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40

    <540 – 운명이 뒤바뀐 황제>

     

    파케 히우그마그는 오래도록 이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고대했다.

    영생을 누리는 것마냥 늙지 않는 선친 밑에서 언젠가 자신의 자격을 인정받아 황위를 물려받을 날을.

     

    ‘다른 남매가 모두 죽고 아바마마를 만족시킬 힘을 얻거든 필시 인정받겠지. 나야말로 제국을 물려받을 진정한 계승자라고!’

     

    소망은 이루어졌다.

    그는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 없었다.

     

    -들어라, 제국의 아이들이여. 오늘부로 제국의 황제는 마땅한 계승자가 차지할 것이며 짐은 오랜 과업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선언하노라.

     

    ‘아바마마…?’

     

    황위를 양도한다.

    그러나 그 대상은 ‘마땅한 계승자’일 뿐.

    파케 히우그마그, 황태자에게 물려준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도, 황위를 내려놓고 제국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저를 인정하실 수 없단 말입니까…!’

     

    이유는 안다.

    바로 직전, 그의 실패를 통렬하게 지적했던 문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 침략에,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 비극,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기회. 무엇하나 뜻대로 끌어낸 것이 없을진대.

    -…!

    -짐이 어찌하여 이토록 부족함 많은 황태자에게 황위를 물려주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역시 너였는가. 네가 걸림돌이었구나, 매스각키!’

     

    제국 2 황녀 매스각키.

    그녀가 혁명군의 사이에서 나타났다.

     

    “허접오라버니. 겁이 많은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선을 너무 크게 넘었어♡ 날 건드린 것도 모자라 오크노디까지 건드리다니, 그건 정말로 지나쳤어♡”

     

    패배자의 넋두리다.

    제국의 고관들을 장악하지 못해 기껏해야 몬스터들이나 지배한 암흑마나에 심취한 떨거지 따위가 무얼 할 수 있는가.

    혁명군도 미치지 않고서야 몬스터를 다루는 황녀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 보여~? 어중칠검 히스클리프랑 알렉산더라는 아바마마의 부하들인데. 할 말이 있대♡”

     

    하지만 그런 황녀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이들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가령… 선황을 모시던 일곱 명의 검객, 어중칠검의 일원들이라면?

     

    “사실이다. 우리는 제도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황태자의 밀명을 받은 자객들의 습격을 거듭 받았지.”

    “4황녀와 2황녀전하께서 몬스터를 규합하여 세력을 불린 것도, 그러면서도 인명피해는 기피했던 까닭도 모두 몸을 지키기 위한 일환이었기 때문입니다. 군부마저 장악한 태자전하의 수중에서 살아남으려면 황녀전하도 군단급 전력이 필요했죠.”

    “사특한 몬스터를 다루었다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증거로 존재하지. 너희들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

     

    파케 히우그마그는 속이 탔다.

    대체 고관대신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어찌하여 아무도 자신을 도우려고 들지 않는가.

    이럴 때 나서야 자신이 어여삐 봐줄 텐데.

    권력의 중심에 다가설 방법조차 모르는 한심한 것들만 모여있나?

    아니, 고관대신들이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문제가 생긴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시야에 불길한 징조가 보였다.

    고관대신들에게 급히 다가가는 수하들.

    건네는 귓속말에 굳어지는 얼굴들.

    급히 멀어지는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

    어디선가, 조직적으로 고관대신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건네고 있다.

    자신의 세력에서 이탈하기에 충분할 정보를.

     

    ‘저, 저것은?!’

     

    민중들의 너머.

    창공 저편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비공정.

    그것을 보자마자 파케는 깨달았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이다.

    재단이 은밀한 마수를 펼치고 있었다!

     

    “인외마경의 마계에서 비롯된 사악한 힘 암흑마나를 다루는 매스각키 황녀에게 재단의 종자들까지 따르거늘, 어찌하여 황제인 내가 악한 무리들을 비호하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는가! 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자들은 즉시 저들을 추살하라!”

     

    파케 히우그마그의 외침에 뒤늦게 황궁근위병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뒤를 따라야 할 근위기사단은 코웃음을 치며 기수를 돌렸다.

