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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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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구구궁.
    ​
    ​
    “아.”
    ​
    ​
    무너져 내리다 못해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올라오는 장면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
    ​
    [ 좋아, 그럼 바로 다음 동작을…! ]
    ‘잠,잠깐 멈춰!’
    [ 뭐? 왜? ]
    ​
    ​
    마검은 본인의 입으로 말했던 것처럼 내가 제지하자 곧바로 몸의 주도권을 돌려주었다. 나는 마검을 길게 늘어뜨린 채 반파된 벽면을 바라보았다.
    ​
    ​
    ‘이걸 어쩌지…?’
    ​
    ​
    ‘수련하라고 만들어 둔 곳이니까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물어달라고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충돌했다.
    ​
    ​
    이런 고민은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야구를 할 때나 했던 고민이었다. 그때는 98층 고층 건물의 창문을 깨거나(탱탱볼처럼 공이 여기저기 튀어서 집 안이 엉망이 되었다고 했다.), 지구인들을 관찰하던 우주인의 비행선을 맞춰 추락시킨 적도 있었다.
    ​
    ​
    그때 어떤 식으로 해결했었는지를 떠올리자 금방 답이 나왔다.
    ​
    ​
    ‘가르간도아 잠깐만 손등으로 들어가 봐.’
    [ 한참 재미있었는데… ]
    ​
    ​
    마검이 칭얼거리면서도 내 말을 착실히 따랐다. 마검이 검붉은색으로 물들더니 핏물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핏물이 된 마검은 허공을 헤엄쳐 손등에 흡수되었다. 잠시 은은하게 빛나던 인장이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
    ​
    “허어억..”
    “저,저게 무슨..”
    ​
    ​
    나는 슬쩍 주변을 훑어보았다. 
    ​
    ​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떠는 노예, 입을 쩍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짓는 노예,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린 채 입술만 벙긋거리는 노예 등.
    ​
    ​
    다양한 노예들이 무너진 벽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주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
    ​
    ‘좋아, 이 틈에 도망치자.’
    ​
    ​
    개그 세계에선 마지막에 남아있는 놈이 덤터기 쓰는 게 당연했다. 눈치 없는 놈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무서운 세계인 것이다.
    ​
    ​
    나는 필사적으로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
    ​
    ‘뒤를 부탁한다!’
    ​
    ​
    나는 남아있는 노예들에게 속으로 눈물에 찬 인사를 건넨 후 순식간에 연무장에서 멀어졌다.
    ​
    ​
    ***
    ​
    ​
    ‘마,말도 안 돼. 이런 놈을 어떻게 죽이라는 거야?’
    ​
    ​
    연무장에 주저앉아있던 노예가 파르르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노예는 얼마 전에 만났던 큰 손님의 말을 떠올렸다.
    ​
    ​
    ‘별 능력도 없으면서 무기만 믿고 나대는 새끼라며! 저,저게 어떻게 무기만 믿고 나대는 실력이야?! 아,아니 그걸 떠나서 마물을 학살한 무기는 창고에서 가져가는 걸 테니 안심하라고 했었잖아!’
    ​
    ​
    노예는 조금 전 리안이 검을 휘두르던 궤적을 떠올렸다. 유려하게 휘어지던 창과 깔끔한 동작 속에 숨겨진 예리한 살기. 그의 앞에 자신이 서 있었다면 반으로 갈라진 건 자신이었을 것이다.
    ​
    ​
    ‘젠장, 그놈들이 헛소리 하나 했었는데..’
    ​
    ​
    노예는 얼마 전에 만났던 다른 노예를 떠올렸다. 자신보다 먼저 ‘리안 처리 의뢰’를 받았던 노예였다.
    ​
    ​
    항상 기세등등하게 어깨를 펴고 다니던 놈이 정신이 반쯤 나간 채 절대 리안에게 접근하지 말라 소리치던 모습이 당시엔 그저 우습기만 했었다. 
