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38

   조이는 공작 저택의 집무실을 앞에 두고서 심호흡을 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이 문턱을 넘는 것을 두려워했다.

   

   바깥사람들의 평가와는 달리 파트란 공작이 평범한 성미를 지닌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만.

   

   한편으로는 왕국에 다섯 개만 존재하는 공작가문의 수장이 될 만큼 유능하기도 하단 걸 알았기에. 조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일을 처리하는 곳에 들어가는 것을 꺼렸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래선 안 됐다. 이 자리는 조이 본인이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그녀가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할 사람이자 소중한 친우인 루시가 직접 움직이겠다는 것을 자신이 하겠노라 자신 있게 말하고 온 자리이니까.

   

   내가 이런 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루시의 곁에 설 수 있겠어.

   

   그녀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하기 위해선 나도 같은 자리에서 맴돌기만 해선 안 돼.

   

   “아버님.”

   

   조이가 문을 두드리기 무섭게 안 쪽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온다.

   

   파트란 공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사람의 심장을 옥죄는 목소리라 부르고, 공작에 대해 아는 이들조차 흠칫하고 어깨를 떨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걸 들은 조이는 애써 평온한 척 표정을 유지하며 방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거라. 조이. 제프에게 여러가질 들었단다. 아카데미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지?”

   “제가 한 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얼마 되지 않긴. 나도 마법사다. 대마법사 에르기누스의 마법을 해석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진 않아.”

   

   파트란 공작의 흐뭇한, 겉으로 보기엔 심기가 무척 불편한 것처럼 보이는 웃음을 본 조이는 거기에 마주 웃어주며 문을 닫았다.

   

   “그래서 여긴 어쩐 일이냐. 표정을 보아하니 단순히 인사를 하러 온 건 아닌 듯 한데.”

   

   책상에 팔꿈치를 댄 채 손깍지를 한 파트란 공작은 자신의 사납고 무심한 눈동자로 조이를 바라봤다.

   

   “아버님께 제안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이라면 두려움에 식은땀을 흘릴 상황이지만 조이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당당히 파트란 공작을 마주했다.

   

   “제안? 부탁이 아니라?”

   “예. 제안입니다. 부탁이란 단어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제안이 되어야만 합니다.”

   “재밌구나. 어떤 제안이지?”

   “요정의 숲. 그 곳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르테아 백.”

   “지난 일로부터 대략 반 년만인가요.”

   

   루시의 부탁을 받아 아르테아 가문을 찾은 페이비는 아르테아 백작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본래는 페이비를 존중하기는 해도 다른 신도들마냥 열광하지는 않던 아르테아 백작이지만 지난 번 어둠의 악신을 상대했던 일 이후부터는 태도가 달라졌다.

   

   수정구 속에 녹화되어 있던 영상을 본 후로부터 아르테아 백작은 페이비가 성녀라는 호칭을 사용할 자격이 있음을 완전히 인정했음은 물론이고 옆에 너무도 밝은 태양이 있어서 그렇지 페이비도 분명 빛을 내는 사람이란 걸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반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 다시금 만나게 된 페이비는 아르테아의 백작이 잠시나마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예전처럼 한없이 선한 성품에서 비롯된 빛이 아니라 주신의 사랑을 받기에 내뿜을 수 있는 빛을 말이다.

   

   “분명 주신께서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게 아니셨군요.”

   

   아르테아 백작은 루시 알른이라는 기적을 본 순간부터 주신의 존재를 확고히 믿게 되었다.

   

   허나 그와는 별개로 성경의 내용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만 했다.

   

   뿌연 빛으로 물든 세상 속에서 오롯이 한 사람만이 주신의 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으니. 주신께서 세상 모두를 공평히 사랑한단 말은 거짓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아르테아 백작의 앞에 나타난 페이비는 주신의 사랑이 한 사람의 것이 아님을 증빙하고 있었다.

   

   주신께서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사랑을 베풀 것이란 걸 말이다.

   

   이는 아르테아 백작의 입장에서는 희망이었으며 희열이었다. 자신도 진정 경건함을 갈고 닦는다면 언젠가 저처럼 따스한 빛을 품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당연하지요. 그 분께서는 여전히 세상 아래의 모두를 공평히 사랑하십니다.”

   “오오오.”

   “다만 여력이 없으실 뿐.”

   

   페이비가 태연한 어투로 대답을 하자 아르테아 백작의 눈초리가 살짝 올라갔다.

   

   “…여력이 없다. 입니까.”

   “주신께서는 분명 선하시지만 그렇다 하여 전지전능하신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듣는다면 불경하다며 기함할 이야기군요.”

   

   주신 교회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신이 전지하고도 전능하다는 것을 믿는다. 성경에서 그리 가르치기에 모두들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허나 페이비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제 아무리 위대한 주신이라 하여도 한계가 존재한다고.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경한 이야기인지 잘 아는 듯 페이비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허나 불경하다하여 진실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지요.”

