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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그리고 내가 하수구에서 하수구 입구의 자물쇠를 따던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를 반복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수구에 있는 것도 아무나 함부로 열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자물쇠이긴 했지만, 결국 바깥에 계속 노출되어야 하는 자물쇠였다. 차라리 조금 단순하더라도 튼튼해서 비바람에 오래 노출되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애초에 거기 자물쇠를 달았던 사람은 그런 곳에 누가 찾아 들어갈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고. 그렇다고 아무나 들락날락 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튼튼하되 저렴한 자물쇠를 골랐을 것이다.

        

       하지만 미아 크로우필드는 무려 백작가의 딸이다. 아니지, 이 기숙사 자체의 보안이 꽤 훌륭했다. 경비원은 들어오는 사람을 철저하게 확인해 기록했고, 허가받지 않은 인물이면 기숙사 입구에서 저지당한다.

        

       귀족반 애들이 쓰는 방과 평민반 애들이 쓰는 방은 기본적으로 시설이 동일했지만, 그렇다고 시설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 아카데미는 ‘최고’니까.

        

       다만, 다행히 문을 잠그는 열쇠 구멍 하나하나에 마르마로스가 사용되었다거나, 마법이 걸려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락픽으로 열지 못할 정도의 문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거의 서른 번 넘게 부러뜨리긴 했지만.

        

       그래도 만약 내가 과거에 락픽으로 이런저런 문을 여는 연습을 해두지 않았다면 백번 넘게 부러뜨리고도 문을 열지 못했을 테니, 나의 노력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돌릴 수 있으니 서른 번이고 백번이고 차이는 없을지 모르겠다만.

        

       …….

        

       뭐, 아무튼.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허무감을 어떻게든 밀어내고,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혹시라도 방 주인이 안에서 자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

        

       방 안은 깨끗했다. 하긴 원작에서도 그랬다. 대부분의 귀족반 애들의 방 안은 깨끗했다. 어릴 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으니까. 언제 누가 방문하더라도 부끄럽지 않도록. 심지어 그 방문객이 하녀나 하인이라고 하더라도.

        

       물론 예외도 몇 있긴 하다만, 그건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아무튼, 개인 하녀나 하인이 허락되지 않는 아카데미 내에서 이 정도로 깨끗하게 방 안을 정리하며 지내고 있다는 점 하나는 칭찬받을만하다고 본다.

        

       방 안의 구조는 내가 쓰는 방과 구조가 같았다.

        

       침대, 책상, 옷장 등 가구는 원래 아카데미 측에서 제공하는 것이니 굳이 디자인이 다를 이유가 없었다. ‘이 가구는 질이 떨어진다’며 유난을 떨 귀족도 없다. 애초에 최상품으로 준비되어있었으니.

        

       하지만 책상 위의 책이나, 침대 커버나…… 개인이 가져다 쓸 수 있는 물건들은 모두 자기 취향이 잔뜩 묻어나는 것들이다.

        

       조금은 낯설었지만, 어딘지 익숙하기도 했다. 내가 게임을 하며 몇 번이나 본 모습이었으니까. 좋지 않은 그래픽으로 적당히 구현된 방과 현실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내 기억 안의 모습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책상 위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마법에 관련된 책들이다. 검술이나 사격술에 관한 책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벽에는 훈련용 지팡이가 하나 걸려있었고.

        

       사실 따로 뭔가 장식이 되어있는 부분은 거의 없어서, 방 전체적인 분위기로는 특별히 볼만한 것이—

        

       찰칵.

        

       “엥?”

        

       갑작스럽게 문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처음에는 내 뒤로 누군가가 더 들어온 줄 알았다. 미아 크로우필드 본인이나, 아니면 몰래 문을 따고 들어오는 나를 본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유령이라거나, 기타 초자연적인 존재의 소리도 아니었다.

        

       ……아니지, 따져보자면 마법도 초자연적인 현상이긴 하니까. 애초에 스팀펑크라는, 실제 역사와는 영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는 세계관이니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다.

        

       애초에 유령이라는 존재가 실존하는 곳이기도 했고.

