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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할그람의 유서 깊은 마도 아카데미 1학년 재학생 도로시.

   그녀의 실종과 함께 아슬란은 무너지고 말았다.

     

   리리나는 아슬란과 그녀 사이에 모종의 사건이 있었을 거란 걸 어렴풋이 알지만.

   그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왜 실종됐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크라슈는 어떤가.

     

   ‘나야 다 알지.’

     

   리리나의 부탁을 듣고, 청해 기사단 숙소로 돌아오는 길.

   크라슈는 오래전에 아슬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다.

     

   [ 굳이 다 아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귀찮게 돌아가 들을 필요 있느냐? 그놈 꼴을 보니 월음지체도 뺏으면 그냥 뺏길 거 같건만. ]

   “아니, 안 뺏겨.”

     

   크라슈는 가볍게 도리질 쳤다.

   아슬란과 지내며 크라슈는 그의 특출난 성격 하나를 알고 있다.

     

   그는 엄청난 쇠고집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간다고 한들.

   그의 쇠고집은 절대로 꺾이지 않는다.

     

   그러니 확신할 수 있다.

   그놈은 죽기 직전까지도 월음지체에 블랙후드를 사용해도 다이얼이 나타날 거란 걸 말이다.

     

   월음지체야말로 아슬란의 쇠고집이 생긴 원흉 중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이그리트 가문은 발하임만큼은 아니어도 천하십강 염왕의 가문이야.”

     

   당연히 그 경계는 삼엄하며 마법과 관련된 방범 장치도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니 그냥 침입했다간 십중팔구 걸릴 것이다.

     

   “너야 까마귀이니 신경 쓰지 않지만, 인간은 다르다고.”

     

   그러니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방법으로 정식 방문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리리나를 이용해 그녀의 지인으로서 저택에 숨어드는 것이었다.

   이그리트 가문의 저택은 워낙 큰 부지다 보니 시녀들이나 사용인들이 종종 저택에서 지인을 불러 만나는 것 정도는 눈감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놈이랑 담쌓을 생각 없어.”

     

   월음지체를 지녔음에도 염제라 불렸던 아슬란 이그리트.

     

   그가 그렇게 불릴 수 있게 된 것은 자기 육체 자체를 불사질러 강제로 월음지체를 지운 덕이었다.

   그러니 크라슈가 만났던 아슬란은 전신이 화상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처음 만난 날 전신을 붕대로 감은 채 노려보던 독기 품은 눈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중에는 그런 눈빛도 괜찮아졌지만.’

     

   어쨌든 아슬란은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불태워 버렸다.

   자기 생명력까지 불태워 버린 결과 그의 수명은 단축되었고, 불과 스물넷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어찌 보면 창공의 세대 중 유일하게 자신의 수명으로 죽은 이이기도 했다.

     

   ‘염제는 있어야 해.’

     

   독기는 심했어도 유일하게 말 통하는 놈 중 하나였다.

   그런 놈은 죽게 둬서는 안 된다.

     

   ‘최흉의 세계 침식은 한 번에 하나씩만 터지는 게 아니다.’

     

   크라슈는 세계의 멸망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

   동시다발적으로 최흉의 앞에 창공의 세대가 얼마나 무력하게 휘둘렸는지도 말이다.

     

   자신은 멸망을 막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최흉을 마무리하는 동안 최소한 다른 최흉을 막고, 버티고 있어 줄 녀석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서는 분명 그 역할을 해줄 놈들을 세 여자로 정했을 것이다.

   그래도 능력만큼은 뛰어난 녀석들이었으니까.

     

   실제로 그 세 명만큼 아서가 오기까지 오래도록 시간을 벌어준 녀석들은 없었다.

   크라슈도 그것만큼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크라슈는 세 여자를 그냥 둘 생각 없다.

   그것들이 망친 일이 한두 개여야지.

     

   차라리 다른 패를 쥐고 만다.

   그리고 그 패 중 하나가 바로 염제 아슬란 이그리트였다.

     

   그가 최흉이 터진 당시까지도 살아 있었다면 분명 최흉 하나 정도는 정면에서 막아 줬을 테니까.

     

   ‘그러니 이번에는 그 꼴 나게 안 둔다.’

     

   제 명줄 다하고 죽게 둘까 보냐.

     

   ‘이쪽이 발버둥 치는 만큼 너도 발버둥 치게 해줄 거다. 아슬란.’

     

   그를 살리기 위함인지 자신을 위함인지 모를 생각을 품은 채 크라슈는 걸음을 옮겼다.

     

   [ 그래서 그 도로시라는 애는 어떻게 찾아오는 게냐. ]

     

   그러는 순간 크림슨가든이 질문을 해왔다.

   그 질문을 듣고, 크라슈는 어깨를 으쓱였다.

     

   “찾긴 뭘 찾아.”

   [ 방금 찾는다 하지 않았느냐? ]

   “못 찾아.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도로시는 이미 이 세상에 없어.”

