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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내면세계의 우주 속.

         

       파스텔은 훌쩍이며 태양계를 날아다녔다.

         

       태양 친구, 수성 친구!

         

       악마님께 혼난 날 위로해 줘!

         

       마음에 응답하듯 검은 태양이 불길하게 이글거렸다. 정신을 삼켜버릴 불길이었다.

         

       우와앗!

         

       몸이 불길에 휩싸이고 정신이 새하얘지자 파스텔은 허우적대며 도망쳤다.

         

       태, 태양 친구는 빼고!

         

       내겐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친구 같아!

         

       아니 애초에 태양이 친구가 맞긴 한가?

         

       저거 내 영혼 아니야?

         

       불길한 태양=파스텔 영혼

         

       으잉.

         

       으이잉?

         

       파스텔은 감당 못 할 현실에 으잉으잉 거리며 몸을 빙빙 회전하다가 그냥 생각을 돌렸다.

         

       저런 좀 가까이하기 곤란한 태양과 단둘이 지내는 수성 친구는 얼마나 난감할까!

         

       어서 금성 친구를 만들어줘야지!

         

       살펴보자 섭취한 존재의 격들이 암석 파편의 형태로 날아다녔다. 지난번에 금성까지 만들려다가 중력 부족으로 실패했던 양과 이번에 교단원과 괴조를 잡으며 섭취한 암석이 뒤섞인 양이라 제법 많았다.

         

       파스텔은 팔짱을 끼고 진짜 태양계를 곰곰이 떠올렸다.

         

       금성이 수성보다 크지……?

         

       암석 파편들을 살펴봤다. 싹싹 긁어모으면 얼추 금성은 될 거 같기도 하고.

         

       어차피 내면세계니까 감각적으로 인정할 만한 수준이면 되지 않을까?

         

       양 손가락을 머리에 댔다.

         

       파스텔 씨, 이 정도 크기면 금성이라고 인정하십니까?

         

       우와아.

         

       그런 걸 물어보면~.

         

       완전 고민, 완전 고민.

         

       미간을 좁히고 진지한 생각을 시작했다.

         

       철두철미한 계산과 냉철한 판단이 무수히 이어졌다.

         

       삐용~!

         

       결론이 번뜩!

         

       파스텔은 밝은 얼굴로 한 팔을 번쩍 들었다.

         

       인정할래!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는 권위.

         

       인정합니다.

         

       오예, 인정됐다!

         

       신난 파스텔은 암석 파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금성 친구, 금방 태어나게 해줄게!

         

       암석 파편들을 싹싹 긁어모아 수성 궤도 바깥에 모았다.

         

       흐아압!

         

       정신을 집중하자 파편이 서로 부딪히고 뭉개지며 암석 행성을 만들어 갔다. 수성보다 더 커지더니 중력이 강하게 맺혔다.

         

       어느 순간 완성된 금성이 금색으로 빛났다. 마치 금괴 같은 찬란한 빛. 별도 아니면서 홀로 빛났다.

         

       우와앗!

         

       눈부셔어~!

         

       파스텔은 눈을 질끈 감으며 괴로워했다.

         

       이빨로 깨물면 이빨 자국이 그대로 남을 거 같은 황금이야아!

         

       진짜 금성은 대기와 지질이 존재해서 통짜 황금일 리가 없는데 얘는 이러니 영문을 모르겠지만 왠지 수긍돼!

         

       역시 금성은 황금이어야지!

         

       그야 그럴 게 금성(金星)이잖아!

         

       청렴한 내면세계가 인정할 만한 황금색.

         

       너는 금성이 맞아!

         

       인정합니다!

         

       인정, 인정!

         

       파스텔은 양팔을 휘저으며 격렬히 인정했다.

         

       그리고 홀린 듯 금성에 다가갔다.

         

       허억, 황금.

         

       양팔을 벌리고 껴안았다. 몸보다 큰 크기라서 껴안는다기보다는 찰싹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찰싹.

         

       금성 친구우.

         

       혹시 깨물어봐도 될까?

         

       물론 네가 순금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건 아니야! 혹시 도금은 아닐까 하는 못된 생각은 토씨 하나만큼도 하지 않았어!

         

       그냥…….

         

       파스텔은 변명거리를 생각하다가 웃었다.

         

       그냥 널 깨물고 싶어!

         

       입을 우아앙-! 벌렸다.

         

       자기 몸보다 큰 수박에 앞니를 박는 다람쥐의 심정으로 대뜸 이빨을 박았다.

         

       푹.

         

       입을 떼자 흐릿한 이빨 자국이 보였다.

         

       허억, 순금.

         

       너 혹시 24K야?

         

       한눈에 반했어! 나랑 결혼하자!

         

       파스텔은 사랑 고백을 하며 금성인 척하는 황금 덩어리를 꼭 끌어안았다.

         

       우린 영원히 함께야!

         

       문득 수성이 태양 주변을 맴돌며 움직이다가 근처를 지나쳤다. 외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몰래 화장실에 가 혼자 도시락 먹을 거 같은 분위기였다.

