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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0

   “어둠의 악신이 존재치 않아도 던전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걸 어찌 확신하지? 근거가 있나?”

   

   1왕자와 에르기누스 양 쪽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저들의 잔뜩 날 선 시선을 마주한 난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던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게임 속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던전에 봉인되어 있던 모든 악신을 쓰러트리고 그들의 중심이 되는 아그라마저 퇴치했음에도 대형던전을 비롯해 내가 공략하지 않은 던전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광경을 말이다.

   

   어째서 던전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무언가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가. 이런 질문을 받더라도 나는 거기에 대답을 해줄 수 없다.

   

   아니. 생각해봐.

   

   새가 나는 광경을 봤어.

   

   그러니까 새가 날 수 있다고 말했어.

   

   근데 새가 어떻게 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냐고.

   

   그냥 나는 걸 봤으니까 난다고 밖에 말 못 하잖아!

   

   <정말 던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냐?>

   ‘…아마도요.’

   

   그리고 말야. 진짜 최악의 경우에는 그게 어디까지나 게임 속에서만의 일이었고 현실에선 다신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내가 장담을 한 상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도 모두 내가 해야 하는 거잖아!

   

   아. 맞다! 첨언! 첨언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던전을 공략해도 정말 아무 일이 없을지 물어보면 뭔가 대답이 나오겠지!

   

   첨언님. 첨언님. 제가 어둠의 악신을 가져오더라도 저 던전이 멀쩡할까요?

   

   [그대가 믿는 대로 움직이면 족하다.]

   

   거 굉장히 애매하게 대답을 해주네?

   

   던전이 안 없어진다는 거 맞지?

   

   설령 책임을 지게 되더라도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거 아니지? 응?

   

   아악. 진짜. 누가 성격 더러운 히키 꼬맹이가 준 스킬 아니랄까봐 대답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드네.

   

   “두 분. 일단은 제 딸아이의 말을 믿어주시겠습니까?”

   

   답이 없단 생각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뒤편에서 베네딕이 나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저희 딸아이의 말은 분명 옳을 것입니다. 만약의 경우에는 저희 알른 가문 측에서 책임을 부담할 테니 부디.”

   “예술 교단도 부담을 나누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저희 교단이 벌어들이는 금액에 대한 것을 아실 테니 공수표일 가능성을 걱정하시진 않으셔도 됩니다.”

   

   그 뒤를 이어 변태사도까지 고갤 숙이자 1왕자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고갤 숙였다.

   

   “아뇨.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그저. 하아. 알겠습니다. 에르기누스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시죠.”

   

   어지간해선 강한 태도를 고수할 1왕자도 이런 상황은 견디기 버거운 듯 물러섰고 이외의 다른 신하들도 1왕자를 따라 고갤 숙일 뿐 무어라고 첨언을 하진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본다면 분명 잘 풀린 상태였지만 나는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저렇게까지 날 신용하고 있는데 이러다 던전이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악의에서 시작된 부담감보다 선의가 가져다주는 부담감이 더 커!

   

   진짜 속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고!

   

   으아악.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입 다물고 있을 걸. 왜 굳이 한 마디를 던져서 이 꼴을.

   

   <루시야.>

   ‘왜요.’

   <기왕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일을 좀 더 저질러 보자꾸나.>

   ‘일을 저지르자고요? 그게 무슨.’

   <우리가 이 곳에 찾은 사유를 왕자의 어리광으로 만들자는 게다.>

   

   *

   

   루시 알른을 비롯한 일행이 자리를 뜬 후. 신하들과 함께 방에 남겨진 르네 솔라딘은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의자에 기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일행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의 광경이었다.

   

   정확하게는 에르기누스라는 신화 속의 영웅이 그를 향해 내비쳤던 적대감이 자꾸만 르네의 머릿속에 박혔다.

   

   본래 르네는 이 곳에 올 생각이 없었다. 루시 알른을 비롯한 일행이 무얼 하려는 지조차 알지 못한 채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으니 이 곳의 일에 대해 알기란 요원했지.

   

   그랬던 르네가 대형던전이 있는 도시에 발을 들이게 된 까닭은 어디까지나 1왕비의 명이었다.

   

   ‘그 곳에 가서 에르기누스님을 만나 뵙도록 하세요. 명분은. 음. 그래요. 대형던전에 관한 것이 걱정이 된단 걸로 충분하겠죠.’

   

   1왕비가, 그의 어머니가 내뱉은 말은 무척이나 너무나도 그녀답지 못했다.

   

   왕국에 관한 일이라면 철저한 계산 하에 수행하던 어머님께서 저렇게 대략적으로 말씀을 하시다니.

   

   르네는 무엇인가 이상하다 생각하는 한편 1왕비라면 당연히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라 믿고 이 곳을 찾았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것은 직설적인 적의였다.

   

   “이번 일에 대체 무슨 의의가 있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여길 방문한 르네에겐 상대를 설득할 힘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대략적인 걱정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의심 뿐.

   

   저잣거리의 호사가라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도 문제가 없을 터이지만 르네는 1왕자다.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란 말이다.

   

   상대를 설득할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와서 무작정 권력으로 찍어 누르려 하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지?

   

   그것도 상대방들이 지닌 권위가 르네에게 비견되거나 더 높은 상황에서?

   

   “대체 1왕비님께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그 분의 아래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해왔지만 난 여전히 어머님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구나.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지?”

   “그것이.”

   “그. 이런 식으로라도 안면을 쌓으란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에르기누스님께서 벌일 대업에 참여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택한 게 아닐까 생각을…”

   

   저들도 어머님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군.

   

   하.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나보다도 멍청한 것들이 어찌 그 분의 사고를 따라갈 수 있을까.

