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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나는 그동안 집필한 원고를 챙겨서 출판사로 가져왔다.

       

       제본조차 되지 않은 ‘종이의 산’이 출판사의 회의용 탁상 위에 털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게 제가 출판하려는 소설입니다.”

       “…아니, 너무 두꺼운데? 이렇게 분량이 많은 소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

       

       “원고료는 안 받겠습니다.”

       “일단 한번 읽어보지.”

       

       

       편집장의 반응처럼, ‘레미제라블’은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소설이었다. 팬덤에서 레미제라블을 부르는 별명 또한 ‘벽돌(The Brick)’이었을 정도다.

       

       이는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의 특징 때문이다.

       

       레미제라블의 서술은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한 사람이 등장하면, 우선 그 사람의 신상, 행실, 사상, 내력, 성품, 환경 등을 수십에서 수백페이지에 걸쳐서 설명한다. 그렇게 등장인물의 설명과 동시에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줄거리가 진행되던 도중 어떠한 새로운 배경이 등장하면 그 배경에 대하여 또다시 수십페이지에 걸쳐서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대놓고 ‘이 설명은 플롯과 어떠한 관련도 없다’라고 미리 박아놓는다.

       

       이러한 백과사전적 서술은 그 자체로 당대 프랑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음? 이건, 번역서인가? ‘프랑스’가 어디에 있는 나라이지?”

       “가상의 나라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하. 그래서 이렇게 배경 설정을 길게 써놓은 것이군? 가상의 역사를 다루는 역사소설인가? 문화는 시이델 공화국이나 하렌 왕국이랑 비슷한 것 같고.”

       

       

       이러한 소설의 특성 상, 처음 레미제라블 원판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무려 14개의 챕터가 지나서야 우리가 흔히 주인공으로 알고있는 ‘장발장’의 이야기가 소개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내가 왜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를 100페이지 가까이 읽고있는 거지?’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 스토리를 모르는 편집장은 꽤 흥미롭게 내가 표절한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을 읽고있었다. 편집장의 말처럼, 이번 소설에서 나는 ‘레미제라블’의 로컬라이징을 포기했다!

       

       

       “호오…. 흥미롭군, 흥미로워…. 너무 정보가 과도한 감이 있지만, 희한하게도 전혀 지루하지 않군. 마치 뛰어난 기자의 사설을 보는 것 같아. 어휘가 풍부해서 시인이 쓴 글처럼도 보이고.”

       “아, 네.”

       

       “번역물을 보고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자네 글재주가 참 대단해….”

       

       

       이는 백과사전적 지식들과 빅토르 위고의 저널리즘적 묘사로 가득 찬 ‘레미제라블’이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할, ‘프랑스’라는 세계에 대한 시시콜콜한 지식들이 소설 내적으로 전부 담겨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레미제라블은 현대에 와서도 하나의 ‘세계’를 묘사했다고 평가받는다.

       

       역사와 사회와 개인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어떠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살아 숨쉬며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서정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성직자에 대한 이야기,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 소녀에 대한 이야기, 전투에 대한 이야기, 전과자에 대한 이야기─.

       

       그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모든 지식들은 단순히 지식으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가 서로를 존재하게 만드는 복잡한 유기체가 된다.

       

       믿기 힘든 속도로 두꺼운 원고를 전부 읽은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이것참, 글에 소름끼칠 정도로 설득력이 있군. 마치 정말로 존재하는 세계를 묘사하는 것처럼….”

       

       

       성경만큼 길다고 평가받는 레미제라블을 순식간에 읽은 편집장은 과연 ‘전문가’라고 할만했다.

       

       웬만한 마법사들보다 글을 읽는 속도가 빠른 것 같다.

       

       

       “이게 잘 팔릴지는 모르겠어. 그래도 주제가 주제인만큼 출판관리국에서 혜택을 줄─, 아, 음, 아무튼.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네. 재미있군. 출판할 수 있도록 인쇄기 라인 하나를 비워두지.”

       “네. 감사합니다.”

       

       .