    ​
    ​
    그래봐야 무기빨인 놈 아닌가? 
    ​
    ​
    속으로 조소를 흘렸지만 곧바로 움직이진 않았다. 덜떨어진 반응 보이는 노예가 한두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예는 리안의 실력이 어떤지 두 눈으로 확인한 후 작업을 하려 했었다.
    ​
    ​
    ‘저런 실력일 줄 알았으면 의뢰는 절대 안 받았지! 왠지 일에 비해 돈을 많이 주더라니…’
    ​
    ​
    노예는 속으로 연신 욕설을 뱉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
    ​
    ‘못해, 난 절대 못 해.’
    ​
    ​
    돈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제 목숨이었다. 큰 손님의 의뢰를 물리는 것 또한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적어도 살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을 터였다.
    ​
    ​
    노예는 비틀거리며 연무장을 빠져나와 큰 손님에게 향했다.
    ​
    ​
    ***
    ​
    ​
    “쯧..”
    ​
    ​
    부리부리한 눈,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매끈한 머리.
    ​
    ​
    노예가 ‘큰 손님’이라 부르던 이가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아 지팡이의 둥근 머리 부분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고 있었다.
    ​
    ​
    “노예 하나 정리하는데 뭐 그리 어렵다고. 역시 저층에 머무는 잔챙이들에게 의뢰를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
    ​
    그의 목소리는 베베 꼬인 노인의 목소리라 그다지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몇 번이고 바닥을 나무 지팡이로 두드리다가 이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멈췄다.
    ​
    ​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개구리처럼 보였다.
    ​
    ​
    “그래도 꽤 쓸만한 사냥감인 것 같으니 -…직접 가지고 놀아보는 것도 좋겠지.”
    ​
    ​
    그는 씩 웃으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반적인 여성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키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그림자가 넘실거렸다. 그는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짚으며 방을 빠져나왔다. 그의 목적지는 제 지인의 방이었다.
    ​
    ​
    가까운 곳에 방을 잡아둬서 금방 그의 지인 ‘토토겐’의 방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뒤로 쭉 늘어나더니 사람 한명이 슥 나타났다. 
    ​
    ​
    그는 당연하다는 듯 노인 보다 한발짝 앞으로 나서서 노크했다.
    ​
    ​
    똑똑.
    ​
    ​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남자가 노인의 그림자로 돌아갔다. 노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토토겐의 시종이 문을 열어주었다.
    ​
    ​
    시종은 노인의 얼굴을 확인하곤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
    ​
    “여.”
    “무슨 일인가, 반숙.”
    ​
    ​
    토토겐은 제 지인의 얼굴을 확인하곤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노인 아니, 반숙은 바닥에 탁탁 지팡이를 짚으며 거실 소파로 다가가 토토겐의 맞은편에 앉았다.
    ​
    ​
    “요즘 재미있는 노예를 찾았다면서?”
   “하…”
    ​
    ​
    반숙의 말에 토토겐이 그답지 않게 한숨을 내뱉었다. 반숙은 기괴할 정도로 입술을 휘어 보였다. 그러자 자글자글한 주름도 한껏 휘어졌다.
    ​
    ​
    “마침 나도 흥미가 있는 놈이라서 그런데…나도 끼워줄 수 있나?”
    “네가?”
    “그래. 정신이 튼튼해 보이는 게 딱 내 취향이거든.”
    ​
    ​
    반숙이 킬킬 웃으며 지팡이를 바닥에 가볍게 탁하고 내리쳤다. 토토겐은 잠시 말이 없었다.
    ​
    ​
