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4

       연락이 두절되었던 이능력자들을 모두 구출해냈다. 그 과정에서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악마와의 전투에서 살아남기까지 했다. 천운이 몇 번이나 겹쳐서 일어났다 봐야 한다.

       하여 이능력자들도. 기사와 병사들도. 모두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귀환할 수 있었다.

         

       

       “….”

         

       

       하지만 네페르티는 웃을 수가 없었다.

       정확하게는, 아침 일찍부터 보고를 받은 공작과 대면한 이후로.

       

         

       ‘하아….’

       

         

       되도록 함구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비밀로 하고 싶었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어찌 숨길 수 있을까.

       덤으로 가문의 기사들은 주군인 공작에게 보고를 해야 할 의무도 있다.

       

         

       “기사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네페르티.”

        “….”

        “사실이냐? 정말로, 너 혼자 모든 걸 감당하려고 했던 거니? 죽음조차 각오하고서.”

       “…네. 아버지.”

       

         

       무슨 대답이 돌아올까. 역시, 당장 관두라는 말이 날아들지 않을까.

         

       만약 그리 말한다면 자신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강하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악마와 제대로 조우하고서. 그들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절절히 깨닫고 보니.

       다시 한번 당당하게 이능력자로서 살아가겠다고. 그렇게 약조할 수 있을는지.

       

         

       “어떠했니.”

         

       

       하지만 공작은 대답 대신 질문을 슬며시 던졌다.

       어땠냐고. 위기의 그 순간에. 죽음이 바로 앞까지 찾아온 그 때가.

       

         

       “….”

       

         

       상투적인 답변들이 있다. 아무렇지 않았다. 무섭지만 곧 이겨냈다. 다른 영웅들처럼.

       이 희생으로 누군가를 지켜낼 수 있다면 언제든 기꺼이 그럴 거라고.

         

       아주 잠깐 그러한 내용들이 머릿속에 떠돌았으나 네페르티는 그걸 전부 걷어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아버지 앞에서 그럴 필요는, 아마 없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무서웠어요. 그리고… 두려웠어요. 아주, 많이.”

       “….”

        “그리고, 후회도. 조금. 아니. 네. 솔직히 좀 많이 했어요. 몸을 사릴 걸 그랬나. 역시 죽음이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아버지는. 아빠는, 또 얼마나 많이 슬퍼하시고 통곡으로 밤을 지새우실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그랬구나.”

       

         

       공작은 이후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커피 잔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원래라면 그 앞에서 ‘그래도 저는 제 꿈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혹여나 이제 그만 돌아오라는 말이 나올까 선수를 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네페르티는, 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침묵을 지켰다.

       제 한계를 알았기에. 앞으로의 길이 이제까지의 것과는 전혀 다를 걸 피할 구석조차 없이 너무나 확실하게 인지했기에. 거기서 어찌 함부로 입을 열 수 있겠는가.

         

       

       “다행이구나.”

       “…아빠?”

        “나는 또. 그 앞에서도 당당했다느니. 죽음 앞에 초연했다느니. 영웅들답게, 네 오빠처럼. 그렇게 한 점 부끄러움 없었다고 말할 줄 알았단다. 정말로 그랬으면, 속이 찢어졌겠지.”

         

       

       공작은 웃었다. 딸의 속마음을 알지 않았는가. 저 아이도, 이미 무서워하고 있음을.

         

       자꾸 반대를 외치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도. 오빠를 앗아간 적들에 대한 복수심도. 그리고 그저 막연하게 이 세상을 위한다는 의무감이 아닌.

       그저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의 모습이다. 무서워할 줄 알고, 두려워할 줄 알면서도 결국엔 승리하고 끝내 이루어서 당당히 돌아올 이의 미래다.

         

       

       “이 아빠는 여전히 너를 말리고 싶단다. 같은 비극을 또 보고 싶은 이가 어디 있겠니. 그것도 자식의 죽음을. 부모로서.”

