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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자, 얘들아. 슬픈 소식이 있어. 하스펠트 선생님께서 장기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당분간은 못 돌아오실 거야.”

         

       교단에 선 헤를라인 선생님이 씁쓸한 표정으로 그런 사실을 전했다. 그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어느 정도 걸리세요?”

       “못해도 이번 학기가 끝날 때까진 못 돌아오실 거야.”

         

       내가 지금 헛것을 듣고 있나?

         

       하스펠트 교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헤를라인 선생님이 들어온다니,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었다. 하스펠트 강점기가 잠깐이나마 사라졌다는 사실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자니 조례가 시작됐다.

         

       “조례라고는 해도 별 거 없어. 음, 원래라면 시험이 끝난 뒤에 뒷산에서 마수 잡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했거든. 하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지금 뒷산은 통행 금지가 내려진 상태야.”

       “그러면 뭘 하나요?”

       “일단 학교 차원에서는 연구실 견학을 계획하고 있어.”

         

       연구실 견학이라.

         

       “쉽게 말해 다른 선생님들이 연구하는 주제를 보고 배우는 거지. 여차하면 여길 졸업한 후에도 공부를 더 할 수 있고. 혹시 대학원 진학에 관심 있는 학생 있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시대에선 학사만 해도 충분히 고학력자인데, 석사나 박사를 밟으라고?

         

       그래서 그랬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귀띔을 해 줬다.

         

       “로테, 손 내려.”

       “왜?”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로테는 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눈빛에선 진심이 느껴진다. 마치 ‘학문의 재미를 모르는 네가 불쌍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제발.

         

       “살리에르 양은 관심이 많나 보구나. 좋아, 내가 아는 분에게 컨택해서 특별히 연구실 하나를 마련해줄게. 거기에 컨택해 보겠니?”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

         

       난 몰라.

         

         

       **

         

         

       [TIP : 모든 마도를 익히기 전까진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 진행도]

         

       [화계마도 : 992/1048]

       [수계마도 : 415/992]

       [지계마도 : 569/1005]

       [공계마도 : 151/824]

       [미분류 : 16/149]

         

       [이쯤하면 웬만큼 배웠네요.]

         

       플레어 개발이 완료된 시점에서 남은 화계마도를 익히는 건 누워서 떡 먹기다. 오히려 계획한 것보다 빨리 끝냈으니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을 가져도 일정엔 차질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나라고는 해도 페이스 조절 못 하고 막 나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싶지는 않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도 전에 과로로 죽어버리면 허무할 거 아냐? 한 학기에 한 계열의 마도를 모두 익히는 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지금 나라 안팎으로 돌아가는 꼴을 보면 내가 졸업하기도 전에 제국이 망할 확률이 더 높았다. 보다 안전한 학교생활을 위해선 절멸급 마수를 상대할 무기를 만드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특히 핵융합 안정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토카막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잘 생각해봐야 하는데…….

         

       ─ 애애앵.

         

       짝!

         

       빌어먹을 모기 새끼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

         

       “살충제 없나?”

       “키킥, 마수한테 살충제가 듣겠냐?”

       “없으면 지금부터 만들면 되지.”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옛날부터 여름철 모기만 보면 어떻게든 찾아 죽여야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성격이었다. 물려서 가려운 것도 서러운데, 이산화탄소를 쫓아 귀나 코로 돌진해 오는 놈들을 보면 도저히 화가 치밀어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 세계엔 살충제 기술이 아주 미비한 수준에 그친다. 기계로 된 마수에게 화학적인 살충제가 들을 리도 없고, 외피가 단단하니 손으로 잡아 터뜨리는 수준이 아니면 죽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지구의 모기보다 더 심할 정도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어디 가려고?”

       “부실.”

         

       미닫이문을 열고는 연성 동아리의 비품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전지 몇 개와 솔레노이드 몇 개를 챙기고는 작업소 앞에 걸터앉았다.

         

       로테는 헤를라인 선생님에게 끌려가느라 나와 프레이 둘만 왔다. 다른 부원이 있긴 했는데 선배라서 서로 신경 안 쓰고 만들 거나 만들었다.

