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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화영 고등학교의 학생회는 다른 고등학교들에 비해서 자율성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학원물 속의 학생회처럼 엄청나게 대단한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없다. 결국 학생회 또한 교사의 지도를 받는 일종의 ‘동아리’였다. 물론 동아리라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하는 일도 학생이 처리할 수 있는 일 중에선 꽤 공적인 일이었으니 보통 다른 동아리들과 같은 취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학교와는 다소 다른 화영 고등학교 학생회만의 자율성을 예로 들자면, 우선 수학여행 여행지를 어디로 할지 학생회 권한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물론 그냥 학생회의 독단으로 결정되면 학생들의 반감을 사는 경우가 많으니, 일반적으로는 학생들의 자율 투표 후에 결정한다. 그래도 그 여행지의 세부적인 장소나 일정, 그리고 제일 중요한 ‘후보들’을 고르는 것 자체를 학생회에서 하니, 여전히 자율성 자체는 무척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학생회는 아이들에게 벌점을 매기는 일도 수행한다. ……정확히는 그럴 ‘권한은’ 있다.

        

       학생회 휘하의 선도위원은 화영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교칙을 어겼을 때 그에 상응하는 벌점을 주어 학생부에 불이익을 주거나, 일정 벌점 이상이 쌓인 학생을 학교 선생들에게 보고해 징계받도록 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럴 ‘권한’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화영 고등학교는 재계의 내로라하는 집안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당연히 그사이에는 분명한 상하관계가 존재한다. 겉으로는 서로 평등하다는 듯, 친한 친구라는 듯 대해도, 상대의 재력을 보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선도위원이 어마어마한 재력의 집안 자제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돈 많은 집안 자제일수록 학생회 같은 귀찮은 짓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중, ‘외부 입학생’이라면, 그리고 본인의 성격이 대쪽 같다면,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회장님, 지금 이 사태를 이대로 두고 보실 생각이신가요?”

        

       왼팔에 ‘선도’라는 단어가 아주 큼지막하게 쓰인 완장을 찬 여학생이, 안경을 낀 남학생에게 그렇게 물었다.

        

       등까지 내려오는 푸른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그녀가 따지듯이 묻자, 학생회장이라고 불린 남학생은 그 타원형 안경을 손가락으로 슥 밀어 올리며 말했다.

        

       “당한 선생들도 모두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포기한 자의 목소리라기보다는 귀찮은 자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마치 당연한 것을 굳이 물어봐야만 하냐는 듯한 그 반응에, 선도위원 여학생은 짜증이 확 밀려 올라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음? 대머리 선생이 수업 시간에 정체불명의 기상현상으로 실내에서도 비를 맞은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리가 없잖아요!”

        

       선도위원이 학생회장의 책상을 쾅 내리쳤다가, “아야……” 하며 손을 감싸 쥐었다.

        

       “이거 이렇게 보여도 마호가니 원목 책상이라 엄청 단단할 텐데. 부수려면 손보다는 더 크고 튼튼한 걸 휘둘러야 할 거야.”

        

       “아뇨,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회장의 느긋한 조언에 선도위원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럼 그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교내에서의 불순 교제!”

        

       “불순 교제라는 말은 10년 전이나 쓰이던 말이잖아.. ‘교제 불가’라는 교칙은 한참 전에 사라졌어.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학생회장이 한숨을 푹 쉬자, 선도위원은 뒷목을 잡았다.

        

       “수업 시간에 무릎 위에 앉고! 그, 공주님 안기를 한다던가! 마주 보면서……”

        

       “마주 보면서?”

        

       학생회장의 질문에, 선도위원은 얼굴을 확 붉혔다.

        

       “다 알고 계시잖아요!”

        

       “내가 들은 바랑은 다른데.”

        

       소리를 빽 지르는 선도위원을 앞에 두고도 학생회장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 학생…… 유하늘이라고 했던가? 너와 같이 외부 입학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이 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상당히 우등생이야. 그날은 그저 자리에 앉아있다가 선생이 연속으로 칠판에 적어주는 문제도 전부 맞혔고. 선생도 칭찬했잖아?”

        

       “그 사람 위에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니까요!”

        

       “…….”

        

       분통을 터뜨리는 선도위원을, 학생회장은 턱을 괸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씩씩거리던 선도위원은 곧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부끄럽다는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라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그 ‘사람 위에 앉아있던 사람’을 처벌하고 싶다는 거야? 기왕이면 함께 그 ‘음란행위’에 동참한 학생도 같이?”

        

       “……그렇죠.”

        

       선도위원이 대답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토해내듯 말을 이었다.

        

       “제가 이 학교에서 제일 ‘가난한’ 축에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학교 안에서는 모두 같은 학생이잖아요? 집이 잘살건, 못 살건, 어중간하게 살건, 모두 학생이에요. 교칙이 잘 만들어졌다느니 못 만들어졌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교칙이 있다면, 그 교칙이 모든 학생에게 모두 균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요?”

        

       “정론이야.”

        

       학생회장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얼굴에서 의욕이 솟아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 셋은 건드리지 마라. 규칙이라는 건 책에 쓰인 것도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항도 있는 법이거든.”

        

       “……그러니까, 그 ‘예사라’를 건드리지 않는 것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규칙이라는 말씀이시죠?”

        

       “음, 그렇지. 현재 이 학교의 유일한 선도위원인 너라면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예사라가 국내 최대……아니, 세계 최대의 기업 그룹의 후계자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

        

       선도위원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그렇게 대놓고 교권을 무시하고 다니면서도 모두에게 용서받는 것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요! 세상에는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응?”

