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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8

       

       

       

       

       당문이 흔들린다.

       

       은연중 당문에, 그리고 사천에 야금야금 퍼지기 시작한 소문이었다.

       

       당문에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다. 

       헛된 힘을 추구한 당문이 인체실험을 진행했다는 말과 더불어.

       

       이를 진행한 것이 당문의 장로들이라는 소문이 사천 지방에 퍼지고 있었다.

       

       마물을 이용한 실험.

       

       이를 위해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간들이 죽어 나갔고.

       그들은 모두 당문이 비밀리에 납치한 이들이라는 말도 돌고 있었다.

       

       인체실험을 한 것도 모자라.

       그걸 위해 납치까시 시도했다.

       

       사파.

       그것도 변방에 뭉쳐진 피에 미친 사파 놈들이나 할 법한 짓을, 정파 명가가 했다는 소문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소문이다.

       

       소문이 백날 퍼진들, 믿는 이는 반절이 넘지 않았으나.

       당문의 속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게 소문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밤이 되어 달이 빛을 내기 시작한 시점.

       

       처소에 등불 하나 켜놓고서, 당소열은 오라비인 당주역을 만나고 있었다.

       

       “어떻게 해요…?”

       “무얼 말이냐.”

       

       당소열의 말에, 당문의 소가주. 당주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소 태평한 반응.

       

       그 반응에 오히려 당소열의 눈가가 붉어진다.

       

       “알고 있잖아요…. 오라버니.”

       “흐음….”

       

       당소열의 처량한 반응에 당주역은 한숨을 내쉬었다.

       

       ‘들켜버렸군.’

       

       본가 내에서 터진 일은, 가능한 당소열이 모르길 바랐으나.

       아무래도 누군가 말을 꺼낸 모양이다.

       

       아니면, 소문이 워낙 커지고 있으니 이를 들었을 수도 있지.

       

       “아니라고 해도 안 믿겠지.”

       “믿을 거예요. 다만, 나중에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오라버니를 원망하겠지요.”

       “음.”

       

       울먹이면서도 또박또박 말하는 당소열을 보며 당주역이 눈을 빛냈다.

       

       예전 같았으면 다소 철없는 말투로 떼쓰듯 했을 터인데.

       지금의 당소열은 그러지 않았다.

       

       ‘철이 들었나.’

       

       그렇다면 아쉬울 따름이다.

        당주역은 어린 여동생의 모습도 나름 좋아했으니 말이다.

       

       ‘만일 철이 들었다고 한다면, 원인은….’

       

       당주역은 스치듯이 떠오른 사나운 인상의 청년을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오라버니?”

       “미안하구나, 잠깐 다른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감회가 새롭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명가의 혈족.

       좀 더 가면 검봉의 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랬던 작은 소년은, 고작 몇 년 사이 너무나 거대해져 있었다.

       

       눈앞에 제 여동생뿐이 아니라, 당문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당주역이 예상하기로,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도.

       

       ‘중원 전역에 영향을 끼치겠지.’

       

       이는 예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런 경고를 했을 리 없으니 말이다.

       

       -구 공자를 조심해라.

       

       이는 단순히 위험인물로 취급하기 위한 게 아니다.

       

       조심하라는 말에는, 조심히 대하라는 뜻도 숨어있으며.

       더불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란 뜻도 들어 있었다.

       

       독왕은 구양천에 대해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할 인물로 확정을 지은 것이다.

       

       그러니 소가주인 자신에게도 경고한 것이겠지.

       

       물론, 그게 아니었다고 한들, 당주역은 구양천을 조심히 대했을 것이다.

       

       ‘어찌 모를까.’

       

       지금의 구양천에겐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원래 몰랐다는 게 이상할 만큼 말이다.

       

       조금 있으면 그 청년의 중심으로 돌풍이 몰아칠 것이다.

       그런 이들이 당주역이 알기에도 몇 명 있었다.

       

       지닌바 가능성이 너무나 뛰어나기에, 주변에 폭풍을 몰아오던 이들을 말이다.

       

       ‘나 또한 그리되고 싶던 적이 있었지.’

       

       자신이 그리되지 못하리라는 건 당주역이 제일 잘 아는 부분이었다.

       

       하물며, 처음에 그리 태풍을 몰고 다니다가도. 

       

       그 바람에 휩쓸려 주저앉는 이들도 많았다.

       

       아니, 대부분이 그러했지.

