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37

    늦은 밤, 트로이 적하장의 한편.

    관리자의 시선을 피해 구석에서 마력초를 태우며 눈치를 보던 인부가 저편에서 양복을 걸쳐입은 남성에게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번에 임시로 온 담당자, 너무 깐깐한 거 아니야? 헥터는 이러지 않았다고. 저 녀석때문에 시간이 엄청나게 낭비되고 있잖아. 안그래?”

    권위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작정을 한 건지, 그는 이런 현장에서도 양복에 간단한 안전모만을 걸친 채 현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노려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한밤중에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아무리 적하장에 조명이 잘 되어있어 선글라스를 착용해도 눈앞이 보이긴 한다지만, 굳이 고집할 이유도 전혀 없을텐데.

    그렇게 투덜대자 그 말을 듣던 동료 인부는 킥킥대며 덧붙였다.

    “보나마나 위에서 뭣도 모르는 사무실 양복쟁이를 감시역으로 붙여준거겠지. 어쩌겠어, 윗사람들은 현장직 근로자들보다는 그런 녀석들을 더 신뢰할텐데.”

    결국 팔도 안으로 굽는다고, 위에서 재무재표나 들여다보는 높으신 분들에겐 현장에서 피땀흘려 노동하는 인부들보단 그런 녀석들이 가까울 수밖에 없다.

    결국 그러니까 이런 현장에 맞지 않는 지시가 내려오는 거겠지.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저 담당자의 꼰대질은 도를 넘었다.

    “그래도 그렇지, 저자식은 너무 융통성이 없잖아. 우리가 뭐 그렇게까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컨테이너를 옮길 땐 최대한 충격을 주지 말고 조심스레 옮겨라, 컨테이너는 전부 지시한 위치에 두어야하며, 특히나 붉은 컨테이너는 반드시 지정한 위치에 정확히 적재하라, 화기나 마나에 변성을 줄 수 있는 물질을 소지하고 일하지 말라.

    세상에 그런 안전기준을 전부 완벽히 맞춰가면서 일하는 현장이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들이 지시하는 위치에 컨테이너를 쌓으면 딱히 공간이 효율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동선을 방해해서 비효율적이면 비효율적이었지.

    역시 책상머리에서 일하던 녀석은 현장의 규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평을 한다 한들, 결국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들은 공사장의 인부들이었다.

    게다가 그가 제시하는 ‘안전조건’도 신경쓰면 지키지 못할 것들은 아니었고.

    그렇게 퇴근 전 마지막 마력초를 태운 그들은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

    그러자 일터에서 일하고 있던 동료 인부가 그들에게 질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 또 농땡이나 피우고 돌아온거냐?”

    “잠깐 한대 피우고 온 거지. 자, 그럼 이걸로 워프트레인으로 향할 화물은 전부 옮겨지는 건가?”

    익숙한 능청스러움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그에게 더 말해봐야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는 걸 이미 지난 날들로 알고 있었기에, 그도 더이상 그를 문책하지는 않았다.

    “그래, 이쪽은 저 컨테이너만 옮기면 끝일거야.”

    “하아. 거 참 다행이구만.”

    결국 오늘 하루도 일과를 마쳤다는 생각과, 조금만 더 하면 따듯한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쉴 수 있다.

    그 생각에 인부들의 움직임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하는 듯 했다.

    그 때였다.

    “당신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음?”

    그들 사이에 다가온 이는 다름아닌, 방금 전까지 그들의 뒷담화 대상이었던 꽉 막힌 양복쟁이 담당자였다.

    그는 마치 축하를 건네듯 가벼운 악수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다들 정말 훌륭히 일을 마쳐주셨군요.”

    변함없이 사무적이고 절제된 듯한 목소리이긴 했지만, 설마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던 대상에게 노고를 인정받은 것은 상당히 뜻밖이었기에, 기분이 묘했다.

    그들은 전부 하나같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채 그의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읽으려 노력하며 악수를 받았다.

    “아, 예….”

    “뭐……, 그렇죠.”

    물론 상대가 비즈니스맨이니 그게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말이라곤 생각할 순 없겠지만,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말 뿐이라해도 이렇게 말해주는게 어딘가.

    세상엔 고작 이 정도의 인사도 건네주지 않는 인간이 태반인데.

    게다가, 드워프 인부에겐 직접 허리까지 숙여가며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굉장히 다르게 보였다.

    아무리 예의를 차린다지만, 현장에서 더럽혀진 손에 악수를 하는 것은 썩 유쾌한 기분을 들게하지 않는데다, 고작 노동자 한명에게 악수를 하기 위해 저토록 허리를 굽히고 손을 건네는 것은 매번 ‘투표시즌’이 되면 찾아오는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면 거의 없는 일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생각보단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을지도.”

