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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54 – 그림체가 다른 5교시>

     

    월요일 5교시.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장.

     

    “강의실이 어디야?”

    “불이 하나도 켜져있지 않잖아.”

    “교수님 자러 가신 거 아니야?”

     

    불 꺼진 막사 사이를 주춤주춤 돌아다니던 몇 안 되는 학생들은 잔뜩 실망한 얼굴로 걸음을 돌렸다.

     

    “그냥 어디서나 잘 자기 강의나 들으러 가자.”

    “맞아. 강의실도 가깝더라.”

    “거긴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학점경쟁이 힘들 것 같아서 넘어온 건데… 칫. 강의 자체가 열려있지를 않으면 방법이 없긴 하지.”

     

    교수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는 학생들을 보며 오크노디는 미리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 강의 다 들으면 어떤 극한환경에서든 잠자기가 가능하긴 하지. 힘내, 뉴비들아!’

     

    강의수강 포기하고 도망치면 뭣도 안 남지만 그래도 꼭 끝까지 버텨보렴!

     

    ‘근데 이 강의는 진짜 인기 없긴 하네.’

     

    인기 이전에 교수를 못 찾아서 돌아간 학생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혹시 제대로 된 장소에 왔지만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답게 불이 켜지지 않은 야외에서 강의를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엉뚱한 기대감을 지닌 학생들이 극소수나마 남아있다.

    그리고 그게 맞다.

     

    부스스스

     

    “어? 저기 어둠 속에서 뭔가 일어나지 않았어?”

    “조명마법 좀 틀어봐.”

     

    어디서 많이 본 조명기에 불이 들어오며 꽃가루가 휘날리는 효과와 함께 분홍빛 빛이 켜졌다.

    빛이 비친 공터에는…

    물에 불어터진 미역처럼 기다란 검은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흘러내리는 하얀 소복의 여자가 우드득 우득 소리를 내며 일어나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악!!”

    “아아앗! 가, 같이, 같이 좀…!”

    “귀신이야아아아!!! 너무 무서워어어어!!”

    “으아악!! 정신나갈것같아!!!!”

    “저기, 애들아…? 나, 나도 좀!”

    “도망쳐어어어!!”

    “아 쫌!! 조명기 때문에 따라가기 힘들,”

     

    모랄빵을 맞은 당나라 군대처럼 사방팔방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학생들.

    조명기를 질질 끌고 뒤따라가던 여학생이 돌에 걸려 넘어졌다.

    옆으로 넘어진 조명기는 의외의 내구성을 자랑하며 깨지지 않았는데, 넘어지면서 버튼이 잘못 눌린 탓인지 조명의 색깔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우드드득 우드득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넘어진 학생에게 고개를 돌린 검은머리 소복녀.

     

    “히익. 오, 오지 마! 울 아빠가 누구인 줄 알아? 신성도시국가연맹의 시장이라고! 남부의 만신전이라 불리는 도시국가 중 하나가 울 아빠 꺼라고!!”

    “…….”

    “아, 알았지? 그니까 가까이 오지 마. 오면 울 아빠한테… 이를 거니깐…”

    “…….”

    “거니깐……요?”

     

    대답없는 소복녀.

    점점 자신감을 잃는 조명녀.

    시뻘겋게 물든 소복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조명녀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불길한 예감에 차마 목소리도 못 내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조명녀였지만…

     

    우다다다!

     

    “아아.”

     

    냅다 달려오는 소복녀의 모습에 끝내 조명녀가 픽 쓰러지며 혼절하고 말았다.

     

    “칠칠맞은 아이.”

     

    물론 소복녀는 아카데미에서 비운의 사고로 죽어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유령이 아니었고,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를 맡은 교수님이었다.

     

    “……강의 시작이야. …빨리 나와.”

     

    조명기를 반듯이 세우고 어둠 속을 비치는 교수님.

    <숨기> 기능으로 내가 숨어있던 막사 뒤야 그렇다 쳐도 나무 위까지 비치는 행동에는 조금 놀랐다.

     

    “와. 교수님이었어요? 진짜 귀신인줄 알고 무서워서 공격할 뻔했는데.”

     

    가면을 쓴 암살자 즈앙.

    참 암살자답다 싶은 강의에서 그녀와 조우했다.

     

     

    * *

     

     

    월요일 5교시.

    7시부터 9시까지의 초저녁에 열리는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를 맡은 사다코 교수는 긴 머리카락에 하얀 소복을 지닌 야행성 교수였다.

    몸이 차고 자주 굳어서 움직일 때마다 종종 두드득 소리가 나고 머리카락이 길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탓에 종종 귀신소리도 듣는다.

    학생들의 인기는 당연히 최악.

    어떤 기수에서 우연히 밤에 강의를 열었다가 수강생이 0명이라 강의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경험을 한 후, 그녀는 깨달음을 얻었다.

     

    ‘학생들을 두렵게 만들면 강의를 하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

     

    드래곤 교장이 제공하는 교수혜택만 보고 학생을 가르칠 의무는 따르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 날먹!

    날먹의 비의를 깨우친 사다코는 매년마다 유난히 어두운 숲 근처에서 해가 저무는 음산한 시각에 *인상적인* 등장으로 학생들에게 겁을 줬다.

