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4

    인형이 격리실 외벽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자, 연구소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익숙지 않은 갑작스러운 진동에 넘어졌다.

    “서아 언니! 괜찮아요?”

    오예린 사원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자, 괴상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케겍 케겍.

    격리실 안에는 전과는 확연히 크기가 다른 인형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이젠 그 누가 보더라도 저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이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겠지.

    1m 남짓하던 크기의 테마파크 인형은 이제 3m는 되는 거대 인형이 되어버렸다.

    “이세희 연구소장님. 이대로 가면 통제 불능이에요. 아마 저 인형의 크기가 10m를 넘어가게 되면 우리 연구소 격리실로는 더 이상 잡아둘 수가 없을 거예요.”

    “으, 골치 아프네. 사형수를 섣불리 투입한 게 실수였나?”

    사형수를 투입한 직후부터 크기가 커지기 시작한 인형은 2m를 넘어가자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분명 사신이가 어떻게든 해줄 거예요!”

    오브젝트의 난동에 모두들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 오예린 연구원만은 해맑았다.

    회색 사신에게 정신 오염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는걸….

    케겍 케겍.

    인형에 입에서 이상한 게 튀어나왔다.

    피투성이에 토막 난 손가락.

    테마파크 인형은 이제 입에서 핏물과 사람 조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잘게 뭉개진 살점들과 토막 난 손가락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어? 저 손가락의 반지 본적 있어요!”

    오예린 연구원이 바닥에 떨어진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좀 소심한 표정의 커다란 남자가 가지고 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인형은 한 차례 핏물을 뱉어낸 뒤에는 크기가 커지는 현상이 멈췄다.

    “큰일이네. 사형수가 한 명 죽을 때마다 저렇게 커지는 거라면, 연구소가 감당할 수가 없겠는데?”

    “한 명당 2m라고 생각하면 18m까지 추가로 자랄 수도 있겠네요.”

    연구소 격리실 외벽의 강도를 후하게 봐줘도 10m짜리 인형을 막는 게 한계니까, 시급히 격리 실패 시 플랜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사신아! 빨리 배를 찢고 나오렴.”

    하지만 이세희 연구소장은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회색 사신에게 정신 오염 능력이 있는 게 맞는 거 같은데?

    ***

    너무 편안해서 불편한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후우.”

    심호흡을 한다. 

    아늑한 분위기지만 여기는 살인 오브젝트의 아가리 속이라는 것을 유념했다.

    인간에게 관심을 주는 오브젝트? 보고된 바에 따르면 대부분 살인 오브젝트였다.

    인간에게 초대장을 주는 오브젝트? 당연히 살인 오브젝트겠지.

    갑자기 객실 문이 열리더니, 격리실에서 봤던 재수 없는 인형의 얼굴을 한 마네킹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이번 손님은 문신이 멋진 여성분이시군요. 어서 오세요. 스마일 테마파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친절한 분위기의 마네킹이었지만, 오히려 더 위험해 보였다.

    “흐음, 과묵한 손님이군요. 테마파크를 즐기기 전에 이것부터 받아 주세요.”

    마네킹이 넘겨준 것은 스탬프를 찍을 수 있도록 만든 한 장의 종이였다.

    “이 종이는 뭐지? 꼭 필요한 건가?”

    “글쎄요. 꼭 필요하다고는 못 하겠습니다만, 이 테마파크에서 나가려면 필요하겠네요.”

    마네킹의 설명으로는 9개의 도장을 모두 받으면 탈출할 수 있는 구조인 듯했다.

    “그럼, 빨리 안내해줘. 그 도장을 받을 수 있는 ‘즐거운 놀이기구’에게로.”

    시간 끌 필요는 없겠지. 

    죽느냐 사느냐는 모르겠고, 언제나 당당하게 나아가는 거야.

    “흐음, 글쎄요. 안타깝게도 이 객실도 도장을 받을 수 있는 ‘즐거운 놀이기구’라서 말입니다. 지금 당장은 나갈 수가 없습니다.”

    마네킹이 가리킨 곳에는 객실 규칙이라고 적힌 종이가 벽에 걸려 있었다.

    <스마일 테마파크 객실 규칙.>

    <중략>

    <이 다음 규칙 중, 한 줄을 삭제하십시오.>

    <일곱 가지 색의 음식 중 최소 6종에 독이 들어있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

    <주황색, 파란색, 보라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

    <초록색, 파란색, 남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

    <주황색, 초록색, 남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

    퀴즈라기보다는 말장난 같은 넌센스 퀴즈.

    물론 거기에 목숨이 걸려있다면 장난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딱히 시간제한 같은 건 없네. 

    천천히,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는 거야.

    곰곰이 생각한 뒤 결론을 내렸다.

    답은 보라색.

    나머지 색들은 죄다 2번 이상 나와서 지워도 남으니까 말이다.

    다만 찜찜한 점은 ‘보라색에는 독이 없다!’ 라고 확정 지어주지 않는 점일까?

    “어이, 마네킹. 질문을 해도 되나?”

    “물론이죠. 저희는 손님의 질문에 답하고, 테마파크를 안내하기 위해서 있는 거랍니다.”

    나는 규칙이 쓰여있는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며 말했다.

    “이거 보라색에 독이 없다고 확정은 아닌데, 독이 있는 거 아냐?”

