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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아오 따가워라.

       

        나는 충혈된 눈을 비비며 바닥에 박아 놓았던 창을 뽑았다.

        시야가 돌아오자 갑판 위에 널브러져 있는 마법사들이 보였다.

        프리나 역시 로브 자락을 내 발에 밟혀 대자로 엎어져 있었다.

       

        설마 전부 떨어뜨린 건가?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은 벌써 모습을 감춘 모양이었다.

        분명 마법에 간섭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살기를 드러내 나도 모르게 기감을 내비치고 말았다.

       

        위치노트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것도 그렇고, 수상한 점이 많은 여자인 건 확실했다.

       

        다행히 관계자가 올라와 조금 전 일은 사고였다며 합격 명단을 발표했다.

        세라와 아르투르, 그리고 프리나까지 이름을 불렸다.

        그나마 위계가 높은 마법사들은 정신을 차리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안내에 따라 객실로 향했다.

       

        내게도 23층을 관리하는 플루비아 학파의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이분들과 같은 일행이신가요?”

        “네.”

        “두 명이 한 조로 방을 배정해드려야 하는데, 혹시 같이 쓰길 원하시는 동료가 있으실까요? 아니면 저희가 임의로 배정해 드릴수도 있습니다.”

       

        다른 마법사들은 짐짝 다루듯 끌고 가는데 의외로 깎듯하다.

        지원자 중 유일하게 클로에의 마법 앞에서 의식을 유지한 걸 봤기 때문인가?

       

        나는 그에게 ‘플루비아제(製) 청정 얼음물’을 건네 받으며 잠시 고민했다.

       

        탈락한 이들을 하선시키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입단 테스트가 진행될 것이다.

        중간에 탈락하지 않는다면 객실에서 최소한 며칠은 같이 지내야 할 터.

        그렇다면 마녀의 특성이 발현되기 시작한 프리나를 다른 사람과 함께 두는 것은 위험했다.

       

        “해주학파끼리 같은 방을 쓰겠습니다.”

        “괜찮을까요? 여기 쓰러지신 두 분은 미티어와 글레시아로 보이는데.”

        “의외로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 문제 없을 겁니다.”

        “그럼 여기 객실의 열쇠를 드리겠습니다. 방에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가 있을 테니 꼭 읽어보세요.”

       

        대화를 끝낸 나는 축 늘어진 프리나를 허리에 낀 채 방으로 데리고 왔다.

        문을 열자 바닷물에 부식된 나무의 썩은내가 확 풍겼다.

        더러운 침대, 깨진 유리창, 구멍난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정체불명의 액체까지.

       

        절대 사람이 잘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지만 나는 잠자코 프리나를 침대에 눕혔다.

       

        23층 난파선은 ‘이상현상’의 집합체.

        에리즈 호라 불리는 대형 유람선은 자정이 되면 스스로 해안을 떠나 대해를 누빈다.

        망가진 객실 안에서 유일하게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만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배가 출발하면 이 방도 본래 모습을 되찾을 테니 그 전에 한 가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어디 보자…….’

       

        정신을 잃은 프리나의 로브를 슬쩍 걷었다.

        모든 마녀들은 예외없이 신체 일부에 ‘낙인’을 가지고 있다.

        발병을 늦추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낙인을 파괴하는 것이다.

        허나 물리적으로 지운다 해도 곧 다른 부위에 나타나기에 지금은 기감을 이용해 낙인을 억제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려면 우선 새겨진 부위를 찾아야 했다.

       

        — 주ㄷ닥?

        “살살아, 진정해. 다 의료적인 처치일 뿐이라니까?”

       

        햇빛을 거의 받지 않은 뽀얀 살갖이 시커먼 로브 아래에서 드러난다.

        아직 초기 단계라 크기도 작고 피부와의 경계도 애매할 게 분명하기에 주의깊게 살펴야 했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눈과 혓바닥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손바닥과 발바닥, 그리고 목덜미 부근에도 흔적은 없었다.

       

        “으음…….”

       

        프리나가 뒤척이자 로브 안에서 각종 저주 도구들이 떨어졌다.

        붉은 실, 요상한 주머니, 잘린 머리카락 등 불길해 보이는 물건이 가득했다.

        그녀의 마장인 볏짚인형의 손에는 녹말 이쑤시개처럼 생긴 막대기가 끼워져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지만, 시간이 없었기에 팔 안쪽과 겨드랑이도 꼼꼼이 확인했다.

       

        말랑한 것 외에 낙인은 보이지 않았다.

       

        “대충 보이는 곳은 다 살펴봤는데…….”

        — 없ㅇㅓ 주ㄷ닥ㅇㅣ 틀ㄹㅕㅆ어

        “역시 다 벗겨서 안쪽까지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네.”

        — 죽ㅇㅓ 범ㅈㅗㅣㅈㅏ

       

        내 직감이 틀렸을 가능성은 없다.

        지금도 방 안에는 향수를 한 통은 부은 듯한 프리나의 체향이 감돌고 있었다.

        허나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살살이는 날을 세워 제 주인을 공격해왔다.

        녀석과 투닥이며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벽에 걸린 시계가 12시를 알렸다.

       

        댕——! 댕——! 댕———!

       

        기울어져 있던 선체가 한 순간 크게 울렁이더니 파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깨진 유리의 금이 메워지고 뒤틀린 나무바닥에도 반들거리는 기름이 올라왔다.

       

        “읏! 뭐, 뭐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곰팡이가 펴 있던 침대에서 프리나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풀어 헤쳐진 옷과 옆에 앉아있는 나를 번갈아 보고는 황급히 로브를 끌어당겼다.

       

        “왜, 왜 여깄어? 우린 분명……!”

