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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큰일 날 뻔했다.”

       

       

       진짜 위험한 행동이었다.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미친 짓을 저지를 뻔하다니.

       

       만약 거기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존심을 세우겠다며 더 덤벼들었다면 무슨 꼴이 되었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샌가 바람처럼 달려온 아멜리아가 내 몸을 살펴댔다.

       

       

       “아르테! 괘, 괜찮아?! 머리 아프다며!”

       

       “···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나았으니까.”

       

       “그, 그래? 다행이다.”

       

       

       머리 아프다는 거짓말을 이렇게 쉽게 믿다니.

       

       아멜리아도 생각보다 순진한 면이 있긴 하다.

       

       부잣집 아가씨라는 정체성이 잊을 만하면 가끔 튀어나온다니까.

       

       하는 행동만 보면 부잣집 아가씨가 아니라 위험한 집안의 왈가닥 아가씨 같은 느낌인데.

       

       

       “그래도 아쉽다. 꼭 이겨서 올라가고 싶었는데.”

       

       “···우승하고 싶었던 이유라도 있나요?”

       

       “그야, 오늘 좋은 결과를 얻으면 내일 수업 안 들어도 되잖아. 1등이니까.”

       

       “아.”

       

       

       ···그러고 보니 지금 하고 있는 이 토너먼트, 패자부활전이 있었던가.

       

       상위권은 재경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로 데이터가 쌓이니 패자부활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그래서 다들 의욕이 넘쳤구나. 수업 듣기 싫어서.

       

       

       “그럼, 혹시 모르니까 푹 쉬어야 해.”

       

       “고마워요, 아멜리아. 내일은 잘해보죠.”

       

       “그래!”

       

       

       바람처럼 달려온 아멜리아는 이번에도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디로 가는 걸까.

       

       살짝 궁금하기는 했지만, 뒤를 캐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늘은 지쳤어. 푹 쉴래.

       

       

       “작가님, 미안해요···. 오늘은 그냥 쉴래요···.”

       

       [그, 그래요. 마음고생이 아주 심했겠네요. ···그래도 좋은 장면 많이 얻었으니 저는 만족이에요!]

       

       “잘됐네요.”

       

       

       다행히 작가님은 나의 기분을 헤아려주었다.

       

       작가님도 여자라 그런가? 내가 전교생 앞에서 알몸 노출을 할뻔했다는 사실을 감안해 준 모양이다.

       

       아니, 근데 그러면 이딴 능력으로 만들어주면 안 됐지.

       

       이참에 작가님에게 이것저것 따지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어차피 아무 생각 없이 멋있다고 능력을 이렇게 만든거겠지.

       

       그래 놓고 너무 사기라며 이것저것 누덕누덕 붙여댄 결과물이 이거 아닐까. 확신할 수 있었다.

       

       

       “오랜만의 휴식인데, 맛있는 거나 먹을까···.”

       

       [아, 그러면 고기 먹어주세요! 고기! 맛있어 보이는 걸로!]

       

       “···좋아요, 뭐. 저도 고기는 좋아하니까. 오늘은 스테이크로 할까요.”

       

       [스테이크! 맛있겠다! 요리할 줄 아세요?]

       

       “간단한 것 정도는요.”

       

       

       가끔 작가님은 내게 무언가를 먹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음식을 먹는 동영상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느낌일까?

       

       나는 그런 걸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하겠지.

       

       어쨌건, 오랜만의 휴식이다. 실력을 발휘해서 최대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보도록 할까.

       

       오랜만에 느긋함을 만끽하며 마트로 향했다.

       

       

       

       ***

       

       

       

       “···뭐야, 유시우. 너 거기서 뭐해?”

       

       “도로시가 지쳤다고 쓰러져서, 잠깐 보건실에 다녀오는 길이야.”

       

       “그래? ···축하해, 우승. 내일 아카데미 안 와도 괜찮겠네.”

       

       “너는 칭찬하는 게 참···.”

       

       “왜? 아카데미 등교 안 하고 하루 푹 쉬면 좋지.”

       

       

       물론 좋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카데미를 오지 않는다고 대놓고 좋아하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그나저나, 너. 나랑 시합 끝나고 나서 조금 늦게 내려오던데, 뭐 했어?”

       

       “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했어!”

       

       “···? 뭐야.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렇게 놀래? 숨기는 거 있어?”

       

       

       아.