     

   그리고 폭탄선언이 떨어졌다.

     

   [ 뭐? 그럼 어쩔 생각인 거야. 에벨아스크라도 불러 되살릴 속셈이냐? ]

   “그것도 불가능해. 애초에 시체조차 남지도 않았을 거다. 그 녀석은 염주의 손에 불타 죽었으니까.”

     

   연이은 폭탄선언에 크림슨가든이 황당한 눈빛을 보냈다.

     

   [ 진짜 어쩔 생각인 거냐. ]

     

   크라슈는 목을 가볍게 두둑 풀었다.

     

   “도로시를 되살릴 거야.”

   [ 나만 지금 네 말을 이해 못 하겠느냐. ]

   “바로 이해할걸.”

     

   크라슈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정령왕의 알.”

   [ ……이런. ]

     

   나오면 안 되는 이름이 나왔다며 크림슨가든이 혀를 찼다.

     

   “알을 훔쳐서 도로시를 되살릴 거다. 도로시는 정령이니까.”

     

     

   * * *

     

     

   정령.

   그것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정령은 침식종이다.

     

   그들이 새어 나오는 곳은 세계에 존재하는 금역 중 하나.

   바로 정령왕의 숲이다.

     

   그곳에서 정령들은 태어나고, 자라 세계 밖으로 나온다.

   도로시는 그러한 정령 중 하나였다.

     

   그러한 정령왕의 숲은 사실 할그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붉은 마탑과 이그니스가 함께 바로 그런 정령왕의 숲을 관리하기 때문이었다.

   염왕의 화염 마법은 정령왕의 숲의 규모를 줄이는데 가장 제격이다.

     

   그러니 그들은 정령왕의 숲이 더 커지지 않도록 매일 같이 관리하고 있었다.

     

   크라슈는 그런 정령왕의 숲을 두른 성벽 앞에 와있었다.

     

   “너처럼 사서 고생하는 녀석들도 많지 않을 거다.”

     

   그런 성벽 앞에 크라슈는 한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크라슈가 예전에 본 적 있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부풀어 오른 앞섬과 함께 드러난 제복 상의.

   붉게 타오르는 머리카락과 함께 보이는 검은 별점.

     

   바로 얼마 전 크라슈에게 세계 침식 조사하러 왔던 세피라의 일원이었다.

     

   “왜 이 아이를 여기까지 데려오라 했더니.”

     

   크림슨가든은 혀를 쯧차며 크라슈를 못마땅히 바라보았다.

     

   “스승을 너무 막 굴리는 것 아니더냐?”

   “언제는 쓸 수 있을 때 쓰라며. 지금 내 카드는 너밖에 없어.”

     

   정령왕의 숲은 금역인 만큼 살벌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혹시나 정령왕의 숲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즉각 대처를 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아무나 들어갈 수 없으며 상부의 제대로 된 허락을 맡은 이만 출입이 가능했다.

   그런 허락을 맡을 수 있는 이가 누구인가.

     

   다름 아닌 세피라의 일원인 크림슨가든의 종이었다.

   그녀의 가슴팍에는 저번에 보았던 4급이 아니라 3급이 박혀 있었다.

     

   그사이에 1계급 또 승진한 것이었다.

   저 정도면 조사 차원에서 금역에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수준.

     

   크림슨가든 녀석 어지간히 열심히 종을 키우는 모양이었다.

     

   “세피라의 수장까지 오를 속셈이냐?”

   “흥, 그런 자리 줘도 안 가진다. 내 종이 그저 너무 유능한 것뿐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카락의 색을 지웠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크라슈에게 배지 하나를 던졌다.

     

   그 배지를 크라슈가 받자 거기에는 세피라의 4계급이 박혀 있었다.

   크라슈가 정령왕의 숲에 들어가게 해주고자 챙겨온 것이리라.

     

   “일을 해결하는 걸 원하니 들여보내 주겠지만 정말로 들어갈 속셈이냐? 솔직히 난 반대한다만.”

     

   크림슨가든은 정령왕의 숲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언짢은 반응을 보였다.

   정령왕의 숲에서 뭔가 저지른 게 있는 건가.

     

   크라슈는 의아해하면서도 말했다.

     

   “그래, 일을 해결하려면 알이 필요해. 그리고 정령왕의 숲은 금역 중에서도 안전한 편이고.”

     

   이미 직접 겪어본 정령왕의 숲이다.

   크라슈 입장에서는 별로 어려운 것도 없었다.

     

   “끄음, 그렇다면 나는 들어가기 싫다. 너만 가라.”

   “왜 갑자기 앓는 소리야? 애초에 너 없으면 난 저 안에 못 들어간다니까.”

     

   크라슈가 그리 다그치자 결국 그녀는 혀를 찼다.

   그러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후회하지 마라.”