    조명기를 든 학생이야 깨어나면 오늘 찾아오지 않았던 학생들도 호기심에 찾아올 엄두도 내지 못하게 소문을 내주리라 생각했지만…

    세상에는 겁 없는 학생도 있다.

    하필이면 이번 981기 1학년에는 두 명이나 그런 학생들이 있었다.

     

    “……너희는. …교수님이 무섭지 않니?”

    “죽이면 무섭지 않으니까 괜찮아! …근데 교수님은 죽일 수 없으니까 실은 괜찮지 않아!”

    “전 그냥 안 무서운데요.”

     

    즈앙이 가면 너머로 어떻게 그런 심한 거짓말을 할 수 있냐고 오크노디에게 비난의 눈초리를 보냈다.

     

    “……정말? 내가 무섭지 않아…?”

     

    우드득 소리를 내며 다가온 사다코 교수가 비현실적인 각도로 목을 틀며 오크노디의 얼굴 앞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오크노디는 조금 질린다는 기색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감이 담은 눈을 했다.

     

    “교수님은 목소리가 이쁘잖아요. 목소리가 이쁜데 못생긴 여자는 없어요!”

     

    어린것이 맹랑하게도 못하는 말이 없다.

    사다코는 괜히 반감이 들었다.

     

    “내 별명이 뭔지 알아? 공포의 사다코야.”

     

    기다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

    어둠에 물든 눈동자에 실린 감정은 인간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공포를 자극한다.

    그것은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인간이 비인간을 바라보며 느끼는 생리적인 공포.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만드는, 당장 도망치라고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근본적인 어긋남.

     

    “교장은 교수를 모으는 재주는 있지만… 그보다 커다란 문제점도 지니고 있지.”

     

    사다코가 창백한 손으로 제 가슴팍에도 닿지 않는 학생의 어깨를 짚었다.

     

    “교장의 문제는 종족을 따지지 않는다는 거야. 그리고 너희를 가르칠 눈앞의 교수님은 생명을 거스른 존재. 신이 버린 피조물. 언데드이고.”

    “!”

    “느껴져?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서늘한 손이. 죽은 자의 교육을 받아봤자 너희도 같은 시체가 될지도 몰라. 그런데도 내가 무섭지 않아?”

     

    즈앙이 가면 뒤에서 부르르 몸을 떨며 말했다.

     

    “엄청 무서운데.”

     

    암살자의 걸음걸이를 지닌 아이도 두려워할 정도면 말 다한 셈이다.

    이걸로 됐다.

    올해도 가르치는 학생은 0명.

    다시 혼자만의 평화로운 밤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죽은 자에게는 남는 것이 시간이지만.

    동시에 자신만을 위한 안식을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 또한 언데드의 습성이기에.

    사다코는 자신을 이쁘다고 말해준 아이에게 미움을 받으려는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상관있어요?”

     

    하지만 오크노디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대꾸했다.

     

    “교수님이야 강의만 잘 가르쳐주시면 좋죠. 그 드래곤 교장님이 설마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할 교수님을 모셔왔을 리가 없잖아요.”

     

    사다코는 충격에 휩싸였다.

    제국 출신 교수들도 천한 언데드 따위라며 멸시하는 자신을 일개 학생이 당당히 인정하다니.

    심지어 믿음의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인정받았다.

    진심으로 자신에게 가르침을 기대하고 있다.

    마주보기도 두려운 존재에게 가르침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네가 바란 강의야. 그만두겠다면 지금 말해. 죽은 자의 안식을 방해하면서까지 강의를 배우러 와놓고 멋대로 그만둔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안 그만둬요. 월요일 5교시에서 제일 배우고 싶은 강의는 이 강의인걸요!”

     

    오크노디의 당찬 외침에 즈앙은 도망가려던 걸음을 멈추고는 씩씩거리며 돌아왔다.

     

    “그럼 나도 들을래.”

    “굳이? 혼자 들어도 되는데.”

    “여기서 물러나면 지는 것 같아서 싫은걸.”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다툼에 사다코는 앞으로 늘어뜨린 머리카락 아래로 쩌저적 웃음 지었다.

    교수노릇은 질색이지만 올해만큼은 예외가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 *

     

     

    어떻게 웃는 소리가 쩌저적일 수가 있지?

    알고도 무섭네 진짜.

    즈앙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내심 쫄린다.

     

    ‘역시 안 좋은 의미의 비주얼 갑. 적응할 대로 했는데도 깜짝 놀라네.’

     

    특유의 외모 때문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비주류 교수로 손꼽힌 사다코.

    하지만 이 교수에게는 한 가지 소문이 돌고 있다.

    플레이어들에게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앞머리 아래의 맨얼굴.

    그것이 실은 엄청난 미녀일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반전에 대한 소문이었다.

    실제로 이를 밝혀낸 고인물은 없다.

    사다코의 맨얼굴이 예쁜지 못생겼는지는 일종의 맥거핀이었으니까.

     

    ‘그래도 현실이 된 지금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언데드는 밤의 주민.

    야간행동에 대해서는 언데드 교수 사다코보다 뛰어난 교수는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 강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런 강의의 실효성 따위가 아니다.

     

    ‘사다코 교수님의 맨얼굴을 보고 싶어!’

     

    1학기가 끝날 때까지 교수님의 맨얼굴을 보는 것.

    이것이 5교시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를 듣는 가장 큰 이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강의리뷰 : 교수님이 개성적이고 사람을 해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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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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