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4

       힌드라스타는 창공을 날고 있었다.

       

       여기에는 자신을 들들 볶으며 간섭하는 마왕도 죽이겠다며 집요하게 쫓아오는 미친 인간 두 명도 없다.

       

       오직 힌드라스타와 태양과 구름과 흐릿하고 둥그스름한 지평선의 윤곽뿐.

       

       지금 이 순간 힌드라스타는 자유 그 자체였다.

       

       “힌드라스타!”

       

       그래, 내 이름은 힌드라스타.

       

       분탕을 위해 둥지에서 나온 화이트 드래곤.

       

       “당장 멈춰! 가죽을 벗겨버릴 거야!”

       

       드래곤의 가죽이 속세에서 비싼 값에 팔린다는 것은 종종 들은 바가 있다.

       

       특히나 하얗게 빛나는 화이트 드래곤의 가죽은 비늘 하나로도 건물 몇 채를 살 수 있다고 하지.

       

       만약 내가 내 비늘을 조금씩 떼어다 팔면 금방 부자가 되겠네.

       

       “안 멈춘다 이거지?! 너 오늘 뒤졌다! 개씨발xxXXx!!”

       

       “디안. 그런 용어는 쓰지 않기로 했잖나.”

       

       살벌한 욕설에 그제서야 힌드라스타는 지금 듣고 있는 게 내면의 소리가 아니라 외부의 소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드래곤의 감각으로 그 소음이 위에서 들린다는 것을 포착한 힌드라스타가 머리를 틀었다.

       

       태양 속에 날개를 펼친 무언가가 있었다. 독수리인가…?

       

       하지만 독수리라기엔 그것은 제법 몸집이 컸고 무엇보다 독수리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조금 더 고개를 옆으로 튼 힌드라스타는 비로소 그것이 날개를 활짝 펼친 와이번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와이번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드래곤은 마물들의 최상위 포식자로 어지간한 마물들은 드래곤 가까이에 접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무리 와이번이 육식 마물이라고는 하지만 드래곤에 비하면 부엉이 앞 암탉.

       

       그런 놈이 당당히 자신의 위를 날고 있다는 것을 힌드라스타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힌드라스타! 마지막 경고다! 당장 착륙해!”

       

       그때 난데없이 와이번이 소리치며 빠르게 고도를 낮췄다.

       

       와이번이 가까이 다가오자 힌드라스타는 와이번의 등에 나란히 올라탄 두 명의 인간을 볼 수 있었다.

       

       [저 미친 새끼들이?! 와이번에 탔어?!]

       

       와이번을 아예 탈것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마왕군에는 와이번 기수들이 있는데 특출나게 힘이 세고 담력이 좋은 마족들이 선발된다.

       

       그러나 마족들은 원체 힘이 세고 또 안장과 고삐 등의 탑승장비들을 갖추는데….

       

       지금 저것들은 아무 것도 없이 맨몸으로 와이번에 타고 있잖아?!

       

       “야이 분탕도마뱀 놈의 새끼야! 너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 내 지금 네놈 대갈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급강하하는 와이번 위에서 갈색 더벅머리 디안이 소리쳤다.

       

       지난 두 번의 조우에서 이미 저것들에게 호되게 당한 힌드라스타는 저 말이 실현 가능한 진담임을 절실히 알고 있는 상황.

       

       여기서 잡히면 죽는다…!

       

       힌드라스타는 두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드래곤 로어를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약한 존재들을 압도적인 공포로 굴복시키는 드래곤의 종족특성인 드래곤 로어.

       

       거기에 직격당한 와이번이 기겁하며 급선회해 힌드라스타에게서 미친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이거 왜 이래?! 당장 안 돌아가?!”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다!”

       

       당황한 디안과 라이너스가 협박했지만 와이번은 요지부동.

       

       점점 고도를 높이며 멀어지는 와이번을 보며 힌드라스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아무리 미친놈들이라도 여기서 더 어떻게는 못할 거다.