    보통 원하는 노예가 겹칠 땐 가장 먼저 노린 사람이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다른 이에게 선물로 건네주는 게 예의였다. 다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
    ​
    가지고 놀다 질리는 거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이 노린다는 이유로 제 장난감을 남에게 주고 싶은 인간은 어디에도 없을 터였다.
    ​
    ​
    그렇기에 후발 주자로 노예를 노리게 된 이는 신분이 높지 않은 이상 지금처럼 상대에게 미리 뜻을 구해야 했다.
    ​
    ​
    토토겐은 솔직히 리안이 죽을 때까지 자신 혼자서 가지고 놀고 싶었다. 하지만 -…
    ​
    ​
    ‘답이 없어.’
    ​
    ​
    수백 마리의 마물로 죽이는 것도 최상층의 노예와 싸움을 붙여보는 것도 실패한 상태였다. 거기다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것조차 실패한 지금, 그에게 리안을 망가뜨릴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
    ​
    딱 그런 상황에 반숙이 찾아와 도와주겠다고 말하니 거절하기 쉽지 않았다.
    ​
    ​
    ‘…그래,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건 놈의 절망이니까. 손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
    ​
    토토겐은 제 얼굴만큼이나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있는 반숙을 바라보았다.
    ​
    ​
    반숙과 토토겐은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 토토겐은 순수한 아이의 정신이 무너지는 걸 좋아하고, 반숙은 의지가 강한 인간을 고문하여 무너뜨리고 조교 하는 걸 좋아했다. 
    ​
    ​
    두 사람이 쉽게 친해진 이유도 그런 성향 덕분이었다. 
    ​
    ​
    반숙이 노예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너무 직접적이라 토토겐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리안의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이젠 무슨 방법이든 상관없었다.
    ​
    ​
    “좋아, 그렇게 하지.”
   “크흐흐. 잘 생각했어.”
    ​
    ​
    토토겐과 반숙은 리안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손을 잡았다. 
    ​
    ​
    ***
    ​
    ​
    [ 파트너, 적을 쓰러뜨렸을 땐 이 대사 어떤가? “아아, 이게 너희와 나의 수준 차이라는 것이다.” ]
    ​
    ​
    얘는 도대체 저런 대사를 어디서 알고 오는 거지?
    ​
    ​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마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전보다 훨씬 화려해진 마검은 붉은 기운을 넘실넘실 흘리고 있었다. 
    ​
    ​
    [ 아니면 검을 든 장소에서 말하는 거지. “나는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 그래야 수준이 맞을 테니까!” 어때? 어떤가? ]
    ​
    ​
    후에 성숙해진 마검이 제 흑역사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머릿속에 대사를 집어넣었다. 
    ​
    ​
    [ 왜 대답이 없는 거지? 아, 내 대사가 너무 멋있어서 그런가? 당연히 이 몸이 떠올린 대사이니 감명 깊을 수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제대로 연습하지 않으면 중요한 상황에 대사를 외칠 수 없을 테니. 빠르게 연습하도록 하지! ]
    ​
    ​
    나는 마검을 보며 생각했다.
    ​
    ​
    ‘얘가 진짜 뭘 잘못 먹었나?’
    ​
    ​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내 몸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
    ​
    ‘…마검은 내 피밖에 안 먹었잖아.’
    ​
    ​
    그렇다면 마검이 점점 중2병이 되어가는 건 내 피 탓?
    ​
    ​
    ‘에이, 아니겠지.’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혈소연님! 익명님!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다른 사람을 타락시켜야 할 마검이…..어쩌다가….

