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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8

    <538 – 황제의 선언>

     

    당대의 선황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수많은 <황태자>들을 낳았고, 그중 단 한 명도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지 못했으니까.

     

    “허허. 밖에서 재미난 소동이 많이 일어났군요. 어찌하시겠습니까, 폐하?”

    “무엇이 두려워 발길을 향하길 어려워해야 하는가. 짐은 황제다.”

     

    그런 황제가 당당히 대중들의 앞에 나타났다.

    면류관과 팔루다멘튬paludamentum으로 몸의 반신과 얼굴을 가렸으나 그의 당당한 걸음걸이 앞에서는 누구도 그를 비겁하다 여길 수 없었다.

    애초에 연설대를 지나쳐 허공을 딛고 하늘로 걸어오르는 황제를 어느 누가 우습게 여길 수 있는가.

     

    쿠궁!

     

    강화이팩트가 쏟아지며 걷어졌던 암운이 황제의 주변에 재차 드리우니, 제국신민들의 눈에는 밤과 어둠을 부르며 세상에 공포를 창궐시킬 초월적인 공포를 부르는 존재의 강림이 따로 없었다.

     

    “황태자는 앞으로 나서라.”

    “…”

     

    파케 히우그마그가 멍청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단상 앞도 아니고 하늘로 불러내는 것을 대관절 어찌 따라간단 말인가.

    망연자실한 그를 위해 당대 수석마도사가 급히 마법을 사용해 황태자를 허공에 띄워주었다.

     

    [비행마법]

    [보조술식 : 부유, 체공]

     

    용사 이슈타르도 대장군 손오천도 제2의 혁명가 지젤도 모두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체급이 다르다.

    허공답보를 논할 것도 없이 그저 존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졌다.

    황제가 원한다면 누구도 그를 끌어내릴 수 없음을.

    저건 결코 사람의 힘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소란들이 일어났구나.”

    “폐, 폐하…”

    “그래, 오크노디가 사경을 헤매다 목숨만 건졌고 금기연구소는 박살 났으며 외부강화소는 모두 털렸다는 정보는 사실이더냐.”

    “…그렇습니다.”

    “그중에 무엇이 너의 소행이느냐.”

    “어느 것도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오크노디가 멋대로 설치다 스스로 자멸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의중이 담겨있다면 폐하의 의중이 아닙니까?”

    “호오. 짐이 오크노디를 해쳤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궁에 들른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그 아이가 자유롭게 외부강화소에 들락거리고 금기연구소를 파괴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곳에는 <그것>의 사본이 있단 말입니다!”

     

    황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제압의 서.

    그것의 가치에 대해서는 황제도 이해하고 있다.

    황태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강화>시켜 얻어낸 첫 번째 무기이자 그를 지금의 지위에 오르도록 허락한 계기였으니까.

    그것의 사본조차도 얼마나 커다란 위협인지 황제 또한 명백히 알고 있다.

     

    “대충 알았다.”

    “그럼-”

    “너의 무능함을.”

    “-?!”

     

    황제는 이해했다.

    이것은 양패구상이다.

    오크노디는 황태자의 금기에 당했고, 황태자는 오크노디의 역량을 깨닫지 못하고 방심하여 자신의 연구소를 몽땅 털려버렸다.

    당장 혁명군에 가세한 손오천이라는 사내 주변에 포진한 후드를 둘러쓴 <가짜영혼>이 깃든 그릇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멍청한 것.

    자신의 계획이 적의 이득이 되었음을 깨닫지도 못하고 주제넘게 황제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니.

    파케 히우그마그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겨주지 않았던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 침략에,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 비극,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기회. 무엇하나 뜻대로 끌어낸 것이 없을진대.”

    “…!”

    “짐이 어찌하여 이토록 부족함 많은 황태자에게 황위를 물려주어야 한단 말인가?”

     

    파케의 입이 벌어졌으나 그보다 먼저 그의 곁을 지키던 고관대신 한 명이 한 줌의 핏물이 되어 짓뭉개졌다.

