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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8

        소주에서의 사흘차, 본래라면 군막을 철거하고 두둔지를 옮길 준비로 분주해야 할 아침이었지만.

       그러나 군사들은 느긋하기 그지없다.

         

       “오 천호님, 조식 드시랍니다.”

         

       “어, 으, 조식, 조식이 뭔데……?”

         

       “건잡어 튀김과 호박 마늘대 가지 볶음에, 동해탕-”

         

       건잡어 튀김이란 말린 민물 생선을 대충 튀겨낸 것, 호박 마늘대 가지 볶음은 군의 소채(야채볶음)이 그렇듯이 대충 기름에다 둘러 숨만 죽인 것, 그리고 동해탕은 물이 동해처럼 많은데 건더기는 없다고 하여 부르는 탕국의 멸칭이다.

         

       “치워라. 어으, 돌던 입맛도 쫓아내는 게 아니라 아예 두들겨 패서 죽이는구만. 그냥 난 더 잘란다. 너나 많이 먹어라.”

         

       아침부터 참담하기 그지없는 식단이다.

       하지만 군사의 식사가 참담한 것은 본래 모든 문화권의 공통점이다.

       군사 멸시는 아니다.

       빼먹어서 뒷돈 챙길 구석이 많고, 전문 조리시설과 조리인원이 없는 집단이라면야 군사 아니라도 흔한 현상이라서.

         

       오늘 점심은 길에서 먹는다! 하고 비장하게 길을 나서야 하는 군사들이 어째서 이 늦은 아침부터 이렇게 퍼져있는가?

       그야 하루 더 있기로 했으니까.

         

       왜? 신녀님이 시검석을 보고 싶으시대.

         

       그러니까 관광을 가려고 하루 늦췄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에 불만은커녕, 군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다는 반응들이다.

         

       하긴, 소주에 왔으면 마땅히 호구를 보고 가셔야지. 지금까지 결투장에서 수련만 하셨으니 어찌 이 좋은 강남 땅을 둘러보지도 않으실 수가 있겠어.

         

         

       

         

       그리하여 호구!

       정확한 이름은 호구산.

       하지만 정상의 높이가 고작 열 장, 청의 고향에서 십 층 자리 건물과 비슷한 높이에 그저 완만하게 솟았을 뿐인 언덕배기다.

       이러한 언덕을 산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하여 그저 호구라 부르는, 소주 땅의 최고 관광지다.

       이 작은 언덕배기에 얼마나 볼거리가 충만한지, 아주 관광 최적화의 명승지라서.

         

       일단 꼭대기에 호구탑.

       중원의 시성 소동파가 말하기를 소주에 와서 호구탑을 못 보는 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없다 하는 문장을 남겼다.

       호구탑은 칠 층 불탑으로 높이는 열여섯 장, 열 장인 호구산보다 반 배는 더 높은 초거대 건축물이다.

       특징이라면, 삐딱하니 기울어졌다는 것.

         

       “오, 이거. 나 알아. 사탑, 사탑이네.”

         

       청의 고향에서도 중원의 사탑이라 불리는 호구탑이다.

       물론, 호구탑은 억울할 것이다.

       왜냐하면 호구탑이 이백년이나 먼저 지어졌으니, 사탑이 서역의 호구탑이여야 이치에 맞지 않겠냐고.

       이백년이나 앞선 선배 건축물인 호구탑이 중원의 사탑이 되어서야 쓰겠냐고.

       하지만 정작 중원인들조차 농담으로나 하지 누구 하나 진심으로 밀지 않는 주장이었으니, 아무래도 사탑에 비하면 기울기와 높이가 딸리기 때문일 터다.

       억울하면 더 기울어지든가.

         

       “누님, 이 아래 연못이 보이십니까? 여기가 바로 검지, 오나라(그 오나라 아님) 왕 합려가 수집한 삼천 자루의 보검을 버렸다 하는 그 연못입니다. 다만, 실제로 발견된 바는 없으니 사서의 과정에 불과할 것이겠습니다만, 그런데 어쩌다 그러한 일화가 생겼는지 궁금하시지 않으십니까? 세인들이 바로는 연못의 모양이 보검과 같아, 아, 이리 보니 잘 모르시겠지만, 아래서 보면 길쭉하게 잘 뻗은 것이-”

         

       “네놈은 꼭 말이 많군. 음. 이거나 먹지.”

