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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알루어드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정리를 한 듯한 성벽의 근처.

       

       하지만 바닥으로 스며든 핏자국들이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있었는지 증명해 주고 있었다.

       

       “주신이시여 그리고 대지의 신 일리아시여, 부디 이들을 따듯히 품어 주소서.”

       

       진작에 이곳으로 왔었다면 이 핏자국들을 없앨 수 있었을까.

       

       짧게 기도를 끝낸 알루어드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는 성문을 바라보았다.

       

       그 근처에서 투덜거리고 있는 성기사들 역시 눈에 들어왔다.

       

       “밤의 신 이리스께서 두 번이나 다녀가셨거늘…”

       

       “맞소. 어찌 아직도 성문을 열지 않는 것인지.”

       

       “이런 중요한 기간에 말이오. 알고나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소.”

       

       들려오는 소리에 알루어드가 고개를 저었다.

       

       이 참상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 고작 성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는 소리라니.

       

       이리스께서 두 번이나 다녀갔다는 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잔뜩 거들먹 거리며 내뱉는 말들.

       

       신관이라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

       

       알루어드가 성기사들을 훑어보며 성문 앞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목상.

       

       알루어드로서는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저렇게 신성함이 넘쳐흐르는데 말이다.

       

       지난번 크리스의 거처에 방문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저 작은 목상이 어떻게…”

       

       알루어드는 분명히 느꼈다.

       

       저 목상에서 신성한 기운이 흘러나와 언데드를 몰아내는 것을.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신관들이 가진 신성력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느낌이 신성할 뿐이었다.

       

       “여러 가지로 알 수가 없는 일들이군.”

       

       도대체 어떤 아티팩트가 언데드들을 쫓아 낸다는 말인가.

       

       신성력을 가득 품은 성물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알루어드가 알기로 저런 형태를 가진 성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

       

       알루어드의 생각이 크리스가 흔들던 방울에게 닿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방울 소리가 신성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혼자만 느낀 것이겠지만.

       

       “…음?”

       

       그때,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시선에 알루어드가 고개를 들었다.

       

       로브를 깊게 눌러 쓴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알루어드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크리스님…?”

       

       알루어드가 다급하게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신의 말씀대로 살아온 알루어드에게는 생소한 감정.

       

       크리스의 눈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감정이었다.

       

       “하아…”

       

       차기 교황 후보이면 뭐 하겠는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았고, 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없었다.

       

       “일리아시여…”

       

       알루어드가 고개를 숙이며 기도를 시작했다.

       

       

       ***

       

       “아우…눈 부셔 죽겠네.”

       

       어째 좀 적응이 됐나 싶었더니 알루어드 놈이 갑자기 빛을 뿜어냈다.

       

       보니까 기도를 하는 것 같은데···.

       

       “…별로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교단 식으로는 저렇게 기도를 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별로였다.

       

       어디 치성을 맨입으로 드리는가 말이다.

       

       조촐하게나마 식사라도 올려야지.

       

       “그래도 뭐… 기도는 통하는 모양이네.”

       

       알루어드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고개를 숙일때마다 성벽 밑이 번쩍거렸다.

       

       다 같이했으면 훨씬 효과가 좋았을 텐데.

       

       “나머지는 가만히 서서 뭐 하는 거야?”

       

       “….크리스.”

       

       “응?”

       

       세레나가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고 있더니 결국,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항상 조용한 성격이라 안 그래도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하던 참이었다.

       

       “왜?”

       

       “…장승에 물 줘야 해요.”

       

       “…어?”

       

       성기사들이 이틀째 성문 앞에 죽치고 있는 바람에 세레나가 가지 못하기는 했다.

       

       “생각보다 장승에 지극정성이네…”

       

       “…”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곧장 클로셀 영감에게 말을 걸었다.

       

       성기사들을 약 올리는 건 클로셀 영감이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감님. 쟤네들 언제 들어와요?”

       

       “음? 이제 들여보내야 하는 건가?”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교단에 연락을 해보고 신원조사를 한다고 했던가?

       

       영감에게 물어보니 돌아오는 건 코웃음이었다.

       

       “아직 연락도 안 했네.”

       

       “예?”

       

       “어차피 신원이야 확실하네. 이미 정보원들에게 다 넘겨받았으니.”

       

       “흠…”

       

       “교단에 정식으로 항의를 하는 중이라네. 듣자 하니 신탁을 받아야 하는 기간에는 전투를 피해야 한다더군.”

       

       “신탁이요?”

       

       도대체 무슨 신탁을 어떻게 받길래 사람이 죽어 가는 걸 놔둔다는 말인가.

       

       “그런 주제에 잘도 지원을 오겠다고 지껄였던 거네요.”

       

       “라몬이 그러더군. 무언가 다른 정치적인 이유가 끼어 있다고 말일세. 지금 알아보러 가 있네.”

       

       “허…”

       

       저놈들이 했던 짓이 괘씸하니 조금 더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이다.

       

       “혹시, 물어본 이유가 있는가?”

       

       “아…그게…물 줘야 해서…”

       

       흠칫.

       

       움찔.

       

       내 말에 주위에 퍼져 있던 마법사들이 놀라며 다가왔다.

       

       그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클로셀님, 성기사들은 괘씸하지만…혹시나…”

       

       “아티팩트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아직, 연구를 시작 하지도 못했습니다.”

       

       마법사들의 성화에 클로셀 영감이 난처한 듯 침음성을 뱉었다.