       

       객관적으로 볼 때, 자신이 그런 태풍을 몰고 온들 버틸 재량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구양천은 어떨까.

       

       ‘그 친구는….’

       

       당주역은 구양천을 떠올리며 주변에 바람을 살폈다.

       

       붉다.

       

       구양천의 태풍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태풍의 눈에 머문 것도 모자라, 자신의 색을 온 바람에 뒤집어쓰게 할 것이다.

       

       붉은 바람은 점차 덩치를 키워, 이내 중원 전역에 내리 앉으리라.

       

       그리되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당주역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하니, 다행이겠지.’

       

       그런 구양천이 동생을 좋게 보고 있다는 게, 나름 다행일 따름이었다.

       

       당주역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 당소열이 떨리는 목소리로 당주역에게 말을 물었다.

       

       “…아, 아빠는…. 아니. 아버지는…괜찮으시데요?”

       

       당문의 위험보단 독왕의 안위에 대한 물음이었다.

       지금 가장 힘들어하고 있을 건 아버지일 테니까.

       

       그 물음을 들은 당주역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고 말고 하실 게 어디 있겠느냐.”

       

       “그런 무책임한 대답이 어디 있어요….”

       “구태여 말하자면, 오히려 편해 보이시긴 하셨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한창 당문이 위세를 떨칠 때 가지고 계셨던 그늘이, 오히려 이리 망가질 무렵이 되어선 사라지셨으니.

       

       당주역은 그런 독왕의 기분을 이해하면서도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뱉지 않았다.

       

       “오라버니….”

       “그게 가주님의 선택이라면, 따라야지.”

       “…”

       “소열아, 너도 보지 않았느냐. 가주님의 표정을 말이다.”

       

       쓰게 웃으면서도.

       혹은 마른 듯 보면서도.

       

       독왕이 입가에 짓던 미소는 한결 가벼워 보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인식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님의 미소가 무거웠다는 걸, 몰랐었지.’

       

       원래 모르던 것을, 달라졌기에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미안하구나.

       

       제 선택에 관해 얘기하며 사과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당주역에겐 다소 낯선 광경이었다.

       

       어찌 그리하셨냐 따질 수도 없었고.

       그 선택에 대해 부정을 내놓을 수도 없었다.

       

       -이 선택으로 인해 많은 게 달라진다 하더라도.

       -적어도 정파라면 이래야 하지 않겠느냐.

       

       현실을 뒤로하고 낭만만을 좇는 말이라 할 수 있겠으나.

       당주역은 그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다.

       어쩌면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일일지도 모르겠다.

       

       당문은 정파다.

       

       그 당연한 말이 유달리 무겁게 느껴졌다.

       

       “괜찮다.”

       “…오라버니.”

       “이 일로 당문이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그걸 다시 붙잡는 게 나의 일이겠지.”

       

       구태여 우리의 일이라 칭하지 않았다.

       당주역은 가주가 될 것이며.

       

       독왕의 선택을 존중하고자 마음을 먹은 이상. 뒤에 있을 많은 일도 짊어질 생각이었으니까.

       

       “하니, 소열이 너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당문은 무너지지 않는다.”

       

       만일 무너진다면 얼마든 일으키면 된다.

       

       “그러니, 고민하지 말거라.”

       “…!”

       

       당주역의 말에 당소열이 흠칫 놀라 했다.

       그가 어떤 의도로 뱉은 말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네가 고민하고 있는 걸 알고 있단다.”

       

       당소열이 고민하는 것, 그건 아마.

       

       “구 공자의 대한 고민이지?”

       “…”

       

       구양천에 대한 고민. 

       정확히는, 내일 산서로 간다는 구양천을 따라갈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본래라면 당연히 따라갔을 테지만.

       집안 꼴이 이리된 이상, 직계 혈족이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상관없었다.

       

       “따라가거라.”

       “하지만….” 

       

       당주역의 말에도 당소열은 쉽사리 마음을 정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가는 게 낫다. 이곳보단 구 공자의 곁이 네겐 더 도움이 될지 모를 일이니까.”

       “…”

       “이왕이면 좀 꼬셔 보거라 내 동생이라지만, 어디 가서 꿀리는 얼굴은 아니잖느냐.”

       “오라버니…!”

        

       당주역의 농담에 당소열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곁에 있는 여인들과 비교하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당소열은 상당히 예쁜 편이었다.

       

       구양천 주변에 있는 여인처럼 성숙하기보다는 귀여운 쪽이라 그렇지.

