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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9

   왕궁에서 빠져나온 나는 던전이 있는 도시로 향하기 전에 먼저 예술 교단에 들렸다.

   

   대형던전을 최속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전력을 준비하는 것이 옳으니까.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는 것도 이 편이 훨씬 편하고 말야.

   

   이렇게 생각을 한 나는 즉시 예술 교단으로 찾아가 변태사도와 검성을 데리고 왔다.

   

   두 사람을 회유하는 것은 어렵잖았다.

   

   지난번에 그림의 모델이 되어 준 덕에 잔뜩 기분이 좋아져 있던 변태사도는 당연히 따라가겠다며 내 뒤를 밟았고, 자신이 동경하던 베네딕과 함께 할 수 있단 사실에 웃음지은 검성도 당연하단 듯 내 뒤를 따랐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검성을 설득하는 게 이렇게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고생을 하고서도 루카를 친구라 여기던 유덴이다. 모든 것이 결론나기 전까지는 결코 루카의 곁에서 떠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설령 그 반대편에 베네딕이란 먹잇감이 달려있다 해도 말이다.

   

   ‘…저 녀석의 옆에 제가 있는 게 아무래도 좋을 것 같진 않아서요.’

   

   그것이 궁금해 질문을 던졌더니 유덴이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루카와 재회하고서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가 그 웃음에서 느껴졌다.

   

   ‘보안에 대해선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 곳은 악신의 추종자들에게 있어 지옥이나 다름없거든요!’

   

   변태사도의 자신만만한 어투에 어지간하면 트집을 잡고 싶었던 나였지만 이 말에 대해선 무어라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예술 교단은 삿된 기운이 도저히 끼어들 수 없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풍부한 신성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알른 영애께서 그려진 장신구를 만들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더군요!’

   

   졸지에 주신의 신성에 예술교단이 침식당한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변태사도는 자그마한 거리낌도 없이 웃음을 흘렸다.

   

   듣자 하니 까마귀 여신이 허락한 일이라 별 상관이 없다는 모양이다.

   

   그 변태까마귀.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그림은 포기 못하겠다는 거야?

   

   우아아. 해실거리는 얼굴을 상상하니까 온 몸에 소름이 끼쳐.

   

   그 사도에 그 여신이란 생각을 하며 교단에서 빠져나온 나는 하루 안에 던전의 공략을 끝마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눈에 띄기 전에 모든 걸 끝내버릴 계획을 말이다.

   

   헌데 나의 계획은 지금 내 앞에서 재수없는 웃음을 짓고 있는 빌어먹을 놈팽이 하나 때문에 박살이 나버렸다.

   

   “건국일의 축제 때나 뵐 수 있는 귀빈분들을 이리 뵙게 되니 영광스럽군요.”

   

   왕국의 1왕자. 르네 솔라딘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있다 우리를 보고서 극진한 인사를 올렸다.

   

   “왕국의 송곳니 베네딕 알른 백. 예술 교단의 사도 프레테님. 검성 유덴님. 왕국의 미래 중 한 사람인 알른 영애.”

   

   여러 사람을 지나쳐 내게 1왕자의 시선이 닿은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애써 정중한 체를 하는 그의 눈동자가 너무도 기분 나빴던 것이다.

   

   저 새끼 왜 저래? 나한테 좋은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없을 놈팽이가 갑자기 착한 척을 하는 거야?

   

   1왕비한테 무슨 언질이라도 들었나?

   

   1왕자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대략 1년 전쯤의 이야기였다.

   

   그 때 그는 나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하단 사실을 온 몸으로 드러냈다.

   

   추측하기로는 루시가 1왕자한테 무언가를 저지른 게 아닐까 싶긴 했지만 정확한 사유는 아직 모른다.

   

   지난 번 섬에 갔을 적에 교황이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그 기억까지 다 볼 수 있었을 텐데 그 빌어먹을 미치광이 노친네가 방해를 하는 바람에.

   

   <이제는 그리 껄끄러워 할 필요 없을 듯 하다만.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잖나.>

   ‘…그런가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네 존재감은 훨씬 더 크다. 개인적인 꺼림칙함은 있을 수 있어도 정치적인 문제가 생길 순 없어.>

   

   2왕자라는 경쟁자가 있는 한 1왕자는 결코 날 막대할 수 없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납득한 나였지만 그래도 난 1왕자에 대한 꺼림칙함을 모두 다 떨칠 수 없었다.

   

   그가 도달할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 그는 동정해야 할 대상임과 동시에 결코 안도해선 안 될 적이기도 하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1왕자의 시선이 내게 오래 머물지 않았단 것이었다.

   

   “특히나 옛 영웅인 대마법사 에르기누스님까지 뵙게 된 점이 너무도 기쁩니다. 솔라딘의 피를 이은 자로써 이 영광스러운 마음을 어찌 드러내야 할지 모르겠군요.”

   “하하. 그리 극진하실 필요 없습니다.”

   

   에르기누스는 이전에 아서를 대할 때처럼 예의바른 어투를 사용했다. 솔라딘의 핏줄에 대한 존중을 표시…

   

   “즉시 이 자리를 떠나주시면 그걸로 족하니까요.”

   

   하는 게 아니네?

   

   아서를 대할 때와는 달리 잔뜩 날이 선 에르기누스의 어투에 눈을 끔뻑였지만 정작 당사자인 1왕자는 태연히 웃음을 지었다.

   

   “너무 그러지 말아주십시오. 저도 오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 더 잘 되었군요. 서로 편하기 위해 이만 보내주시겠습니까?”

   “에르기누스님. 그래도 왕국의 존엄한 핏줄이신데.”