   

   됐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신경 쓰지 말자.

   

   나와는 다르게 당연하단 듯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그러면서도 나와 눈조차도 마주치지 못하던 불쌍한 아우에 대한 것도.

   

   그리고 나 따위와는 다르게 어느새 주변의 존중과 존경을 받게 된 루시 알른에 대한 생각 같은.

   

   “…배신자년.”

   “예?”

   “1왕자님 방금 전에 무엇이라.”

   “혼잣말이다. 머리에서 지워라.”

   

   차디찬 목소리로 신하들의 물음을 찍어누른 르네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보다 사람을 풀 준비나 해라. 한바탕 망나니노릇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정말 알른 영애의 부탁에 따르실 생각이십니까?”

   “이외의 방법이 있나? 졸지에 신화시대의 영웅과, 영국의 영웅, 그리고 현직에서 드높은 존경을 사고 있는 교단의 사도와 검성에게 미움을 사게 생겼는데?”

   

   전후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 르네가 이 곳에서 벌인 일은 저들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에 불과했다.

   

   당장은 이해 받은 것처럼 보여도 훗날 이 일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저 쪽에서 요청한 대로 현재의 상황을 수습해야했다.

   

   언젠가 이 일을 가지고서 말이 나왔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설령 그 과정에서 르네의 평판이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망나니 짓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니 불만을 품은 몇몇 희생양도 만들어두도록 해라. 그 누구도 1왕자의 명에서 벗어나 던전을 공략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

   

   할아버지가 1왕자에게 요구하라 한 것은 우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어달란 것이었다.

   

   오늘은 왕국의 지엄하신 핏줄이 던전을 살피기로 했단 명분으로 입구를 틀어막으라고 말이다.

   

   ‘그런 게 가능해요?’

   <못할 건 없지. 결국 대형던전이란 건 나라의 자산이잖으냐.>

   

   할아버지의 말에 반신반의해하면서도 말을 꺼내자 1왕자는 헛웃음을 흘리고는 이내 고갤 끄덕였다.

   

   그걸 바란다면 얼마든 해주겠다면서.

   

   주변의 신하들은 폭군이나 할 법한 행동이라며 말리는 체 했지만 1왕자는 가뿐히 그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리고 우리가 저택 바깥으로 나오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던전도시에는 큰 소란이 일었다.

   

   

   “아니. 오늘까지 수행해야 하는 의뢰가 있는데.”

   “어허! 그것이 왕자님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더냐!”

   

   “미친. 오늘 그거 수급 못 해가면 문제 생긴다고!”

   “손해 내용을 정산해서 저택에 제출해라.”

   “그게 목 잘라달라고 가는 거랑 뭐가 달라!”

   

   “영주님. 아무리 1왕자님의 명이라지만 이건.”

   “부디 이해해주게. 그 분은 사실상 차기 왕권이 확정된 분이야. 명을 어길 순 없어.”

   “그런.”

   

   1왕자는 왕권이 무척이나 강한 왕국에서 유력한 차기 계승권자가 망나니 짓을 벌이면 어떤 일이 생겨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영지에 자리한 군사를 통해 목소리를 탄압하고. 저항하는 자는 여러 명목을 붙여 감옥에 넣어버리고. 이외에도 사람들의 모든 발악을 왕자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찍어눌러버린 것이다.

   

   덕분에 대형던전이 자리한 도시에서 우리의 존재는 뒷전으로 밀려나버렸다. 쉬이 보기 어려운 얼굴들에 감탄하고 있기엔 현실의 문제가 너무도 거대했다.

   

   “허. 명분을 주니 바로 본성이 드러나는 군. 실로 역겨운 놈이야.”

   

   그런 광경을 구경하던 에르기누스는 이상할 정도로 까칠한 티를 냈다.

   

   처음 1왕자를 만났을 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너무 1왕자를 싫어하는 거 아냐?

   

   나도 1왕자를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이 정도는 아니라고.

   

   이래서야 좆같이 대할 이유를 만들어주겠다 결심할 것 같잖아.

   

   “큰형님께서 이유 없이 이럴 일을 벌일 사람은 아닙니다만.”

   

   이리 생각한 건 나 뿐이 아닌 듯 아서가 참다 못해 목소리를 냈다.

   

   “왜 그리 생각하십니까?”

   “제 평생 동안 큰형님을 봐왔으니까요.”

   “당신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이 모두 정답이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

   

   아. 이 인간 그새 눈치 챈 거야? 닭장 앞에서 찐따가 될 뿐 평소엔 확실히 대마법사답다니까.

   

   참 아쉽네. 이런 곳말고 다른 데에도 눈치가 빨랐다면 여태 동정찐따로 살 일은 없었을 텐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에르기누스님.”

   “뭐긴 뭐야♡ 수백년 동안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본 찐따인 자기랑 다르게 여자한테 인기 있을 것 같으니까 질투하는 거지♡”

   “난 그런 게 아니다. 내가 그 자를.”

   “네에에♡ 수백살을 쳐먹고도 머리가 텅텅 비신 찐따마법사님♡ 입을 벌릴 때마다 동정냄새가 나니까 닥쳐 주시겠어요?♡ 그럼 상당히 쾌적해질 것 같은데♡”

   

   얼굴이 벌개진 에르기누스가 입술을 곱씹다가 말을 삼킨 후. 우리는 병사들의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던전 안에 발을 들였다.

   

   후우우. 좋아. 오늘 스트레스 받은 거 이 던전에서 다 풀고 가자.

   

   이게 게임일 적에 그 어떤 파티보다 성능이 좋은 지금이라면 게임 속 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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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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