       

       당장 숨쉬기도 어려운 높은 곳에서 설마 뛰어내리기라도 하겠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그대로 땅에 처박혀 시체조차 찾지 못할… [으억?!]

       

       “디안! 안 돼!”

       

       라이너스의 비명을 뒤로 하며 디안이 와이번의 등을 박차고 몸을 던졌다.

       

       “오늘 둘 중 하나는 끝장나는 거야!”

       

       디안이 괴성을 지르며 양팔과 다리를 활짝 펴고 힌드라스타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했다.

       

       “넌 뒤졌어!!!!!!”

       

       막 디안이 힌드라스타의 날개에 착지하려는 순간.

       

       난데없이 돌풍이 불어닥치며 디안이 옆으로 밀쳐졌다.

       

       악랄한 인간들에게 쫓기는 힘없는 드래곤을 가엾게 여기신 여신님의 자비일까.

       

       “으앗! 잡을 수 있었는데!!”

       

       힌드라스타에게 손을 뻗으며 디안이 속절없이 떨어졌다.

       

       “디안! 내가 간다!!”

       

       저 아래로 떨어지는 디안을 본 라이너스가 손에 든 몽둥이를 치켜들며 격하게 외쳤다.

       

       “당장 내려가!”

       

       “케에에에엑!”

       

       라이너스가 몽둥이를 와이번의 목등에 내리치자 와이번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내려가라!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모가지를 부러뜨려 버리겠다!”

       

       퍽퍽-! “키에엑!” “내려가라고!!”

       

       그 말을 알아먹었는지 단순히 몽둥이질을 참을 수 없었는지는 몰라도 와이번은 몸을 홱 돌렸다.

       

       드래곤로어의 영향권에 들어간 마물이 보이리라 믿을 수 없는 동작.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내려가! 빨리!”

       

       라이너스의 재촉에 와이번이 날개를 몸통에 바짝 붙이고 미친듯이 급강하를 시작했다.

       

       “디안!”

       

       거의 땅에 부딪히기 직전 와이번이 날개를 펼치며 급상승.

       

       격렬한 U자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디안을 무사히 받아냈다.

       

       와이번의 배에 스친 나무의 상단에서 나뭇잎이 폭발했다.

       

       “야 이 씨발년아! 너 다음에 만나면 확실히 죽는 거야! 알았어?! 뒤지고 싶으면 또 깝쳐 봐! 진짜로 죽여버릴 거니까!!”

       

       디안이 멀어지는 힌드라스타에게 악을 바락바락 썼다.

       

       그 모습을 본 힌드라스타는 결심했다.

       

       도망쳐야겠다고.

       

       그냥 멀리 도망쳐서 은둔하자. 

       

       인간은 명이 짧아서 한 몇 개월 내지 1년 정도만 숨어 있으면 금방 포기할 거야.

       

       저것들을 다시 만나면 정말로 죽을 것 같다.

       

       다행히도 와이번은 더 추격할 기미가 없었고 힌드라스타는 빠른 속도로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힌드라스타.”

       

       비로소 마음이 홀가분해진 힌드라스타는 날개를 펄럭이며 최대한 멀리 날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날다 해가 지고 주변 풍경이 삭막하게 변하자 힌드라스타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바위산 사이로 착륙했다.

       

       “야, 힌드라스타.”

       

       전쟁에 분탕치느라 잠깐 떠났던 둥지로 복귀한 것이다.

       

       추적을 따돌리느라 날갯질을 너무도 열심히 한 탓에 힌드라스타는 빨리 둥지에 들어가 잠을 자고 싶었다.

       

       “일어나.”

       

       배도 고팠지만 일단은 잠이 우선이다.

       

       날개를 접고 천천히 동굴로 들어간 힌드라스타는 거체를 바닥에 뉘이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일어나라고. 집에 가자.”

       

       누구야, 도대체? 막 잠이 들었는데.

       

       혹시나 또 나를 재촉하러 온 마족이라면 싸그리 태워버려야겠어.

       

       나 쉴 거라고!

       

       잔뜩 화가 나 눈을 뜬 힌드라스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갈색 더벅머리 인간.