       

       문득 시우의 시선이 교복의 주머니로 향했다.

       

       

       “뭐야, 주머니 안에 뭐 있어?”

       

       “아, 아니. 아무것도···!”

       

       

       툭.

       

       시우는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주머니 속 물건을 아멜리아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미 기나긴 휴식을 취한 아멜리아와는 다르게, 시우는 조금 전까지 계속 시합을 치렀으니까.

       

       그렇기에 아멜리아가 다가온다는 걸 직감으로 깨달았어도 회피하지 못했다.

       

       ···직감의 단점이었다. 아무리 어디서 공격이 올지 안다고 한들,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의미가 없다.

       

       

       “···실? 이거 그거 아냐? 아르테랑 싸울 때 있던 거. 이걸 네가 왜 가지고 있어?”

       

       “어, 그, 그게. 선생님이 치워달라고 해서···.”

       

       “이거 마력으로 만든 게 아니었어? 왜 실이 아직도 남아있지?”

       

       

       시우는 깨달았다. 여기서 발뺌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어영부영하다가 버릴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고 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아르테의 능력을 설명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시우는 도대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벌벌 떨면서도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윽, 미, 미안···.”

       

       

       아멜리아는 나의 설명을 모두 듣자마자 내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역시, 아무리 아멜리아라도 이건 받아들이기 힘든가?

       

       어쩔 수 없지. 나라도 그랬을···.

       

       

       “거기서 왜 아르테한테 눈치를 줘?!”

       

       “···어?”

       

       “다 벗겨버렸어야 했는데! 이 답답한 놈아!”

       

       “···네?”

       

       

       죄책감에 움츠러들었던 고개가 순식간에 치켜 올라갔다.

       

       ···방금 아멜리아가 뭐라고 말한 거지?

       

       다 벗겨버렸어야 했다고? 아르테가 눈치채지 못하게?

       

       

       “너, 그, 그게 무슨···.”

       

       “아아, 어쩐지! 실이 사라지지 않더라니! 마력으로 만든 게 아니었어! ···다 벗겨버리지 않고 뭐한 거야!”

       

       “미쳤어?”

       

       

       무심코 아멜리아에게 심한 말을 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멜리아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아니, 신경 쓰기는커녕 그때의 내 행동을 규탄하고 있었다.

       

       

       “싹 벗겨버렸어야 목표 달성이 훨씬 쉬웠는데···!”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이 벗겨지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

       

       

       내가 아멜리아를 얕봤구나.

       

       혹시나 했다.

       

       그녀라면 가감 없이 벗겨버리자는 제안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기는 했었다.

       

       ···그런데 설마 진짜로 그렇게 말할 줄이야.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걸 다 벗겼어야 호감도가 상승하는 건데···!”

       

       “···도대체 어디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옷이 벗겨지는 게 호감도 상승?

       

       도대체 아멜리아는 무슨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는 걸까.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아. 이런 것도 모르다니. ···잘 생각해봐, 유시우.”

       

       “내가 뭘 모르는 사람 취급받아야 하는 거야···?”

       

       “만약 아르테의 옷이 다 벗겨졌다면 무슨 반응이었을 것 같아?”

       

       

       내 말은 듣는 척도 안 하는구나.

       

       이렇게 된 아멜리아는 말릴 방법이 없다.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따라야 할 뿐.

       

       

       “···아무리 아르테라고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그렇겠지. ···상상해봐. 아르테의 옷이 반쯤 벗겨져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그녀의 말에 따라 상상해보았다.

       

       얼굴을 붉힌 채로 레오타드가 찢어지고, 그 안쪽의 속살을 보여주는 아르테가···.

       

       

       “뭘 상상하게 하는 거야?!”

       

       “그냥 벗은 모습? 어쨌든. 그런 부끄러운 꼴을 하고 돌아다니긴 힘들겠지.”

       

       “당연한 소리를···.”

       

       “그러면 네가 거기서 멋있게 외투를 벗어 걸쳐주는 거야!”

       

       “···?”

       

       “부끄러워하는 아르테···! 그리고 네가 멋있게 걸쳐주는 외투! 고마움을 느낀 아르테는 네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느꼈을 텐데! 네가 망쳤어!”

       

       

       ···그게 맞나?

       

       시우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만약 살갗이 노출된다면 아르테는 부끄러워할 거다. ···맞고.

       

       거기서 내가 옷을 벗어 아르테에게 걸쳐준다면 고마워할 거다. ···아마 그렇겠지?

