물러서 있던 흑묘였다. 그런 흑묘가 군중들의 중심에 서서 박수와 환호를 받고 있었다.

         

       그야말로 가슴 벅차오르는 장면이었으니 나는 누구라도 붙잡고 지금의 감정을 토로하고 싶었다.

         

       “보이십니까? 흑묘가 지금 군중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내 호들갑에 혁기린이 빙그레 웃으며 답해 주었다.

         

       “예, 저도 보입니다. 서공도 보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찍찍!

         

       혁기린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그 품에 안겨 있던 서공이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관중들에게 인사를 마친 흑묘의 시선이 줄 선 청년들에게로 향했다.

         

       아예 넋을 놓고 흑묘를 바라보는 얼빠진 놈. 무슨 상상을 했는지 얼굴을 붉히는 추찹스러운 놈. 비열한 미소를 짓는 쓰레기같은 놈까지.

         

       세상에 우뚝 선 흑묘를 보며 벅차오른 가슴이 차게 식는 면면들이었다.

         

       흑묘가 손짓하자 호위무사 한 사람이 첫 번째 청년을 들여 보냈다. 청년은 떨리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흑묘에게 다가가더니 이내 절절한 어조로 말했다.

         

       “나, 나를 기억하시오? 나 광팔이오.”

         

       오랜 시절을 격한 재회라는 상황에 지극히 심취한 청년. 모르긴 몰라도 그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역경이라는 역경은 모두 지나가고 있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지금까지의 역경은 모두 오늘 이 자리에서 소연화를 만나 그녀와 짝이 되는 결과를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청년은 온몸으로 그런 감성을 드러내고 있었고 군중들은 그런 청년의 감성에 물들어 흑묘를 바라보았다.

         

       긴 세월을 격해 청년을 만난 소연화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 줄 것인가.

         

       흑묘는 그런 군중들의 기대 어린 시선 속에서 입을 열었다.

         

       “아뇨. 전혀 모르겠는데요.”

         

       단답!

         

       칼 같은 단답!

         

       “그 이름만 듣고 제가 어떻게 당신을 기억해 낼 수 있겠어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굴을 마주했다는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아. 이건 치명타다.

         

       청년이 마치 심장이 두 조각으로 잘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기, 기억나지 않으시오…? 학당에서 그대의 오른쪽 대각선 뒷자리에 앉아 있었던 나를? 나에게 학당 매점에서 파는 특제 간식의 심부름을 부탁하지 않았소!”

         

       “….그런 일이 있었던가요?”

         

       “있었소! 분명히 있었단 말이오! 학당의 학우들에게 둘러싸여 꼼짝도 하지 못하는 위기 상황에서 나에게 분명히 부탁했단 말이오!”

         

       인연이 너무 하찮아!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닌 듯 청년의 절절한 감성에 잠시 동화되었던 관중들마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렇군요. 학당에 다녔을 때는 열 살도 되지 않았던 때였으니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래서 오늘 절 만나러 오신 이유가 뭘까요?”

         

       “소연화! 어린 시절부터 그대를 마음에 품어왔소! 나와 결혼해 주시오! 내 반드시 그대를 행복하게 해주겠소!”

         

       무릎을 꿇으며 청혼하는 청년.

         

       “어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독고이설이 기겁을 하며 자신의 팔을 쓸었다.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경기를 일으키는 독고이설과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일행들.

         

       “거절할게요. 어린날의 얄팍한 인연만으로 배우자를 정하는 경솔한 남자는 취향이 아니거든요.”

         

       당연히 흑묘는 청년의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아아…! 아아아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비탄에 잠긴 신음을 토해내는 청년. 흑묘는 그런 청년을 보며 마지막 타격을 날렸다.

         

       “용건이 끝나셨다면 비켜주시겠어요?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아서.”

         

       결국 비탄에 빠진 청년은 포목점의 무인들에게 끌려나갔고 두 번째 청년이 마른침을 삼키며 흑묘에게 다가갔다.