    “흐음, 저희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말이 힌트가 될 겁니다.”

    그리고 마네킹은 cf송에서나 나올 법한 억양으로 말했다.

    “즐거운 스마일 테마파크에서는 100%로 죽는 재미없는 어트랙션은 없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보라색 음식을 꺼내서 먹으면 되는 건가?

    찬장을 열고 보라색 태그를 가진 음식을 하나 꺼냈다.

    간단하게 먹을 만한 보라색 태그의 에너지바.

    껍질을 까서 먹으려고 하니, 마네킹의 시선이 거슬렸다.

    노골적으로 빤히 바라보는 시선.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뭔가 이상한 거라도 있는 건가.

    “어이, 이 문제를 풀었으면 해당하는 음식을 먹으면 되는 게 맞나?”

    “흐음, 글쎄요. 규칙은 문제가 아니라, 규칙입니다. 쓰여있는 것은 모두 진실이죠.”

    “뭐?”

    쓰여있는 것은 모두 진실이라고?

    그럼, 보라색에도 독이 있다는 소리 아니야?

    먹으려고 꺼내둔 에너지바를 던져버리고 규칙을 다시 곰곰이 읽었다.

    그래, 삭제.

    삭제를 해야 해.

    주변을 둘러보니 ‘삭제’라고 쓰여있는 지우개가 하나 있었다.

    “이런 뭔 개 병신 같은.”

    지우개로 <주황색, 파란색, 보라색 음식에 모두 독이 있다.>라고 쓰인 줄을 지웠다.

    지우고 나니 <이 다음 규칙 중, 한 줄을 삭제 하십시오.> 라고 쓰인 줄도 사라져 있었다.

    찬장에서 다른 에너지 바를 꺼내 베어 물었다.

    독은… 없었다.

    “축하드립니다. 첫 번째 어트랙션을 통과하셨군요. 재미는 있으셨나요?”

    짝짝짝 박수를 치는 마네킹에게 중지를 들어서 답을 돌려줬다.

    “흐음, 별로 만족스럽지 않으셨나 보군요. 그럼 다른 어트랙션을 소개해 드릴까요? 객실과 굉장히 유사한 규칙을 가진 어트랙션도 있답니다!”

    “아니, 너희가 직접 추천하는 건 너무 수상하니까 절대로 안 해.”

    마네킹의 안내를 따라 객실 문을 열자, 어두운 밤하늘에 커다란 폭죽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1년 365일 축제 중인, ‘스마일 테마파크’에 오신 것을 다시 한 번 환영합니다!”

    쉬지 않고 터지는 폭죽과 사람 한 명 없는 한산한 매표소.

    그리고 덩그러니 서있는 나와 마네킹.

    그 미묘한 분위기가 오브젝트다웠다.

    ***

    와, 목 떨어지는 줄 알았네.

    뚜방뚜방.

    ‘스마일 드롭 타워’라는 놀이 기구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며 목 근처를 매만졌다. 

    별다른 상처는 없지만, 진짜 이렇게 깜짝 놀란 건 오랜만이었다.

    이 스마일 테마파크도 놀이공원인 만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롭 타워형 놀이기구’가 있었다.

    신나게 뛰어가서 살펴보니, 이 드롭타워는 놀랍게도 신장 제한도 없는 놀이기구였다.

    당연히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고, 안전바를 내리고 탑승!

    하지만 슬프게도 이 놀이기구는 드롭 타워형 놀이기구가 아니라 드롭 타워형 교수대였다.

    최고 높이에 도달하면 목에 올가미가 씌워지는 가혹한 어트랙션.

    안전바가 어깨를 잡아 내리고, 쇠로 된 철사 올가미가 목을 위로 당기는 어트랙션.

    목뼈를 부러트리는 교수형이 아니라, 아예 목을 뽑아버리는 신개념 어트랙션!

    형태를 보아하니 올가미가 안 나오는 안전석을 제외하면 모두 교수형 당하는 놀이 기구였다.

    퀴즈를 풀어서 안전석을 밝혀낸 뒤 즐기는 놀이기구였는데, 퀴즈가 아리송해서 무시하고 탔더니 이 꼴이다.

    오브젝트가 아니었다면 죽을 뻔 했네.

    그래도 스탬프는 벌써 두 개! 

    시끄러운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에는 여전히 커다란 폭죽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마네킹은 기분이 썩 좋아 보였다.

    객실을 나온 뒤부터 계속 뒤를 쫓아오고 있었는데, 왠지 내가 스탬프를 받는 걸 반기는 것 같았다.

    내가 스탬프를 많이 받는 쪽이 좋은 건가?

    “손님은 정말 대단하시군요. 사실 접객원을 하는 인형이 ‘초대장을 잘못 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도대체 손님에게 초대장을 왜 준걸까요?”

    글쎄, 왜 줬을까.

    처음에 주려고 한 인형이 잘못한 거니까. 

    인형의 실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목 근처를 주물주물하며 다음 행선지를 생각했다.

    딱히 아프진 않았지만, 깜짝 놀랐으니 기분 전환 겸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야겠어!

    테마파크 곳곳에 설치된 커다란 지도를 올려다보니, 적당한 곳이 보였다.

    ‘푸드 코트’라고 명명된 커다란 식당이었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