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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허억, 허억, 허억!”

       

       <신속>의 들뜬 호흡이 옥상을 가득 채웠다. 딱히 많은 걸 알려주지는 않았는데, 스스로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건지.

       

       스윽.

       

       옥상 구석에 드러누워 발광하는 녀석을 구경하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때, 감이 좀 오나?”

       “그래. 네 말이 맞았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간단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던 거지?”

       “그거야 간단하지.”

       “……간단하다고?”

       

       거친 숨을 내뱉던 <신속>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런 녀석의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진중한 표정이 걸려 있었는데, 마치 답을 갈구하는 학자처럼 보일 정도로 굳은 인상이었다.

       

       “지능 이슈.”

       

       굳은 얼굴의 놈에게 해줄 말은 간단했다.

       

       지능 문제지 뭐긴 뭐야? 무식하게…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칼을 휘두르는 짓거리로 Z급 랭커의 일석을 차지한 것이 경악스러운 일일 뿐이지.

       

       “지능…… 이슈? 무언가 자존심이 상하는 말인데?”

       “너 무시한 것 맞아. 너처럼 무식하게 능력을 쓰는 놈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고.”

       

       어깨를 으쓱인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아카데미 내부의 수만 명이 넘는 학생 중, 가장 뛰어난 검술을 가진 녀석을.

       

       ‘<뇌전검> 양하나.’

       

       녀석의 능력이 지금처럼 <절삭력 강화>따위가 아니라 <신속> 같은 특급 능력을 각성했다면, 현재 랭킹 판도가 많이 뒤바뀔 거다.

       

       뭐, 물론 <뇌전검>이 승천전 종료 직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우후죽순 발생하는 게이트 사태 이후로 <검성>이라 불리며 당당히 랭커의 좌석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혼자서 노발대발하는 최영웅을 무시한 나는 다시 시선을 핸드폰 액정으로 옮겼다.

       

       [ (속보)히어로 아카데미, 결국 승천전 진행 중단 선언… 과연 약물의 정체는? ]

       [ (속보)이제껏 총학생회는 묵묵부답. 사태의 원인은 어디에? ]

       [ (속보)기어코 무너진 유리천장…… 기울어진 아카데미의 말로. ]

       

       핸드폰 화면 안에는 수많은 뉴스 기사들이 가득하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온갖 뉴스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 관심이 집중된 ‘승천전’에서 일어난 사건이 얼마나 큰 무게를 가졌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건 뭐, 벌써 나는 관심사 밖이네.”

       

       금지된 약물을 투약한 것이 기정사실화 되었던 4강전이다. 기상천외한 힘을 발휘한 <괴력> 김은호를 처리한 것이 나인데, 놀랍게도 메스컴은 승천전 참가자가 아닌 현 상황을 열심히 씹고 있었다.

       

       “그건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왜?”

       

       나름 진정한 걸까? <신속>의 최영웅이 슬쩍 내 옆에 자리를 깔고 앉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네놈…… 아니,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터져나오는 기사며, 유례 없는 승천전의 중단까지. 이 모든 게 짜여진 각본처럼 느껴진다.”

       “흠.”

       

       IQ가 영장류 밑인 것처럼 행동하던 녀석 치고는 제법 정론을 설파한다.

       

       “그러니까 네 말은, 누군가 언론을 조종하고 있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한다.”

       “…….”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의견 피력이다. 아니, 그나저나 언론을 조종할 수 있는 조직이 이 세계관에 애당초 많지도 않은데 말이지.

       

       ‘신성교단, 일성, 혹은 아카데미 행정부 정도?’

       

       <히사있>의 세계에선 범지구적 게이트의 발생 덕분에 인류 문명이 크게 쇠퇴했다. 당장 한반도 서쪽의 대국이 갈갈이 찢어져 멸망의 수순을 밟는 것만 봐도 그렇고.

       

       그렇기에 ‘언론’을 움직일 곳을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유력한 후보는 앞서 언급한 신성교단과 일성. 애당초 아카데미 행정부가 이런 짓거리를 해서 얻는 이득이 없다시피하니, 그들은 예외로 두는 편이 좋을 것 같고.

       

       “그러고보니 너, 신성교단에서 제법 이름값 있는 놈 아니었어?”

       “……그렇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내가 우연히 <신속>을 각성하고, 랭커에 진입한 것도 크게 작용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라.

       

       내 기억에 의하면 <신속>의 부모님은 정부 고위 관료다. 그런 부모님이 개망나니 아들이 정신을 차리게 만들고 싶어 히어로 아카데미, 더 나아가 신성교단에 들어가게 했다는 것이 대강의 설정이다.