     

    “늘 그렇지만 배움이 느리구나. 짐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대체 몇 번을 목숨을 잃었겠느냐?”

    “부, 부당합니다…!”

    “무엇이 말이냐.”

    “폐하는 인간을 초월한 강함을 지니고 있으나 제게는 그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폐하가 요구하는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그래. 갓 입양한 양녀에게 패배한 변명은 그것으로 끝났느냐?”

     

    황태자의 말문이 막히자 고관대신 한 명이 또 다시 핏물이 되어 퍽 터졌다.

    제국십구강의 일원들도, 동지들이 살해당하고 있는 고관대신들도 누구 하나 감히 입도 뻥끗하지 못하며 무참한 살육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나로 끝날 살인이 아니야.

    -황태자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목을 걸어야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대체 몇 명의 인간을 한 순간에 한 줌의 핏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능력의 한계는 모른다.

    그러나 독심의 끝은 보였다.

    전원이다.

    황제는 자신의 가신들을 아끼지 않는다.

    백성들도 아끼지 않는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제도 내의 모든 생명체가 언제든지 핏물이 되어 흘러내릴 수 있다.

     

    “황제폐하께 감히 아뢰옵니다!”

     

    제국십구강조차 두려움에 멈춘 광장에서 한 사람이 소리 높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다.

     

    “호오. 기개 있는 민중이 다 있군. 너는 누구냐.”

    “폐하와 만백성들의 결투를 주관할 결투공증인 젤지라고 하옵니다.”

    “지금 짐과 백성들의 결투라고 하였느냐?”

    “그렇습니다.”

    “이상한 일이구나. 짐과 백성들의 관계는 오래도록 무탈하였거늘 어찌 만백성의 어버이와 국가의 자식들 사이에 결투가 성립하느냐.”

     

    젤지. 아니, 지젤.

    그의 목숨을 건 외침에 손오천과 이사벨이 기겁했다.

    죽을 작정이냐고.

    지금이라도 고개를 숙이고 조아리라고.

    그런 눈치를 모두 물려버린 채, 지젤이 피가 뚝뚝 흐를 정도로 단단히 움켜쥔 주먹을 뒤로하며 반대쪽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쿵 내리쳤다.

     

    “황제폐하께서 4황녀전하를 양녀로 받아들이며 이를 공언하셨을 때, 백성들은 피로 이어지지 않아도 존중받는 혈연을 능가하는 인정의 가치를 되새겼습니다. 피보다 진한 것은 노력과 헌신, 충성이라는 이름의 가치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깨졌습니다. 황녀전하가 황궁에서 불미스러운 사고로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저희 백성들은 폐하를 믿었으나 내쳐진 것처럼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으며, 작게는 황녀의 안위를 걱정하고 크게는 군주와 백성 사이의 신의를 걱정합니다.”

     

    말은 잘하는 녀석이군.

    황태자 녀석이 보고 배웠으면 좋겠을 정도로.

    황제는 그리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백성들의 고심이 이리 깊을 줄은 몰랐구나. 그래서 짐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잃어버린 신뢰의 수복을 위해 저희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황제폐하께서 백성들의 신뢰를 잃었으나 제국을 아끼는 마음이 변치 않으셨다면, 백성들이 신뢰할 수 있는 후계자에게 마땅히 황위를 양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백성들조차도 저놈은 목숨이 몇 개라도 되냐는 얼굴로 경악하며 지젤을 쳐다보았다.

    황제 또한 그런 흥미로움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참으로 용맹한 발언이구나. 네게는 대신하여 죽어줄 사람도 없건만 감히 짐의 진노를 사는 것이 두렵지도 않으냐?”

    “소신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군신의 관계보다 소중한 군민의 관계가 깨져, 나라의 기틀이 무너지고 천년제국의 역사와 인류의 미래가 흔들릴 것이 두려울 따름이옵니다.”

    “걸물이구나. 전대의 혁명가도 네놈처럼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내였지.”

     

    황제는 한때의 즐거운 여흥을 떠올리듯이 고개를 들고 먼 곳을 쳐다보았다.