         

       제갈이현의 말을 끊으며, 팽대산이 분홍색 영롱한 어여쁜 쌀떡을 내민다.

         

       “아니!? 산? 어디서 이런 귀한 간식을?”

         

       “오다 주웠다.”

         

       그에 청이 짐짓 눈을 가늘게 뜬다.

       물론 입가에는 미소가 어린 채다.

         

       청은 제 얼굴의 파괴력을 모른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얄궂게 웃는 미색이 요망하기 짝이 없는 꼴이다.

         

       그에 팽대산의 눈썹이 꿈틀.

         

       “그따위로 함부로 눈웃음치지 말도록.”

         

       “뭔데? 왜?”

         

       “……너무 밉상이니 한 대 얻어맞을 꼴이라 그렇다.”

         

       “얄미우라고 한 건데?”

         

       “음.”

         

       “아니, 그런데 어디서 계속 주워 와? 나도 좀 알자. 어디 단체로 흘리는 장소가 있는 모양인데 이참에 아주 그냥 몽땅 주워다 쟁겨놓게.”

         

       팽대산이 크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만다.

         

       그러나 사정 모르는 청은 흐뭇하다.

         

       아니, 우리 산이가 달라졌어요인가?

       요즘 내 입이 비어있는 꼴을 못 보네?

         

       예전부터 툴툴거리면서도 밥이며 간식이며 곧잘 사준 팽대산이다.

         

       그래도 예전과는 다르다.

       사 달라고 졸라야 못이기는 척 사주던 녀석이?

         

       이제는 손주 못 먹여서 안달이 난 할머니들처럼 연신 간식을 내밀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이거나 먹어라, 이거 먹고 입을 좀 다물지, 괜히 힘빼지 말고 이거나 먹어라 등등.

       어디서 났냐고 하면 어디서 주웠다느니 또 누가 줬다느니, 잡상인이 장사가 안 되는 꼴이 불쌍해서 좀 팔아줬다느니.

         

       뭐지, 봄감자가 맛있단다?

       주제에 귀여운 척인가?

         

       하지만 떡은 맛있었다.

       분홍색이면 어쩐지 꿀이나 설탕이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속이 안 든 맨 떡인 부분은 괘씸한 기만이지만, 거기에 쫄깃할 것처럼 기름을 발라놓고는 술빵에 가까운 이 식감도 괘씸하고. 은은하게 올라오는 단맛도 진짜 너무 괘씸하다.

       이거 괘씸해서 안 되겠다.

       삼진 괘씸. 콱콱 씹어서 혼내줘야지.

         

       청이 그렇게 청이 떡을 콱콱 씹고 있자니, 당난아가 확 솟아나 청의 앞을 가로막는다.

         

       “이게, 또. 청아야, 나도 배고프거든?”

         

       “어? 점심 먹고 올라왔는데? 벌써? 나는 아직도 배불러 죽겠는데, 벌써 배고파? 아까 많이 먹지 않았나?”

         

       그에 당난아의 눈썹이 꿈틀.

       그야 그 말을 하는 게 청이라서.

       아무리 청이라고 해도, 청에게는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소리다.

       남들에 열 배는 처먹고는, 저 족제비같이 생긴 팽가놈이 주는 간식을 아주 속도 없이 꿀떡꿀떡 다 삼키는 년한테 듣기에는 너무 참람한 소리가 아닌가.

         

       “익, 몰라. 아음-”

         

       “아니, 그걸 다, 뭐야, 양이 모자랐으면 모자랐다고 하지.”

         

       남은 떡, 이름 모를 괘씸한 간식을 한입에 몽땅 우겨 넣는 당난아였다.

       청이 그 꼴을 보며, 음,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네. 그럼 점심을 더 먹지, 하고.

         

       “소저님, 보세요. 잉어가 팔뚝만 해요.”

         

       “오, 진짜요? 와, 진짜 크게. 푹 고면 맛있겠다. 뼈가 좀 귀찮지만, 그래도 잉어탕, 음, 잉어탕 좋지.”

         

       “……?”

         

       “……?”

         

       “앗, 누님! 저기 저 정자가 보이십니까? 저 정자가 바로 손무정! 손자병법을 쓴 그 손자, 그 손무가 오나라 병사를 훈련시켰던 바로 그 훈련장인 것입니다!”