       

       그리고.

       

       ‘이왕 잘 풀려서 관계가 나아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인데.’

       

       당문이 아무리 무너진다고 한들.

       

       사위이자 매제가 차기 천하제일인이라면 어디 가서 꿀리진 않을 테니까.

       

       당주역의 머릿속에선, 이미 구양천은 훗날의 천하제일인이었다.

       

       그런 당주역을 당소열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와요…?”

       “못할 상황은 아니지 않나?”

       “진짜….”

       “아무튼, 너무 고민은 하지 말거라.”

       

       그렇게 웃음을 남기고, 당주역이 몸을 일으켰다.

       

       “더 할 얘기도 없어보이고, 밤이 늦었으니 오라비는 이만 가마.”

       “…고마워요. 오라버니.”

       

       늦은 밤에도 구태여 찾아와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당소열은 지금 가장 지쳐하고 있을 게 당주역이라 생각했다.

       

       지금의 당문은 독왕의 것이지만.

       이후 이걸 관리하게 될 것은 당주역이었기에, 그가 흔들리는 당문을 보며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을지 모를 수 없으리라.

       

       그러한 감정이 담긴 감사에 당주역은 피식 웃었다.

       

       “그래.”

       

       역시, 아무래도 확실히 제 동생은 철이 든 모양이다.

       그게 지금으로선 가장 아쉬웠다.

       

       탁.

       

       그렇게 문이 닫히고.

       당주역의 인기척이 사라진 직후, 당소열은 이부자리에 몸을 누웠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앞으로 벌어질 일도 두렵지만, 당주역이 두고 간 고민거리 때문이 컸다.

       

       ‘…공자님.’

       

       낮에 있었던 식사 자리.

       

       거기서 구양천은 내일 산서로 복귀하겠다는 뜻을 내뱉었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구양천은 손님이었고, 당문의 일이 터진 만큼, 오래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이에 다른 일행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어디로 간다 하더라도 따라갈 생각 같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소열은 아직 스스로에게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원래라면 당연히 따라가겠다고 말했을 터이나.

       집안 꼴이 이렇게 된 상황에 그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당주역이 그리해도 된다고 해도 말이다.

       

       그걸 뻔히 알고 있기에, 당소열의 밤은 이리도 심란한 것이겠지.

       

       고민이 반복되는 틈에, 당소열의 귓가로 구양천의 목소리가 스쳤다.

       

       -너를 위해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

       

       변성기가 막 지나, 아직은 어린 티가 남은 목소리.

       

       거기 담긴 덤덤한 듯 얼핏 다정한 음색에 당소열의 귀가 붉어진다.

       

       “…끄으응….”

       

       참 나쁜 사람이다. 

       제대로 뭐 해주지도 않으면서, 사람 마음은 이렇게 흔들어 놓다니.

       

       물론 제멋대로 얼굴에 홀려 따라다니고 있는 자신이 할 말은 아니다만.

       

       ‘…그럴 거면 먼 곳을 보고 있지나 말든가.’

       

       구양천에게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이들의 마음을 죄다 흔들어 놓고. 

       

       정작 본인은 그곳을 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나….’

       

       언제나 더 먼 곳을 쳐다본다.

       

       그의 눈이 그랬다.

       

       본인은 이곳에 있으면서, 눈은 어딘가 먼 곳만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듯, 언제나 우리의 곁을 떠날 수 있는 눈동자.

       당소열은 언제나 그게 두려웠다.

       

       근래 들어 간신히 이곳을 봐주는 듯 보였지만.

       종종 먼 곳을 보는 구양천은 불안하기만 하다.

       

       알 수 없는 곳을 쳐다보는 구양천의 눈은, 시릴 만큼 차가웠다.

       

       그렇기에 당소열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없는 사이.’

       

       그가 사라질까 봐.

       

       이런 감정은 자신뿐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

       구태여 말을 하지 않는 건.

       

       자신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구양천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들을 힘겹게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만큼.

       부담감을 쥐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힘들어….”

       

       그리 생각하기에, 무능한 자신이 싫었다.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가 먼 곳을 본다면, 또한, 먼 곳으로 가고자 한다면, 곁에서 같이 갈 수 있도록. 힘을 길러야 했다.

       

       분명 그랬어야 했는데….

       

       ‘…어쩌지.’

       

       당문이 어찌 될지 모르게 된 지금.

       자신의 가치는 무엇이 남았는가.

