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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쀼우…?”

       

       나를 따라 주먹을 꼬옥 쥔 아르가 고개를 갸웃하자, 우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실비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

       “…왜 웃어요?”

       “죄송해요. 다른 뜻은 없었고, 그냥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어서….”

       “크흠.”

       

       나는 괜히 민망해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시선을 잠깐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원래 어린 애들한테는 이런 작은 것 하나도 놀거리가 되는 법이거늘, 이 깊은 뜻을 모르고 웃다니.

       

       ‘그러고 보니 실비아 씨는 아르랑 친해지는 법을 궁금해 하지 않았나?’

       

       -아르는 뭘 좋아해요?

       -저도 아르랑 더 친해지고 싶은데….

       

       친해지는 데에는 이런 놀이를 같이 하는 것만큼 좋은 게 또 없지.

       

       잘 보세요. 실비아 씨. 이렇게 하는 겁니다.

       

       “아르야, 설명해 줄게. 가위바위보라는 건 말이지….”

       

       나는 손으로 가위, 바위, 보를 차례로 내 보이며 가위바위보의 룰을 설명해 주었다. 

       

       “이해했니?”

       “쀼우!”

       

       아르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기 손으로도 가위, 바위, 보를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쀼우, 쀼. 쀼?”

       “으음, 아르 손에서는 이게 엄지인 셈이니까, 요거랑 요거를 접어서 가위로 만들자.”

       “쀼우!”

       

       나는 아르의 말랑한 손을 잡고, 손의 안쪽 측면에 있는 손가락과 그 반대쪽 끝에 있는 손가락을 접어 주었다. 

       

       ‘드래곤이라 그런가, 구조가 신기하긴 해.’

       

       아르의 손은 기본적으로 정면에 삐죽 나온 세 개의 손가락과, 옆에 작게 나온 하나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작게 나온 손가락은 맹금류가 물건을 잡을 때처럼 기존 손가락의 거의 완전히 반대쪽으로 젖혀질 수도, 벙어리 장갑처럼 측면에 머물 수도 있을 정도로 관절 자체가 유연했다. 

       

       ‘인간인 나랑 다녀서 그런지, 이게 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장갑 모드가 디폴트인 모양이고.’

       

       그러니 지금 아르의 손은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의 손에서 새끼 손가락만 없앤 모양과 구조적으로 비슷했다. 

       

       여튼 그 상태에서 지금은 가위를 내기 위해 1번 손가락과 4번 손가락을 접은 것이고.

       

       “이게 불편하면 요거랑 요거를 접어도 돼.”

       

       이번에는 3번과 4번 손가락을 접어 주며 가위를 내는 다른 방법도 알려 주었다. 

       

       “쀼우.”

       

       과연 아르는 몇 번 해 보더니 금방 익숙해진 듯 차례로 가위, 바위, 보를 빠르게 바꿔 만들기를 반복했다. 

       

       ‘후우. 어쩌면 저렇게 앙증맞을까.’

       

       저 쬐그만 손가락을 열심히 굽혔다 폈다 하면서 난생 처음 가위 바위 보를 만드는 모습을 본 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걸렸다.

       

       “좋아. 그러면 연습 게임 한번 해 볼까?”

       “쀼!”

       

       아르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주먹을 슥 뒤로 당기자, 아르도 나를 따라 손을 꼭 쥔 채 몸 쪽으로 당겼다. 

       

       “가위, 바위, 보!”

       “쀼!”

       

       기합과 함께 아르와 나는 손을 내밀었고.

       

       “후후, 이겼다!”

       “쀼…!”

       

       그대로 주먹을 낸 내가, 방금 배운 가위를 낸 아르를 이겼다. 

       

       앙증맞게 엄지와 새끼를 접은 아르의 손이 패배를 통감한 듯 미세하게 떨렸다. 

       

       “쀼, 쀼웃!”

       

       하지만 아르는 곧 연습 게임이었다는 걸 떠올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손을 다시 뒤로 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후후, 귀엽긴. 아르의 심리는 내가 또 빠삭하게 알고 있지.’

       

       주먹과 보자기는 그냥 손을 쥐었다 펴기만 하면 되니 간단하다. 

       하지만 가위는 방금 갓 배운 동작. 

       

       뭔갈 배우고 실천해 보길 좋아하는 아르라면 가위를 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자, 그럼 실전 들어간다!”

       “쀼우!”