       

       “……이거 일이 어렵게 될 수도 있겠는데.”

       

       곰곰이 생각을 짚어가던 나는 한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번 승천전 도중 모습을 드러냈으며, 현재 메스컴에서 뜨거운 감자로 분류되는 약, ‘수어사이드’를 생각해보자.

       

       원작에서는 ‘대충 악의 조직이 마구 퍼뜨림’ 정도로 뭉뚱그렸다. 하지만 이곳은 더이상 소설 속이 아닌 ‘현실’. 그러니까 빌어먹을 개연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 엿 같은 세계는 분명 모종의 원인과 결과를 심어두었을 가능성이 충만했다.

       

       “빡대가리…… 아니, 최영웅.”

       “말해라.”

       “너도 신성교단의 일원이니 묻는데, 교단이 제약이나 의료에 투자나 운영한 적이 있던가?”

       “제약? 의료?”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최영웅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신성교단은 그런 것에 자원을 소모하지 않는다. 병자들을 무상으로 치료해주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전부지.”

       

       나름대로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답에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개망나니 같은 성격과 별개로 이 녀석은 나름 독실한 신성교단의 신자. 그렇다면 이 녀석이 한 말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일성인가.”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종착지에 도착했다.

       

       범세계, 국가권력급 기업 ‘일성’. 그곳이 약물의 개발부터 유통까지 주도했다는 것이 가장 신빙성 높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일성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빌어먹을 재앙을 제주도, 그러니까 히어로 아카데미에 흩뿌린단 말인가?

       

       일성은 거대하다. 현대 사회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따위는 귀여울 정도로 경악스러운 덩치를 자랑하는 것이 일성 그룹이다. 오죽하면 대통령 당선인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일성’의 총수에게 인사드리러 가는 것이란 말이 있을까.

       

       “인간의 몬스터화, 게이트의 급격히 늘어난 발생 빈도.”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일성이 원하는 것. 이러한 일들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것.”

       “내, 내 말을 무시하다니!”

       “……찾았다.”

       

       벌떡!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이내 한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인간을 몬스터로 변화시키는 기괴한 약, 수어사이드.

       그리고 마침, 마치 우연처럼 몬스터와 게이트 통제 기술을 근래에 터득한 일성.

       마치 히어로 아카데미에 살포하는 것처럼, 마구 유통되는 약까지.

       

       “젠장.”

       

       이야기가 또다시 뒤틀렸다. 이전처럼 어영부영 넘어갈 사안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전인류가 ‘몬스터’와 뒤섞인, 혼종이 되는 것.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푹 나왔다.

       

       핸드폰을 꺼낸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그들’과 연관이 깊어 보이는 사람, 바로 일성의 금지옥엽인 총학생회장 한유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 * *

       

       [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이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

       

       “……어째서?!”

       

       학생회로 돌아온 한유리는 어울리지 않게 거친 소리를 내뱉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거푸 터져나온탓에 그녀의 이성을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다행인 사실은, 그녀에게 믿고 의지할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것.

       

       하지만.

       

       [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이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

       

       핸드폰을 아무리 두드려도, 그녀의 주변 사람에게 전화를 시도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쿵!

       

       “거기! 잠시만요!”

       

       학생회장실을 박차고 나선 한유리는 지나가던 학생회 학생 하나를 붙잡았다.

       

       “왜, 왜그러십니까? 회장님.”

       “설명은 나중에. 일단 당신 핸드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아! 예, 예예. 물론이죠.”

       

       주섬주섬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 내미는 학생. 그의 폰을 받은 한유리는 곧장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이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

       

       “……이건.”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미 이상하다는 범주를 벗어난 일이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일대의 통신을 마비시킨 것처럼, 모두의 전화기가 먹통이 된 것이다!

       

       꽈아아악!

       

       “으, 으으읏!”

       “회장님? 왜 그러십니까? 괜찮으십니까?!”

       

       그런 와중, 청천벽력 같은 복통이 한유리를 엄습했다.

       

       모든 히어로는 능력을 각성하는 것과 동시에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그것은 능력의 레벨에 따라서 더욱더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으으윽!”

       

       털썩!

       

       그렇기에 한유리에게 이런 비정상적인 복통은 유례 없는 것이었다. 이것조차 무언가 일이 단단히 잘못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서, 설마……?”

       

       삽시간에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한유리는 학생회에 오기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싸늘하고 냉막한 표정으로 호텔 응접실에 앉아있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권유한 따듯한 차 한 잔.

       

       모든 것이 그곳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당분간 연재 시간은 심야(최소 자정 이후)로 고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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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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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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