   “성녀님의 말씀이 사실이란 가정하에 한 가지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주신께서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면 당신은 어찌하여 그 분을 신앙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신을 믿는 이유는 그의 전능함을 믿기 때문이다.

   

   헌데 주신이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은 존재라면, 드높은 것은 사실이나 한계가 존재하는 이라면, 그걸 간절한 마음으로 신앙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위대한 주신께서 선하단 사실도 알기 때문입니다.”

   “선하다.”

   “주신께선 부족하실지언정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입니다. 자신의 잘못에서 눈 돌리지 않고 올바름을 찾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전 그 분을 믿습니다.”

   

   한치의 고민도 없이 나온 대답은 이것이 페이비란 사람의 진심이며 그녀가 왜 주신을 섬기는 성녀로 살아가는 지를 알려주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을까요?”

   “…예. 주신께서 어째서 당신을 애정하시는 지 또한.”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실례가 아니라면 이 말을 제게 해주신 건 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페이비라는 사람의 가치관에 아르테아 백작이 감화된 것과는 별개로. 주신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성녀의 자리가 위태로워질수도 있는 발언이었단 말이다.

   

   헌데도 페이비는 굳이 필요 없는 말을 아르테아 백작에게 선사했다.

   

   “하나는 위대한 주신의 애정을 받는 분이 아르테아 백을 믿기 때문입니다.”

   

   루시는 아르테아 백작이 자신을 도울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페이비 또한 그녀를 믿어야 한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경건할 그녀의 믿음이 틀릴 리 없으니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 진실됨을 보여야 아르테아 백의 진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고요.”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아르테아 백. 저희는 신화의 시대에 영웅이 이루지 못한 일에 도전하려 합니다. 주신께서 그를 바라시기에 기적을 일으키려 합니다.”

   

   부디 이 대업에 참여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말을 끝마친 페이비가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답을 기다리는 동안 눈시울이 붉어진 아르테아 백작은 어느새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요정의 숲으로 향하기 전에 우선 행해져야할 대전제가 존재한다.

   

   바로 대형던전에서 봉인된 어둠의 악신을 가지고 오는 것.

   

   그 자를 요정의 숲에 내던져야 거기에 존재하던 모든 기운이 주인을 찾아 몰려들 터이고 그래야만 예상외의 재앙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낙석을 없애기 위해 산사태를 일으키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예상외의 순간에 떨어질 낙석보단 우리가 상황을 만들고 마주할 수 있는 산사태가 더 나으니까.

   

   그를 위해 솔라딘 왕국에 있는 대형던전에 방문한 나를 맞이해 준 것은 영주를 비롯한 도시 내 권력자들의 정중한 인사였다.

   

   “귀빈들께서 이 누추한 곳에 방문해 주시니 너무도 영광스럽습니다!”

   

   예의바르다 못해 비굴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깊게 고갤 숙이는 영주의 모습에선 우리를 향한 공포가 느껴졌다.

   

   왜 이러는 거야? 대형던전이 있는 곳의 영주정도면 나름 권력자잖아.

   

   이렇게까지 정중할 필요는 없을 텐데?

   

   고갤 갸웃하며 뒤편으로 고갤 돌린 나는 우리의 면면을 다시금 확인했다.

   

   대륙 최강의 기사 베네딕. 검의 극의에 오른 검성. 예술교단의 사도. 솔라딘의 3왕자. 동정찐따해골. 그리고 나.

   

   으으음. 우리 면면이 위험하긴 하네. 자칫 잘못하면 물리적으로 목이 날아갈 것 같아.

   

   ‘곤란하네요. 너무 눈에 띄는 것도 좀 그런데.’

   

   우리가 할 일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은 좋지 못하다.

   

   우리가 하려는 일을 미리 눈치채고 악신의 추종자 무리가 요정의 숲을 찾는다면 여러모로 곤란하니까.

   

   으으으. 어떡하지. 잠시 돌아갔다가 밤중에 잠행이라도 선택해야하나.

   

   <글쎄다. 진짜 곤란한 건 따로 있을 듯 한데.>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생각해보거라. 저들이 어떻게 네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여기에서 대기하고 있었겠느냐.>

   ‘어?’

   

   말을 듣고 보니까 이상하네. 얘네들이 어떻게 우리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준비하자마자 바로 온 거라 대처할 틈도 없었을 텐데?!

   

   “마음 같아서는 이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싶으나 안타깝게도 저는 여러분들을 안내드리고 물러나야만 합니다.”

   

   안내? 안내한다고? 누구한테 우리를.

   

   “솔라딘 왕국의 제 1왕자께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걔가 여기서 왜 나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