   “그 존엄한 핏줄이 대업을 가로 막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둠의 악신을 마주하러가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을 낭비하게 된 것이 그토록 거슬린 것일까. 에르기누스는 옅은 살기까지 드러내며 1왕자를 압박했다.

   

   1왕자는 애써 태연한 체를 하고 있었지만 옛 영웅의 기백이 부담스러운 듯 서서히 겉으로 티가 나고 있었다.

   

   “누구의 명으로 여기에 오신 건지 제 알바는 아닙니다. 다만 일국의 왕이 되고자 하신다면 자주성을 지니셔야지요.”

   <루시야. 기회다.>

   

   에르기누스가 계속해서 1왕자를 압박하던 때에 할아버지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네?’

   <왜 지난 번에 저 녀석과 만났을 때 빚을 하나 달아두지 않았느냐.>

   

   아. 그랬었지. 주변의 여론을 웃어 넘겨주고는 빚이랍시고 넘어갔었어.

   

   <지금 이 상황으로 되갚아주면 적당히 청산할 수 있을 듯 하다만.>

   

   좋다. 안 그래도 저 꺼림칙한 녀석한테 빚이 있단 게 은근히 거슬렸는데!

   

   이번 일로 그걸 갚아줄 수 있다면 최고지!

   

   아니다. 잘만 하면 오히려 빚을 쌓아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잘 됐단 생각에 히죽 웃으며 에르기누스의 옆에 선 나는 따가운 눈으로 1왕자를 노려보는 찐따해골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흐억?!”

   

   그러자 대마법사의 위용에 어울리지 않는 허술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 무슨 짓을.”

   “찐따동정마법사님. 자기보다 잘 나 보이는 사람을 만나서 질투심이 폭발한 건 알겠는데 적당히 해야죠. 자꾸 그러면 추해보이거든요?”

   “내가 언제 질투를 했다고.”

   “질투심이 아니면 히스테리였어요? 입장상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한테 자기 스트레스를 다 푸는 거였나요? 푸하핳. 정말 영웅다운 행동이네요. 너무 찌질해서 오히려 웃기네요. 계속 해보세요.”

   

   춤추는 광대를 볼 때처럼 비웃어줄 테니 얼마든 해보라고 한 걸음 물러서줬더니 에르기누스가 입술을 곱씹고는 한숨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자. 이런 찐따 하나 제압하지 못하는 음침 왕자님. 무얼 하러 오셨다고요?”

   

   상황을 정리한 후 1왕자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눈을 크게 뜬 채 날 바라볼 뿐 무어라고 하지 않았다.

   

   아니. 자세히 살펴보면 놀란 건 1왕자 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따라 온 신하들도 1왕자에 대한 무례에 뭐라하는 것조차 잊고 멍하니 날 바라보는 중이었다.

   

   뭐. 뭐야? 왜 다들 이런 반응이야? 그냥 찐따해골이 히스테리 부리는 걸 막아줬을 뿐인데 왜.

   

   “알른 영애의 아름다움 앞에선 영웅마저도 존중을 비치는 겁니까.”

   “여신의 사도님. 절 당신과 같은 인종으로 취급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변태사도의 경외가 담긴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난 상황을 이해했다.

   

   내게 있어선 성숙해보이는 여자 앞에선 아무것도 못하는 동정에 찐따인 해골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아니다.

   

   과거 세상을 구한 대마법사 에르기누스라고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방금 전 내가 한 일은 영웅이 날 인정한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할아버지. 노린 거에요?’

   <글쎄다?>

   ‘제대로 말을.’

   <뭐 어찌 되었든 이걸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잖으냐. 그럼 된 게지.>

   

   으으으. 이 능구렁이 같은 할배.

   

   주변의 놀라움 담긴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재차 1왕자를 불렀다.

   

   “왕궁에만 처박혀 계시다 보니 여자 상대로 말하는 법을 잊으셨나요?”

   “…이런. 미안하군.”

   

   그제야 정신을 차린 1왕자는 헛기침을 하고서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말했다.

   

   “에르기누스님의 계획에 따르면 대형 던전 안에 봉인되어 있는 것을 바깥으로 빼내야 하지 않나.”

   “맞아요. 지하에 처박혀서 울분을 토하는 것밖에 못하는 사회부적응자한테 햇살 좀 쬐게 해줘야죠.”

   “저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악신의 봉인이야말로 던전이 유지되는 기점을 터인데. 그것이 사라지면 던전 또한 함께 붕괴되는 것 아닌가?”

   

   대형 던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단순히 던전이 사라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던전공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모험가들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고.

   

   이 모험가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이들이 수단을 잃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모험가들에 의해 유통되던 재산들이 일순에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최초에는 악신의 발악에 의해 태어난 것이 던전일지 몰라도 지금의 대형 던전은 많은 이들의 인생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겠죠.”

   

   1왕자의 현실적인 걱정 앞에 에르기누스는 무덤덤한 어투로 답을 했다.

   

   “그럼.”

   “허나 그렇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사라져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저 곳이 악신의 힘을 키우는 곳이라면 언젠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생겨날 혼란에 대비할 시간은 주셔야죠.”

   “혼란에 대비하려다 더 큰 재앙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1왕자도. 에르기누스도. 서로의 의견을 물리지 않았다.

   

   양 쪽이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에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난 저들의 말을 들으면서 자연스레 의문을 품게 됐다.

   

   “지하에 처박혀 있는 병신 하나 사라진다고 던전이 사라지진 않을 텐데?”

   

   어둠의 악신을 처치한다고 던전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는데?

   

   좀 난이도가 낮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던전은 멀쩡히 굴러갔어.

   

   게임 속에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더니 또 다시 내게 시선이 집중됐다.

   

   저들의 의문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말을 꺼내지 말 걸 하는 후회가 생겨났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돌이킬 순 없었다.

   

   …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랬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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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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