     

    “그 사내는 내게 말했다. 일억의 동지를 모은 뒤에 돌아와 당신을 죽이겠다고. 그것이 두렵다면 이 자리에서 자신의 부친을 죽인 것처럼 자신도 죽이라고.”

    “…!”

    “엉뚱한 이야기지 않은가? 그의 부친이 어디서 무얼 하다 죽었는지는 몰라도 어찌 황제와 관여가 될 수 있겠는가.”

     

    황제의 노골적인 비웃음에 지젤이 등 뒤로 돌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은 조롱이다.

    한없이 사실에 근접한 실토를 하더라도 너희가 무얼 할 수 있느냐는 조롱.

    지젤에게는 힘이 없다.

    이 너머로 대화를 이끌어갈 무언가가 부족했다.

     

    “관여는 될 수 있죠. 제가 보장하겠어요.”

    “호오. 너는…”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가 점지한 당대용사 이슈타르. 제국의 국교로 모시는 신이 고른 하나뿐인 인재의 발언에 신빙성이 부족하다 말하진 않겠죠.”

     

    용사 이슈타르.

    그녀의 등장에 지젤의 눈이 커졌다.

     

    ‘당신은 적이었을 텐데. 어째서 오크노디의 동료인 우리를 돕는 겁니까?’

    ‘그런 쪼잔한 일은 나중에 따져. 피차 형편 좋게 사담이나 나눌 때는 아니잖아?’

     

    시선의 마주침 한 번에 오가는 생각도 있다.

    마인드링크Mindlink로 남몰래 대화를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를 경계해왔던 적들에게는 때로 마음이 통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짐이 선정한 국교를 짐이 어찌 무시하겠느냐. 우려가 되는 바가 있다면 용사의 실력 그 자체. 아직 성장이 한창인 어린 용사가 누군가의 귀띔에 홀려 헛된 소리를 주워섬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보여드리죠. 적어도 당신과 같은 높이에서 대화를 나눌 자격은 있다는 사실을!”

     

    이슈타르가 성검을 꺼내더니 이를 가로로 길게 눕혔다.

     

    “검이 허공에 떠올랐어!”

    “오오. 마검사인가?”

    “하지만 저게 어쨌다는 거지?”

     

    이슈타르는 성검의 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떠올랐다.

    성검과 함께 허공으로, 시민들의 눈앞에서.

    어떠한 눈속임도 없는 실력만으로.

    오크노디의 기상천외한 마법이 섞인 마검술에 번번이 골탕을 먹으며 단련하게 된 고학년 전용의 <비행마법>이 실전에서 성공한 것이다.

     

    “우와아아아!”

    “용사님이 하늘을 날고 있어!”

    “황제와 똑같아!”

     

    해냈다.

    이제 그녀의 발언은 적어도 민중들에게 한해서는 황제와 동등한 권위를 지니게 된다.

     

    “초대 혁명가는 많은 죄악을 저질렀으나 그가 혁명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아는 백성들은 없죠. 그것이 부친의 죽음 때문이며, 부친의 죽음에 관여한 자가 황제 당신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황제의 압도적인 강함에 꺾여가던 시민들의 마음에 다시금 분노가 일어났다.

    힘으로 겨루지 않아도 지혜로 이득을 보는 다크프린세스의 방식을 다루는 데 성공했다.

    이제 저들은 황제가 아무리 강해도 그를 향한 증오를 내려놓지 못한다.

     

    수많은 일반인을 휘말려 죽게 만든 초대 혁명가.

    그의 탄생이 황제 때문임을 알았으니까.

     

    “이 이야기는 전대용사 디스트로이어가 직접 전수한 용사행의 뒷이야기. 그리고 만백성이 알아야만 하는 삼대거악의 탄생비화. 황제인 당신이 아무리 강해도, 사람의 목숨을 벌레처럼 짓밟을 수 있어도 지워 없앨 수 없는 명백한 과오예요!”

     

    오늘, 제국의 황제는 공포로 군림할 기회를 잃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강의스노우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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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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