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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토룡이 공격을 방패로 막아내려던 순간 신성으로 이루어진 장벽이 날 대신해 토룡을 방해했다.

   

   “알른 영애님.”

   

   페이비였다.

   

   방금 전에 허접이니 뭐니 해서 기분이 나쁠 텐데도 날 도와주시다니!

   

   역시 성녀님! 빛빛이십니다!

   

   “다들 저희를 구경하고 있는 거 아시나요?”

   

   장벽에 밀려난 토룡에게 미친 놈마냥 달려드는 자칼과 프레이 덕에 여유가 생긴 난 시선을 돌려 학생들이 있는 곳을 살폈다.

   

   얼마 전까지 혼란 속에서 비명을 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팝콘을 뜯을 것 같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구경을 하는 이들은 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앞에 서 있는 교수들이나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골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면 다들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는 눈치 챈 것 같네.

   

   하긴 이렇게 단서가 많은데 추측도 못하고 있는 건 토룡을 괴롭히는 데 정신이 팔린 자칼과 프레이 정도일 거야.

   

   “역시 이 습격은 아카데미 측에서 준비한 걸까요.”

   

   ‘그럴 걸요.’

   “허접 아카데미가 멍청한 짓 한 거겠죠.”

   

   나는 페이비에게 그리 대꾸를 하곤 토룡에게 달려가 그 발톱을 메이스로 찍어버렸다.

   

   그러자 발톱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토막이 나선 땅에 떨어졌다.

   

   – 쿠오오오오.

   

   슬슬 토룡 레이드도 끝을 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딜을 해 줄 사람들이 명확하니까 편하네.

   

   앞에서 탱킹만 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길 수 있다니.

   

   너무 개꿀이야.

   

   앞으로도 파티를 짜고 활동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솔로로 움직일 걸 각오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동료가 있으면 훨씬 편하니까.

   

   지금 내 평판을 생각해 보았을 땐 불가능한 일일 것 같지만 사람 미래라는 건 모르는 거잖아?

   

   토룡은 결국 우리의 공세를 버티지 못했다.

   

   발톱이 꺾이고.

   

   꼬리가 날아가고.

   

   날개가 베이고.

   

   눈이 꿰뚫린 토룡은 최초의 우렁차던 고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그마한 단말마를 내뱉으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와 동시에 우리를 구경하던 이들에게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러니까 투기장의 검투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이네.

   

   “허?”

   “뭐야?”

   

   상황이 흘러가는 것에 일말의 관심도 없던 두 사람은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는 걸 보고 의아한 듯 고갤 갸웃거렸다.

   

   그런 둘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상황을 설명해주러 가는 페이비를 지나친 난 무기를 다시 없앤 후에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대단하더군.”

   

   그러던 중에 불쌍왕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릴 적부터 친했던 사람들 외에는 무관심한 이 인간이 왜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거지?

   

   “확실히 내게서 대표의 자리를 빼앗아 갈만한 자질을 지녔어.”

   

   입학시험 때문이었냐!

   

   대표 자리를 거절한 것만으로 스노우볼이 끝나는 게 아니었구나?!

   

   그렇겠지! 소울 아카데미 입학시험의 성적은 상위 20위권까지 공개 되니까!

   

   내가 1등 자리에 있는 걸 사람들이 본다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갈 거라 생각하긴 했어!

   

   그렇지만 지금은 아직 그럴 타이밍이 아닐 텐데?

   

   입학식이 끝나고 나서 공개되는 성적을 이 인간은 어떻게 아는 거야!

   

   “본인에 관해선 알 터이나 다시 한 번 소개를 하지. 솔라딘 왕국의 3왕자. 아서 솔라딘이라고 하네.”

   

   왕자가 인사를 했으니 같이 인사를 하는 게 예의였지만 난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서를 어떻게 부를지 짐작이 되지 않아서.

   

   조이는 얼빵 영애. 루시는 허접 성녀.

   

   그럼 아서는 어떻게 부를까.

   

   그의 별명인 불쌍 왕자? 아니면 허접 왕자?

   

   어느 쪽으로 부르더라도 결과는 최악이야!

   

   불경죄라고! 불경죄!

   

   내가 아무리 힘 있는 백작 가문의 영애라고 하더라도 왕자님한테 그딴 소리를 지껄여도 될 리가 없잖아!

   

   “알른 영애?”

   

   뭔가 답이 없나?!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메스가키 스킬이 존재하는 한 난 이 강제력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어.

   

   이 인간하고 같이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될 난관이잖아.

   

   매를 미리 맞는다고 생각하고 저질러 버리자.

   

   난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을 하고 나서 아서를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알면서 왜 물어 보시는 건진 모르겠지만. 루시 알른이라고 합니다. 불쌍 왕자님.”

   

   “…허?”

   

   자신이 들은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아서의 얼굴을 보고 나니 한 가지 단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좆됐다. 완전히 좆됐다.

   

   수습이니 뭐니 하는 걸 입에 담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을 동정하는 걸 가장 싫어하는 인간한테 불쌍 왕자라는 소리를 했으니.

   

   “다시 말을 해보겠나? 알른 영애?”

   

   아서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지만 그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완전히 굳어선 내 눈동자를 노려보는 그의 눈을 보고 있자니 딸꾹질이 샐 것 같았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확인을 하고 싶어서…”

   “안녕하십니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때에 목소리 하나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는 토룡이 이끌던 부하 마물 중 하나인 골렘이었다.

   

   그 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나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분명… 루카인가.

   

   “토룡을 상대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아카데미의 입학생이라 생각할 수 없는 멋진 싸움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겨우 그거 말하려고 온 거야?”

   

   “아뇨. 이제 다시 아카데미 입학식을 진행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혹시 움직이기 힘드시다면 이 골렘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만.”

