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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진성은 잘했다는 듯 인부에게 수신호를 보내고는 짐에서 시가가 담긴 상자를 꺼내며 자연스레 몸을 돌렸다. 그리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루미에게 다가갔다.

         

       “아, 이 짐이 맞네요. 이 시가입니다. 어때요. 멋지지 않나요?”

         

       진성이 내민 상자는 화려한 장식이 가득 들어가 있었는데, 어찌나 화려하던지 상자만으로도 수백만은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상자의 겉 부분에 새겨진 호랑이는 명인의 손길이 닿은 것인지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것처럼 생생한 모습을 보였고, 노란 털은 색을 칠하는 대신 금박을 입혀 빛에 반사되며 그 위엄을 더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 안에 있는 시가의 모습도 범상치 않았다.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시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장인이 정성을 다해 만들기라도 한 듯 명품에서만 느껴지는 오라가 보이는 듯했으며, 깔끔하고 절제된 고급스러움이 있었다.

         

       “어머….”

         

       나루미는 흡연자가 아님에도 시가의 고급스러운 모습에 감탄했다.

       그만큼 시가가 보여주는 고급스러운 느낌은 강렬했다.

         

       “이렇게 귀한 것들을….”

         

       나루미는 호의적인 시선으로 진성을 쳐다보았다.

         

       갑작스럽게 닥친 일 때문에 느꼈던 당황, 분노.

       거슬리는 리세에게 느낀 분노와 질투.

       처음 만나는 진성에게 느낀 어색함.

         

       그 모든 것들이 압도적인 선물 공세에 사라져버리고, 오직 호의만이 남았다.

         

       그리고 이는 신관 키시모토 요시아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하하하! 이렇게 귀한 것들을! 고맙네!”

         

       노발대발하면서 시장 가문에 항의해야겠다느니, 다음에는 다른 정치인을 밀어줘야겠다느니 하면서 난리를 치던 키시모토 요시아키의 입이 귀에 걸릴 듯 호선을 그렸던 것이다.

       요시아키는 보기 흉하게 잔뜩 쌓여 있는 짐을 보고는 살짝 심기가 불편해지려고 했으나, 그 짐에 들어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돈 주고도 쉽게 구하지 못할 정도의 고급품들이라는 것 때문에 손바닥을 뒤집듯 진성과 리세를 환영해주었다.

         

       그리고 그 정점은 시가.

       진성에게서 시가를 건네받은 요시아키는 헤벌쭉해져서는 완전히 그들의 편이 되어버렸다.

         

       “그래. 축제를 도와주러 왔다고? 그래! 편안히 있다가 가게.”

         

       민폐?

       그런 단어는 부녀의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버렸다.

       그냥 적당한 물품을 들고 왔다면 민폐라고 생각할 여지라고 있을 터였지만, 이렇게 돈으로도 구하기 힘든 물품을 산처럼 가지고 왔는데 그걸 민폐라고 부르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었다.

       오히려 둘은 진성과 리세의 방문을 굴러들어온 복이라고 여겼다.

         

       ‘마네키네코도 없는데 복이 저절로 들어왔구나!’

         

       그렇기에 둘은 진성이 말하는 어지간한 부탁 정도는 흔쾌히 들어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짐의 양이 많고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아서 밤새 정리작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부들이 밤에 신사를 돌아다녀도 되겠습니까?”

       “물론! 대신에 이나리 님께 폐가 되지 않도록 큰 소리는 내지 말고, 본전 쪽으로는 되도록 오지 말도록 하게나.”

         

       그렇기에 인부들이 신사에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해주었고.

         

       “아, 하지만 저분들도 힘들 테니 어디 묵을 곳이 필요한데…. 신사를 이용하는 것은 너무 폐가 되니 그렇게는 못 하고…. 마침 준비한 텐트가 있는데, 빈터를 좀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게나! 마침 축제라고 비워놓은 곳이 있다네. 그곳을 이용하게!”

