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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7

    <537 – 적의 적은 아군>

     

    손오천의 기세가 바뀌었다.

    아주 잠깐 지젤과 독대를 하고 왔을 뿐인데.

    고관대신들의 살기 앞에서 밀리기는커녕 저 많은 높으신 분들을 역으로 잡아먹고 일어선다.

    아카데미에서는 그리 대단한 녀석인 줄은 몰랐는데.

    어째서 저렇게까지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처음부터 저런 가능성이 있었던 건가?’

     

    용사 이슈타르는 깨달았다.

    오크노디는 용사인 자신보다도 ‘유용한 인맥’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그녀의 주변에는 981기의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즐비하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하급반의 인재들조차도 그렇다.

    흑기사 모브.

    암흑마나의 자쿠.

    빛의 운반자 티토소가.

    비키니전사 뾰이.

    모두가 두각을 드러낸 건 아니지만 그 역량은 아무리 봐도 평범한 하급반 수준이 아니다.

    당장 용사친위대의 면면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어쩌면 우위를 점하기도 하는 인재들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입학동기는 참 이상했다.

    상급반에 속해있으나 전투력은 별거 아닌 이들.

     

    밥을 잘하는 이사벨.

    장사를 잘하는 지젤.

    어중간하게 강한 손오천.

     

    이사벨과 지젤의 쓸모는 알 수 있었다.

    지젤은 보기보다 장사를 정말 많이 잘했다.

    다루지 못하는 품목이 없고 그 기깔난 수완으로 2학년의 거물, 계약사기꾼 <벨로카시오>의 사업체를 역으로 집어삼켰으니까.

    이사벨은 요리를 생각 그 이상으로 잘했다.

    밖에서 뭘 하다 왔는지는 몰라도 온갖 재료를 전부 조리할 수 있으며 다룰 수 있는 요리의 종류 또한 무수히 늘어나고 있다.

    마치 언제라도 마계로 떠나더라도 마계종을 요리하고 새로운 요리를 탄생시켜 자신을 대표할 가문요리를 만들고 <신흥귀족>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손오천은 어땠던가.

    잔머리도 제법 있고 실력도 제법 있다.

    그러나 지젤과 이사벨에 견줄 수준은 아니었다.

     

    알 수가 없었다.

    어디에 오크노디의 눈도장을 살 재능이 있는지.

    그래서 지금까지는 무시해왔었다.

    그저 지인을 잘 둔 운이 좋은 녀석에 불과하다고.

    지젤과 이사벨의 경호원 수준을 면치 못할 거라고.

    그런 녀석이 하루아침에 제국의 고관대신들을 기세로 압박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런가. 지난 일 년간 아카데미에서 성장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어!’

     

    그 어중간한 손오천조차도 거물들과의 대면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개화했다.

     

    “태자가 슬퍼한다라. 그거 재미있군.”

     

    하지만 지금 그가 대치하고 있는 상대는 황태자 파벌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고관대신들만이 아니다.

    황태자가 포섭한 제국십구강의 일원, 태자가 아닌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 자, 무투십대고수의 삼강 철완의 바르가스.

    바르가스의 왼팔을 둘러싼 거대한 구속구의 봉인술식이 풀리며 성인여성의 허리보다 굵은 팔뚝을 형태변환을 일으킨 구속구가 뒤덮었다.

     

    철컥. 찰칵.

     

    팔보다 두 배는 거대한 건틀릿에 감싸인 주먹은 한 대라도 맞았다간 단숨에 피떡이 되고도 남는다.

    골렘조차 무너지게 생길 거대한 주먹을 보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혁명군의 대장군 손오천. 이자와 내가 지금 당장 겨룬다면 그때도 태자가 곤란해지기는 하겠지? 혁명군과의 결속이 무너질 테니.”

    “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오 바르가스 경!”

    “철완경. 당장 멈추시오. 지금은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니외다.”

    “바로 조금 전까지 너희가 해왔던 짓은 그새 머릿속에서 지운 것이냐? 참 하등할 정도로 기억력이 부족한 것들이구나.”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건이오!”

    “마, 맞소.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혁명군 대장군의 그릇을 시험하고자 했을 뿐. 결코 진심으로 다투려던 마음은 없었소!”

     

    기세가 약하면 단숨에 혁명군 병력편제를 찢어놓고 혁명을 강제로 무산시킬 작정이었으면서, 변명만 유창하기는.

    바르가스가 비웃듯이 코웃음을 치자 고관대신들은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자리를 버텼다.

    고관대신들의 체면을 봐서라도 여기선 물러서는 것이 마땅한 처사다.

    범인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바르가스는 범인이 아닌 무인.

    무투 하나로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그것도 세 번째로 손꼽히는 강자였다.

     

    “그딴 시시한 사정은 알 바 아니다.”

    “으윽…!”

    “바, 바르가스 경. 기어이 일을 저지를 작정인가!”