        

       그 말을 듣고, 그제야 학생회장은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아, 잠깐만. 설마 너는, 그 예사라가—”

        

       “네, 무엇을 해도 성적에 아무런 불이익도 없는 특권을 가진 학생! 저도 얼굴을 봐서 알거든요! 지난번에 수업 중에 쳐들어와서 방해하고 나갔다고요! 돌아다니면서 아이들 얼굴을 하나씩 둘러보고……!”

        

       사실 그때는 조금 겁먹었었다. 무표정한 예사라는 그 눈매가 날카로워서,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찔러버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경고였으리라. ‘나에게 거역하면 전부 죽여버리겠다’라는 암묵적인 경고.

        

       그렇지 않으면 굳이 학생 하나하나를 찾아가 그렇게 노려보고 지나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때…… 아니, 어제 하루 동안 그런 불량 학생을 향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은 선도위원으로서 치욕이었다.

        

       하다못해 수업 시간에 그랬던 것만 아니었더라도……!

        

       “회장님 뜻이 그렇다면 잘 알겠어요! 저 혼자라도 나가서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몸을 휙 돌려 문으로 향했다.

        

       “어? 야, 잠깐, 얌마!”

        

       바로 조금 전까지 느긋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학생회장이 정신이 퍼뜩 든 표정으로 몸을 벌떡 일으키다가, 그대로 책상에 무릎을 찧었다. 그리고 깜짝 놀라 다리를 빼는 과정에서 이상하게 발이 앞으로 나가버리는 바람에, 그 모서리에 그대로 새끼발가락을 찧고 말았다.

        

       “……!”

        

       학생회장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쓰러졌다. 그가 욱신거리는 발가락을 잡고 바닥을 뒹구는 동안, 이 학교의 유일한 선도위원은 이미 문밖으로 뛰쳐나간 뒤였다.

        

       *

        

       교문 앞으로 간 선도위원은, 마침 학교로 들어오던 예사라를 딱 마주칠 수 있었다.

        

       예사라는 오늘도 양쪽에 여자를 끼고 있었다.

        

       한쪽은 우수한 성적으로 외부에서 입학한 외부 입학생.

        

       그리고 다른 한쪽은 6반의 영애.

        

       양쪽에서 바짝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니, 소문은 사실인 듯 보였다.

        

       그러니까 저 세 사람이……그, 아무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

        

       단순히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무려 한 사람이 두 사람과 동시에 사귀고 있다는, 누가 보더라도 교내의 풍기를 어지럽히는 행위!

        

       “잠깐!”

        

       선도위원은 그렇게 외쳤다.

        

       자신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듯, 예사라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뜬 채 자신을 보았다.

        

       “거기, 불순한 교제는 금지야!”

        

       교제 자체는 금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 교제가 교내에서 ‘불순하게’ 보일 수 있다면, 그건 확실히 교칙에 따라 금지된 일이다.

        

       아무리 세상이 개방적으로 되고 애정 행위에 관대해지더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 것이다.

        

       아직도 굳어있는 세 사람을 향해, 선도위원은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반드시—

        

       하지만, 그렇게 당당하게 걷던 걸음은, 예사라에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느려졌다.

        

       선도위원이 그 세 명에게 가까워질수록, 예사라는 선도위원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일말의 고민도 보이지 않는, 발랄한 웃음이었다.

        

       순간적으로 ‘이런 순수한 웃음을 짓는 사람이 불순한, 성적으로 문란한 교제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그보다는 등을 내달리는 소름이 먼저였지만.

        

       자신의 완장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

        

       선도위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옳은 것은 자신이다.

        

       그렇게 생각을 굳힌 선도위원은, 다시 걸음의 속도를 빠르게 했다.

        

       *

        

       나는 잔뜩 화가 난 채로 나에게 다가오는 선도위원을 보며 생각했다.

        

       아, 이건 기회다.

        

       쟤가 대체 어째서 나를 보고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의 상황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지. 하늘이처럼 외부 입학생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미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학교에서 학생회, 그리고 그 학생회 휘하의 소속이 된 이상, 나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이미 ‘학생회로서 공식적으로’ 말을 거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어제부터 교칙을 마구 어기고 있다고—”

        

       “네, 어겼습니다!”

        

       나는 손을 번쩍 들면서 외쳤다.

        

       나를 향해 다가오던 선도위원은, 내 목소리를 듣고 당황한 듯 우뚝 멈추어 섰다.

        

       사실, 선도위원뿐만이 아니라 옆에서 걷고 있던 다른 아이들도 전부 멈췄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침묵이 감돌았다.

        

       아, 나 이거 존 윅에서 본 것 같은데.

        

       뭐, 아무튼.

        

       “그럼, 벌은 어떤 걸로 할까요? 벌점? 징계? 뭐든지 좋아요!”

        

       선도위원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쪽을 보고 있는, 등교하던 다른 아이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다.

        

       이수아는 조금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고, 하늘이는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물론, 드디어 제대로 된 기회를 잡은 나의 표정은,

        

       아마도 활짝 웃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노벨사서님,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소설을 쓰면서 조마조마합니다. 독자님들께서 이번 전개에 만족해주실까, 재미있게 읽어주실까 하는 고민이 들어요. 다음화 예약을 걸면서도 조금 긴장하게 됩니다. 계속 쓰면서 화수가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 나아지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 화 쓸때마다 걱정과 긴장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최신화를 올리고 나서, 독자님들께서 즐겁게 읽어주시는 것을 보고 나면 속이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이것때문에 제가 글을 쓰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역시 글을 쓰기 잘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작년에 전작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만약 이 소설을 누가 안읽어준다면 그만 하자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이라고 해놓고 결국 몇년 지나 잊지 못하고 다시 도전하긴 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가 계속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은 모두 독자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께 즐거운 글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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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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