         

       인부들이 간이 숙소를 만드는 것도 허락해주었으며.

         

       “그런데 말입니다. 저들을 고용하는 입장에서 혼자만 쏙 빠져서 묵는 것도 참으로 못 할 짓이 아닙니까? 저들이 제대로 일하나 감시도 할 겸, 저들과 같은 곳에 머물고자 합니다.”

       “뭐라? 자네는 손님인데 어찌 그런 곳에 묵게 할 수 있겠는가.”

       “하하하. 손님도 손님 나름이지요. 이렇게 갑작스레 와서는 손님 대접을 바라는 것도 폐가 아니겠습니까? 마침 저 인부들을 통제하고 감시할 의무가 저에게도 있으니, 손님 대접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저들과 함께 지내고자 합니다.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끙…. 좋네! 하지만 오늘만 저들과 묵고, 내일에는 내가 대접을 할 수 있게 해주게. 귀한 손님이 왔는데 제대로 대접도 못 하는 것은 내 면이 살지를 않아!”

       “알겠습니다.”

         

       진성과 리세가 인부들과 같은 텐트를 쓰는 것도 허락해주었다.

         

       자본주의의 힘이었다.

         

         

        * * *

         

         

         

       자본주의의 힘.

       돈의 막강한 힘과 무서움을 말할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저 문구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었다.

         

       돈에 육체와 영혼을 팔아넘기는 이들.

       양심도, 윤리도 모조리 돈에 맡기는 사람들.

       오직 자신이 받은 돈으로 행할 행동을 결정지으며, 고용주의 명령을 신의 명령처럼 따르는 자본주의의 사냥개들.

         

       바로 용병이었다.

         

       “고용주님 오셨습니까.”

       “하하. 다들 바쁘신가 보네요.”

         

       진성이 텐트에 방문하자 짐을 나르고 있던 인부 중 한 명이 짐을 놓고 다가와 장난스레 진성을 향해 경례했다. 뒤따라오던 리세는 그 경례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지만, 진성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능숙하게 그 경례를 받아주었다.

         

       그리곤 텐트의 천에 새겨진 마법진을 슬쩍 쓰다듬었고, 허공에 떠도는 미량의 마나를 슬쩍 끌어들여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나가 마법진에 반응하고 있음을 확인하곤 바로 말투를 바꿨다.

         

       “방음 마법진과 투시 방어 마법진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구나. 안심해도 되느니라.”

       “어이쿠. 그럼 편하지요. 거 팔자에도 없는 인부 노릇 하느라 삭신이 다 쑤십니다그려.”

       “하하. 농담도. 자네들이 가지고 다니는 장비 무게들이 얼만데.”

         

       진성이 말투를 바꾸자 인부의 말투 역시 바뀌었다.

       장난스럽지만 친근했던 인부의 말투는, 장난스럽기는 하지만 어쩐지 거칠기 짝이 없는 말투로 변했다. 게다가 텐트 안에 있는 인부들 모두에게서 솜털이 쭈뼛 서게 만드는 기질이 느껴졌으며, 어쩐지 피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리세는 갑작스레 바뀐 분위기에 화들짝 놀라 진성에게 한 발자국 더 달라붙었다.

         

       “하하하. 용병이 입에 달고 사는 게 엄살 아니겠습니까?”

       “그래. 장비 상태는 양호한가?”

       “물론입니다. 탄환들도 불량품은 없는 것 같고, 총기는 뭐…. 카. 우리가 쓰는 것보다 좋던데요. 이거 임무 끝나면 주면 안 됩니까?”

       “일을 잘 해낸다면 고려해보겠네.”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덜컹.

       덜컹.

       덜컹!

         

       그러자 텐트 이곳저곳에 널려있던 짐들의 뚜껑이 연달아 열리기 시작했고,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의 흉흉한 모습이 바깥에 드러났다.

         

       “초, 총?”

         

       박스에 있는 것들은 흉기들.