       

       디안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힌드라스타가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싫어어어! 둥지까지 찾아오면 어떡하라는 거야!!”

       

       “뭔 개소리야, 이 자식아! 일어나! 아침 먹어!”

       

       디안이 침대 모서리를 발로 차자 그제서야 힌드라스타는 상황을 파악한듯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 둥지가 아니었구나….”

       

       힌드라스타가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 # # # #

       

       

       식당에는 이미 거하게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스크램블 에그, 베이컨, 토마토, 훈제 연어, 버터 크루아상, 딸기와 블루베리, 바게트, 치즈와 햄 플래터, 파이와 타르트, 페스츄리, 구운 감자, 토스트, 시나몬 롤, 팬케이크와 시럽, 와플, 요거트와 꿀, 그네놀라와 우유, 구운 야채, 오믈렛, 훈제 햄, 로스트 비프, 아보카도, 호두와 견과류, 잼, 젤리, 생강과 꿀을 곁들인 따뜻한 우유, 햄치즈샌드위치, 연어 크림치즈 샌드위치, 각종 스무디, 애플파이, 오렌지, 자몽 등등등등등.

       

       그것을 본 힌드라스타의 눈이 띠용 튀어나오려고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허겁지겁 손을 뻗으려는 힌드라스타를 제지하면서 포크와 나이프를 가리켰다.

       

       “식기를 써라. 무식한 용병 티내지 말고.”

       

       힌드라스타를 가르치며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타타노크 마을의 행사에 초대 받아 다녀온 적이 있다.”

       

       한창 식사중 라이너스가 입을 열었다.

       

       “기억하나? 미처 피난가지 못하고 마왕군의 공격을 받은 민간마을 말이다.”

       

       “당연히 기억하지. 그때 그냥 가자는 거 네가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죽을뻔했잖아. 그런데 무슨 행사?”

       

       “라이너스와 네가 마을을 구원한 날을 기념하는 거야. 매년 라이너스를 초청하고 있어.”

       

       셀린느가 대신 설명했다.

       

       “초청장이 항상 두 장이 오는데 네가 어디로 갔는지 우리한테 알려주지 않아서 보내지 못한 거야.”

       

       “굳이 나까지 갈 필요는 없지. 라이너스 혼자 가도 충분해.”

       

       “그렇지 않아, 디안. 마을 사람들은 너를 기다리고 있어. 올해 행사에는 한번 가보는 게 어때?”

       

       셀린느의 제안에 나는 다소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런 건 라이너스한테나 어울리지 나는 딱히….”

       

       “셀린느의 말이 맞아, 디안.”

       

       라이너스가 끼어 들었다.

       

       “올해는 같이 가자.”

       

       “뭐? 싫어!”

       

       “이번에도 네가 안 보이면 마을 사람들의 실망이 굉장히 클 텐데.”

       

       “그럴 리가. 대륙의 영웅인 네가 몸소 방문하는데 종자 한놈 안 나타나도 괜찮아.”

       

       “하하. 종자라니.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어쨌든, 같이 가는 것으로 알고 있겠다. 다음 달 초다.”

       

       “스읍….”

       

       조용히 살려고 했지만 라이너스의 부탁으로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

       

        그래도 최소한 아카데미 외부에서라도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좀 궁금하다.

       

       그때 우리가 살려준 아이들이 얼마나 컸을지, 모조리 불타버린 마을이 얼마나 복구되었으며 발전했을지.

       

       라이너스와 내가 목숨 내놓고 뛰어들어 구원할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래, 뭐. 너랑 같이 가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마을 사람들도 좋아할 거야. 그리고 티라엘렌 숲 말인데.”

       

       이번에는 라이너스가 다른 화제를 꺼냈다.

       

       “마왕군에게 불타 없어진 엘프들의 숲 말이야.”

       

       “그건 또 왜? 이번에는 뭐 식목행사라도 가야 하냐?”

       

       “비슷한 거야. 거기도 매년 방문하고 있거든. 같이 가도록 하자.”

       

       

       

       

       

       

    다음화 보기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