불구덩이(리안)에 뛰어드는 불나방(토토겐,반숙)들…(안쓰럽)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3다음화 보기

쿠구구궁.

“아.”

무너져 내리다 못해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올라오는 장면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 좋아, 그럼 바로 다음 동작을…! ]

‘잠,잠깐 멈춰!’

[ 뭐? 왜? ]

마검은 본인의 입으로 말했던 것처럼 내가 제지하자 곧바로 몸의 주도권을 돌려주었다. 나는 마검을 길게 늘어뜨린 채 반파된 벽면을 바라보았다.

‘이걸 어쩌지…?’

‘수련하라고 만들어 둔 곳이니까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물어달라고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충돌했다.

이런 고민은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야구를 할 때나 했던 고민이었다. 그때는 98층 고층 건물의 창문을 깨거나(탱탱볼처럼 공이 여기저기 튀어서 집 안이 엉망이 되었다고 했다.), 지구인들을 관찰하던 우주인의 비행선을 맞춰 추락시킨 적도 있었다.

그때 어떤 식으로 해결했었는지를 떠올리자 금방 답이 나왔다.

‘가르간도아 잠깐만 손등으로 들어가 봐.’

[ 한참 재미있었는데… ]

마검이 칭얼거리면서도 내 말을 착실히 따랐다. 마검이 검붉은색으로 물들더니 핏물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핏물이 된 마검은 허공을 헤엄쳐 손등에 흡수되었다. 잠시 은은하게 빛나던 인장이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허어억..”

“저,저게 무슨..”

나는 슬쩍 주변을 훑어보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떠는 노예, 입을 쩍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짓는 노예,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린 채 입술만 벙긋거리는 노예 등.

다양한 노예들이 무너진 벽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주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좋아, 이 틈에 도망치자.’

개그 세계에선 마지막에 남아있는 놈이 덤터기 쓰는 게 당연했다. 눈치 없는 놈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무서운 세계인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뒤를 부탁한다!’

나는 남아있는 노예들에게 속으로 눈물에 찬 인사를 건넨 후 순식간에 연무장에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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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말도 안 돼. 이런 놈을 어떻게 죽이라는 거야?’

연무장에 주저앉아있던 노예가 파르르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노예는 얼마 전에 만났던 큰 손님의 말을 떠올렸다.

‘별 능력도 없으면서 무기만 믿고 나대는 새끼라며! 저,저게 어떻게 무기만 믿고 나대는 실력이야?! 아,아니 그걸 떠나서 마물을 학살한 무기는 창고에서 가져가는 걸 테니 안심하라고 했었잖아!’

노예는 조금 전 리안이 검을 휘두르던 궤적을 떠올렸다. 유려하게 휘어지던 창과 깔끔한 동작 속에 숨겨진 예리한 살기. 그의 앞에 자신이 서 있었다면 반으로 갈라진 건 자신이었을 것이다.

‘젠장, 그놈들이 헛소리 하나 했었는데..’

노예는 얼마 전에 만났던 다른 노예를 떠올렸다. 자신보다 먼저 ‘리안 처리 의뢰’를 받았던 노예였다.

항상 기세등등하게 어깨를 펴고 다니던 놈이 정신이 반쯤 나간 채 절대 리안에게 접근하지 말라 소리치던 모습이 당시엔 그저 우습기만 했었다.

그래봐야 무기빨인 놈 아닌가?

속으로 조소를 흘렸지만 곧바로 움직이진 않았다. 덜떨어진 반응 보이는 노예가 한두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예는 리안의 실력이 어떤지 두 눈으로 확인한 후 작업을 하려 했었다.

‘저런 실력일 줄 알았으면 의뢰는 절대 안 받았지! 왠지 일에 비해 돈을 많이 주더라니…’

노예는 속으로 연신 욕설을 뱉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못해, 난 절대 못 해.’

돈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제 목숨이었다. 큰 손님의 의뢰를 물리는 것 또한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적어도 살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을 터였다.

노예는 비틀거리며 연무장을 빠져나와 큰 손님에게 향했다.

***

“쯧..”

부리부리한 눈,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매끈한 머리.

노예가 ‘큰 손님’이라 부르던 이가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아 지팡이의 둥근 머리 부분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고 있었다.

“노예 하나 정리하는데 뭐 그리 어렵다고. 역시 저층에 머무는 잔챙이들에게 의뢰를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베베 꼬인 노인의 목소리라 그다지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몇 번이고 바닥을 나무 지팡이로 두드리다가 이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멈췄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개구리처럼 보였다.

“그래도 꽤 쓸만한 사냥감인 것 같으니 -…직접 가지고 놀아보는 것도 좋겠지.”

그는 씩 웃으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반적인 여성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키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그림자가 넘실거렸다. 그는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짚으며 방을 빠져나왔다. 그의 목적지는 제 지인의 방이었다.

