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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아스테리오스의 결의를 피부로 느꼈기 때문일까.

       

       

       각기 흩어진 크레타 길드의 길드원들 역시 포기하지 않고 항전을 시작했다. 포다르와 지크가 서로 맞불처럼 부딪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포다르는 혀를 찼다. 13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애 주제에, 자신의 속도를 따라오는 것도 모자라서. 기술적으로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뭐냐, 이 괴물은.

       

       

       단순히 재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재능 이상의 두려운 뭔가가 아이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광기 또는 집착이라 할 수 있는 무언가가.

       

       

       과연.

       

       

       데이란이 당할 수준은 되는군.

       

       

       그 녀석은 원래부터 정면 대결이 약한 편이었으니까. 그나마 수준이 떨어지는 것들이라면 몰라. 서로 비등한 수준이라면 정면에서는 상대하기 힘들 터.

       

       

       하지만.

       

       

       “나, 포다르를 이기기에는 아직 부족해!!!”

       

       

       포다르의 전신에서 뜨거운 불꽃이 일어났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인간이라기 보다는 불꽃의 정령에 가까웠다. 지크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입을 열었다.

       

       

       “불꽃의 권능을 전신에 둘렀나.”

       

       

       어지간한 철은 가볍게 녹여버릴 수 있을 정도의 온도. 방어와 공격을 한꺼번에 챙긴 불꽃의 갑옷. 단지 흘러나온 열기만으로 벌써부터 철이 녹고 있다.

       

       

       위업을 쌓은 영웅이나 지난 번에 얻은 청동괴조의 청동 같은 신기가 아니면 버틸 수 없겠군. 빠르게 판단을 끝낸 지크는 포다르를 향해서 바로 돌진했다.

       

       

       이걸 바로 돌진한다고?!

       

       

       포다르는 당황했다. 지금 자신에게 돌진하는 것은 용암으로 다이빙을 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니까. 당연히 그런 짓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반응이 늦었고.

       

       

       그 차이로 승패가 났다.

       

       

       거리를 좁힌 지크가 가장 먼저 휘두른 것은 검이었다. 그러나 반응이 조금 늦었다고 해도, 포다르 역시 기드온에서는 상위권에 속하는 막강한 영웅이다.

       

       

       당연히 이 정도 공격은 방어할 수 있었다.

       

       

       포다르의 뜨거운 불꽃에 지크의 검이 순식간에 녹아사라졌다. 그러나 다급하게 방어를 올렸기 때문인지. 포다르는 미처 지크의 다음 공격을 읽지 못했다.

       

       

       퍽!!!

       

       

       녹아사라지는 검을 안대로 삼아서 숨긴 지크의 주먹이 포다르의 복부를 강타했다.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포다르의 몸에 걸쳤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커헉!!”

       

       

       “역시 내 몸은 버틸 수 있군.”

       

       

       위업을 쌓으면 쌓을수록 일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게 된다. 그리고 지크는 지금까지 아이작과 함께 말도 안 되는 위업들을 쌓아올렸다.

       

       

       물론 그 위업의 주인공은 아이작이지만. 옆에 조수로 기록된 것만으로도 엄청날 정도의 업적이었다. 당연히 지크 또한 상당한 위업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단지 재능이나 위업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지크에게 있었다. 그 증거로, 붉게 물들었던 그녀의 눈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나.

       

       

       “생각보다 훨씬 강한 녀석들이었어.”

       

       

       지크는 포다르의 복부에 꽂아넣었던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마치 숯처럼 검게 타버린 주먹은 이제는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사이에 이 정도로 타버린 건가.

       

       

       만약 정면에서 제대로 붙었다면 위험했겠어.

       

       

       지크는 지독한 한숨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 정도면 나도 강자가 아닌가 오만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영웅과 붙어본 지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진짜 영웅끼리의 싸움에서.

       

       

       방심은 그대로 패배가 된다.

       

       

       지금은 비록 자신이 승리했지만, 다시 제대로 붙는다면. 그때는 승패가 불확실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패배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상성이 좋지 않아.

       

       

       감상은 이 정도로 하고. 지크는 고개를 돌렸다. 남은 철의 방패와 크레타의 일원들이 서로 무기를 부딪치는 모습이 보였다. 지크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바로 합류해야겠군.”

       

       

       대장 두 명이 빠졌는데도 백중세. 아니 오히려 점점 밀리고 있다. 그나마 전력이 되는 한스는 부상이고, 나머지는 실력으로나 경험으로나 전부 밀린다.

       

       

       이게 크레타의 저력인가.

       

       

       일반적인 길드원 한 명 한 명이 진짜 영웅에 도달한 자들. 만약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다면 한 명도 빠짐없이 역사에 영웅으로 기록되었을 강자들이다.

       

       

       지크는 빠르게 동료들에게 합류했다.

       

       

       가족을 위해서.

       

       

       마스터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

       

       

       * * *

       

       

       분노.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지만. 동시에 가장 빠르게 꺼지는 불꽃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분노라는 감정은 처음 느꼈을 때가 가장 뜨거운 불꽃이다.