       

       실전이라는 말에 아르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곧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준비 자세를 취했고.

       

       흐르는 적막, 그리고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아르와 나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

       

       마이어 씨도, 실비아도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가위, 바위, 보!”

       “쀼웃!”

       

       승부가 갈렸다. 

       

       “쀼우….”

       

       아르는 주먹을 냈고, 나는 보자기를 냈다. 

       

       ‘후후. 이것도 예상했던 결과지.’

       

       가위 바위 보는 얼핏 완전한 운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고도의 심리전이 숨어 있다. 

       

       ‘다전제로 갈수록 더 그렇고.’

       

       방금 자신이 배웠던 가위로 첫 판을 처참하게 패배한 아르는 가위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을 터.

       

       그리고 자신의 가위를 이겼던 주먹이 좋아 보이는 효과가 무의식적으로 다음 게임에 영향을 미칠 것까지 생각한 나는 보자기를 낸 것이었다. 

       

       아르가 뛰어난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심리전에 있어서는 내가 인생을 살아 온 짬밥이….

       

       “뀨웅….”

       

       응?

       

       “아르야?”

       

       아르는 자신이 냈던 주먹을 축 늘어뜨리고는, 잠시 내려놓았던 레몬맛 젤리를 바라보며 작게 뀨웅 소리를 냈다. 

       

       나와 교환하기 위해 뜯었던 포장지를 다시 열심히 싸기까지 해서 모셔 놓은 젤리. 그걸 바라보는 아르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방금까지 승부욕으로 불탔던 꼬리는 힘없이 처졌고, 눈망울에는 눈물이 조금씩 차올랐다. 

       

       “…아니, 그게.”

       

       당황한 나는 마이어 씨와 실비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

       

       …아니. 차라리 욕을 하세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딱 봐도 ‘우우, 쓰레기’라는 표정으로 둘 다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크흠. 하긴, 너무 인정사정없긴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르는 그 혹독한 환경에 놓이기엔 너무 어렸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아르에게 내가 가진 옐로베리 맛 젤리를 내밀었다. 

       

       “아르야, 괜찮아. 처음 해 보는 거니까 질 수 있어. 젤리는 그냥 바꿔 줄 테니 이걸 먹으련?”

       “쀼우…?”

       

       그러자 아르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젤리와 내 젤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쀼….”

       

       그리고 내가 내미는 옐로베리 맛 젤리를 받아 들려다가, 별안간 있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쀼웃!”

       

       아르는 두 주먹을 꼭 쥐더니 곧 레몬 맛 젤리를 집어 들어 포장지를 다시 휙휙 벗겼다. 

       그리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레몬 맛 젤리를 입에 쏙 넣고 눈을 꼭 감은 채 씹었다. 

       

       “쀽…!”

       

       레몬 특유의 신맛이 입 안에 퍼진 듯, 아르의 꼬리가 바짝 서서 일순 파르릇 떨렸다. 

       

       하지만 아르는 신맛을 꾸욱 참고 열심히 젤리를 씹어 삼켰다. 

       

       “쀼우!”

       

       그러더니, 이내 씩씩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가위바위보 하자고? 그냥 아무것도 안 걸고?”

       “쀼!”

       “아르야….”

       

       나는 그런 아르를 보며 속으로 감격했다. 

       

       ‘벌써 이렇게 씩씩하게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자신이 게임에서 졌다는 결과에 승복한 것뿐 아니라, 눈앞에서 내가 내민 옐로베리 맛 젤리의 유혹을 스스로 뿌리치기 위해 얼른 레몬 맛 젤리를 먹어 버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어린 해츨링이 벌써 이렇게 성숙한 마인드를 갖추다니….

       

       ‘하긴, 근데 처음 레어를 나왔을 때도 나한테 마지막 감자떡 한 입을 끝까지 양보하던 걸 보면 떡잎이 남다르긴 했었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울음을 잘 터뜨리면서도, 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씩씩하게 행동할 줄 아는 똑똑한 해츨링.

       

       ‘누가 키웠는지 몰라도 참 잘 자라고 있구만. 후후.’

       

       괜히 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허허, 아르가 저래 봬도 꽤나 승부욕이 있는 모양이군요.”

       

       씩씩해진 아르의 모습을 본 마이어 씨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것도 안 걸고 하면 또 재미가 없으니,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마이어 씨는 가방에서 젤리 한 봉지를 더 꺼내 보였다.

