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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이, 이게 무슨 일이예요, 사장님?”

         

       “…….”

         

       아빠 엄마가 무릎을 꿇고 있다.

         

       지금까지 처음 있었던 일에 나는 당황하여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당황한 것은 강형만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그게…. 하아….”

         

       그는 어울리지 않게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틈이라 생각했는지 아빠 엄마가 무릎 꿇은 자세를 추진력 삼아 내게 달려들었다.

         

       “흐윽-! 예린아아아아아-!”

         

       “가, 강사장님이…! 우리를 무릎 꿇리고…! 막 무섭게 말하는데…! 흐으윽…!”

         

       “아 좀 비켜 보세요!”

         

       “끄아앙-!”

         

       물론 나는 우리 부모보다 강형만을 더 신뢰했기에 달려드는 우리 부모를 옆으로 밀쳤다.

         

       강형만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혹시….”

         

       “…….”

         

       “저희 부모님이 또 사고 쳤어요…?”

         

       “…….”

         

       강형만은 내 질문에 대답을 망설이자 우리 부모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예린아, 우리가 또 사고를 치다니….”

         

       “누가 보면 우리가 사고뭉치인 줄 알겠엉….”

         

       “아빠 엄마는 좀 조용히 있으라니까요!”

         

       “우리 예린이가…, 흐윽….”

         

       “착했던 예린이가…, 히잉….”

         

       혈압 오르게 하는 아빠 엄마의 모습에 강형만이 우리 부모를 한 번 무섭게 노려보고는….

         

       “히익!”

         

       “죄, 죄송합니다아…”

         

       “후우….”

         

       그대로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내게 말했다.

         

       “…예린아. 여기서는 좀 그렇고…, 밖에서 얘기하자꾸나.”

         

       “…네.”

         

       그 말에 나는 찰거머리같은 우리 부모를 집에 냅두고 강형만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

         

         

         

         

       탁, 탁.

         

       밖으로 나가자마자 심란했는지 강형만은 담배부터 꺼냈다.

         

       하지만 담배에 불을 붙이기 전….

         

       “아.”

         

       나를 보고는 아차 하더니 다시 담배를 집어넣었다.

         

       “미안하다, 아직 애 앞에서 실수할 뻔했네.”

         

       “아뇨, 사장님. 피셔도 돼요.”

         

       “됐다, 고삐리 앞에서 담배피면 오히려 내가 마음이 불편해. 담배 연기가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지.”

         

       전생에서 흡연자였던 나이기에 불 붙이기 직전 멈춘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심지어 마음이 심란한 지금은 더욱 담배가 절실할 텐데 강형만은 이 어려운 걸 참았다.

         

       새삼…, 그의 배려심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자…, 이제 이야기해주세요. 우리 부모한테는 왜 그러신 거예요? 우리 부모가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

         

       그런 강형만이 왜 이번에는 이렇게 불같이 화를 냈을까.

         

       이유를 물으니 강형만이 오늘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한 번 더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그걸 이야기하려면…, 내가 왜 그동안 너희 가족에게 돈을 빌려 줬는지부터 이야기해야겠구나.”

         

       “……!”

         

       그 말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동안 늘 궁금했던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신용불량자에…, 누가 봐도 한량에 인간쓰레기나 다름없는 우리 부모한테…, 강형만은 왜 돈을 빌려 줬던 걸까?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지 대체 왜 우리 부모한테 돈을?’

         

       나는 긴장하며 강형만이 꺼낼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처음 전한 말부터 상당히 의외였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이유로는…, 우선 네 할아버지가 내 은인이기 때문이었다.”

         

       “…예?”

         

       “은인의 아들이 돈을 빌려달라는데 거절하기가 그랬어.”

         

       “…자, 잠깐만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제 할아버지가…, 사장님의 은인이라고요?”

         

       “그래.”

         

       내가 당황하여 한 질문에 강형만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강형만을 봤던 것은 상당히 어릴 적부터였지.

         

       그때는 그냥 아빠가 또 돈을 빌렸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우리 집과 강형만 사이의 관계가 생각보다는 긴밀했었나보다.

         

       “내가 젊었을 적. 손에 가진 것은 없고 양아치 짓이나 하면서 막장 인생을 살 때 말이다. 네 할아버지가 나를 거두고 내 쓰레기 같은 인생을 구제해줬다. 그때부터 나는 네 할아버지의 수금 일을 도맡아 했단다.”

         

       “수금…. 혹시 저희 할아버지도 깡패였나요?”

         

       “깡패…, 까지는 아니고 그냥 쩐주셨다. 예린이 너도 네 할아버지 때까진 너희 집이 부자였던 거 알지?”

         

       “…예, 조금 부자였다고는 들었는데.”