       “….”

        “하지만 동시에, 네페르티. 너를 응원한단다. 너도 무서울 텐데. 너도 참 두려울 텐데.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그 험한 곳에서. 모두를 위해 싸우겠다 하는데 어찌 그러지 않을까.”

         

       

       계속 무서워 하거라. 계속 두려워 하거라. 그래서,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거라.

       그리고 약속해주렴. 계속 집에 돌아오겠다고. 웃으면서.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 아빠의 말대로 해준다면 평생을 응원해주마. 내 딸아. 정말 잘 하고 있다. 아마 이곳에는 없는 네 엄마도. 그리고 네 작은 오빠도. 너를 영원토록 응원하고 있을 거란다.

       

       공작의 말에 네페르티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끝내 자식 앞에서 뜻을 접고 마는 부모에게 죄송스러워서. 그럼에도 끝까지 자식을 응원하는 부모의 마음에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가서 좀 쉬렴. 많이 피곤할 텐데. 남은 이야기는 오후에 마저 하자꾸나.”

       “…네. 아빠.”

       

         

       가벼운 인사. 그리고 가벼운 포옹.

       

         

       “….”

         

       

       네페르티가 집무실을 떠나고 잠시 후. 새로운 손님이 당도한다.

       

         

       “공작 각하.”

         

       

       이거 참. 젊은 청년의 목소리라곤 믿을 수가 없군. 심장을 긁어내는 느낌이야.

       라고 생각하며 공작은 막 안으로 들어선 손님에게 손수 자리를 권했다.

         

       

       “왔는가. 데우스 학생.”

         

       

       요람에서 첫 번째. 그리고 이번에 남부에서 두 번째로 악마를 막아낸 인물.

       영웅이라는 칭호도 있지만 그보다는 딸을 두 번이나 구해준 은인이 공작 자신에겐 더 크다.

       아마 평생을 이 청년에게 고마워하며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일단, 고맙다는 말부터 하겠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만약 일이 잘못 되었다면… 지금쯤 나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군.”

       “죄송합니다. 각하.”

        “갑자기 자네가 왜 사과를 하는가? 당혹스럽게.”

       

         

       그거야 제가 조금 많이 방심하고 있었거든요. 요람에서의 일은 몰라도, 여기선 더더욱.

       제때 도착해서 그나마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가장 보기 싫은 꼴을 봤을 지도 모릅니다.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겉으로는 그냥 쓰게 웃으면서 데우스는 자리에 앉았다.

       

         

       “조사대에서 발표한 게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제국 전체가 체감할 만한 부분은 아니었지. 그 악마보다는, 당장 게이트의 대규모 발현이. 소위 말하는 ‘폭주’ 가 겉으로는 더 중요하고 급한 문제였으니 말이야.”

       

         

       한데 이제는 아니군. 그 모든 게 스스로를 악마라 부르는 그 존재들에게서 비롯되었으니까.

       머리가 아프다는 듯 잠시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누르던 공작이 말을 잇는다.

       

         

       “신께서 도우셨군. 자네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조사대라고 해도 결코 알아낼 수 없었을 부분이야. 몬스터를 헤집고 게이트를 아무리 연구해도 알아낼 수 없었던 부분들 아닌가.”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다는 걸 나는 신께서 인간의 노력에 감격하여 도움을 주신 거라 여긴다네. 바로 지금, 자네를 보는 것과 같이 말일세.”

         

       

       데우스가 악마들에게서 얻어낸 정보들. 공작은 그 부분을 곧장 조사대에 측에 전달했다.

       이후 조사대 측이 데우스와 다시 만나서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볼 예정이기도 하다.

       무엇이 되었든 제국과 모든 이들에게 엄청난 소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요람의 1학년이라고 했지?”

        “예. 이제 막 신입생 딱지를 뗀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이거 네페르티가 너무 대단한 후배님을 맞이한 느낌이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허허허.”