     

    “우리는 선황을 따르는 기사단. 새 황제께서는 새로운 기사단을 뽑아야 할 것이오.”

    “선황께서 점지한 후계자를 무시하다니, 그 의도가 불순하구나!”

    “그러시오? 근위기사단장인 본인은 황태자의 계승자격을 의심하는 발언을 들은 기억밖에 나지 않으니 우리 중 하나는 귀가 먹었나 보오.”

    “이노오오옴!”

    “더욱이 눈도 멀었겠지. 저 많은 <영웅급 기운>을 보지 못하고서야 어불성설. 혁명군이 의로운 길임은 명백해 보이는구려.”

     

    황태자가 금기연구소에서 연구 중이던 영웅들을 고스란히 강탈해간 오크노디.

    그녀의 업적이 역으로 황태자를 궁지에 몰아넣었으니,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도 기운은 명백한 강자에 속하는 이들의 존재가 역으로 근위기사단장을 비롯한 많은 강자들의 마음을 돌아서도록 만들었다.

    제국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 수 있는 선황이 아닌 파케 히우그마그 따위는 이 판도를 뒤집을 수 없다.

     

    “하하. 그런가. 짐이 얕보였다 이 말인가? 짐이 정녕 선황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질이 하나도 없다 여겼다면 오산이다. 그렇게나 증명이 좋다면 증명해주지.”

     

    파케 히우그마그가 품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즈앙과 티토소가가 경악했다.

     

    “지젤, 저걸 펼치지 못하게 막아야 해!”

    “오크노디를 죽인 책의 원본!!”

     

    <정신제압>의 서.

    사람의 이지를 날려버리고 강제복종하는 자아를 다시 심는 인격말살도구.

     

    “선황에게 배운 공포정치를 오늘 재현해내겠다. 그리고 새로운 천년을 이끌어가리라!”

     

     

    * * *

     

     

    기운을 죽이고 몸을 숨긴 황제와 시종장.

    광장을 돌아보는 황제의 시선에 시종장이 흘흘 웃으며 물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독심 하나는 있군요. 아드님의 뜻이 실현되리라 보십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오카시이네. 신물이란 신이 내린 물건. 강화가 아무리 신에게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몸부림인들, 그 정성에 응하는 것은 신인 것이다. 강화란 또 다른 형태의 제물공양, 신에게 바치는 공물에 지나지 않지.”

    “참으로 훌륭한 고견이십니다.”

    “짐의 뜻이 아니다. 맹랑한 막내의 뜻이지.”

    “제국 4황녀 오크노디. 폐하와 대등하게 <거래>를 한 막내 따님의 뜻이라. 흘흘흘. 폐하께서도 참 잔인하시군요.”

    “곡물이란 생명의 상징. 생명의 반대란 죽음. 짐조차도 원하는 성물을 얻고자 20강의 곡물을 서른 번이나 맞바꾸고도 뜻을 이루지 못했을진대 어찌하여 짐의 미숙한 아들은 단번에 뜻을 이루었겠는가. 녀석의 최후는 이를 깨닫지 못할 때 비로소 정해졌다.”

     

    신들은 황제가 교장을 죽일 신물을 얻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황제는 마음을 달리했다.

    동등한 가치의 다른 신물로 만백성의 고혈이 비웃음 받는다면, 더는 바꿀 신물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 신의 신물을 약탈하겠다고.

    오랜 뜻이었다.

    그리고 그 뜻을 바꾼 사람은 놀랍게도 제 4 황녀의 신분으로 황궁에 입적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던 오크노디였다.

     

    “황제님은 도박하면 안 돼요!”

    “짐이 도박에 약해 보이느냐?”

    “반드시 지는 도박을 수백 년이나 계속하고 있으면 당연히 약해 보이죠?”

    “호오.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는지 궁금하구나. 세상의 모든 인간이 두려워하면서도 존경을 바치는 존재가 짐이거늘, 너는 어찌 신과 다름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짐이 정작 신들에게 농락이라도 당하고 있다고 여기느냐?”