       

       그나마 당문의 여식이라는 가치를 남겨놨다고 생각했거늘.

       

       이제는 그것조차 희미해진다.

       

       “…으….”

       

       눈가를 닦아냈다.

       제멋대로 눈물이 났다.

       

       스스로 생각하길 추악하고 역겨웠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도. 그런 걸 생각해?’

       

       아버지와 오라비가 저리 심란해진 상황에서, 떨어진 당문의 가치나 생각하고 있다니.

       추접스럽다.

       

       “흐으….”

       

       그때 그의 손을 잡을 걸 그랬을까.

       강해지게 만들어준다던 그의 손을 잡았더라면.

       

       이리 고통스러울 일이 있었을까.

       

       당소열의 마음속에 얕게 떠오르는 감정은 후회였다.

       못난 자신에 대한 분노도 스민다.

       

       이대로 어둠 속에 파묻히고 싶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뚝-

       

       점차 감정이 뒤틀리기 시작하려는 순간.

       

       훅.

       

       “…!”

       

       눈물을 닦던 당소열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치워내고 재빨리 움직여 벽에 등을 맞댄다.

       

       “…”

       

       우우웅.

       

       그리곤 내기를 불어넣어 기감을 퍼트렸다.

       

       “…스으으….”

       

       커지려는 호흡을 억지로 짓눌렀다. 

       등골에는 소름이 가득 돋았다.

       

       ‘뭐지?’

       

       방 주변은 조용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조용한 게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조용해.’

       

       그 침묵이 이상하리만큼 짙었다.

       

       그걸 느낀 순간, 당소열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말이다.

       

       스르륵.

       

       당소열의 손끝에는 어느새 비수가 쥐어진다.

       

       언제라도 몸에 달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땀이 흘렀다.

       

       지금의 감각이 착각이면 좋겠지만.

       당소열은 분명 그게 아닐 거라 확신했다.

       

       “…누구시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뱉은 말.

       

       당소열이 그렇게 말을 흘려낸 순간.

       

       후욱-!

       

       탁상 위에 켜져 있던 등불이 꺼지며.

       

       “한 시진.”

       “…!”

       

       목소리는 정면이 아닌 당소열의 바로 왼편에서 들려왔다.

       

       쉬익-! 곧바로 비수를 소리가 난 방향으로 휘두르지만.

       

       탁-!

       

       당소열의 손목은 제대로 공격을 취하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붙잡혔고.

       

       그 직후.

       

       콱-!

       

       “끄으읍!”

       

       손이 뻗어 나와 당소열의 입을 움켜잡았다.

       

       “끕…끄으읍!”

       

       온 힘을 주어 발버둥치지만, 조금도 풀리지 않는다.

       앞에 있는 건 누구인가.

       

       잘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체형만 파악할 수 있는 수준.

       

       사내로 추정되는 인물은, 반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 탓인지 존재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딱 한 시진, 네가 내 기운을 인식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끄읍….”

       “다행히 감각은 나쁘지 않은 모양이군. 두 시진은 족히 걸릴 거라 봤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당소열은 사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암객인가? 암객이라면 어디서 보낸 암객이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네가 해야 했을 일은, 막다른 퇴로로 가는 게 아닌. 차라리 입구로 돌파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 말하며 동시에 잡고 있는 손에 힘이 풀린다.

       아슬아슬하게 입을 열 수 있는 만큼이었다.

       

       “…귀하는 누구십니까.”

       

       당소열에게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잔뜩 떨리고 있었다.

        

       당문의 호위가 주변에 가득 깔린 상황에, 자신의 방까지 아무렇지 않게 들어왔다.

       

       이것만으로도 당소열은 상대의 경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런 당소열을 보며 사내는 말을 이어갔다.

       

       “묻는 와중에 눈은 죽지 않았군. 그 또한 합격점이다.”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합격점이라니?

       

       사내를 힐끔 보면서 당소열의 눈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도망칠 수 있을까.

       

       잡혀있는 시점에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슥.

       

       우연일까. 

       

       비수가 들린 손에 힘이 살짝 풀린 것 같았다.

       이대로 손을 빼내서 반격할까. 

       

       고민이 들지만 참아냈다.

       

       뭔가 서늘한 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간을 봐야한다.

       

       그런 의도를 숨기며 당소열이 시간을 끌었다.

       

       “…제게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

       “있….”

       

       사내가 말을 꺼내려는 것과 동시에, 당소열이 손에 힘을 주었다.

       

       툭-!