       

         

       잔잔한 웃음을 몇 번 흘린 후. 공작이 데우스의 손을 붙잡는다.

       언뜻 보면 꽤나 커다란 바위에 손을 댄 것 같기도 하다. 이쪽 손이 워낙 커서.

       

         

       “한 번 은혜를 입었으면 필히 갚아야 하는 것이고. 두 번이나 입었다면 두 번 갚는 게 아니라 세 번, 네 번. 그 이상이고 평생을 갚는 게 내 신조이자 우리 가문의 철칙이라네.”

         

       

       혹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게 무슨 일이든, 언제든 연락해라.

       힘으로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만 때로는 권력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물심양면을 다해서 도와주겠다. 이 마엔하임 가주. 체스터 공작의 이름을 걸고서.

         

       그 굳건한 약조에 데우스는 감사함을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그 덕분에. 이런 부탁을 어느 정도는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은 공작 각하. 그렇지 않아도 제가 각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내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회장. 그러니까 따님과 관련된 일입니다.”

       

         

       우리 막내와? 공작이 고개를 잠시 갸웃거린다.

         

       잠시 이어지는 데우스의 설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시각각 변하는 공작의 표정.

       처음에는 웃다가 다음으론 당황하다가. 이어서 기겁을 하며 낯빛이 창백해지기까지.

         

       몇 분의 시간이 지난 후, 겨우 입을 뗀 공작의 첫 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혹, 우리 막내에게 무언가 서운한 게 있다거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오히려 저를 도와준 선배입니다.”

       

         

       그러니까 안심하라고. 그냥 딱 적당하게만 굴릴 생각이라고.

       물론 그게 보기에는 좀 험할 수 있는데 전부 다 나중을 위한 거니까 비록 부모로서 걱정이 되겠지만 애써 못 본 체 해달라고 말이다.

         

       

       “꼭 필요한 일입니다. 각하. 저를 믿어주시길.”

       “그래도….”

       “이번과 같은 위기가 없을 거라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적당히만 좀 부탁하겠네.”

       

         

       결국 공작이 내놓을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

         

       

       “가는구나.”

       “네. 가야죠.”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하거라.”

       “다음에 또 올게요. 아빠.”

       

         

       길고도 짧았던 공작령의 일정이 전부 마무리가 되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요람에서의 생활이다.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일상이다.

       다만, 그 안에서 흐를 것들은 결코 예전과 똑같지 않을 예정이다.

       

         

       ‘결국 각성은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나오는 거였으니까. 인위적으로 조절 좀 해보자고.’

       

         

       주먹을 쥐었다 펴며 네페르티를 어떻게 단련시키고 깎아낼지 잠시 고민한다.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의 가능성들 또한 일일이 예측해본다.

         

       일단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 첫 번째, 요람. 두 번째로 사육장. 거기에 세 번째인 공작령까지.

         

       

       ‘요람은 말 그대로 메인 장소이니 첫 번째 사건이 터질 만한 장소였어. 첫 번째 보스라 볼 수 있는 놈도 나왔고. 그래. 거기는 그렇다 치고. 이후로의 사건 장소들이 지니는 공통점은… 아무래도, 역시나….’

         

       

       인물. 그래. 각각의 장소에는 모두 어떤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육장에서는 유리시아. 공작령에서는 네페르티. 모두가 자신이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다음으로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릴 것 같은 이라면―

       

         

       ‘루시엘 선배, 인데….’

       

         

       혹시 또 한번 요람에서 무언가 터질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반복이잖아.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이 일어날 것이 아니라면. 루시엘의 정체를 생각해보자면….

       

         

       “으음.”

       

         

       데우스는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다음화 보기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Overpowered in the Wrong Genre 장르 착각에서 먼치킨으로 살아남기
Score 3.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found myself in an apocalypse novel with no dreams or hope. And because of that, I trained and trained to become stronger in order to survive. “Wait, hold on a minute.” But, one day, I realized I had mistaken the genre of the novel I had transmigrated int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