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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9

    <539 – 황제의 선언2>

     

    이슈타르가 벌이는 짓은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황제가 국교를 무시한다면.

    용사를 즉시 살해한다면.

    그에게 조금이라도 <체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폭력만을 숭상하는 폭군이라면.

    황제는 용사가 자신에게 대적하려 드는 즉시 살해할 것이다.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가 점지한 당대의 용사란 제2의 혁명가라는 지젤 따위와는 격이 다른 설득력과 소란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이니까.

     

    ‘만일 예상이 잘못되었다면 황제는 여기서 날 죽이겠지…?’

     

    용사행도 그 즉시 종료.

    개죽음으로 끝이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욕심을 낼 근거가 있다.

     

    ‘오크노디. 그 아이의 안목은 나 따위보다 훨씬 원대해. 대체 언제부터 이 모든 일을 계획했을지 두려울 정도로…’

     

    생각해보면 이 모든 상황의 시초에는 어디에서든 오크노디가 있었다.

    혁명가가 죽고 지젤이 평화로운 혁명을 일으켜 황제를 궁전 밖으로 끌어낸 것도 오크노디가 혁명가 토벌에 개입한 덕분이다.

    황제를 공격할 명분이 생긴 것도 오크노디가 스스로 황녀가 되어서 황제의 평판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탓이다.

    자신은 또 어떻던가.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지금의 통렬한 지적은 성립할 수 없었겠지.

    그런데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된 계기마저도 오크노디의 13강의 38학점 이수에 승부욕을 불태웠기 때문이었다.

    황제를 대적하려는 생각?

    그마저도 여름방학에 무인도경매에서 오크노디가 했던 말이 시초가 되었다.

    전부 오크노디였다.

    언제나 오크노디였다.

    그런 오크노디가 계획한 일이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될 수는 있어도 오크노디의 판단이 잘못될 수는 없다.

    라이벌이지만 그 실력만큼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오크노디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

     

    ‘죽이지 않았어.’

     

    그 신뢰가 보답받았다.

    황제는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강의시간에 들은 비화를 모두 토로하는 와중에도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도박에서 승리했다.

    제국의 신민들은 이제 삼대거악 중 하나였던 혁명가의 탄생 비화를 깨달았다.

     

    식량 교환에 사용되었던 파란딱지.

    파란딱지의 유통을 맡으며 전대용사 니알라토텝과 계약했던 상단주의 자살.

    상단주의 혈육이었던 혁명가의 복수.

     

    상단주에게 식량을 대었던 자는 누구였는지, 그를 이용해 제단을 만든 것은 누구였는지, 불필요한 난민을 제물로 바쳐 악신의 신물을 얻고 악신숭배자를 토벌할 계획을 세운 것은 누구였는지.

    혁명가의 부친이 어떤 식으로 처분되었는지, 황제가 무엇을 위해 그들을 이용했는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되었던 식량난은 어찌하여 일어났는지.

     

    모든 진상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야기하면서도 이슈타르는 점점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왜 저지하지 않는 거지?’

     

    황제에게는 명백히 불리한 진술인데.

    어떻게든 막고 싶어서 안달인 나야 할 텐데.

     

    “후후후. 역시 당신은 재미있습니다, 황제. 당신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최고로 이상하니까요.”

     

    시종장 오카시이네의 중얼거림은 긴장감이 최대에 도달한 이슈타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온 신경이 집중된 대상은 황제.

    그렇기에 황제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을 때, 이슈타르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훌륭하다. 용사의 신분으로 최대의 후원자인 황제의 치부를 입에 담는 짓을 저지르다니, 그 판단력에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마.”

     

    황제는 이 지경이 되고도 손을 까딱해 이슈타르를 터뜨려 죽이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알고 있느냐? 네 이야기가 벌인 자멸의 위험성을.”

    “자멸…? 황제인 당신만큼 위험한 사람은… 앗!”

     

    있었다.

    딱 한 명, 이 이야기에서 대중들의 위화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인물이.

    대중들뿐이 아닌 용사인 자신마저도 이건 뭐 하는 인간인가 싶은 노골적으로 수상한 사람이.

     

    “용사님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전대용사 니알라토텝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어째서 혁명가의 부친이 죽는 사태를 방조하였지?”