가까운 곳에 방을 잡아둬서 금방 그의 지인 ‘토토겐’의 방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뒤로 쭉 늘어나더니 사람 한명이 슥 나타났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노인 보다 한발짝 앞으로 나서서 노크했다.

똑똑.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남자가 노인의 그림자로 돌아갔다. 노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토토겐의 시종이 문을 열어주었다.

시종은 노인의 얼굴을 확인하곤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여.”

“무슨 일인가, 반숙.”

토토겐은 제 지인의 얼굴을 확인하곤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노인 아니, 반숙은 바닥에 탁탁 지팡이를 짚으며 거실 소파로 다가가 토토겐의 맞은편에 앉았다.

“요즘 재미있는 노예를 찾았다면서?”

“하…”

반숙의 말에 토토겐이 그답지 않게 한숨을 내뱉었다. 반숙은 기괴할 정도로 입술을 휘어 보였다. 그러자 자글자글한 주름도 한껏 휘어졌다.

“마침 나도 흥미가 있는 놈이라서 그런데…나도 끼워줄 수 있나?”

“네가?”

“그래. 정신이 튼튼해 보이는 게 딱 내 취향이거든.”

반숙이 킬킬 웃으며 지팡이를 바닥에 가볍게 탁하고 내리쳤다. 토토겐은 잠시 말이 없었다.

보통 원하는 노예가 겹칠 땐 가장 먼저 노린 사람이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다른 이에게 선물로 건네주는 게 예의였다. 다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지고 놀다 질리는 거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이 노린다는 이유로 제 장난감을 남에게 주고 싶은 인간은 어디에도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후발 주자로 노예를 노리게 된 이는 신분이 높지 않은 이상 지금처럼 상대에게 미리 뜻을 구해야 했다.

토토겐은 솔직히 리안이 죽을 때까지 자신 혼자서 가지고 놀고 싶었다. 하지만 -…

‘답이 없어.’

수백 마리의 마물로 죽이는 것도 최상층의 노예와 싸움을 붙여보는 것도 실패한 상태였다. 거기다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것조차 실패한 지금, 그에게 리안을 망가뜨릴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딱 그런 상황에 반숙이 찾아와 도와주겠다고 말하니 거절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건 놈의 절망이니까. 손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토토겐은 제 얼굴만큼이나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있는 반숙을 바라보았다.

반숙과 토토겐은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 토토겐은 순수한 아이의 정신이 무너지는 걸 좋아하고, 반숙은 의지가 강한 인간을 고문하여 무너뜨리고 조교 하는 걸 좋아했다.

두 사람이 쉽게 친해진 이유도 그런 성향 덕분이었다.

반숙이 노예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너무 직접적이라 토토겐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리안의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이젠 무슨 방법이든 상관없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크흐흐. 잘 생각했어.”

토토겐과 반숙은 리안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손을 잡았다.

***

[ 파트너, 적을 쓰러뜨렸을 땐 이 대사 어떤가? “아아, 이게 너희와 나의 수준 차이라는 것이다.” ]

얘는 도대체 저런 대사를 어디서 알고 오는 거지?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마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전보다 훨씬 화려해진 마검은 붉은 기운을 넘실넘실 흘리고 있었다.

[ 아니면 검을 든 장소에서 말하는 거지. “나는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 그래야 수준이 맞을 테니까!” 어때? 어떤가? ]

후에 성숙해진 마검이 제 흑역사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머릿속에 대사를 집어넣었다.

[ 왜 대답이 없는 거지? 아, 내 대사가 너무 멋있어서 그런가? 당연히 이 몸이 떠올린 대사이니 감명 깊을 수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제대로 연습하지 않으면 중요한 상황에 대사를 외칠 수 없을 테니. 빠르게 연습하도록 하지! ]

나는 마검을 보며 생각했다.

‘얘가 진짜 뭘 잘못 먹었나?’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내 몸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마검은 내 피밖에 안 먹었잖아.’

그렇다면 마검이 점점 중2병이 되어가는 건 내 피 탓?

‘에이, 아니겠지.’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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