         

       “너 모기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아?”

       “당연한 걸 물어보네! 기계잖아!”

         

       맞다, 기계.

         

       철과 전자회로로 구성된 존재들.

         

       생각해보니 이런 마수들을 카운터칠 수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사용하는 고유마도는 상대의 마력회로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이었으니까.

         

       전자와 더불어 마력이 흐르는 회로, 마력으로 된 파동, 마력으로 이루어진 객체.

       

       내가 지닌 최상급 고유마도 ‘마소 조작’은 하급 마수는 물론이고 상급 마수에게도 유효한 기술이었다. 그러니 이걸 본뜬 스크롤을 만든다면 모기 하나 잡는 건 쉬울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 오래 걸릴 일도 아니다. 나는 곁에서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프레이를 옆에 앉히고는 간단한 작품 하나를 구상했다.

         

       [◇ 아이템 작성 : 전자기파 펄스 발생기 (소형)]

       [원소분류 : 알 수 없음]

         

       “너 어제 술 마시면서는 토카막인가 뭔가로 플레어를 가둔다고 했잖아. 그건 안 해?”

       “이거 먼저 하고. 얼마 걸리지도 않을 거야.”

         

       이건 중대사항이다.

         

       일단 기숙사에 모기향부터 들여야 할 거 아냐.

         

         

       **

         

         

       ─ SYSTEM : <흑사병>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상세보기 : 아렌스 대륙의 ‘흑사병’은 몸이 흑석과 선철로 변해 죽는 전염병입니다.]

         

       이쪽 세계의 흑사병은 지구의 페스트와는 다르다. 몸이 검게 변해서 죽는다는 것 외에는 둘 사이에 공통점이 없었다. 그랬기에 이름만 보고 대처법을 잘못 고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물론 버멜은 이 세계의 배경이 되는 게임을 수도 없이 플레이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 정도 시련을 넘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다.

         

       ‘역시 플레어가 문제였어.’

         

       에테르가 플레어를 너무 빨리 개발해버렸다. 심지어 그걸 독점하지 않고 무료로 풀어버렸다.

         

       이제 북방 전선에는 수많은 빛줄기가 날아다닐 것이고, 전장은 제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머지않아 마도사들은 ‘철의 마탑’이 있는 제1차 저지선까지 진격하겠지.

         

       그게 <흑사병> 시련의 트리거다. 위기감을 느낀 마수들은 회의를 통해 제국의 전반적인 국력에 타격을 주자는 방식을 채택한다. 흑사병이라는 이름의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흑사병이라는 이름의 마수는 아카데미에도 닥쳐온다. 애초에 게임의 배경이 아카데미였으니 닥쳐오지 않으면 시련이랄 것도 없었다.

         

       물론 게임도 완전 답이 없는 구조는 아니었는지라, 아카데미 내부에 흑사병의 치료제를 만들 키워드가 존재한다.

         

       모든 수업이 끝나자마자 버멜은 양호실을 향해 달려갔다.

         

       “흐흥, 여긴 어쩐 일이니?”

         

       노랑과 초록이 섞인 투톤 칼라의 머리색. 대수림에서 나는 풀잎사귀를 연상케 하는 그 모습에, 버멜은 엘프로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양호실에선 톡톡 튀는 듯한 시트러스의 향기가 났다.

         

       “어디 다친 곳이라도 있니?”

         

       세피아 글리스턴.

         

       대륙 최정상급 치유마도사가 틸레트에 살고 있는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실제론 이 시련을 돌파하라고 제작자가 배치해 둔 거지만.’

         

       “글리스턴 선생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흐음, 같은 엘프가 부탁한다는 게 뭘까. 궁금한데?”

         

       세피아는 눈을 반짝이며 콧노래를 불렀다. 엽록체가 쏙 들어간 듯한 눈동자에서 맑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버멜이 세피아에게 종이묶음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니?”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해서요.”

       “…음, 그리고?”