    “죽음의 신이 얻은 생명의 기운을 신물 제작에 사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황제님이 새로운 신물을 교환하는 속도가 빠르면 원하는 신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가혹한 폭정이 되더라도 곡물 수급은 결코 미뤄져서는 안 된다, 이게 계획이었죠?”

     

    수백 년을 계획해온 제국 최대의 비밀이었다.

    그 비밀을 거침없이 폭로하는 아이의 발언에 황제는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는 시종장 오카시이네나 아카데미의 교장, 기껏해야 재단의 이사장밖에 없다고 여겼건만.

    이 아이는 정말로 그 이사장의 친딸인 걸까?

    폭로된 비밀은 입막음보다 호기심을 재촉했다.

    아이가 스스로 알아냈을 리 만무하니 이것은 재단의 이사장이 자신에게 보내는 조언이다.

     

    “하지만 황제님의 계획이 진행되면서 벌어지는 <부수적 피해>에는 제국과 변방의 싸움, 그리고 혁명가의 원기옥모으기라는 변수가 있어요!”

    “크하하하! 재단의 아이여, 이사장이 널 아주 마음에 들어 하나 보구나. 혁명가 녀석의 회심의 한 수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그, 그건… 직접 몸으로 당했으니까 알죠!”

    “호오. 혁명가의 1억에 달하는 망령들의 질주를 몸으로 받고도 살아남았단 말인가? 더욱 놀랍구나.”

    “…아이 참, 이게 아닌데. 이상하네… 고인물인 내가 우위를 잡아야하는데 왜 밀리는 기분이 들지?”

    “10살을 갓 넘은 어린애와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은 황제의 관록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느냐. 짐의 인정을 받은 것조차도 대단하다 여기거라.”

    “그러죠 머!”

     

    고개를 갸웃하던 오크노디는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며 다시금 해맑게 외쳤다.

     

    “아무튼 대륙에서 벌어지는 살인은 그만큼 죽음의 신에게 <죽음의 정수>를 생성할 기회를 앞당기고, 그래서는 <생명의 정수>가 부족해도 신물을 만들 기회를 훨씬 앞당기게 된다고요? 당연히 황제님의 원대한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요!”

    “알고 있다. 짐 또한 그렇기에 대륙의 전쟁을 억제하며 강제로 평화의 시대를 유지해온 것이니. 혁명가의 망령수집에도 대응책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짐이 도박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느냐?”

     

    오크노디는 비밀을 전하려는 사람처럼 주변을 힐끔힐끔 둘러보고 눈치를 보았다.

    쭈뼛거리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나를 써서 말해도 어차피 신들이 훔쳐 들을지 모르는데 그냥 귓속말로 하면 안 돼요?”

     

    생각지도 못한 10살 때 아이처럼 귀여운 모습!

    안전을 극도로 신경 쓰며 차원방벽으로 항상 자신을 보호하던 황제가 무심코 “그리하라.”라며 덜컥 요청에 응했다.

    애교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군.

    재단에서 참 무서운 암살술을 가르쳤어.

    황제가 그리 감탄하는 것도 당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것은 수십 겹의 차원방벽을 애교 한 번으로 뛰어넘는 11살 응애의 애교암살술 따위가 아니었다.

     

    “황제님이 원하는 신물을 얻어도 죽음의 신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죽음을 초래하는 드래곤교장을 좋아해요! 그래서 교장한테도 황제님을 죽일 신물을 넘겨줄 거예요. 그러니 이 도박은 이겨도 파산, 반드시 죽는 실패가 확정된 내기예요!”

    “…!”

     

    운명. 황제의 확정된 패배를 폭로하는 불가사의한 통찰력이었다.

    황제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건 이사장의 전언이 아니구나. 만신의 적인 그 남자가 이렇게까지 신들의 세계에 깊고 내밀한 통찰력을 발휘할 수는 없지.”

    “헉.”

    “재단의 아이여. 그 정보를 너는 어디에서 얻었느냐. 누가 내 운명을 바꾸려 드는 것이냐.”

     

    기이할 정도로 자신감과 확신이 넘치던 오크노디가 갑자기 길 잃은 미아처럼 시선을 둘 곳을 잃어버리며 몰루노디가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천기누설은 잘하는데 변명은 생각 못한 허접노디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