         

       “나, 나를 기억하시오? 청성대로 옆에 있었던 제과점의 아들 부먹이오. 부모님께서 먹거리를 만들 때 잠시 대화를 나누곤 했었소.”

         

       이번에는 그래도 뭔가 이야기의 도입부는 될 것 같은 인연이 등장했다. 흑묘는 잠시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군.

         

       “기억나는군요. 어렸을 적에는 제법 통통하셨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고 자연스럽게 간식을 끊어서 그렇소. 지금은 먹는 쪽보다는 만드는 쪽에 가깝지.”

         

       “그렇군요. 축하해요. 안정적으로 가업을 물려받고 있으시군요.”

         

       흑묘의 말에 용기라도 얻은 것인지 청년이 품에서 종이 덩어리를 꺼냈다. 그 종이 덩어리에 쌓인 것은 아니나 다를까 과자였다.

         

       과자라기보다는 설탕공예품에 가까운 꽃 모양 과자를 든 청년은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흑묘에게 꽃을 내밀었다.

         

       “그, 그대를 생각하면서 만들었소. 마음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맛이라도 봐 주셨으면 하오.”

         

       안타깝구만.

         

       아무래도 부먹씨가 밤새 만든 혼신의 역작 같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흑묘가 저 꽃 모양 과자를 받아들 리가 없었…

         

       “잘 먹을게요.”

         

       …어야 했는데?

         

       흑묘는 호기심이 발동한 얼굴로 꽃 모양 과자를 받아들고는 외견을 한번 살핀 뒤 크게 입을 벌려 그대로 과자를 입에 넣었다.

       

       와그작! 오도독! 우드득!

         

       흑묘는 과자를 꼼꼼히 음미하듯이 입을 오물거리며 꽃봉오리는 물론이고 이파리와 대까지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완식!

         

       과자를 완식하는 흑묘를 보며 청년의 얼굴에는 혹시나 하는 희망이 생겼고 군중들은 ‘아니 보통은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것 아녀?’라고 생각하는 보존파와 ‘과자인데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이 답례 아닌감?’처럼 생각하는 시식파로 나뉘어 서로 작은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군중들의 토론과 관계없이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흑묘는 본래 실리적인 성격이다. 그러니 그냥 주는 선물은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은 것 뿐이다.

         

       “훌륭한 설탕과자였어요. 꽃잎의 색을 내는데 사용한 구슬과 같은 알갱이들은 그저 색을 칠한 것으로 여겼는데 하나하나가 색을 입힌 작은 간식이었군요. 알갱이들을 씹을 때마다 새콤한 맛, 고소한 맛, 쌉싸름한 맛이 퍼지는 것이 많은 고심을 한 것 같더군요.”

         

       ….그냥 주는 선물을 거절하기 뭐해서 먹은 것 맞지? 흑묘도 사실 보존파인데 거절의 의미로 먹어치운 것 맞지?

         

       “특히 꽃술을 먹을 때 진짜 꽃가루 맛이 나고 잎을 먹을 때 쌉싸름한 맛이 퍼지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어린아이였다면 매일같이 어머니의 치마에 매달려 사 달라고 조를 과자로군요.”

         

       “그, 그럼…! 내 평생 그대를 위해…”

         

       “하지만 전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흑묘는 그런 부먹의 말을 자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과자를 먹던 어린아이가 과자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듯, 저 역시 이제는 이가 썩을 정도로 단 과자보다는 담백한 것이 좋아졌거든요.”

         

       부먹의 고개가 숙여졌다. 흑묘의 말에 완곡한 의미의 거절이라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담백한 것을 좋아하게 되었음에도…맛있게 먹어 주어서 고맙소.”

       

       부먹은 그 말만을 남기고 떠났다.

         

       “다음.”

         

       2연속 철벽 이후 이어지는 호명.

         

       “내 분명 그때 그대가 주는 감자를 받았단 말이오!”

         

       “감사 인사는 됐어요. 나가세요.”

         

       또 다음 사람.