         

       “조금 부자? 아니, 너희 할아버지는 상당한 부자셨다. 가지고 있는 현금도 많았고…, 땅도 많고.”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부자였다고?

         

       강형만의 말이지만 나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아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지만 그렇게 부자였다던 우리 집이 지금은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은가.

         

       ‘뭐 부자면 얼마나 부자라고. 조금 오버하시는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강형만의 다음 말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강남에 건물도 두어 채 있었고…, 대기업 채권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고…, 경기도에 땅도 많으셨어.”

         

       “……예?”

         

       “아, 개발되기 전 판교 땅도 한 수만 평 갖고 계셨던가?”

         

       “…예에에에에?!”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집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부자였다.

         

       그런데 그렇게나 재산이 많았으면서 지금은 왜 이렇게 가난해?

         

       젊은 시절 아빠가 도박으로 재산을 조금 말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근데 설마 겨우 도박으로 그 많은 재산을 다 말아 먹지는 않았을 것 아닌….

         

       “그걸 네 아빠가 도박으로 다 날렸다.”

         

       “…….”

         

       …우리 아빠는 그 대단한걸 가능케하는 인물이었다.

         

       “너희 아빠가 다섯 끗에 80억을 태운 일은 아직도 하우스의 전설로 남아 있단다….”

         

       “…맙소사.”

         

       순간 머리에 진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과거 젊은 시절의 아빠를 만나 후드려 패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튼 예린이 네 할아버지가 은퇴하실 적 사업체 일부를 내게 물려주셨었다. 덕분에 내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거고…, 네 할아버지는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었어.”

         

       “…….”

         

       그래서 은인의 가족인 우리 부모가 돈을 빌려달라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구나….

         

       ‘사장님은 인연을 중시하니까…. 그럴 수도….’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니 강형만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린아. 너는 네 할아버지를 무척이나 닮았다. 어쩌면 그래서 내게 애정이 더 갔던 건가도 싶어.”

         

       “할아버지가 저랑 닮았었다고요…?”

         

       나와 아빠는 얼굴이 무척이나 닮았지만 사실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인상.

         

       내 얼굴은 무표정하고 차가운 반면 우리 아빠는 귀하게 자란 도련님처럼 유약한 인상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내 얼굴과 닮았었다니. 그렇다면….

         

       ‘…상당히 무섭게 생기셨던 분이었겠네.’

         

       사진으로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지만…, 왠지 어떻게 생기셨을지 대충 예상이 갔다.

         

       ‘근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이내 주제가 다른 곳으로 샜다는 것을 알고 강형만에게 말했다.

         

       “…네, 사장님이 저희 할아버지와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는 알겠어요. 왜 저희 가족에 지금까지 돈을 빌려주셨는지도 알겠고요. 그런데 이게 오늘 일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

         

       “얼른 말해주세요. 오늘 그렇게 불같이 화내셨던 이유는 뭐예요? 우리 부모가 무슨 사고를 친 거죠?”

         

       강형만은 내 질문에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답했다.

         

       “…그러려면 내가 너희 가족에게 돈을 빌려 줬던 두 번째 이유로 넘어가야겠지.”

         

       두 번째 이유….

         

       그래, 강형만은 우리 가족에게 돈을 빌려 준 이유가 2개라고 했었지.

         

       “너도 알고 있겠지만…, 너희 아빠가 내게서 돈을 빌린 것이 지금까지 수 차례는 된단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그냥 내가 돌려받는 걸 포기했었다.”

         

       “…예?”

         

       “…그때는 그게 너희 할아버지한테 은혜를 갚는 법이라 생각했었거든.”

         

       그러고 보니 어릴 때 강형만에게 돈을 빌릴 때마다 아빠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걱정 마! 다 갚을 방법이 있어! 이번에도 아무 문제없을 거야!’

         

       …그러길래 그냥 어떻게든 빚을 갚았구나 생각했었는데 그냥 안 갚은 거였어…?

         

       우리 아빠 양심은 도대체 어디에….

         

       “갚지도 않을 거면서 빌려달란 돈은 자꾸 늘어나니…, 결국엔 나도 거절을 했었지. 그랬더니…, 너희 아빠가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

         

       “다른 곳이라면….”

         

       내가 목소리를 떨며 물으니 강형만이 진중한 눈으로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비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나도…, 그리 떳떳한 일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는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양아치들이 있다.”

         

       “양아치들이라면 어떤….”

         

       “나라 법도 무시하고 채무자의 신체를 포기하게 만들던가 아니면 남은 가족을 괴롭혀 어떻게든 인생을 망가뜨리는 놈들.”

         

       “…….”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일에 나는 쉽게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너희 아빠가 그런 놈들에게 돈을 빌리려 하기에 내가 2억을 빌려 줬었다. 그런데 저 빌어먹을 녀석들이….”