    “전대 용사는 황제가 노린 보물을 훔치기 위해 시민들이 제물로 바쳐져 죽도록 만든 거야…?”

     

    그렇다.

    전대용사 니알라토텝.

    그를 향한 대중들의 신뢰가 무너진다.

     

    -황제는 용사의 우군이지.

    -그럼 어째서 혁명가의 누명 따위를!

    -그래서 우군을 위한 제물로 써먹지 않았는가.

    -…!

    -골치 아픈 난민을 ‘유용하게 소모’하고 불순불자들을 엮어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에 용사를 위한 공적을 제공한다. 황제와 용사만큼은 이 판 위에서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으니, 이 또한 우군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이슈타르에게도 결코 득이 될 수 없는 공멸의 선택!

     

    “전대용사가 황제와 결탁한 장본인이라면 이번 대의 용사님은 왜 황제에게 대적하는 건데?”

    “마음을 달리 먹은 거겠지.”

    “또 어떤 흉계가 있을지는 누가 알고? 삼대거악마저 탄생시킬 흉악한 황제와 용사인데!”

     

    황제가 악에 가까워지는 만큼 용사의 이미지도 동시에 악에 가까워진다.

    황제가 미움받는 만큼 동시에 용사도 대중들에게 미움받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황제가 물러난다면 용사도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보다 저런 사악한 용사를 세운 교단을 국교로 모시는 짓부터가 말이 안 되지.”

    “저런 불안한 신을 모시는 용사 따위, 우리들은 믿을 수 없다고!”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다른 사람도 아닌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 이슈타르 본인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 아앗…! 아니야, 내가 말하려던 건 이런 뜻이 아니었어. 이런 결과를 원한 게 아니었는데…!”

    “늦었다. 소페미아의 아둔한 종자여. 너의 어리석음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는지는 몰라도 공멸을 선택한 만용의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황제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그건, 죽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나아가 죽이는 행위가 구원일 수 있었다.

    여기서 그녀가 죽는다면.

    그녀는, 용사는, 태양의 소페미아는 황제의 살인으로 무고를 인정받는다.

    사악한 황제와 대립하여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용사로서 최후를 장식할 수 있다.

    그럴 기회를 황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걱정 말거라. 너의 소원은 이루어졌으니. 용사여, 짐은 황위를 내려놓을 것이다.”

    “뭐엇?!”

    “그러니 그대 또한 용사라는 과업을 내려놓도록 하라. 제국의 국교는 더 이상 유일신이 될 수 없을 터이니 말이다.”

     

    심지어 내려놓지 않아도 상관없을 황위마저 자신의 의지로 내려놓겠노라 공언했다.

    지젤의 용기, 손오천의 용기, 이슈타르의 용기.

    민중들의 호응, 디스트로이어의 과거, 혁명가의 업보.

    그 모든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도 하나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황제의 선택은 ‘그런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직감이 든 탓이다.

     

    “들어라, 제국의 아이들이여. 오늘부로 제국의 황제는 마땅한 계승자가 차지할 것이며 짐은 오랜 과업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선언하노라.”

    “당신이 저지른 짓의 대가는…!”

    “정말로 괜찮겠느냐?”

     

    면사포 너머의 미소가 짙어진다.

     

    “짐이 황제가 아니라면 더는 ‘체면’에 얽매이지 않게 되거늘, 그런데도 짐을 이 자리에서 압박하여도 되느냐는 말이다. 뒷일은 충분히 고민하였느냐?”

    “크윽…”

    “그래, 생각이 짧다고는 하나, 마냥 아둔하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황제는 노골적인 비웃음과 함께 종적을 감추었다.

    그의 충실한 시종장이 함께 사라졌음에도 누구 하나 이를 탓할 수 없었다.

    황위계승.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를 일인지.

    모두가 반신반의하면서도 두려움을 이겨내고 선 자리에서, 놀라울 정도로 적은 희생으로 시대가 뒤바뀔 결과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선친께서 공언하셨듯이 이 순간부로 제국의 황제는 나 파케 히우그마그가 되었다. 선황의 통치하에 벌어졌던 불미스러운 일은 짐의 시대에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임을 이 자리에서 천명하니, 혁명군은 해산하고 이만 생업에 종사하도록 하라!”

