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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8

    해가 떨어진 늦은 시각, 폐쇄된 적하장.

    진작 모든 이들이 퇴근하여 적막함만이 흘러야할 적하장은, 아직 떠나지않은 인부들로 인해 때아닌 소란을 피워내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사실 소란이라는 비교적 가볍고 귀여운 느낌의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난동에 가까울 것이다.

    타오르는 적하장, 서로가 서로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정신을 잃은 자들을 불 구덩이 속에 처박는다.

    그야말로 한겨울 밤의 광극이었다.

    그들은 그에대해 전혀 어떤 두려움이나 아픔따위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폭력과 파괴행위는 계속해서 이어져나갔다.

    단 한명도 빠짐없이, 단 한명의 생존자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이.

    그저, 황홀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러나 그 거대한 폭력의 불길 속엔, 그러한 배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컨테이너를 살짝 열어 그 틈으로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의 정체를 알아버린 디아나는 혼란에 빠진 채  중얼거렸다.

    “이, 이게 다 뭐야? 여긴 어디야? 지금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자신은 잠시 그 마귀할멈을 피하러 상자에 들어온 뒤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자신은 예전엔 와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외딴 장소에 놓여져있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장소에 말이다.

    상황을 대충 알게 된 디아나는 컨테이너를 다시 조심스레 닫았다.

    광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컨테이너 내부는, 문을 닫자마자 순식간에 어둠 속에 잠겼다.

    처음 상자에서 눈을 떴을 때와 같이.

    그러자 파이리스가 떨며 중얼거렸다.

    “무, 무서워….”

    감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 정령에게, 이 혼돈의 소용돌이는 그야말로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겉으로는 전혀 두려움따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공포란 감정중에서 가장 전염성이 강한 감정이었다.

    또한, 생명과 그 근원부터 함께해온 가장 유서깊은 감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순도 높은 공포는, 고대로부터 존재하던 파이조차도 두려움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함께 패닉에 빠질 법도 하건만, 디아나는 침착하게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더듬어가며 파이리스를 꼭 껴안고는, 어린 동생을 돌보는 것처럼 토닥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거야.”

    “응….”

    파이리스는 디아나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침착한 감정에 조금은 안심했는지, 그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어갔다.

    “디아나는 무섭지 않아?”

    “쪼금…….”

    물론 디아나 역시 두려움은 있었지만, 은신의 재능이 있는 만큼 감정 또한 잘 숨겼다.

    덕분에 파이리스를 다독이고 안심시킬 수 있는 정도로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어느정도 침착함을 되찾은 디아나가 현재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억울함이 더 컸다.

    ‘어떻게하지, 뭔가 방법이 없을까?’

    이것이 만약 훈련놀이가 재미없어서 잠깐 농땡이나 피우려던 일에 대한 벌이라면, 너무 과한 것이 확실하니까.

    이는 찻장 위의 사탕 하나 훔쳐먹은 것 뿐인데, 종아리와 엉덩이를 잔뜩 맞고 벽을 마주보며 손을 들고 있어야 할 때 느껴지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디아나는 그럴 때, 어떻게든 잔꾀를 부리곤 했다.

    잠시 후, 디아나는 자신의 주머니에 휴대전화가 들어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아!”

    “뭔가 방법이 있어…?”

    “응! 최근에 언니가 나한테 휴대전화를 줬잖아!”

    과거 루크는 자신이 인챈트한 연산보조용 소형 컴퓨터를 휴대전화의 대용품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는 자연스레 디아나에게 물려주었다.

    굳이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을 가지고있어봐야 자원의 낭비니까.

    게다가 요즘 세상이 아무리 치안이 좋아졌다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여전히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고 어린아이는 그런 사건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약하지 않은가?

    보통은 소리를 지르면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어오겠지만, 그러기가 여의치 않을 때는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는 매우 큰 도움이 되리라.

    실제로, 큰 도움이 되려 하고 있기도 하고.

    그렇게 디아나는 들뜬 마음으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휴대전화는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안돼!’

    디아나는 응답 없는 검은 환상패널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마음 속으로 탄식했다.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당연히 알 턱이 없고,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전화는 마나가 다 떨어졌는지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니.

    주머니에만 있던 전화기에 마나가 다 떨어질 이유는 없었지만, 디아나는 루크가 쓰던 전화기를 물려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기 전에 충전해두는 것을 자주 깜빡하곤 했다.