         

       “그 손자? 맞아? 진짜로?”

         

       “맞습니다! 오나라가 당대의 패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합려의 능력이 아니라 두 총신, 명재상 오자서, 그리고 대장군인 손무에게서 나온 것으로, 이는 나라의 흥망성쇠가 잘 들인 충신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제나라 관중, 진나라 선진, 초나라 손숙오, 월의 범려와 진의 백리해 그리고 또-”

         

       “저기서 팔더군. 이거나 먹어라.”

         

       “아니, 산? 이게 또 뭐야? 나 먹으라고? 이야, 산이, 갑자기 이렇게 기특해졌지?”

         

       “흥. 먹을 것으로 섭섭하게 한 기억은 없다만.”

         

       “하긴. 그렇긴 하지. 히힛, 잘 먹을게.”

         

       어쨌거나, 호구산 관광은 재미있었다.

       이 인원으로야 호구산이 아니라도 그냥 길만 걸어도 재미있겠지만, 그래도 억지로 하루 일정을 늘린 보람이 있을 정도로.

         

       그리고 마침내 시검석!

         

       청이 생각하기에 그냥 하루 놀다가 가자 하면 의심할 만한 친구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다 제갈이현의 만물잡학, 놔두면 하루 이틀 열흘이라도 밤낯 없이 떠들법한 끝없는 수다-

       그러고 보니 제갈이는 왜 점점 말이 많아지지? 전에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아예 졸졸 따라다니면서 해설을 붙이더라고.

       -속에서 좋은 구색을 찾아낸 것이다.

         

       그게 바로 시검석이었다.

         

       시검석은 이름 그대로, 검을 시험해 본 돌이다.

         

       이는 중원의 가장 유명한 병기, 전설상의 명검이자, 한 자루도 아닌 두 자루 부부검 간장‧막야 중 막야를 시험해 본 자리다.

         

       보검 삼천 자루를 모았다고 하는 오나라 왕 합려다.

       검에 대한 욕심 하나만큼은 천하제일이었으니, 간장이라는 장인을 불러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명검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간장은 당시 최고의 검 장인 구야자와 함께 철질을 배웠으니, 너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면서.

         

       간장은 검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아내인 막야의 도움이 있었는데, 동네에 따라 막야의 머리카락을 넣었다는데에서 아예 에밀레종마냥 막야가 고로에 몸을 던졌다고도 하고.

         

       그리하여 두 자루 검이 탄생했다.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붙여서 간장‧막야 한 쌍의 부부검이자 전설의 명검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다만, 간장은 두 검 중 아내검, 막야만을 합려에게 바쳤다.

       왜냐하면, 제 최후를 직감하였기에.

         

       그리하여 막야를 받아든 오왕 합려가 그 서늘한 칼날에 감탄하여 바위를 내리쳐 보았다고.

       그러자 바위가 싹둑 잘리고, 막야에는 조금의 흠집조차 나지 않았으니 과연 전설의 명검이라 할 만하다고.

         

       이렇게 잘린 바위가 바로 시검석이다.

         

       그러니 청이 시검석을 한 번 보자고 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구실도 아니었다.

         

       검사가 검의 흔적을 보자 하는 일이 뭐 이상한 일이라고.

       절검벽 보고 초식을 읽어내는 청이라서, 혹여 무슨 깨달음이라도 있지 않겠냐면서 친구들 모두 모여라,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자면서 우르르 이끌어 데려온 것.

         

       청이 그리고 마침내 그 흔적을 본다.

         

       그러자 조심스레, 하지만 호기심 가득 담아서 말을 붙이는 공손요예다.

         

       “서문 소저? 어떠신가요? 무언가 느껴지는 심상이라도 있으신지……?”

         

       “응? 그냥 돌이네?”

         

       그야 당연히 그냥 돌이다.

       시검석은 개뿔. 그냥 쪼개진 돌 아닌가?

         

       “그낭 돌이라니? 검우! 여기 이 예리한 절단면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과연 막야, 세상에 무수한 보검이 있지만 개중 제일은 단 한 쌍, 간장‧막야라고 하더니. 그 무수한 세월에도 바래지 않는 이 예기를 보게나! 아, 내 한 번만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군! 마침 이 검우가 양검에 뜻을 두었으니 분명 하늘이 두 신검에 닿는 길을 열어주리라 생각했건만, 하지만 이 검격은, 정말, 참으로 감격스럽군!”