         

       “나와 한번만 만나 준다면 이 재물을…”

         

       “그런데 저랑 과거에 마주친 적이 있었나요?”

         

       “없지만, 그대의 소문을 듣….”

         

       “아니 다른 사람들은 어릴 적에 얼굴 한 번이라도 봤다는데 당신은 대체 뭔가요? 당장 끌어내세요!”

         

       계속 이어지는 그런 흑묘의 단호한 태도에 구경꾼들이 연신 술렁거렸다. 예쁜 딸 가진 집이 청년들을 불러 모른다는 건 보통 공개구혼자를 모집한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보통 그런 공개구혼이 열리게 되면 여자가 마음에 든 남자들은 구혼을 청하고 여자는 그 구혼을 받아 이것저것 따져 최종적으로 선발하거나 혹은 고사하기 마련.

         

       그런데 지금 흑묘는 청년을 만나는 족족 숭덩숭덩 썰어버리고 있으니 관객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전개일 수밖에.

         

       물론 그들의 생각은 모두 착각이었다.

         

       오늘 흑묘가 청년들을 불러낸 이유는 자신에게 들러붙는 이들을 모두 떼어내기 위함이었으니까.

         

       요컨대 처형식이라는 말이었다.

         

       *** ***

         

       흑묘의 매서운 칼춤은 순식간에 청년들을 분쇄했다.

         

       나름의 인연이 있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런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소가포목점에서 보낸 흑묘였으니 이곳에 몰려든 청년들은 대부분 그저 흑묘와 스쳐 지나가는 인연 정도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종잇장처럼 얄팍한 인연을 지닌 자들은 말 그대로 종이처럼 날아가버렸고, 재산을 싸들고 온 자, 혹은 나름대로 출세를 한 자들이 본인들의 장점을 나열해 보았지만 가볍게 거절당했다.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내 동정호에 뛰어들어 죽어버리겠소!”

         

       “나가!”

       

       나무 위에 올라가 투신자살 소통을 벌이던 청년 추락은 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흑묘 앞에서 추태를 부리다가 소가포목점의 정문 밖에 패대기쳐졌다.

         

       바닥을 몇 바퀴 구른 추락은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널브러져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추락은 방금 전에 만났던 소연화의 얼굴을 떠올렸다. 보기만 해도 살이 떨릴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 그야말로 경국지색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외모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정성들여 꾸미고 온전히 성장한 소연화를 그리 가까이서 보았음에도 손쉽게 마음이 정리되었다.

         

       추락은 소연화를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소가포목점에 용모가 빼어난 소녀가 산다더라. 활력은 넘치는데 놀 거리는 부족하고 친구들에게 늘어놓을 무용담을 원하는 남자아이는 그 소문을 믿고 소가포목점의 담벼락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 보았고 소연화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팔에 힘이 풀려 담벼락에서 떨어졌다.

         

       그리 시선을 마주친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아무리 좋게 표현해 주어도 잠깐이나 찰나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시간이었으나 그 짧은 시간동안 소연화를 바라보며 느꼈던 특별한 이끌림은 장성한 청년이 된 오늘날까지도 선명하게 추락의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 이끌림은 생계도, 체면도 모두 내팽개치고 그저 소연화를 만나겠다는 일념하에 온갖 추태를 부릴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거늘 정작 추억 속의 소연화를 정식으로 대면했더니 그 모든 감정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하.”

         

       어째서일까.

         

       추락이 늘 상상해오던 상상 속의 소연화만큼, 아니 어쩌면 상상 속의 소연화보다도 아름답게 자라났으나 어째서 그때의 이끌림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은 것일까.

         

       어린 시절 추락이 느낀 감정은 태음을 향한 것이었고, 지금의 흑묘는 화경의 경지에 올라 스스로가 지닌 태음을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여내었음을 알 리 없는 추락은 자신의 마음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닥에 대자로 누운 추락은 답을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한 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첫사랑…이었나.”