       .

       .

       

       하렌 왕국에 레미제라블이 출판되었다. ‘호메로스’나 ‘헤로도토스’의 다른 소설들처럼 이 소설이 처음부터 유행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그 소설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지식인들이었다.

       

       

       “소포클레스가 작품을 썼다더군.”

       “으음? 그 번역가 말인가? 이반 출판사의 번역물은 형편없지만, 소포클레스가 번역한 작품이라면 믿을만하지.”

       

       “번역이 아니라 창작 말일세. 이 사람아. 얼핏 듣기로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라고 하더군?”

       

       

       소포클레스가 ‘번역가’로서 나름 이름을 알려가고 있던 덕분에, 소포클레스의 번역물에 관심을 가지는 몇몇 독자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벽돌이라 불릴 정도로 두꺼운 ‘레미제라블’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혁명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진보라고 부르세요. 진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내일이라고 부르세요.”]

       [“일생을 얻기 위해서 하루를 희생할뿐입니다!”]

       

       “혁명 소설…?”

       “쯧, 또 출판관리국의 입김이 닿은 소설인가? 그치들은 대체 뭘 원하는 것인지─.”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레미제라블을 처음으로 접한 상류 지식인 계층은 하렌 왕국의 ‘비화’에 대해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능하지만 게으른 용의 후예들이 그들의 권력을 국인들에게 돌려주려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러한 ‘공화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현 하렌인의 왕은 ‘나태왕’이라고 불리는 왕이었으나, 단순히 일을 하지 않을뿐 폭정을 일삼거나 나라를 망치려 하는 것은 아니었다. 외교적 역량이 주저앉은 수준인 것과는 별개로, 내정 자체는 관료들에 의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또한 그 이전의 왕이 ‘선량왕’이라는 성군이었다는 점도 이러한 공화주의에 반대하는 근거가 되었다.

       

       상류 지식인 계층이 생각하기에, 모든 권위를 국인들에게 맡긴다는 공화주의는 어린아이의 손에 총을 들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책임 없는 권력이란 그 자체로 방종에 불과하다 여겼다.

       

       

       “그 묘사의 훌륭함과는 별개로, 레미제라블은 공화주의자들에 대한 동정으로 가득 찬 엉터리 소설에 불과하다!”

       “레미제라블은 ‘이상’에 대한 조잡하고 무능한 고정관념으로 가득 찬 소설이다!”

       

       

       이러한 상류 지식인 계층의 반응은 곧 소설에 대한 또다른 신흥 지식인 계층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공화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있어서 레미제라블이란 일종의 이정표였다.

       

       레미제라블에 담겨있는 진실하고 성실한 묘사는 이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자연적인’ 동시에 ‘사상적인’ 것으로 재해석되었다.

       

       

       “레미제라블이야말로 이 세계와 우리 사회가 겪고있는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진실한 책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명이다! 진보다! 내일이다! 우리는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 끝없이 나아가야만 한다!”

       

       

       그것은 하렌 왕국에서 으레 벌어지고는 하는 지식인 계층 사이의 대립이었다.

       

       사상적 대립. 충돌. 혼란.

       

       레미제라블은 단순한 ‘문학’이 아닌 ‘공화주의’의 상징이 되어 일종의 참여문학으로 기능했다. 이들 대부분이 왕국의 ‘관료’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립은 심각한 행정적 소모로 이어졌다.

       

       

       “이 사회에 결함이 존재하는 이상 형벌과 질서란 결국 사람들을 주저앉히는 탄압의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질서가 아니라 혁명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일이다! 천주께서 내려주신 보편된 권리를 국인들에게 돌려줘라! 오직 국인에 의한 공화주의만이 우리를 오롯하게 만든다! 변화하고 회개하고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자!”

       “질서를 부정하고 사회를 혼돈으로 몰아넣으려는 공화주의자들의 선동에 속지 마라! 우리의 오롯한 지배자이자 교회의 사도이신 국왕 폐하를 수호해라! 오직 질서 아래에서만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질서에 순종하고 천주께 사랑을 받으라!”