         

       남궁신재가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청이 보기엔 그냥 쪼개진 돌이다.

         

       그야 대충 이천년 전 원시인들의 미개한 기술로 돌을 베는 명검 따위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설령 진짜 명검이었더라도 마찬가지다.

       중원 최초의 무공 월녀검은 오왕 합려의 아들 부차의 시대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미개한 중원에 무공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니, 진짜 칼자국이라 해도 뭐 보이는 것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니 시검석은 그냥 개털, 유람객을 끌어들이려는 상술임을 깨닫는 청이었다.

         

       그 대신, 오나라가 멸망한 이유는 아주 잘 이해했다.

         

       막야를 손에 넣은 오왕 합려가 생각하기를, 이 장인을 살려두면 이와 같은 검을 또 만들 수도 있겠구나!

       원래 최고의 보검은 한 자루 뿐이라 최고일 뿐, 여러 자루가 생기면 더이상 최고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장인을 죽여야겠다.

         

       실로 혐오스러운 사고방식이었으며, 왕을 말릴 사람은 없는 법이므로 진짜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자기가 죽을 때는 어떠했나.

       고이 모아둔 삼천 자루 보검을 나눠주지 않고 저승에 가져가겠다 함께 묻으라 하였으니 검을 버린 연못 검지가 존재했다.

         

       아주 천하의 쌍놈도 이런 개쌍놈이 없다.

         

       그리고 검지 건너편에는 넓은 광장에 붉은 돌덩이들이 널려있는데, 이를 천인석이라 한다.

         

       합려가 죽고 합려의 아들 부차가 호구산에 부친의 묘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부친의 묘소가 혹시 도굴당하지 않을까 염려한 부차는 아예 묘소의 위치를 들키지 않도록 모든 공을 다 들였다.

       공사가 끝나자 수고했다며 연회를 베풀어 모든 인부를 불러모은 후에, 전부 죽였다.

         

       그래서 연회장이 온통 시뻘겋게 피로 물들었으니, 천인석이 붉은 이유가 그 인부들의 원한으로 피가 빠지지 않아서라나.

       어느 기록에 따르면 인부가 십만 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건 누가 봐도 그건 좀 너무 가셨다 싶고.

         

       어쨌거나 이미 죽은 아비의 시체를 지킨답시고, 험하게 부려먹은 백성들에게 보답은커녕 죄다 죽여서 입을 막은 부차다.

         

       개쌍놈의 아들 역시 개쌍놈이었던 것.

       전대 왕도 개쌍놈, 현재 왕도 개쌍놈.

       당연히 나라가 망할 수밖에는.

         

       전승에 따르면 구천현녀께서 굳이 월국에 현신하시어 월국의 병사를 가르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저 개쌍놈이 다스리는 오나라를 박살내라 하신 하늘의 뜻이었다나 어쨌다나.

         

       

       

       

       소주 첫날 밤에 난아와 이리.

       둘째 날 밤에 예와 모용 소저.

         

       그리고 셋째 날 밤에는 다시 난아 이리와 함께 침상에 든 청이었다.

       그런데, 난아 얘는 도대체 잠에 들지를 않고.

       그나마도 한참이나 지나 쪼물거리던 손이 오그라들며 쌕쌕 깊은 숨을 내뱉어 잠들었나 싶더니만, 또 잠귀는 왜 이리 밝은지.

       청이 기척을 내면 귀신같이 깨어 ‘어으, 청아야? 왜, 측간 가게?’ 하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에 비하면, 공손요예와 모용주희는 슥 빠져나와 둘이 붙여놓으면 알아서 잘 안기고 껴안고 둘이 엉켜서는 아주 꿀잠, 꿈나라 장기 출장, 떡실신이더라고.

         

       그러니까, 바로 이렇게.

         

       뱀처럼 스르륵 침상을 빠져나온 청이, 또 둘이 정겹게 껴안고서는 부드럽게 미소 짓는 얼굴들을 본다.

       청의 얼굴에도 살포시 미소가 어린다.

         

       그리하여 밤. 조심스레 옷을 챙겨입은 청이 소리 없이 객잔에서 자취를 감췄다.

       

       과거 이백이 한탄하듯이 홀로 떠나는 길.

       독도행, 독도행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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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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