        

       “…….”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말없이 다가가 장치를 살펴보았다.

        

       문 안쪽으로 특이하게 생긴 장치가 잠겨있었다.

        

       연하게 붉은 기를 띠고 있는 마르마로스는 아마 그 미미하게 나오는 열로 장치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몇 가지 마법적인 장치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가 살던 세계의 오래된 아파트 현관문 잠금장치처럼 생긴 그 장치는, 그대로 튼튼해 보이는 쇳덩이로 문이 열리지 못하게 꽉 잡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 허락 없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잠기도록 만들어 둔 장치인 모양이었다.

        

       “…….”

        

       원작에서는 이런 장치가 없었던 것 같은데.

        

       *

        

       어떻게 하면 열 수 있는지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애초에 열쇠 구멍이고 뭐고 존재하지 않는 장치였다. 그야말로 이걸 여는 방법을 아는 누군가가 열어주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열리지 않으리라.

        

       아마 미아 크로우필드가 직접 마력을 불어넣어야 열리는 방식이겠지.

        

       “흠.”

        

       하지만 마음이 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걸리더라도, 뭐. 잠깐 대화해서 정보를 캐낸 다음 시간을 되돌리면 되는 일이니까.

        

       “…….”

        

       그렇다면 기왕 이렇게 된 거, 방 안을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할까.

        

       미아 크로우필드가 침대 밑의 마루를 열고 거기 중요한 물건을 숨긴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 뭐가 들어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본 적도 없는 장치가 되어있는 방이다. 내용물에 다른 것이 있을지 모른다.

        

       나는 침대 옆으로 늘어진 시트를 걷어 올리고, 사람 한 명이 기어들어 갈 수 있을법한 높이의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수상할 정도로 먼지가 쌓여있지 않았다.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면 필연적으로 먼지가 그 부분만 사라지게 되니, 애초에 청소를 해서 그 흔적 자체가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겠지. 누가 보면 결벽증이라고 의심하겠지만, 미아 크로우필드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을 거다.

        

       침대 밑 마루에는 별다른 흔적이 없었지만, 동전 하나를 마루 사이사이에 꽂아 넣다 보니 마루를 구성하는 나무판자 하나가 위로 들렸다.

        

       커다란 물건을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르마로스를 종류별로 넣어둘 공간은 있었다.

        

       “…….”

        

       그렇다. 마르마로스가 속성별로 들어 있었다.

        

       내가 하수도 상자에서 꺼낸 것 같은 수준의 물건은 없었지만…… 필요할 때는 마법 지팡이와 조합해서 사람 한 명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는 정도였다.

        

       이렇게 보니까 섬뜩하네.

        

       원작에서는 마법에 관심이 많은 미아 크로우필드가 그냥 하던 연구용으로 몰래 들여왔다고 나왔지만…… 이 세계관에서는 시작부터 자기 아버지의 원수와 같은 아카데미에 들어온 미아 크로우필드였으니까. 기회가 있다면 복수하고자 모아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진짜 문제는 그 마르마로스들이 아니었다.

        

       나란히 들어있는 마르마로스 옆쪽에, 작은 권총이 하나 있었다.

        

       내가 쓰는 리볼버처럼 본격적인 전투용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많아 보이는 작은 권총이었다. 중절식으로 총열을 꺾어 위아래로 달린 두 개의 총열에 비교적 대구경인 권총탄을 한 발씩 총 두 발 넣을 수 있는 데린저. 엄밀히 따지자면 호신용에 가까운 물건이다.

        

       하지만 호신용이라고 해도, 안에 장전되는 총탄을 제대로 맞추기만 한다면 사람을 죽이기에는 충분했다.

        

       “…….”

        

       나는 그 총을 꺼내 손에 쥐어보았다. 작은 크기에 비해서 꽤 묵직했다. 하긴, 이만한 크기의 쇳덩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총열을 아래로 꺾자 안에 미리 장전되어있는 두 발의 총알이 보였다.

        

       여유분은 없다.

        

       두 발로 나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고 판단한 건지, 아니면 여유분의 총알이 있어도 장전할 여유는 없을 거라고 판단한 건지.