       “여기 적힌대로 약을 만들어주셨으면 해요.”

         

       그가 내민 종이 더미는 버멜 자신이 게임 속 지식을 활용하여 직접 엮어낸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첫 번째 시련에 대한 공략집이었다.

         

       비록 버멜에게는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없었지만, 대신 이 게임에 대한 지식이라면 차고 넘쳤다. 당연히 사태가 벌어진 직후 세피아가 어떤 식으로 치료제를 만들어내는지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쪽 세계는 돌림병이 돌았을 때 마법으로 치료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버멜이 의대를 나왔더라도 웬만해선 이쪽 세계 치유마도사들보다 나은 점이 없었을 것이다.

         

       “피부가 검게 변하는 병에 걸렸을 때 치료하는 방법?”

       “네.”

       “으음, 유자나무 껍질 추출물에 카니린이라는 약물을 혼합하고…. 하얀 곰팡이와 르케티 버섯의 특정 성분을 사용하면 항철화 효과도 있다고…. 흥미로운걸.”

         

       세피아는 버멜이 준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걸 한참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가 책을 덮고는 입을 열었다.

         

       “이걸 나한테 주는 이유가 있니?”

       “얼마 전에 이 병이 빠르게 돌고 있다는 사실을 접해서요.”

         

       물론 지어낸 말이다. 흑사병 시련이 시작되기는 했어도, 아직 마수들이 움직인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시스템창을 통해 정보를 미리 듣고 알 뿐이다.

         

       “혹시나 성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제가 아는 의사분이라고는 보건 선생님밖에 없어서 이렇게라도 전하는 거예요.”

       “흐음. 감염내과나 임상병리에 특화된 분들에게 가서 여쭤봐도 괜찮을 텐데.”

         

       ‘그야 당신이 그 분야 제일가는 전문가니까.’

         

       그 말은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버멜은 세피아가 자신을 떠보고 있다는 걸 먼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수도엔 동포들이 많아요.”

         

       동포. 엘프는 별 일 없으면 서로를 동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동족애가 강한 종족이었다.

         

       “아, 그렇지! 동포가 그런 병에 죽어가는 걸 그냥 볼 수는 없지. 그래서 날 찾아온 거였구나.”

         

       납득이라도 했는지, 세피아는 그걸로 의문을 거두었다. 자신은 선생님에게 인사를 한 뒤 양호실을 빠져나왔다.

         

       ─ 흑사병 이벤트가 발생한다면, 반드시 세피아 글리스턴을 찾아가 자문을 구해야 한다.

         

       제작사에서 제공한 공식 루트는 그것뿐이었다. 그래야만 첫 번째 시련이 끝나고, 성도를 감싸고 있던 모든 봉쇄가 풀린다. 그렇지 않고 시간을 오래 지체한다면 게임 오버였으니까.

         

       하지만.

         

       ─ SYSTEM : 헤피엔딩을 해금하려면 아카데미의 그 누구도 죽게 두지 마십시오.

         

       원작에서는 제아무리 세피아를 빨리 찾아가더라도 그 사이에 누구 하나는 죽는다. 이게 맹점이었다. 버멜에게는 무기 하나가 더 필요했다.

         

       ‘방역’이란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 이전에 그 병을 예방할 만한 수단을 확보하는 것을 포함한다.

         

       <흑사병>

         

       [상세보기 : 발병원인 ─ 흑사병을 옮기는 주 매개체는 모기다. 모기 뿐만 아니라 흡혈을 하는 모든 하급 마수가 흑사병의 1차 원인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아카데미 파트 초반. 모기가 흑사병의 원인이라는 걸 알리더라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 정도로만 그칠 뿐이지, 모든 병원체를 차단할 수는 없다. 결국 아카데미에선 누군가가 확정적으로 죽게 되어 있다.

         

       ‘한 명도 죽게 하지 말라니….’

         

       해피엔딩 조건이 너무 빡세다.

         

       그러나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버멜은 마침 새로 짠 자신만의 빌드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버멜은 동아리 부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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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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