         

       강형만이 아직도 치가 떨리는지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또 그 녀석들에게 돈을 빌리려 기웃거렸다. 다행히 싸인 직전에 내가 끌고 와서 계약은 막을 수 있었지.”

         

       “…….”

         

       강형만의 말에 내가 멍한 표정을 짓자 강형만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 치밀한 양아치들이 너희 가족 뒷조사를 안 했을 리 없다. 네가 지금 방송에서 잘나가는 걸 알고…, 너희 부모를 빌미로 네게 협박을 할 생각이었겠지.”

         

       “…….”

         

       “그런 놈들에게 잘못 걸리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아니, 피곤해지는 걸 넘어 아주 진창으로 빠질 게 분명해.”

         

       “…하하.”

         

       …그랬구나.

         

       내가 나아아 촬영을 하는 중에 나는 나도 모르게 족쇄 하나가 더 채워질 뻔했구나.

         

       …다름 아닌 내 부모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부모가 해온 짓 덕분에 앞으로 더 놀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부모는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인물들이었다.

         

       그 충격에 잠시 몸을 가누지 못하니 강형만이 내 몸을 지탱해주며 물었다.

         

       “아마 지금 네 부모 얼굴을 보기는 힘들겠지.”

         

       “…….”

         

       “저번처럼 호텔을 잡아주마. 오늘은 거기서 자도록 해. 필요한 짐은 내가 네 집에서 챙겨 주지.”

         

       “…말씀은 감사한데 짐은 제가 금방 챙겨서 나올게요.”

         

       “…예린아.”

         

       “저도 우리 부모한테 한마디 해야 하니까요. …사장님,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금방 나올게요.”

         

       “…….”

         

       내가 굳건하게 말하니 강형만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놓아 주었다.

         

       나는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예린아! 하예린!”

         

       “우리 딸!”

         

       내가 들어가자마자 우리 부모가 나를 마치 구세주라도 본 듯 반겼다.

         

       “우, 우리 딸! 혹시 강사장이 이상한 짓 한 건 아니지?”

         

       “촬영하느라 고생했지? 엄마가 이불 깔아줄 테니까 얼른….”

         

       두 사람은 따뜻한 척 가장하며 챙겨 주려 애썼다.

         

       하지만….

         

       “…또 돈 빌리려 했다면서요.”

         

       두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싸해 진지 오래였다.

         

       내가 돈 빌린 얘기를 하자 부모가 뜨끔한 표정을 하고는 아하하 웃었다.

         

       “아…, 하하, 예린아, 그게 말이야….”

         

       “…더 이상 돈 안 빌리기로 약속했잖아요.”

         

       “그, 그랬지.”

         

       “…근데 이번엔 왜 빌리시려 한 건데요.”

         

       내가 정색하고 한 질문에 아빠가 어버버하자 엄마가 도움을 주려는 듯 나서서 답했다.

         

       “사, 사람처럼 살아보려고, 예린아.”

         

       “…사람처럼?”

         

       “우, 우리도 언제까지 이렇게 놀고먹기만 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아빠랑 엄마랑 작게 자영업이라도 해 보려고…. 그래서 사업 자금을 빌리려 했어.”

         

       “…거짓말.”

         

       지금까지 저 거짓말에 얼마나 속아왔던가.

         

       이번에는 다르다. 다음에는 변할 거다.

         

       아빠 엄마는 그 말을 수도 없이 해왔지만 결국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타고난 성정을 바꾸기 힘들다 하면 어떻게든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저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죠.”

         

       “…예린아.”

         

       “저를 조금이라도 자식이라 생각하면 뒤를 받쳐주질 못할망정 앞길을 막는 행동은 그만 뒀어야죠…!”

         

       이것은 우리 부모가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나를 조금이라도 응원했다면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아….”

         

       나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지 않았다.

         

       속옷과 겉옷. 칫솔, 양말 등등 짐을 챙겨 나가려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저 오늘부로 이 집 나갈 거니까 당분간 찾지 마세요. …앞으로도 영영 찾지 않으면 더 좋구요.”

         

       “예린아-!”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나가면 어딜 간다고…!”

         

       “왜 나는…!!”

         

       전생은 고아였다.

         

       사무치게 외로워서…, 죽어 가는 순간에도 가족이란 존재를 원했다.

         

       하예린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부모가 있다는 걸 알고 나는 그 작은 몸으로 버둥거리며 기뻐했다.

         

       두 사람을 신이 준 선물이자 축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왜 나는 하필이면 두 사람 자식으로 태어났을까요?”

         

       오늘을 계기로 나는 두 사람의 존재가 내게 저주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그 길로 문을 박차고 집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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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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