       

       “혁명 만세!”

       “반동분자들을 몰아내라!”

       

       “공화주의 만세! 국인의 나라 만세!”

       “모든 하렌인의 주인이시여, 성수무강하소서!”

       

       

       결과적으로는 관료 사회가 마비되었다.

       

       두 지식인 계층은 끊임없이 대립하고 다투고 결투하고 윽박지르며 서로를 멸시했다. 어떠한 정책도 서로의 발목잡기로 인해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다.

       

       만약 이러한 대립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면 ‘하렌 왕국’의 질서 자체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었다.

       

       그리고 이 대립을 끝낼 수 있는 존재는 한 명 밖에 없었다.

       

       

       “폐하! 부디 알현을 허락해주소서!”

       “모든 업무가 마비되었습니다! 폐하! 부디 저희를 혼란에서 구하소서!”

       

       

       하렌 왕국의 국왕─, 나태왕.

       

       아니.

       

       용왕의 피를 이어받은 모든 하렌인들의 주인.

       

       

       “…쯧. 귀찮게들 구는구나.”

       “폐하!”

       

       “비행선을 준비해라. 의회로 가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클레멘트 르망.

       

       그가 궁에서 나와 날아올랐다.

       

       .

       .

       .

       

       회색 마탑과 ‘프린키피아’로 인해 비행기가 완성되기 전까지, 하늘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은 ‘기구’라고 불리는 거대한 열기구가 전부였다.

       

       하지만 기구를 통한 비행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구는 일정 크기 이상으로 커지는 것이 불가능했고, 어디까지나 풍향에 따라 떠다니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저게 대체…. 거대한 용이 하늘을 날고있어…?”

       “흐이익?!”

       

       

       용이란 본디 구름과 구름 사이를 거닐며 하늘을 지배하는 존재였으니.

       

       하렌 왕실 또한 그 조상으로부터 하늘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이어받은 바 있었다.

       

       

       “저건─!”

       “비행선이다! 하렌인의 주인께서 직접 강림하셨다!”

       

       

       거대한 짐승이 허공을 가로지르자, 마치 하늘이 울기라도 하는 것처럼 공기가 떨리며 웅웅거리는 진동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마치 태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평선의 끝에서 떠올랐다.

       

       아니, 태양조차 가로막으며 지상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것의 정체를 모르는 자는 천벌이 내리는 것이라며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었고, 정체를 알고있는 자는 무릎을 꿇고 그들의 적법한 주인을 맞이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배─.

       

       비행선(飛行船).

       

       오직 용왕의 후예들만이 허락받은 창공의 구조물이 의회의 바로 위에 멈춰서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가 싶더니.

       

       박쥐의 날개를 닮은 낙하산─, ‘행글라이더’를 입은 나태왕이.

       

       지상에 강림했다.

       

       

       “왕국의 신하가 모든 하렌인들의 주인을 뵙습니다!”

       

       

       행글라이더를 적당한 곳에 벗어서 던져버린 나태왕이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어, 그래. 편하게들 있어. 금방 돌아갈 거니까.”

       

       

       그것은 모든 하렌인들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군주라기에는 굉장히 가벼운 말투였으나─.

       

       그곳에 존재하는 누구도, 감히 고개를 들어 그것을 지적하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혁명사의 사건 중 하나인 ‘6월 봉기’를 다룬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그 주인공인 ‘장발장’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습니다.

    이러한 6월 봉기에 대한 내용은 작품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함에도 정작 한국에는 레 미제라블이 ‘장발장이 빵을 훔치고 재판을 당하는 내용’ 정도로만 알려져있지 해당 장면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데…(오히려 그 장면 자체보다도 주제곡인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더 잘 알려져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군사독재 당시 해당 내용이 검열당한 탓인 것으로 보입니다.

    축약본이 아닌 완역본이 궁금하시다면 민음사에서 2400쪽으로 된 완역본을 출판한 바 있으니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뭔가 민음사 번역본을 자주 추천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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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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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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