         

       그저 추억처럼,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감정이 멋대로 부풀어 올랐던 것이었나.

         

       “사랑했소. 소연화.”

         

       그렇게 결론을 내린 추락.

         

       추락은 앞서 흑묘에게 거절당했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추락은 미련을 훌훌 털어냈고.

         

       그렇게 태음지체의 마력은 청년들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며 그 끝을 고했으니.

         

       소연화의 마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은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 ***

         

       긴 하루가 끝나고 조촐한 연회가 열렸다.

         

       흑묘의 경지 상승을 축하하고, 소가포목점의 재개장을 축하하는 연회였다.

         

       흑묘는 자신의 어머니인 손미옥이 포목점의 식구들을 다독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흑묘를 노리던 자들 때문에 잔뜩 고생한 소가포목점의 식구들은 이제 별 일 없을 것이라는 손미옥의 장담에 기뻐했다.

         

       소가포목점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흑묘는 소가포목점의 식구들 사이에 서서 그들과 함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늘 자신들과 거리를 두던 흑묘가 마음을 열고 다가왔으니 소가포목점의 식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껍고 들뜰 수밖에.

         

       흑묘 역시 식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니 식구들과의 대화와 연회를 즐겼다.

         

       그렇게 한참을 식구들과 웃고 떠들던 흑묘는 술에 취한 손미옥의 몸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후후, 좋구나.”

         

       “너무 많이 마신 것 아니에요.”

         

       “오늘 같은 날 마셔야지! 언제 마시겠니.”

         

       손미옥의 말에 흑묘는 쓴웃음을 지었다. 흑묘만큼이나 아니 흑묘 이상으로 태음지체의 태음기 때문에 고생한 손미옥이었으니 오늘의 감회가 남다르겠지.

         

       “이제 진짜 혼인하는 모습만 보면 여한이 없겠구나.”

         

       “음…혼인 말인데요.”

         

       손미옥인 술기운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혼인 이야기만 하면 펄쩍 뛰며 입을 막던 딸아이가 아니었던가.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 엄마?”

         

       “또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니?”

         

       “사람이 많으니 이래저래 복잡하거든요.”

         

       흑묘의 머릿속에 혁기린과 독고이설의 모습이 떠올랐다. 흑묘가 먼저 혼사를 올려버리면 황족인 혁기린의 입장이 꽤나 난처해진다. 안 그래도 무림인인 호천안과 혼사를 치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난관이 예상되니까.

         

       독고이설 역시 마찬가지다. 흠 잡힐 요소가 많을수록 독고영천은 호천안에게 많은 것을 뜯어내려고 달려들겠지. 호천안이 독고영천에게 호구 잡힐일은 없겠지만 일이 복잡해지는 건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도움을 받고, 절 위해준 사람들인데 그들이 곤란해지는 것을 뻔히 알면서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구나.”

         

       잠시 흑묘와 손미옥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흑묘는 그 침묵 속에서 손미옥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기껏 평지풍파를 극복하고 간신히 평범한 삶을 되찾은 딸이 혼례를 미루며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겠다 하니 그 심정이 어떠할까.

         

       어쩌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할 지도 모른다는 흑묘의 걱정과 달리 손미옥은 담담하게 허락을 입에 담았다.

         

       “뜻대로 하려무나.”

         

       “…엄마.”

         

       손미옥은 흑묘의 손을 잡으며 부드러이 웃었다.

         

       “대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흑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선배가 어리버리하면 등짝을 때려가면서 재촉할게요!”

         

       “후후후, 그래. 든든하구나.”

         

       이해받아 기쁜 흑묘와 그런 딸이 그저 귀엽기만 한 손미옥.

         

       두 사람은 나란히 손을 잡고 안방에 들어섰다.

         

       아직 연회의 흥겨움이 다 가시지 않은 어느 날 밤. 그렇게 태음지체를 둘러싼 소란에는 마침표가 찍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로써 외전 3도 막을 내렸네요.

    다음편부터는 외전4 우당탕탕 혼인을 위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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