       그것도 둔기나 칼 같은 무인들이 쓸법한 것이 아닌, 군대에서나 쓰는 무기인 총과 탄환들이었다.

         

       어느 박스에는 특이한 모양을 한 총이.

       어느 박스에는 총신이 짧게 잘린 샷건이.

       어느 박스에는 ‘Dragon Fire’라고 적힌 총알이.

         

       그리고, 어떤 박스에는 술병이 가득 들어있었다.

       한때 와인을 담았을 고급스러운 병에는 코르크 대신에 기다란 천이 꽂혀있었고, 그 안에는 절대 술로 보이지 않는 액체가 차 있었다.

         

       “흠.”

       “어떠십니까. 저희가 열심히 만든 몰로토프 칵테일(Molotov cocktail)입니다.”

       “재료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구한 날 방화하고 다니는 저 바텐더 놈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최대한 오래 타게 비율을 잡았고, 되도록 끈적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칵테일 맛을 보면 사람이고 신이고 절대 제정신 차리지 못할 겁니다.”

       “좋구나. 백린 수류탄은?”

       “아, 그건 저기 있습니다. 저기 방화광 바텐더 녀석이 이 백린 수류탄은 자기가 관리해야 한다면서….”

         

       진성은 용병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사랑스럽다는 듯 자신이 깔고 앉은 나무 상자를 쓰다듬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몸 곳곳에 화상 자국이 나 있었으며, 탄탄한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흐흐. 고용주 양반. 감사합니다.”

         

       바텐더라 불린 남자는 히죽 웃으며 진성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기분 나쁘게 웃는 그의 얼굴에는 흥분, 그것도 감정의 고양으로 이루어진 흥분이 아니라 명백한 성적인 흥분이 가득 차 있었다.

         

       “별말을. 이따가 자네가 좋아하는 방화를 실컷 하게 될 터이니, 기대하고 있게나.”

       “흐흐흐.”

         

       바텐더는 방화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는 듯 웃었고, 진성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리곤 묘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용병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 그럼 방어구의 상태는?”

       “그것도 짱짱하지요. 방검, 방화. 게다가 이능 방어용으로 충전식 실드 스킨도 머릿수대로 챙겨왔습죠.”

       “그럼 불 지르다가 타죽거나 전투의 여파에 몸뚱어리가 터져나가는 일도 없겠군?”

       “뭐, 뒈지기 직전까지는 가도 뒈지지는 않을 겁니다.”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흉흉한 대화에 리세는 멍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총? 칵테일? 방화?’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리세는 둘이 나누는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어차피…. 나는 이 분의….’

         

       리세는 둘의 대화를 이해하기를 포기했고, 둘이 어떤 흉흉한 대화를 나누는지에도 관심을 꺼버렸다.

         

       대신에 그녀에게 복을 주겠다고 말했던 그의 말을 떠올렸고, 자신에게 취미를 가져보는 게 어떠냐며 상냥한 목소리로 상담을 들어주었던 것을 생각했다.

       오직 진성에게 순종한다 했던 맹세를 떠올렸으며, 자신에게 선물해준 고리의 따스한 촉감을 느꼈다.

         

       그렇기에 리세는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는 진성의 뒤에 선 채 다짐했다.

         

       그녀가 모든 것을 바치겠다 맹세한 이가 무슨 일을 행하든.

       이 신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키시모토 부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그냥 따르고, 도우면 되는 거야.’

         

       지금처럼 그의 뒤편에 있겠다고.

         

         

         

         

        * * *

         

         

         

       10시.

       텐트 안에 있는 전원이 장비를 점검했다.

         

       10시 30분.

       인부로 위장한 용병들이 기물이 제대로 설치되었는지 확인했다.

         

       11시.

       용병들이 신사 곳곳에 시가를 수직으로 꽂고 호랑이 오줌을 뿌렸다.

         

       11시 30분.

       용병들이 장비를 착용했다.

         

       11시 34분.

       진성이 전투태세에 돌입한 용병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의식을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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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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