       다행이다. 

       

       손이 잘 빠져나왔다.

       이대로 반격을 취해야 한다.

       

       ‘어디로?’

       

       목인가 아니면 입을 움켜잡은 손인가.

       찰나의 고민이 스친다.

       

       그게 문제였다.

       

       후욱-!

       

       “…!”

       

       비수를 잡고 있던 팔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당소열이 쥔 비수의 끝이 어째서인지 그녀의 목에 닿아 있었다.

       

       “계획은 끝까지 정하고 실행해라. 지금의 고민으로 너는 죽었다.”

       “흐윽…흑….”

       

       그마저 허초였나.

       당소열은 죽음의 앞에서 얕은 숨만을 내뱉고 있었다.

       

       다른 방법은? 다른 방법은 없나?

       

       ‘살아야 해.’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 당소열을 보며 사내의 눈이 좁아진다.

       

       “나쁘지 않다.”

       

       그렇게 말한 사내는, 갑자기 잡고 있던 팔을 풀고선 뒤로 물러났다.

       

       털썩-!

        

       속박이 풀린 당소열이 바짝 엎어져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헉…꺼흑….”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당소열이 고개를 들었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쳐다본 곳엔, 사내가 탁상 위에 걸터앉아 당소열을 내려다보고 있더라.

       그를 보며 물었다.

       

       “누구…누구십…니까.”

       

       대체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나타나 자신을 이리 몰아붙이는 걸까.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도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그런 당소열을 마주 보며 사내가 말했다.

       

       “나는 어둠이다.”

       

       내뱉는 음성에 당소열이 땀을 한 방울 흘렸다.

       

       “그리고, 너 또한 어둠이 되어야 한다.”

       “…그게 무슨….”

       

       알 수 없는 얘기에 당소열의 눈이 흔들린다.

       

       어둠이라니? 

       

       뭔지도 모를 말에 당소열이 다시금 물음을 건네려 하지만.

       

       “…!!”

       

       이내 입을 다물어야 했다.

       

       방금까지 무표정하게 자신을 보던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떠 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즐거운 듯 올라간 입꼬리와 달리, 차갑게 식어있는 눈빛.

       

       그 소름 끼치는 모습에 당소열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딱 삼 년.”

       

       당소열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삼 년 안에 내가 너를 괴물로 만들어주겠다.”

       

       이날의 만남이.

       

       훗날 당소열을 암후(暗后)라 불리게 만들 것이라는 걸 말이다.

       

       

       

       

       

       ******************

       

       

       

       

       

       하루가 흘러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

       새벽 안개를 뒤로하고 햇살이 점차 당문을 비추고 있었다.

       

       아직 사람들이 일어나긴 이른 시간이지만.

       그 틈에서도 여러 사람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어디에다가 둬야 합니까?

       -그건 모용 아가씨께 여쭤보게!

       

       각기 다른 색의 마차가 여러 대.

       그 안에 짐을 넣는 무수한 인원이 보인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새벽부터 당문을 떠날 채비를 시작한 탓이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정오에는 출발할 수 있었으니까.

       

       짐이 많은 건 아니다만, 아무래도 거리가 거리인지라 좀 바삐 움직여야 했다.

       

       그래, 그래서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뭐라구요?”

       

       나는 들려온 말에 인상을 가득 찌푸려야 했다.

       

       “방금 뭐라고…뭐라고 하셨습니까?”

       

       정면에는 신의가 서 있었다. 

       

       신의야 별달리 문제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 옆에 서 있는 노인이었다.

       

       푸른 무복을 정갈하게 입고.

       하얀 백발을 질끈 묶은 노인.

       

       훤칠한 키를 지녔고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 푸른 눈동자가 이색적인 인물이었다.

       

       젊었을 적에 상당히 잘생겼을 것이 예상되는 인물상.

       

       그런 노인은 나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당연히 잘 알지.

       당장 며칠 전에 아버지에게 피떡이 되도록 맞고 있던 노인이었으니까.

       

       노인의 정체는, 중원의 천외천으로 불리는 삼존자.

       

       그리고 남궁가의 실질적인 주인이라 불리는 인물.

       

       천존(天尊) 남궁절천.

       

       며칠 만에 뜬금없이 나타난 그가 내게 말했다.

       

       “구가에 몸을 의탁하고 싶구나.”

       “…”

       

       천존이 뱉은 말에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었다.

       

       아무래도, 올해는 삼재인 모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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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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