    “태자의 분노, 고관의 체면. 그딴 건 관계없다. 그보다 흥미가 가는 건 바로 이 혁명군 대장군, 손오천이라는 자의 실력이다.”

    “…!”

    “태자를 슬퍼하게 만들 힘이 있다고 했지. 그 힘이 궁금해졌다. 너 또한 무장이라면 큰소리만 칠 줄 아는 고관들과는 다른 재주가 있겠지. 그 재주를 펼쳐보아라. 날 만족시키기 충분하다면 이 철완의 바르가스가 기꺼이 널 따라주겠다.”

    “바르가스 경!!”

     

    황태자가 아닌 손오천에게 충성을 할 수도 있다며 먹음직스러운 조건을 내건 바르가스.

    물론 먹음직스러운 대가에는 그에 상응하는 값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네 재주라는 것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때는 망신 당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

    “겁이 난다면 물러나라. 하지만 자신이 있다면 덤벼라. 한합대결. 일초승부다. 진정한 고수들에게 한 호흡의 승부,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겠지?”

     

    어떤 본능적인 직감을 발휘했는지는 몰라도 손오천이 자신의 일 합을 견뎌낼 수 없다고 확신하고 고관들과 달리 정면으로 손오천에게 도전하는 바르가스.

     

    “이슈타르. 하지 마.”

    “흥. 재수 없는 다크프린세스의 종자 아닙니까? 무시하시죠.”

     

    유피의 말처럼 참견해서 득이 될 일이 아니다.

    스콜라의 말처럼 무시해도 상관없을 일이었다.

    그런데 왤까?

    자꾸만 주먹이 떨리는 이유가.

     

    “저는 용사님의 결정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저도요!”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 친위대장 바닐라 쌍둥이남매.

    그들을 보고 깨달았다.

    그녀는 보고 싶어졌다.

    바닐라 남매처럼 별것 아닌 하급반 생도들도 성장할 수 있음을.

    그 가능성의 편린을 오늘 여기서 목격했다.

    그것을 바르가스는 정면으로 짓밟으려고 한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실력은 몰라도 기백 하나는 고관들을 넘어섰다고.

    ‘저것’을 이대로 방치했다간 어떤 괴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고.

    이것은 강자의 솎아내기.

    자신을 위협할 무언가로 자라날 수 있을 약자를 사전에 쳐내기 위한 수작이다.

    야생의 짐승이 장차 성장하여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천적의 새끼를 물어 죽이는 것과 같다.

     

    “지금 저 자리에 끼어드는 짓은 용사로서 제국의 차기후계자의 가신들에게 간섭하는 꼴이 됩니다. 당연히 그런 짓은 하면 안 됩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오크노디에게 당한 뒤로 깨달았어요. 스트레스는 쌓아두기만 해선 안 된다고. 마음대로 하세요.”

    “어려운 말은 모르겠다냐. 배가 고프니까 아무튼 차가운 코코아밀크와 등이 푸르고 속살은 하얀 생선을 내어오라는 것이다냐! 뼈는 발라서!”

     

    니세와 제냐의 마이페이스적인 소리를 듣고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런 기분이었나.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잔뜩 주변에 두고 거느리는 기분이란.

     

    그래, 이것이 오크노디가.

    다크프린세스가 바라보는 경치였었는가.

     

    견식이 늘었다.

    이슈타르는 지금, 자신이 꽤 즐겁다고 생각했다.

    이 즐거움을 가볍게 놓고 싶지 않았다.

     

    “철완경. 그 남자와 겨루고 싶다면 먼저 나와 겨루어야 할 거야.”

    “그 옷차림에 순백의 대검… 전설의 성검을 지닌 여학생이라면 한 사람밖에 떠올릴 수 없지. 네가 이번 대의 <용사>냐.”

    “그래.”

    “혁명군 대장군은 용사와 무슨 관계지. 반역이라도 꾀하고 있었나?”

    “딱히.”

    “용사파티의 동료나 그 후보인가?”

    “절대 아니지.”

    “그럼 시비를 거는 거냐. 이 철완의 바르가스에게?”

     

    치이익.

    바르가스의 구속건틀릿에서 격노한 맹수가 세차게 콧김을 뿜듯이 뜨거운 증기가 분출되었다.

     

    “그 남자는 내가 꺾어야 할 숙적의 수하야. 그러니 멋대로 ‘선수’를 쳐서는 곤란해.”

    “지금은 내 철완을 성장시킬 ‘먹이’에 불과하다.”

    “용사와 겸상하려 들지 마. 여긴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여기가 아직도 기프트 아카데미로 보이나? 이 제도 한복판이 무투십대고수인 내 터전이 아닌 네놈의 아카데미처럼 보이기라도 하느냐? 건방 떨지 마라, 용사여. 용사는 대를 거듭하며 ‘재선출’되더라도 그 강함이 언제나 무투십대고수에 준하는 성장을 이룬다는 보장은 없으니.”