       

       “그야…그렇기도 하네만…아직 성문을 열어서는 안 되네.”

       

       “저 아티팩트를 연구한다면 언데드를 상대할 때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만약에 마법으로 장승의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말이다.

       

       아마도 불가능하겠지만.

       

       영감의 침묵에 마법사들이 서로 수군거렸다.

       

       “장군이들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한단 말인가.”

       

       “듣자 하니, 정령이 만든 물만 먹는다고 하오.”

       

       “….?”

       

       장군이들···?

       

       “저기, 장승을 ‘장군이’라고 부르는 건가요?”

       

       “험험…”

       

       마법사들이 눈짓을 주고받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 눈짓들이 향하는 곳이 세레나였다.

       

       “…세레나?”

       

       “….”

       

       “혹시…?”

       

       끄덕.

       

       “마음대로 해… 물 주는 사람이 그렇다는데.”

       

       대화가 끝이 나자 모두가 클로셀 영감을 바라봤다.

       

       그리고 영감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겠는가?”

       

       무슨 일이 생길지 점사를 물어보는 게 아니었다.

       

       클라인 영감의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황당했다.

       

       교단의 세력 중 하나가 나를 이단이라고 주장한다는 것.

       

       덧붙여, 해결할 테니 잠시 몸을 피해 있으라는 클라인 영감의 말도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해 상당히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음…이단이라…”

       

       이단이라는 문제에 엮이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이곳에서 신의 힘은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

       

       성자와 성녀가 존재하며 신성력으로 신의 힘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단으로 몰린다면···.

       

       하지만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겠는가? 이단으로 엮이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네.”

       

       “상관없어요. 어차피 교단에도 한번 들려야 해요.”

       

       “…교단에 볼일이 있었는가?”

       

       볼일이야 있다.

       

       손님 중 하나가 알루어드였으니.

       

       여기로 오지 않았다면 난 지금쯤 이미 교단에 있었을 것이다.

       

       “고생이야 좀 하겠지만. 제 팔자가 원래 그런 팔자라…”

       

       그때, 파라몬 영감이 이곳으로 걸어왔다.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닐세.”

       

       “예?”

       

       “방금 클라인과 연락을 마치고 왔다네. 생각보다 자네가 깊게 얽힌 듯 하더군.”

       

       내가 교단과 얽힐 일이 뭐가 있겠는가.

       

       교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곤 세 명밖에 안만나 봤는데.

       

       파라몬 영감이 눈짓을 하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흩어졌다.

       

       은밀히 전해야 할 이야기라는 것이다.

       

       “현재 교단의 세력은 둘로 나뉘어 있네. 친 교황파와 그 반대 세력이지. 교황파 중에서 클라인이 제법 힘을 가지고 있다네.”

       

       “그런데요?”

       

       “저들이 내건 명분은 이것이네. ‘신탁을 받아야 하는 지금, 이단과 함께한 무리들을 둔 채로 진행을 할 수는 없다.’라더군.”

       

       “…?”

       

       “자네를 엮어 클라인을 몰아낼 생각이겠지.”

       

       “허…”

       

       “우습게도 이단이라는 문제와 얽히면 반대할 명분이 존재하지 않네.”

       

       파라몬 영감의 말이 맞았다.

       

       신의 이름으로 징벌을 하겠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그들 또한 이단으로 엮일 것이다.

       

       거기다 나는 평민이니, 나 하나쯤은 쉽게 몰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심각해지는 내 표정을 본 파라몬 영감이 슬쩍 입을 열었다.

       

       “따로 걱정할 건 없을 걸세. 자네는 이미 생각보다 대단한 인물이니.”

       

       영감이 세레나를 가리켰다.

       

       “자네, 엘프의 은인이지 않은가. 한스가 보고해서 교단에서는 믿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러고 보니 내가 그렇기는 했다.

       

       큰 무당이 되면 인맥이 하나둘 생겨난다.

       

       이제는 나도 인맥이란 게 생겨난 것이다.

       

       이런걸 바라고 한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뭐, 그거랑 상관은 없는데…”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니 피한다고 피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생길이 될 거야 뻔할 거고.

       

       안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 역시 내 숙제 중 하나 일 테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성문을 열지 말라 한 것이네.”

       

       어쩐지 이틀이나 성문을 걸어 잠그더라니.

       

       단순히 화풀이 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나름 영감님들의 배려랄까?

       

       “그냥 열어요. 괜찮아요.”

       

       “흐음…저들이 오면 자네는 교단으로 끌려 갈 수도 있네.”

       

       내가 자리를 비워야 한다면 꼭 해 줘야 할 말이 있다.

       

       아직은 정확하게 공수가 내려오지 않아서 전하지 않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네크로맨서를 잡겠다고 산으로 올라가지는 마세요.”

       

       “음…?”

       

       “저기로 가게 되면 흉 중에서도 대흉이에요. 큰일 날걸요?”

       

       “새겨듣도록 하지.”

       

       몇 가지의 당부를 더 전해주자 영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말게나.”

       

       “근처의 영지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 이곳도 버틸 만 할 것이네.”

       

       그 말을 끝으로 성문이 열렸다.

       

       내가 보기엔 고생길이 열린 거지만.

       

       “아이고…내 팔자야…”

       

       박수가 되었으니, 팔자가 더 꼬였으려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현** 독자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저번 회차에 늦게 인사드려서 한번 더 감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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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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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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