         

       아앗.

         

       파스텔은 움찔했다.

         

       미안, 수성 친구.

         

       대우 차이가 심했지……?

         

       우물쭈물하다가 금성에서 떨어졌다. 금성에 난 이빨 자국을 슥슥 문질러 원상 복구하고 거리를 벌렸다.

         

       힐끔 수성의 눈치를 살피곤 냉정한 얼굴로 금성을 바라봤다. 팔짱을 끼고 단호한 눈빛을 했다.

         

       금성!

         

       태어나자마자 이런 말을 하긴 매우 유감이지만 태양계 가족은 이해타산으로 유지돼. 네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만 가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거야. 자기 밥벌이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거지.

         

       파스텔은 이러곤 슬쩍 금성에게 다가가 속닥였다.

         

       하지만 이건 비밀인데…….

         

       난 널 좋아해.

         

       네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든, 난 널 좋아해.

         

       이 세상에 은하수의 신비가 사라지고 대우주의 경이가 없어질지라도 넌 신비롭고 경이로울 테니까.

         

       그러니 황금 친구…….

         

       파스텔은 말하다가 말실수를 깨닫고 눈이 동그랗게 됐다.

         

       아앗!

         

       이름 헷갈렸어!

         

       친구가 너무 많은 나머지 혼동이 와버렸어!

         

       이것이 인기인의 숙명?!

         

       이것이 인기인의 필연……?!

         

       미안, 금성 친구! 널 절대 황금 덩어리라고 생각하면서 말한 게 아니야! 넌 행성이잖아! 알고 있어! 오해하지 마!

         

       매우 찔린 파스텔은 후다닥 금성에게서 떨어졌다. 냉정한 얼굴을 만들고 팔짱을 낀 채로 단호한 눈빛을 보냈다.

         

       어, 어쨌든 네 가치를 증명해 봐!

         

       태양계 가족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구!

         

       금성은 마음에 안 드는지 어물쩍거리다가 태양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수성 궤도를 감싸듯 금성 궤도가 형성됐다.

         

       태양계에 새로운 질서가 세워졌다. 태양이라는 이름의 점을 두 가지 원이 감싸며 회전하는 형태였다.

         

       질서가 조화를 만들고 정신을 흔들었다.

         

       우와앗!

         

       깨달음이!

         

       깨달음이……!

         

       파스텔은 입을 벌리며 놀라다가 그대로 멈추곤 천천히 머리를 짚었다.

         

       깨달음이…….

         

       전혀 모르겠다.

         

       으이잉.

         

       수성을 만들었을 때도 이랬으니 명상에서 깨고 보면 달라진 게 있긴 하겠지만, 정말 뭔가 깨달음이 와야 정상 아닌가?

         

       깨달음 없이 힘만 얻는 방식이 정상적인 수련 방법은 아닐 거 같은데.

         

       악마님 말대로 뭔가 이상하다.

         

       이건 수련이 아니라…….

         

       고개를 갸웃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텅 빈 우주 공간에 불길한 검은 태양이 이글거렸다.

         

       근데 내가 또 태양인데 주변에 행성 돌리며 원 좀 쳤다고 깨달음이 오는 게 더 이상한 거 같기도 하고.

         

       파스텔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수금지화목토천해.

         

       수성, 금성 그리고 지구?

         

       지구우?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콩닥콩닥.

         

       지구 친구!

         

       너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아!

         

       서둘러 남은 암석 파편을 찾아봤다.

         

       다 써서 깔끔했다.

         

       그윽.

         

       괜찮아!

         

       애초에 지구를 만드는데 암석 파편만으론 만족할 수 없을 거 같아. 순수한 암석 파편으로 만든 지구는 지구가 아니잖아!

         

       지구엔 역시 생명이 살아야 하지 않겠어?

         

       생명.

         

       생명체.

         

       생명은 어떻게 만들지?

         

       잉.

         

       생명, 생명.

         

       암수의 교합…….

         

       모자이크 빔~!

         

       엣.

         

       순간 19금 망상을 한 파스텔은 꿈에서 깼다. 새빨개진 얼굴로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으아으아.

         

       눈이 빙빙 돌았다.

         

       얼굴에서 김이 모락모락.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지켜보던 악마가 입을 열었다.

         

       『어땠지?』

         

       파스텔은 화들짝 놀랐다.

         

       야한 망상 직후 보호자 대면.

         

       으아아!

         

       “저 아무 망상도 안 했어요오!”

         

       허둥지둥.

         

       버둥지둥.

         

       악마가 당혹스러워했다.

         

       『왜 그러지?』

       “묻지 마세요!”

         

       격렬하고 단호한 외침이었다.

         

       기세에 밀린 악마가 얼떨떨해했다.

         

       『아, 알겠다.』

         

         

         

       #

         

         

         

       “뭔가 달라졌나요?”

         

       파스텔은 대롱대롱 들렸다. 악마가 파스텔의 양 옆구리를 잡은 채 들곤 신중히 무게를 가늠했다.