        “다들 기절했지만 클로에 교수의 테스트는 통과했어요.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되기 앞서 객실을 배정받아 들어온 참이에요.”

        “그, 그래? 그럼 이, 이건…….”

        “꿈자리가 사나운지 선배가 뒤척이더라고요. 제가 아니었으면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을 걸요?”

       

        나는 위치노트를 꺼내 살살이가 프리나에게 거짓된 루머를 퍼뜨리려는 시도를 전복시켰다.

        그 사이 그녀는 쏟아진 저주 도구들을 주섬주섬 챙긴 뒤 후드까지 뒤집어썼다.

        뭐 앞으로도 기회는 많으니까.

        다음에 다시 시도하기로 하고, 우선 프리나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선배.”

        “으, 응?”

        “선배는 여기 통과했었죠? 고행의 층이니까.”

        “다, 당연하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어.”

       

        프리나는 문 옆에 놓인 협탁에 손을 뻗더니 서랍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었다.

        지금 막 인쇄된 듯 손에 잉크가 묻어나는 종이에는 ‘에리즈 호의 선상 규칙’이라고 적혀 있었다.

       

        ====

        에리즈 호에 탑승하신 승객 분들께 무궁한 감사를 올립니다.

        저희 승무원들은 목적지인 ■■■에 도착하기 전까지 승객 여러분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재 에리즈 호에는 <326>개의 객실과 <3,429>일 분의 식수, <69,294>마리의 ■■과 <10>개의 구명정이 존재합니다. 남은 항해 일수는 <108,302>일 입니다.

       

        안전을 위하여 다음의 사항들에 유의하여 주십시오.

       

        1. 12시가 넘으면 객실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누군가 문을 두드려도 ‘청소’를 원한다는 팻말을 문고리 바깥에 걸어놓지 않았다면 그자는 승무원이 아니니 절대 열어줘선 안 됩니다.

       

        2. 폭풍우가 치는 밤에는 모든 창문의 커튼을 치고 잠금장치를 잠그십시오. 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면 그것은 ■■의 것이니 귀를 막고 밖을 쳐다 봐서는 안 됩니다.

       

        3. 외출 후 방으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객실의 번호를 확인하십시오. 만약 방 번호가 1708호로 바뀌어 있다면 즉시 눈을 감고 뒷걸음질로 다른 층까지 이동하기 바랍니다.

       

        .

        .

        .

       

        ====

       

        척 보기에도 괴담에나 나올 법한 수상쩍은 문장이 잔뜩 적혀 있다.

        그것을 옆에서 읽어보던 내게 프리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 여기 적힌 내용들은 진짜로 일어나는 일들이야.”

        “이게요?”

        “고행의 층은 시련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물과 현상이 환영으로 이루어져 있거든.”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세 번째 줄에 적힌 괄호 안의 숫자들을 가리켰다.

        객실과 식수, 그리고 ■■라는 글씨.

       

        “배, 배에서 내리는 법은 간단해, 구명정을 타고 탈출하거나 식수가 다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에 있는 항해 일 수를 0으로 만들면 끝.”

        “항해 일수를 줄여요? 어떻게요?”

        “사람들이 여기 적힌 지침서대로 행동하면 줄어들어. 혹은 환영들과 직접 싸워서 배를 완전히 정화시켜도 좋고. 저, 저번에 왔을 땐 유령이라고 써져 있었는데, 이번엔 글자가 뭉개졌네.”

       

        『아아, 다들 들리시나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내방송에서 클로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장에 있는 작은 스피커를 통해서였다.

       

        『지금부터 극채색의 입단 테스트를 시작할 거에요. 23층의 난파선을 이미 통과하신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이번 항해에서 유령은 등장하지 않아요.』

       

        『대신 여러분이 상대해야 할 환영은 ‘마족’입니다.』

       

        『그 외 통과 조건은 기존과 동일하니 힘내시기 바랄게요. 그럼 현 시간부로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과연, 이런 식으로 능력을 시험하겠다는 건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환영이라는 것은 알지만 창을 잡은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7만 마리나 되는 마족이 타고 있는 배는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다.

        설상가상으로 항해가 시작된 직후 시공간도 뒤틀렸는지 방 바깥의 좌표가 주기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위치노트를 꺼내 친구 목록에서 세라와 아르투르를 찾았다.

        항해 일수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규칙을 지켜가며 이상현상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고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10만 일이라면 더럽게 길어 보이지만 서로 협력하면 순식간에 줄어들겠지.

        갤러리를 통해 정보 공유가 가능하니 프리나도 친구를 잔뜩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뭐, 뭐하고 있어. 빨리 안 따라오고.”

        “벌써 세라네랑 합류하게요?”

       

        그런데 메시지를 보내려 할 때, 문고리에 손을 얹은 그녀가 나를 불렀다.

       

        “여기 객실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써 있잖아요. 지금 시간이 12시 넘었는데요?”

        “무슨 소리야? 우, 우린 지금부터 다른 지원자들 사냥하러 갈 거야.”

        “왜요……?”

        “그래야 ‘구명정’을 탈 수 있으니까.”

       

        10개밖에 없다는 탈출용 보트.

        종이를 다시 한 번 읽은 나는 테스트에 통과하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 말했잖아. 금방 끝냈었다고.”

        “…….”

        “저주 한 방이면 규칙 어기게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야. 차, 창문이 안 잠기는데 넘어오는 마족들을 어떻게 막겠어?”

       

       

       주섬주섬 부두인형들을 챙기는 프리나.

       나는 허리춤의 살살이를 툭 치며 눈빛으로 말했다.

       

       어때, 니가 봐도 마녀 같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녀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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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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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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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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