       

       “제가 한 봉지를 더 개봉하고, 가위바위보에서 이기신 분이 이 봉지에서 젤리를 하나씩 가져가는 겁니다. 다 소진될 때까지 말이지요.”

       “오오, 재밌을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실비아 님도 참전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되나요?”

       

       실비아는 멋쩍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아 씨도 같이 해요. 셋이 하는 게 더 재밌을 거 같은데.”

       “쀼우!”

       “…그럼 저도 할게요. 가위바위보라, 저도 굉장히 오랜만에 해 보는 것 같아요.”

       

       실비아는 뭔가 어색하지만 설렌다는 듯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가위 바위 보!”

       “쀼웃!”

       “앗, 졌네요.”

       “실비아 씨는 탈락이고, 이번엔 아르랑 나랑 둘이 가위 바위 보!”

       “쀼!”

       “허허, 아르가 제일 먼저 이겼군요. 자, 여기 젤리 받으렴.”

       “쀼우우!”

       

       젤리를 받아 든 아르는 신이 나서 통통한 꼬리를 방방 흔들었다.

       

       “자, 그럼 다음 젤리는 제가 가져갑니다! 가위 바위 보! 아악!”

       “쀼!”

       “후후, 이번엔 제가 이겼네요.”

       

       그렇게 우리는 가위바위보 젤리 쟁탈전을 이어 나갔다.

       

       “그럼 이제 반 남았으니 룰을 추가해 볼까요? 이게 ‘가위바위보 하나 빼기’라는 건데….”

       “오오, 이런 건 처음 들어 봐요.”

       “쀼웃!”

       “아르도 이해한 것 같으니 바로 갑니다. 가위 바위 보! 하나 빼기! 오케이, 젤리 하나 제가 가져가고요.”

       “아, 아깝다! 이걸 뺐어야 했는데.”

       “하하, 원래 그런 맛에 하는 거죠.”

       

       처음에 느릿느릿 외치던 가위바위보의 박자도 점점 빨라져 갔고.

       

       “하나 빼 기! 하나 빼 기! 푸흣, 아르 방금 양손 다 똑같은 거 냈는데?”

       “쀼, 쀼웃!”

       

       박자가 빨라지자 급한 나머지 양손 모두 주먹을 내 버린 아르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싸…크, 크흠. 드디어 하나 더 가져가네요.”

       “더 맘껏 좋아하셔도 돼요.”

       “레온 씨…!”

       

       실비아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를 흘깃 바라보더니, 이내 즐거운 듯 활짝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머지 반이 소진될 때까지 실컷 웃으며 가위바위보를 했다. 

       

       “아, 재밌었다!”

       

       결국 심리를 배제한 확률 게임은 평균회귀를 하기 마련인 듯, 젤리는 나와 아르, 실비아 모두 비슷비슷하게 차지했다. 

       

       아르는 값진 승리로 얻어낸 젤리라 그런지 더욱 소중한 손길로 젤리를 까서 입에 넣고 행복한 얼굴로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스마트폰도 없는 세상에서 오랜만에 재밌게 놀았네. 아르도 재밌게 논 거 같아 다행이고.’

       

       생각해 보니 이렇게 어린 아이를 키울 때는 양육자가 직접 많이 놀아 주는 게 정서 발달에 좋다던데….

       

       ‘앞으로도 뭔가 재밌는 놀이를 찾아서 놀아 줘야겠네. 이런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게…. 보드 게임 같은 걸 찾거나 만들어 볼까.’

       

       혼자 사느라 보드 게임 카페 같은 데에 가 본 적은 없지만, 대신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보드 게임 어플도 많이 깔았었고 뉴튜브 같은 곳에서 여러 가지 보드 게임을 하는 영상도 봐 왔다. 

       

       ‘트럼프 카드는 이 세계에도 있겠지? 용병 길드에서 아저씨들이 쓰는 거 본 거 같은데. 캐머해릴에 도착하면 한번 찾아나 봐야겠다.’

       

       조막만 한 손으로 트럼프 카드를 쥐고 고심하는 아르의 표정을 상상한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렸다.

       

       ‘젤리나 하나 더 먹을까.’

       

       기지개를 한 번 쭉 켜고 다시 편안히 의자에 기대 앉은 나는, 가위바위보로 딴 젤리 하나를 집어 포장지를 슥 벗기고 바로 입에 넣었다. 

       

       “윽.”

       

       이거 레몬 맛이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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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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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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