   

   ‘괜찮아요.’

   “골렘을 조종하느라 머리도 골렘이 된 거야? 내가 힘들어 보여?”

   

   “아하하. 괜찮으시다면 다행입니다.”

   

   설마 내가 루카의 얼굴을 반가워하는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고마워! 지금 상황을 모면할 명분을 줘서!

   

   내가 이번 일을 기억해서 나중에 널 조질 때 되도록 깔끔하게 조져주도록 할게!

   

   미안하지만 안 조진다는 선택지는 없어!

   

   넌 분탕충이잖아!

   

   ‘죄송합니다. 왕자님…’

   “허접 아카데미가 눈치가 없네요.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이만 가봐야겠어요. 안녕히 계시길. 불쌍 왕자님.”

   

   상황이 다급해서 실수로 왕자라는 단어를 입에 한 번 더 담고 말았다.

   

   슬며시 숙였던 고개를 들자 이젠 웃음을 지을 여유조차 잃어버린 왕자의 얼굴이 보였다.

   

   하. 조졌네.

   

   머리가 새햐얘져 버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조차 떠올릴 수 없어서 도망치듯 학생들이 모인 자리로 향했다.

   

   <뒤편에서 노려보고 있구나.>

   ‘그런 거 알려 줄 필요 없어요!’

   

   내가 학생들의 대열로 돌아오자 다른 이들이 알아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들의 시선에 담긴 공포는 여전했다.

   

   어찌 보면 이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했다.

   

   성격만 더러운 줄 알았던 망나니가 실은 힘도 지니고 있었단 걸 알게 되서 그런 걸까.

   

   평소라면 이 사실을 깨닫곤 기가 죽었겠지만 이번에 한해선 괜찮았다.

   

   이미 기분이 나락에 쳐 박혀서 더 떨어질 곳도 없거든!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 때문에 놀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디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난 멍하니 단상을 쳐다봤다.

   

   “다들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이번 습격은 저희 아카데미측에서 준비한 일입니다. 왜 이런 일을 준비했는가. 그것은 여러분이 위기상황에 어찌 대응하는 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난 번 저희 입학시험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주디가 사고를 언급하자 주변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몰렸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피해도 없이 해결이 됐지만 자칫 잘못하면 몇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거의 완벽하게 통제가 된 아카데미의 던전에서도 이런 위기가 생겨납니다.”

   “그렇다면 실제 던전에 들어가면 어떨까요.”

   

   주디는 말을 멈추고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것처럼.

   

   “던전은 변수로 가득 합니다.”

   “아무리 숙련된 모험가라 할지라도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완벽히 예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예상외의 위기가 닥쳤을 때 오늘처럼 혼란이 일어난다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한 때 현직에서 일하던 사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죽었을 겁니다.”

   

   주디가 단언하자 학생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게임에서 연설을 할 땐 이정도로 살벌한 소리를 하진 않았는데.

   

   시험에서 사고가 일어난 반동인 걸까?

   

   “여러분들은 장차 던전을 공략하게 될 사람입니다.”

   “위치는 다를 지언정 던전의 안에 들어가게 될 거란 사실은 같습니다.”

   “그 때 여러분이 일으키는 혼란은 모두의 목숨을 앗아가게 될 겁니다.”

   

   한껏 무거워진 학생들의 분위기를 살피던 진지한 표정으로 살피던 주디는 이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에 대비하는 법을 이제부터 가르쳐 드릴 거니까요.”

   “오늘부터 아카데미에선 여러분들에게 살아남는 법을 알려드릴 겁니다.”

   “그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겁니다.”

   “여러분. 소울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그 날. 여러분은 어떤 던전도 공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겁니다.”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그리 말을 한 후에 한 번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주디는 방금 전 잔뜩 깔았던 목소리가 연기였다는 것처럼 밝은 목소리를 냈다.

   

   “자. 입학식은 이걸로 끝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아카데미 입구에 있는 반 배정표를…”

   

   *

   

   아서에게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불쌍하다는 단어를 꼽을 것이다.

   

   왕이 저질렀던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잉태되어,

   

   권력과는 거리가 먼 남작 영애의 아들로 태어나,

   

   다섯 살이 되었을 적에 그 어미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고로 잃어버렸고,

   

   그와 함께 왕의 관심에서 아예 멀어져 버린 아서는 왕자임에도 불쌍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그리 생각을 했다.

   

   허나 아서는 불쌍하다는 말이, 동정의 시선이 싫었다.

   

   왜냐하면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는 어머님이 해주었던 유언을 지킬 수 없게 되니까.

   

   아서는 동정 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오히려 모두의 동경을 받아 불쌍하단 단어조차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그 날에 자신을 보고 ‘불쌍한 아이.’라고 했던 왕에게 당당히 자신은 불쌍하지 않다고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아서의 노력은 성과를 거뒀다.

   

   지금에 와서는 그 누구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천재라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동경할 뿐 아서에게 불쌍하다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랬었는데.

   

   ‘불쌍 왕자님.’

   

   자신을 향하는 가소롭다는 웃음과 비웃는 듯한 눈.

   

   루시와 헤어지고서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서는 그 풍경을 뇌리에서 떠나보낼 수 없었다.

   

   신분의 여하를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비꼬고 비난해 화나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자라 했던가.

   

   소문이 아예 틀린 건 아니었군.

   

   불쌍 왕자인가.

   

   하. 빌어먹을.

   

   조이를 놀릴 처지가 아니었어.

   

   *

   

   – 띠링

   

   학생들이 아카데미 건물로 향하는 걸 멍하니 구경하던 나는 메시지 창이 떠오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퀘스트 클리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그에 따라 보상이 지급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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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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