     

    바르가스가 몸을 돌렸다.

    이제 그가 노리는 것은 손오천이 아닌 이슈타르.

     

    “사과하고 고개를 조아려라. 그러면 적어도 다음 대의 ‘선출’을 이 자리에서 겪지는 않을 거다.”

    “당신, 다크프린세스가 제도에 침공할 때에도 분명 제도에 있었지?”

    “…무슨 의미냐.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그냥. 잘도 이렇게나 우습게 보였구나 싶어서. 오크노디가 제도에 입성할 땐 당신, 아무것도 못 했잖아. 부전승이라고는 해도 지금은 내가 학년 1위야.”

     

    이슈타르의 주변으로 새하얀 기운이 불길처럼 서서히 솟구쳤다.

     

    “모든 용사가 강해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는 강해져야만 할 이유가 있었어. 넘어서야 할 호적수가 있어. 그 강함을 헛되이 ‘소모’하게 만들지 마. 내 목표는 당신 따위보다 훨씬 위에 있으니까.”

    “그 위라는 건 어디까지 위에 있는 거냐.”

     

    황태자의 권력이나 고관들의 체면조차 무시하고 용사에게도 굽히지 않는 외골수.

    오직 무력만을 숭상하는 철완의 바르가스.

    그의 성정을 분석하며 이슈타르는 무심코 오크노디라면 이렇게 분석했겠지, 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 남자는 외골수.

    흥미만 자극하면 어떤 말을 들어도 외부에 알릴 걱정은 없다, 라고.

     

    -황제타도.

    “…!”

     

    “알았으면 물러서. 당신이 좋아 죽을 구경거리가 곧 시작될 테니까.”

    “하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군. 그 무모함의 결말이 어찌 될지 지켜봐주지.”

    “괜한 참견이었다.”

     

    손오천의 투덜거리는 한마디에 이슈타르 또한 쌀쌀맞게 대꾸했다.

     

    “돕고 싶어서 도운 게 아니야. 혁명군이 손상을 입으면 황제를 황궁 밖으로 유인할 수 없으니 잠시 거들어줬을 뿐이니까. 멋대로 착각하지 마.”

     

    이슈타르와 손오천은 암묵적인 이해를 일치시켰다.

    이번 사태가 매듭되기 전까진 기프트 아카데미의 앙숙이었던 용사파벌과 오크노디파벌도 일시휴전을 맺고 협력한다고.

    그리고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도록 만든 주범이 마침내 황궁 저편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구궁.

     

    “뭐, 뭐냐 이 마나파장은!”

    “폐하다… 폐하께서 금역에서 나오셨다!”

    “잠깐, 저 빛은 대체 뭐지?”

     

    멀쩡하던 하늘에 새카만 먹구름이 모여들더니 대낮임에도 밤을 연상토록 하는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이상현상에 당황한 시민들이 급히 생활용 마도구를 꺼내거나 손전등을 켜며 웅성거리는 순간, 창공 저편에서 빛줄기가 쏟아졌다.

    두터운 구름을 뚫고 지상에 도달한 빛은 모두 황궁으로 향했다.

     

    팟. 팟. 팟.

     

    수많은 빛줄기가 하늘을 채우며 은하수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구름들이 화려한 색상으로 물들며 오색찬란한 빛이 점점 그 세기를 더해갔다.

     

    “오오오.”

    “세상에.”

    “성광의 마데우스조차도 저만한 빛을 보인 적이 없거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고관들조차 탄식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가운데, 고관들의 무리 사이에서도 가장 연배가 지긋한 노신이 두 눈을 부릅 떴다.

     

    “들어본 적이 있다. 선친께서 황제폐하를 모시던 도중, 어느 날 하늘이 암운에 뒤덮이고 눈부신 빛살이 쏟아지며 황궁에 내리쬔 적이 있다 하셨지.”

    “그것이 정말입니까?”

    “알려주십시오. 이것이 무슨 현상인 겁니까!”

    “오래된 이야기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네. 이것은 제국 역사상 수십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진귀한 일이니. 오늘, 제국을 지킬 새로운 <신물>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유일신 소페미아의 축복이 내린 것이네!”

    “오오오!”

     

    기뻐하는 고관대신들과 달리, 이슈타르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었다.

     

    “제국의 금기, 황궁의 금역… 내 생각이 맞다면 저건 아마도.”

    “강화.”

     

    손오천 또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전에 없을 긴장감을 드러냈다.

    황제가 +20강 신물 강화에 성공했다.

    강화가 끝났다면, 황제는 금역에서 나온다.

    그래, 이제 곧이다.

    백만 혁명군과 무수한 시민들, 제국과 혁명군,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모인 이 자리에…

    황제가 나타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물가챠는 몰라도 강화는 성공한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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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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