       

       

       물론 그 뒤에도 같은 분노를 다시 태울 수는 있겠지. 그러나 보통은 처음보다 못한 불꽃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간혹가다 예외의 경우 또한 존재했으니.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스테리오스의 권능인 분노였다. 신의 저주가 부정적인 아스테리오스의 감정에 호응하여 나타난. 오직 아스테리오스만의 권능.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아스테리오스는 한때 약해졌었다.

       

       

       처음에는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분노가, 사람을 만나고. 동료들과 술잔을 나누면서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자신을 버린 사람들이 대한 분노.

       

       

       그리고 복수.

       

       

       그건 여전히 머릿속에 있었지만. 아마 조금씩 시간이 지나다보면, 언젠가 복수라는 것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자유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것은 결국 허무로 끝나고 말았다. 아스테리오스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수백 명에 달했던 크레타 길드는 그 숫자가 크게 줄어들고 말았다.

       

       

       [아무래도 가지치기를 못하는 것 같던데.]

       

       

       [너……!!]

       

       

       [그래서, 쓸모있는 녀석들만 남겨뒀어.]

       

       

       만약 그때 내가 더 강했다면.

       

       

       하다못해 권능이 약해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녀석들을 지킬 수 있었을까.

       

       

       퍽! 굉음이 턱을 진동시켰다. 아스테리오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의 권능인 분노가 완전히 꺼져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는 겨우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당당하게 버티고 서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그의 모습은 정상은 아니었다. 전신이 피투성이였고, 심지어 뼈가 피부를 뚫은 곳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쓰러지지 않고 당당하게 버티고 서있었다. 아스테리오스는 경악했다. 설마, 자신의 권능을 정면에서 전부 받아낸 건가? 단독으로?

       

       

       “미쳤군, 설마 그걸 견뎌낼 줄이야.”

       

       

       “…….”

       

       

       “인정하지, 내 패배다. 나는 여기서 더 이상 수를 쓸 수 없…….”

       

       

       퍽!!!

       

       

       그러나 패배를 시인하고 있었던 그때. 갑자기 아이작이 주먹을 휘둘렀다. 설마 항복하고 있는데 때릴 줄 몰랐던 아스테리오스는 그대로 얻어맞았다.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아니, 당황스럽다고 해야하나.

       

       

       아스테리오스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런 아스테리오스를 바라보며, 아이작은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분노가 너의 전부라고 할 수 있나?”

       

       

       “그건…….”

       

       

       “당연히 아니겠지. 너 또한 지금까지 쌓아온 게 많을 테니.”

       

       

       “…….”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나에게 대체 뭘 바라는 건가. 딱히 머리로 이해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 말을 귀에 담은 순간, 아스테리오스는 곧 깨달았다.

       

       

       저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불꽃이 사라지고 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세웠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너의 전력이 아닌, 전부를 내게 보여봐라!!!”

       

       

       “으아아아악!!!”

       

       

       아이작의 포효가 신호탄이 되었다. 아스테리오스는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아이작을 향해서 돌진했다. 그에 맞춰서 아이작 역시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래.

       

       

       추하다고 해도 상관 없다.

       

       

       소중한 것을 위해서라면.

       

       

       설렁 진흙탕에 굴러서라도.

       

       

       끝까지 쟁취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남자다.

       

       

       주먹을 주고받으며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혈투에 드디어 마지막이 다가왔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파악한 아스테리오스가 승부수를 띄웠다.

       

       

       “이게 내 전부다.”

       

       

       마지막에 마지막. 모든 힘을 긁어모았다. 아스테리오스는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은 마치 투우와도 같았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전력으로 돌진하는 소.

       

       

       기술도 권능도 뭣도 없는.

       

       

       투박하기 짝이 없는 공격.

       

       

       그냥 피하면 아이작의 승리였다. 지칠대로 지친 아스테리오스는 아마 그대로 쓰러지겠지. 그러나 아이작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똑같이 돌진했다.

       

       

       ‘좋다! 영웅이여! 내 전부를 받아봐라!!’

       

       

       ‘컨셉이여! 영원하라!!!’

       

       

       한없이 비장한 것과 한없이 가벼운 것이 부딪쳤다. 아이작의 생각이 어쨌든, 아스테리오스는 처음으로. 가슴에 답답한 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말했다.

       

       

       사람은 대화로 모든 것을 풀 수 있다고.

       

       

       아스테리오스는 지금까지 그걸 부정했었다.

       

       

       이 답답하기 짝이 없는 가슴을, 즐거운 순간에도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불편함을. 어찌 대화로 풀 수 있겠나. 그건 마치 미궁을 헤메는 것과 같다.

       

       

       출구 따위는 보이지 않는.

       

       

       끝없이 헤메이게 된다는 두려움.

       

       

       미궁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궁이 부서지며 하늘과 마주한 그 순간.

       

       

       아스테리오스는 난생 처음으로 시원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훌륭하다. 그리고, 고맙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자신을 구해준 남자에게

       

       

       아스테리오스는 감사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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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Status: Ongoing
I possessed the body of a guild master who ruined the guild. "We are all family." Since I was already possessed, I decided to stick to the concept hard. The guild members' obsession is no jok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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