       

       그리고 그 고마움이 호감도가 되어, 좋은 분위기가 된다···?

       

       이상하다.

       

       분명히 반박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한데, 반박할 수가 없네.

       

       뭔가 논리적으로는 틀린 게 없는 것 같은···?

       

       

       “그리고 외투에서 나는 향기에 ‘남자다워···!’ 하면서 이성적으로 끌려야 했는데! 너무 아깝다···.”

       

       “뭐, 뭐···! 헛소리하지 마!”

       

       “···? 뭐야, 너. 갑자기 왜 흥분해?”

       

       “햐, 햐, 햐, 향기라니! 사람은 그런 걸로 이성에게 끌리지 않아!”

       

       “아니, 그래도 이성의 향기에 끌리는 경우는 많다던데.”

       

       “아니야! 아무튼 아니라고!”

       

       

       해가 질 때까지, 아멜리아는 한참을 학교에서 떠들어 댄 이후.

       

       집으로 돌아간 시우는 침대에 눕자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그제야 눈치챘다.

       

       실을 버리는 걸 깜빡했다는 것을.

       

       

       “···.”

       

       

       이거 어쩌지.

       

       

       

       ***

       

       

       

       “어디, 온도는···됐다!”

       

       [와아아아···. 맛있겠다···. 바로 안 먹어요?]

       

       “레스팅을 시켜줘야 하니까요. 잠깐 기다려야 해요.”

       

       [헤에···. 그냥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요? 맛있어 보여요.]

       

       “아직 안 익었어요. 안쪽은 하나도 안익어서 핏덩이라구요.”

       

       [그렇구나.]

       

       

       작가님과 느긋하게 대화하며 레스팅 시간을 느긋하게 보냈다.

       

       ···조금 심심한데 뉴스나 틀어볼까.

       

       

       –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아라크네의 소식이 뜸해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빌런들을 걱정하는지, 저와 함께···.

       

       

       삑.

       

       TV를 끄고 손뼉을 두 번 쳤다.

       

       에이, 재미없는 걸 봤어.

       

       

       “불렀어?”

       

       “부,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뭐야, 둘이 벌써 친해졌어요?”

       

       “네, 네에. 그게, 비슷한 점이 꽤 있길래.”

       

       

       비슷한 점?

       

       ···아, 그러고 보니 두 명은 같은 조직 출신이었던가. 라이라는 신입이고 스피라는 간부였지만.

       

       

       “저녁 안 먹었죠? 이거 가져가요. 스테이크에요.”

       

       “히, 사, 살려주세요?! 제가 일을 못 하기라도 했나요! 바, 발을 핥을까요?!”

       

       “···?”

       

       

       발작하는 스피라를 나와 라이라가 의문 섞인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뭐지?

       

       

       “어디, 잠깐만요. 먹기 편하게···. 자, 됐다.”

       

       “히, 히익···.”

       

       

       ···뭐야? 아까부터.

       

       레스팅이 끝난 고기를 먹기 편하도록 실로 큐브 모양으로 잘라줬더니 아주 기겁을 한다.

       

       위생이 신경 쓰이는 걸까? ···마력으로 코팅해둬서 세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데.

       

       그래도 신경 쓰이는 타입인가 보다. 미안한 짓을 했네.

       

       

       “밥에 얹어서 덮밥으로 먹어도 좋고, 샐러드를 만들어서 같이 먹어도 좋아요. 자, 가져가세요.”

       

       “···그래. 고마워.”

       

       “별말씀을.”

       

       

       부하들도 챙겨뒀고, 나도 느긋하게 먹도록 할까.

       

       구워진 스테이크를 큐브 모양으로 잘게 썬 후에 방으로 올라가 한 점.

       

       

       “으음, 맛있다.”

       

       [부럽다···.]

       

       

       오랜만의 휴식이라 그런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노벨피아에서 제작해주는 표지 작가님이 결정되었어요!

    이전 표지를 제작해주신 HOMY님은 아니시고요.

    15일 뒤 석화에서 풀리는 용사와 들불, 피, 그리고 칼 작품의 표지를 그려주신 작가님이래요!

    기대되네요!

    ***

    림크스아이스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그, 후원은 감사하지만 아직은 완결 후 외전에 대한 예정은 없습니다.

    외전을 쓸 생각은 있지만, 완결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요. 완결이 임박하면 생각해보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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