     

    이슈타르는 익숙한 쓰라림을 느꼈다.

    자신이 아무리 절박하게 노력해도 상대의 눈길조차 사로잡지 못할 때의 굴욕.

    오크노디가 매번 자신에게 안겨주었던 그 굴욕을 황제에게 다시금 느꼈다.

     

    ‘분하지만… 이제는 익숙해.’

     

    처음이라면 이 굴욕과 수치를 견디지 못하고 분노하거나 자괴감에 빠졌겠지만, 이제는 쓰라린 배를 부여잡고 일어나는 법을 익혔다.

     

    ‘익숙하니까 견뎌낼 수 있어.’

     

    흐트러지는 멘탈을 수복한 이슈타르.

    그녀는 사라진 선황 대신 새로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설 인물을 노려보았다.

    역시나, 지젤은 새로운 황제를 향해 외쳤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파케 히우그마그. 당신에게는 받아야만 하는 진술이 있습니다.”

    “결투공증인 젤지. 그대는 뛰어난 용기로 선황을 물러나게 만드는 공을 이루었다. 그 공을 치하하기도 전에 없던 일로 만들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공을 치하하려거든 우선 당신이 황녀들에게 내린 암살지령에 대해 해명하십시오!”

    “암살지령? 근거도 없이 어디서 중상모략질이냐!”

    “증거라면 없습니다. 하지만 증인이라면 있습니다!”

     

    인파를 가르며 앞으로 나선 제국 2황녀 매스각키.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역력했다.

     

    “허접오라버니. 겁이 많은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선을 너무 크게 넘었어♡ 날 건드린 것도 모자라 오크노디까지 건드리다니, 그건 정말로 지나쳤어♡”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라는 거냐? 그런 얄팍한 장난 따위, 제국법정에 출두해서 지껄여라. 황위가 탐이 났다고 어리광에 어울려줄 정도로 황제의 자리는 가볍지 않다. 민중들은 이만 해산하라!”

     

    피케 히우그마그의 명령에도 고관들은 한 사람의 눈치를 보며 멈칫했다.

    혁명군 대장군 손오천.

    그의 기백 앞에서 고관들은 감히 나서지 못하니, 제국십구강급 강자가 아니고서야 황태자의 명령을 이행할 실력자가 없었다.

    수치를 당한 황태자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는 순간, 제국십구강의 일원 철완의 바르가스가 선언했다.

     

    “제국십대무투고수의 삼강, 철완의 바르가스가 선언한다. 나는 황태자가 아닌 혁명군의 뜻을 따르겠다.”

    “철완경!!”

    “언성을 높이지 마시오, 젊은 황제여. 선황께서는 목청으로 국정을 돌보지 않았으니.”

     

    황위계승을 선포한 파케 히우그마그에게 바르가스는 노골적인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슈타르와 눈을 마주쳤다.

     

    “말했었지. 황제 타도라는 무모함의 결말이 어찌 될지 지켜보겠다고. 너희는 그 무모한 일을 실제로 이루어내는 기적을 선보였다. 그것이 황제의 양보인지 포기인지 모를 뜻에 의한 결과라고 한들, 계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바르가스 경…”

    “그러니 다시금 못을 박겠다. 혁명군이 스스로 납득하여 해산하기 전까지 무력으로 강제하려는 시도가 있거든, 새로운 황제폐하께서는 나 바르가스를 적으로 돌려야 할 것이외다.”

     

    백성들의 엄격한 시선이 황제를 자칭하였던 파케 히우그마그에게 쏟아졌다.

     

    “그러니 용사, 그대 또한 용사의 과업을 내려놓는 짓은 잠시 미루게.”

    “…철완경의 뜻이 그러하다면 기꺼이. 저 용사 이슈타르는 혁명군의 편에 서서 차기황제 파케 히우그마그의 즉위의 정당성에 반기를 들겠어요!”

     

    딴에는 라이벌과의 갈등을 접고 제국의 미래를 위해 순수한 조력의 의지를 표명한 이슈타르.

     

    ‘오크노디의 원대한 계획, 그 끝을 보기 위해서라도 물러설 수는 없어!’

     

    당사자만 모르는 오크노디의 원대한 계획은 그렇게 실행에 옮겨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크노디만 모르는 오크노디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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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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