    아직 습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야 평소 루크의 집에선, 저택 내부를 전부 커버하는 마나포집기가 있어서 굳이 충전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편리한 장치는 루크의 집이 비교적 자연적인 마나가 풍부한 숲에 위치한 덕분에 사용하는 것이지, 마나의 소모가 곧 요금으로 책정되는 도심지에선 잘 사용되지 않는 기술이었다.

    때문에 도심지에 위치한 인형점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려면, 평소에 잘 충전해두어야 했다.

    자신은 그걸 하지 않은 것이고.

    디아나는 의기양양하게 휴대전화를 들어올렸던 손을 힘없이 추욱 늘어트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어제도 자신은 귀찮다고 외투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지도 않았었다.

    왜냐하면 나쁜 정보가 무분별하게 디아나에게 받아들여지는 걸 걱정한 루크가, 휴대폰의 재미있고 자극적인 기능은 전부 막아두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작은 화면에 정신이 팔려있기보단, 또래 아이들과 나가서 뛰노는 편이 더 어울리고 자연스러운 법이니까.

    그래도 처음 휴대전화를 가졌을 때에야 환상패널에 불이 켜지는 것만 봐도 되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싫증이 난 지금은 디아나에겐 그냥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그저그런 수준의 장난감 정도에 그친다.

    그렇기에 디아나가 충전을 잊어버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디아나에게서 부정적인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파이리스가 걱정스럽다는 입을 열었다.

    “…왜? 안돼…?”

    “응, 마나가 없나봐….” 

    마나가 없으면 전화를 걸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파이리스는 잠시 몸을 떨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네가? 어떻게?”

    “정령이 돼서, 마나를 가져올거야.”

    “정말? 그게 가능해?”

    놀라움이 가득한 디아나의 물음에 파이리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가능해.”

    본질 자체가 마나로 이뤄진 만큼 마나를 가지고 새로운 법칙으로 가공하여 마법을 만들 수는 없지만, 마나를 다루는 능력 자체는 루크보다 더 뛰어난 정령이었다.

    적절한 마나를 찾기만 한다면 전화기에 마나를 불어넣는 것 정도는 식은죽 먹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주변에는 마나의 농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숲도 아니고, 바다가 가까워 나무가 잘 자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안타깝게도, 파이리스는 마나를 조종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마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루크처럼 다량의 마나를 몸에 축적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디아나의 꺼진 전화를 켜기 위해서는 결국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나를 끌어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대 마도기기들이 주변에 굴러다니는 아무 마나나 가져다 집어넣는다고 전부 다 작동하도록 설계된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변환기 역할을 할 수 있는 루크가 없으니 자신이 제대로 된 성질의 마나를 챙겨가야 한다는 것도.

    따라서 파이도 전화기같은 섬세한 기기에 어떤 마나를 어떻게, 얼마나 챙겨야 전화기에 성공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파이도 조금 사고회로가 순수할 뿐이지, 마냥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런 마나의 용도에 따른 분류에 대한 지식은 루크가 이미 파이에게 ‘마나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여러번 강조했던 내용이었으니까.

    “와! 그거 정말 잘 됐다! 다행이야!”

    설마 이런 식의 해결법이 있다니,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해답에 디아나는 한창 고무되었다.

    하지만 파이리스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혹, 마나를 가져와 휴대전화를 켜게 되더라도 자신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

    형체가 없는 정령은 늙지 않는 존재이지만, 그것이 곧 정령은 죽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만일 정령화를 하더라도 이 거대한 마력폭풍과 거센 감정의 소용돌이에 자칫 휩쓸려버리고 만다면, 연약한 정령체인 자신은 완전히 마력단위로 흩어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되면 자신은 죽는 것이다.

    자아를 잃고, 지금보다 더 작고 볼품없는 마나흔적이 되고 말겠지.

    그리고, 지금같은 환경이라면 자신이 그런 결과를 맞을 가능성은 꽤 높다.

    하지만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굳이 친구와 공유할 필요는 없으리라.

    디아나도 겉으론 괜찮아보이지만, 혼자서 엄청 무서워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최후도, 나름 괜찮은 것 같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컨테이너의 문이 열려버리고, 그 틈으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에, 아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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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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