        

       아니면 한 발을 사용하고 다른 한 발을 다른 곳에 사용할 생각이었던 건지.

        

       찰칵.

        

       총열을 다시 원래대로 하자, 총에서 작게 그런 소리가 났다.

        

       원작의 미아 크로우필드를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무기였다.

        

       하긴, 그것도 내 편견일 뿐이겠지. 원작에서는 각 캐릭터가 쓰는 주 무기 외의 다른 무기의 장착이 불가능했지만, 여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소매, 주머니…… 숨길 수만 있다면 작은 총기를 숨기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아직 금속탐지기가 있는 시대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 총을 손에 쥔 채로 침대에서 다시 기어 나왔다.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그대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손에는 그 총을 쥔 채로, 조용히 미아 크로우필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들어가기 두렵다.

        

       미아는 자기 방문 앞에 서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난 주말, 실비아 팬그리폰의 뒤를 쫓으며 어떻게 암살자가 그렇게 허술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졌던 미아 크로우필드였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이야기였다.

        

       남들 앞에서 그렇게 냉철한 얼굴을 보여주는 실비아 팬그리폰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마치 또래 여자애들과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애초에 얻는 것이 없지 않은가.

        

       차갑고 냉철한 암살자를 연기해봐야 주변 사람들에게 괜한 의심만 살 뿐이다. 만약 정말로 사람을 죽여두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만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암살자 같은’ 행동 자체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주변에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사람을 연기했겠지.

        

       그리고 친분을 쌓아 자기 진짜 모습이 들킬 것 같을 때 다른 사람의 시선과 말을 빌려 유유히 빠져나갈 것이다.

        

       그렇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실비아 팬그리폰은 미아가 뒤에 따라붙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제야 연기를 하여 미아의 생각에 혼란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차라리 그쪽에 더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미아는 이번 주 내내 실비아 팬그리폰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주말이 다가올 때까지 그렇게 행동했으니, 실비아 팬그리폰도 뭔가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행동에 나섰던 것이리라.

        

       아카데미 근처는 주택가였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로 사람이 마구 몰리게 된 주택 건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좌우가 좁았다. 계단을 올라갈 때는 한 사람이 서면 계단이 거의 꽉 차서, 만약 두 사람이 서로 맞은편에서 마주치면 한 사람이 몇 걸음 더 올라가 비켜주거나 해야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실비아 팬그리폰은 그런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미아가 들키지 않고는 따라 올라갈 수 없는, 아주 좁은 곳으로.

        

       옥상 또한 그렇게 넓지는 않았으리라.

        

       만약 미아가 조금 시간을 두고 따라 올라갔더라도, 그곳에서 실비아 팬그리폰과 단둘이 마주치는 것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실비아 팬그리폰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 거기서 기다렸다.

        

       마치 거미줄을 치고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거미처럼.

        

       미아는 차마 그곳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한참을 기다리던 실비아 팬그리폰은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건물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마치 자기를 따라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듯 평소처럼 걸어서 당당하게 기숙사로 향했다.

        

       ……그리고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미아의 방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누군가 몰래 들어오면 문이 자동으로 잠기도록 해두긴 했다.

        

       하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번에야말로 미아는 실비아 팬그리폰과 한 곳에 갇히게 되리라.

        

       아무리 그래도 학생 기숙사였다.

        

       그 안에서 실비아 팬그리폰이 미아를 죽이려고 들까?

        

       아니지, 실비아 팬그리폰이라면 굳이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설득하는 법을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

        

       미아는 한참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끙끙거리다가,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실비아 팬그리폰이 1대1로 미아와 마주치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해주자.

        

       죽더라도 크로우필드의 이름으로 명예롭게 싸우다 죽으리라.

        

       심호흡을 크게 몇 번 하고, 미아는 주머니에서 마르마로스를 꺼내 들었다.

        

       찰칵.

        

       문에 가져다 대고 잠금을 푼 뒤 그대로 문을 열었더니—

        

       —미아의 침대에 앉아, 혹시 몰라 숨겨두었던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실비아 팬그리폰이 있었다.

        

       미아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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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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