    “그러게나 말이야. 그동안 우리가 너무 안 좋게만 본게 아닐까 싶네.”

    이미 지나간 일들은 곧 미화되기 마련.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오늘 일과도 할만 했다고 생각하게 되듯이, 그의 그 까탈스러운 요구들도 그의 입장이면 충분히 요구할만한 직무였다고 생각하게 되어갔다.

    그렇게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가고 있을 무렵.

    그는 드디어 선글라스를 벗으며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그럼, 이제 다들 마지막까지 제물로서 그 의무를 다해주시길.”

    그리고 그 말이, 그들이 들은 마지막이었다.

    —-

    “……?”

    문득 루크가 눈을 떴을 땐, 모든것이 달라진 풍경이었다. 

    상황을 정리하던 경찰들도, 하늘을 날던 새도, 추운 겨울의 날씨에 떨어 자신이 코트의 온기를 공유해준 소년조차도.

    전부 사라진 이곳은, 다름아닌 아린세이아였다.

    언제 아린세이아로 들어온 거지?

    뭔가 마력의 혼선이라도 발생한걸까?

    시루드나 경찰쪽은 또 어떻게 된 것이고?

    루크는 어떻게든 전후상황을 떠올리려 했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상기하게 될 뿐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눈높이까지 낮아져서는….

    이는 루크에게 단순히 키가 줄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이 역행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 현상을 본인이 인식했다는 건, 어딘가 일이 상당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원래는 아직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심에도 결국 아린세이아의 입구를 의미하는 꽃밭에 덩그러니 서있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던 루크는, 의아한듯 작아진 손을 한동안 쥐락펴락하다가 한가지 추측을 머리에 떠올렸다.

    ‘이건, 꿈인가?’

    그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추측이었고, 본인에게도 굉장히 이로운 결론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간단히 결론내릴 수는 없었다.

    아린세이아라면, 루크는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었다.

    아린세이아는 루크에겐 사실상 꿈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루크에게 아린세이아란 현실의 법칙을 자신의 마음대로 무시하고 주무를 수 있는 완벽히 분리된 공간.

    그리고 이는 꿈의 특징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결국, 루크의 의아함을 해소하기 위해선 주변을 탐색하는 것 밖엔 선택지가 없었다.

    루크는 반드시 이 공간이 꿈이라는 증거를 확인해야만 했으니까.

    루크는 아장아장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성장이 역행하며 사라진 꼬리때문에 중심을 잡기가 조금 어려웠지만, 루크는 적응력이 꽤 좋은 편이었다.

    다만, 어려진만큼 좁아진 보폭만큼은 적응을 하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넓은 화원을 좁아진 보폭으로 탐색해야 한다니, 생각만해도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탐색은 머지않아 너무나 지나치기 어려운 어떤 하나의 ‘특이점’에 의해 빠르게 끝났다.

    “……!”

    그것은 아린세이아의 넓은 초원을 조용히 태우며 퍼져나가는 검은 아지랑이였다.

    화들짝 놀란 루크가 빠르게 그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달려갔다.

    불인지 그림자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이 일으키는 현상이 과연 ‘화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현상을 어떻게 부르느냐 따위는 현재 루크에게 전혀 중요한 논제가 아니었다.

    그 때, 그 검은 아지랑이 속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있군, 다 타고남은 재에도 불은 붙는 모양이지? 그 불이,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지만…….

    그것은 마치 조롱하는 것 같기도 했고, 탄식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루크에겐 모욕적인 언사였다.

    루크는 곧바로 외쳤다.

    “그대는 누구지? 여긴 대체 어떻게 들어온거야?”

    루크가 외치자, 마치 커튼이 갈라지듯 불길이 갈라지며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내겐 그럴 ‘권리’가 있네, 마법사. 당연히 할 수 있지, 암. 그렇고말고.

    검은 털 달린 코트, 검은 드레스를 입은, ‘용’이 아니라면 도저히 생물로써 불가능한 형태의 검은 뿔이 머리에 무려 6개나 솟아있는 그녀.

    마치 왕관을 쓴 여왕과도 같은 그 모습에, 루크는 말을 잃었다.

    분명 단 한번도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없는 여인이었지만, 루크는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시가르마타……?”

    ‘죽은 것’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

    그녀는 새로운 죽음의 신, 사룡 시가르마타였다.

    그녀는 경악한 루크의 표정을 마치 음미하듯 훑으며 웃었다.

    -루크 이루시, 그대도 나와 같네.

    “뭐…?”

    -지난 일에 납득하지 못하고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 후회가 만들어낸 존재라는 점이.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