         

       『흠, 지난번처럼 몸무게가 가벼워지진 않았군.』

       “헤에.”

         

       실망.

         

       『너무 실망스러워하진 마라. 검사가 몸무게가 가벼워지는 게 마냥 좋은 현상은 아니야. 넌 물리 법칙이 뒤틀리는 거라 단순히 가벼워지기만 하는 건 아니라도 세상에서 동떨어지는 게 마냥 좋은 현상은 아니야.』

         

       으잉.

         

       “금성 친구 이러다 태양계에서 쫓겨나겠어요. 명왕성처럼.”

         

       허윽.

         

       불쌍한 명왕성 친구.

         

       아니, 이젠 숫자 알파벳 어쩌구로 불러야 하나?

         

       불쌍한 숫자 알파벳 어쩌구 친구.

         

       『혼자만의 세상을 떠들어도 난 못 알아먹는다.』

         

       붉은 눈동자가 고민했다.

         

       『내면세계에 대해 얘기해 봐라.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고 네가 느끼면 변화가 있는 건 맞을 거다. 무슨 변화인지 추론해 보마.』

       “네.”

         

       파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가 어서 말하라는 듯이 쳐다봤다.

         

       정적이 흘렀다.

         

       잉.

         

       “그보다 악마님 내려주세요.”

         

       여전히 들려 있는 파스텔은 다리를 흔들었다.

         

       “저 이 상태로 얘기해요?”

       『아, 미안하다.』

         

       지면에 안착됐다.

         

       파스텔은 목을 가다듬었다.

         

       “금성 친구가 태어나는 과정엔 악마님은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일이 있었죠. 천지가 개벽되고 생물이 창조되며 만물이 동조했어요.”

       『호오.』

         

       악마가 흥미롭게 들었다.

         

       『신전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었나 보군?』

         

       엣.

         

       거짓말인데.

         

       슬쩍 눈치를 봤다.

         

       “거짓말이고요. 그냥, 이해하기 쉽게 줄여서 말할게요.”

         

       흠흠.

         

       다시 목을 가다듬고 양팔을 휘저었다.

         

       “금성 친구가 사실 황금이었어요!”

         

       파스텔은 실감 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결혼하기로 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황금이 아니라 행성이었던 거예요!”

         

       충격받은 표정과 몸짓을 했다.

         

       “미안, 금성 친구! 우리 결혼은 없던 거로 하자!”

       『호오.』

         

       악마가 감탄했다.

         

       『너무 많이 줄였군. 전혀 못 알아듣겠다.』

         

       허억.

         

       파스텔은 열심히 손을 휘저었다.

         

       “그러니까요, 그러니까요! 금성 친구는 원래 황금이 아니거든요? 근데 황금이 됐어요. 왜냐면, 제가 인정했거든요! 금성은 황금이야! 인정합니다!”

       『흠.』

         

       악마가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오잉.

         

       “뭔가 있어요? 황금에 무슨 엄청난 이유라도?”

       『황금은 단순한 욕망 반영이다. 말 그대로지.』

         

       으엣.

         

       부끄.

         

       『차라리 몸 상태를 일일이 확인해 보는 게 낫겠군. 나가지. 주먹부터 날려 봐라.』

         

       파스텔은 악마의 말대로 하나씩 행동했다. 하늘고래에 서식하는 나무에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며 근력을 살피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베며 반사신경을 확인했다.

         

       딱히 차이는 없다가 마석 나이프를 활용해 고난도 동작을 할 때쯤 변화를 발견했다.

         

       『호오, 의지가 강해졌군.』

         

       나이프가 손짓 없이도 떠올랐다.

         

       오잉.

         

       파스텔은 말 그대로 생각만으로도 조종되는 마석 나이프를 멍하게 바라봤다.

         

       나이프가 몸 주변을 빙빙 돌았다.

         

       『한 손이 비지 않게 됐으니 준기사급을 상대로도 변수로 작용할 거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팔은 두 개고 목숨은 하나야.』

         

       파스텔은 가상의 적을 상상하며 자세를 잡다가 정면으로 검을 휘둘렀다.

         

       평범하게 검격을 여러 차례 교환하다가 의지를 움직였다. 나이프가 대뜸 날아가더니 열심히 싸우던 상대를 찔렀다.

         

       푹!

         

       억!

         

       꾀꼬닥.

         

       『그렇게 쓰면 된다. 당하는 입장에선 성질나서 환장하지.』

         

       으이.

         

       파스텔은 기분이 복잡미묘해졌다.

         

       이거 굉장히 비매너 같은……?

         

       나이프를 살펴봤다.

         

       은빛 날이 반짝.

         

       “이, 이참에 독도 바를까요?”

         

       완전 어울릴 듯.

         

       『어린 크래프트.』

         

       아앗.

         

       역시 좀 그렇나……?

         

       파스텔은 혼날까 봐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악마가 담담히 말해왔다.

         

       『잘 생각했다.』

         

       흡족한 목소리.

         

       『독 제조법을 알려주마.』

         

       우왕.

         

       “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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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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