     

   그사이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느샌가 본래의 색깔인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크라슈 또한 배지를 잘 차고, 로브 모자를 뒤집어쓴 채 따라가자 잠시 후 입구 앞에 병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크림슨가든의 제복과 배지를 알아보곤 자세를 바로 했다.

     

   세피라의 3계급은 일개 병사들 처지에서는 한없이 높은 위치니, 말이다.

     

   “사전에 연락드렸던 세피라 3계급관의 미르시스입니다. 옆에는 4계급관 크라드고요.”

   “예, 저희 연락받았었습니다. 바로 열어 드릴 테니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병사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피라에서는 정기적으로 금역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러니 병사들도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잠시 후 성벽의 문이 드르륵하며 열렸다.

     

   그러자 내부에서 정령 특유의 빛 가루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닿으면 피부병을 일으키는 빛가루지만 보는 것만큼은 아름다웠다.

     

   “호위는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4계급관이 전투 담당입니다.”

     

   크라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병사들은 크라슈의 어린 모습에도 딱히 의심하지 않았다.

     

   세피라는 세계 침식 쪽 전문이니 말이다.

     

   “그럼, 여기, 빛가루의 호흡을 도와주는 마법 호흡기입니다. 잔량과 시간을 잘 확인하시고, 오러 충전 부탁드립니다.”

     

   크라슈와 크림슨가든은 병사가 전해준 호흡기를 능숙하게 달았다.

   그러곤 병사들에게 한차례 인사를 하곤 그대로 성벽 안으로 들어섰다.

     

   눈으로 들어온 빛 탓에 호흡기 너머 잠시 눈을 찌푸렸던 크라슈가 잠시 후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앞에 황금 빛가루가 마치 꽃잎처럼 흩날렸다.

   거기에 더해 엄청난 크기의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이 금역.

   정령왕의 숲.

     

   세계 침식종인 정령들에게 있어 낙원이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이번 생에는 처음 들어온 금역이기 때문일까, 그 감회가 남달랐다.

     

   동시에 금역 전체에서 느껴지는 세계 침식도 말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호흡만 해도 세계 침식이 늘어나겠는데.’

     

   과연 금역은 금역이다.

   극혈침독을 익힌 채 들어오니 금역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새삼 체감하게 되었다.

     

   끼익, 쿵!

     

   그사이 뒤에서 성벽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신을 꽁꽁 싸맨 상태인 크라슈는 미리 몸에 오러를 미약하게 둘러 두곤 크림슨가든 옆에 섰다.

     

   “가자. 알의 위치는 알고 있어.”

   “크라슈.”

     

   크라슈가 걸음을 옮기려 하자 크림슨가든이 대뜸 불러왔다.

   크림슨가든은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웬만하면 말하지 않는 상황이 되기를 바랐지만 아무래도 그른 모양이다.”

     

   크라슈가 눈을 깜빡였다.

     

   “뭔 소리를 하려는 건데.”

     

   그 순간 하늘 위에서 무언가 우웅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라슈가 뒤늦게 고개를 든 순간 세계 침식 탓에 황금색으로 변질한 하늘의 끝자락.

     

   무언가 새까만 것이 이곳을 향해 거세게 날아오고 있었다.

     

   “일단 빠져나가고 이야기하마.”

     

   그 순간 크림슨가든이 양손을 짝하니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의 발아래에서 여러 겹의 붉은 마법진이 나타났고, 순식간에 두 사람이 공간 이동 되었다.

     

   한순간에 바뀐 풍경과 함께 크라슈는 정령왕의 숲 어딘가를 나뒹굴었다.

   크림슨가든의 공간 이동 마법이 발동된 것이었다.

     

   그사이 크림슨가든은 현기증을 느끼는 듯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그녀의 종 미르시스는 문학을 갈고 닦은 종이지 무학을 갈고 닦은 종이 아니다.

   그 때문에 적은 오러로 마나를 사용한 결과 현기증이 온 것이었다.

     

   “윽, 젠장, 그래서 뭔 일인데.”

     

   그사이 공간 울렁증을 느낀 크라슈가 호흡기를 조정하며 물었다.

   다짜고짜 공간 이동이라니 크림슨가든답지 않았다.

     

   그러자 크림슨가든이 나무 사이 황금빛 하늘을 돌아본 채 말했다.

     

   “……나는 예전에 정령왕의 숲에서 필요한 게 있어서 종을 시켜 정령 한 마리를 데려나간 적 있다.”

   “뭔 짓을 했던 거야.”

     

   크라슈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그녀도 착잡한 눈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종은 내 할 일을 끝낸 후 정령을 돌려보내지 않고, 대신 정령과 함께 세계를 꽤 열심히 여행했다.”

   “야, 잠깐, 크림…….”

     

   하지만 이어진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의 표정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그거 설마 엄청 옛날에 있었던 태초의 정령사 아니냐?”

   “…….”

     

   크림슨가든이 침묵했다.

     

   태초의 정령사.

   세계에 기록된 세계 유일의 정령사.

     

   그게 바로 크림슨가든의 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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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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