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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0

    -빠악–!!

    통렬한 타격음과 함께 인부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 즉시 무력화되었다.

    광신상태의 인부에게 가차없이 주먹을 휘두른 이는 교복차림의 불량한 외모의 남자. 

    그는 기절한 인부의 호흡만 대충 확인한 뒤 적당한 곳에 눕혀두고는, 자신을 따라오는 작은 그림자들을 향해 말했다.

    “꼬맹이들, 놓치지 말고 잘 따라와.”

    “응! 걱정 마!”

    “네, 저, 저는 괘, 괜찮아요….”

    그 작은 그림자들의 정체는 다름아닌 디아나와 파이리스.

    그리고 아까 전, 아이들이 숨어있던 컨테이너를 열어젖히고 구출한 사람은 서드였다.

    “…….”

    주변을 둘러보면, 적하장은 여전히 철저히 지옥과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인부들은 자재와 컨테이너에 불을 지르고, 서로를 죽여 내장을 꺼내 불에 던지고 있었고, 가깝고 먼 곳에서 연신 터져나오는 환희나 비명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 같지 않다.

    검은 불길은 넘실거려 주변에 닿는 모든 것들을 소멸시키고 있었으며,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웅덩이와 내장조각에서 나는 비린내는 아무리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도 헛구역질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악몽의 현신이라 할 만큼 끔찍한 광경.

    그것은 고작 8살가량의 아이들이 아무런 매체적 거름망 없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버거운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생각외로 침착했다.

    공포에 질려 덜덜 떨어도 모자랄 판에, 웃으며 잡담까지 하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라 생각한 서드는 의문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너희, 무섭진 않은거냐?”

    “네, 아까까진 무서웠지만, 지금은 별로…….”

    “응! 무섭지 않아!”

    “…그러냐.”

    탄력이 좋은건지, 아니면 심지가 굵은 건지…….

    루크의 동생인 저 파란 꼬맹이는 원체 밝고 나사가 좀 빠져있는 녀석이라 괜찮다 쳐도, 디아나라는 꼬마애는 종종 자신의 얼굴만 봐도 무서워할 정도로 꽤 겁이 많은 성격이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너무 큰 공포에 미쳐버린 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이 울거나 패닉에 빠지지 않으면 자신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기에 깊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게 아니더라도 머리가 아팠으니까.

    ‘메를린…… 당신은 대체…….’

    서드는 메를린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

    “서드, 아이들을 찾는 데 네 손을 빌려주었으면 한다.”

    “예? 그새 또 잃어버린 겁니까?”

    “그래. 부끄럽게도,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사라지고 말았지.”

    메를린의 말을 들은 서드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서드는 메를린이 ‘고의’로 아이들을 놓아준 것이라고 확신했다.

    남다른 ‘시야’를 가진 그녀가, 진심으로 아이들의 행방 따위를 놓칠 리 없으니까.

    게다가….

    “…메를린, 대체 이게 벌써 몇번째입니까. 요새 아이들을 너무 풀어주시는 것 아닙니까?”

    “그야, 성장에는 응당 걸맞은 성취감또한 필요한 법이니까.”

    ‘해낸 만큼의 성취감을’. 이는 그녀의 교육학이기도 했다.

    항상 압박하기보다 가끔씩 풀어주며 학습한 능력을 활용하게끔 두어야 온전히 자신의 능력이 된다는 이야기는, 스스로도 꽤 설득력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러나, 역시 불만이 생기는 것만은 어쩌지 못한다.

    “하지만 찾아오는 건 늘 그렇듯, 제 몫이겠죠.”

    메를린은 늘 ‘자신은 직접 발로 뛰기엔 너무 늙었으니까’라는 핑계를 대며 자신에게 일을 떠밀어왔다.

    서드는 그녀가 나이는 들었을지언정 노쇠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본인이 그렇게 말하는데에 타인이 무어라 할 말은 없다.

    결국 자신은 이번에도 한숨을 쉬며 그녀의 의뢰 아닌 의뢰를 받아들이게 되겠지.

    “하아, 그래서. 이번에는 또 어디입니까? 설마 또 마틴공원의 세번째 미끄럼틀에 있는 건 아니겠죠?”

    서드는 아이들이 ‘타지 마시오!’라는 팻말로 막아둔 원통 미끄럼틀 중간에 숨어서 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결국 그 미끄럼틀에 들어가야 했던 일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어린이들이나 탈 법한 유치한 미끄럼틀에서 몇분씩이나 고민하고 있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겐 대체 어떻게 보였을까.

    심지어 결국에는 그 미끄럼틀에 자신의 발로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은?

    그건 상상만 해도 아찔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고뇌와 결심이 아이들에겐 상당히 즐거웠는지, 아이들은 그 뒤로도 몇번 더 그 장소에 숨어들곤 했다.

    게다가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영리함과 끈기로, 결국 그 때마다 자신은 부끄러움을 무릅쓴 채 어린이 미끄럼틀에 들어가야했고.

    이번에는 제발 미끄럼틀은 아니었으면.

    그러나 메를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글쎄, 대략적인 장소는 유추할 수 있겠지만, 전처럼 확신은 할 수 없겠군.”

    외출을 준비하며 외투를 걸쳐입던 서드가 문득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예? 확신을 할 수 없다니요? 당신의 눈엔 이미 다 보이는 게 아니었습니까?”

    메를린에게는 남다른 ‘시야’가 있었다.

    사람의 영혼을 보고, 그 흔적으로 새겨진 운명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시야가.

    그 운명을 보는 눈 덕분에 서드는 항상 ‘마틴공원의 세번째 미끄럼틀’처럼 늘 정확한 위치로 찾아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위치를 확신할 수 없다니?

    서드가 그녀를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메를린이 말을 이었다.

    “아이들의 운명이 가려졌기 때문이지.”

    말을 하는 이의 표정이 너무나 평온해서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그녀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운명을 볼 수 없다, 그건 아이들이 메를린이 영혼을 통해 운명의 실을 읽어낼 수 없는 보다 강력한 존재에 얽혀 가려졌다는 뜻이었으니까.

    또는, 이미 영혼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했다거나.

    그 뜻을 이해한 서드는 경악하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맙소사,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셨기에-!”

    -쾅! 달그락–! 

    테이블 위의 찻잔이 충격에 흔들리며 그 내용물이 흐른다.

    만약 안전을 위해 아이들을 인형점에 맡겨둔 루크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를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 분명하리라.

    하지만 그녀는 차가 넘친 테이블을 닦아낼 뿐, 여전히 별다른 표정이 없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낯설기도 했고, 익숙하기도 했다.

    알 수 없는 기묘한 위화감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이들은 괜찮을게다. 죽음은 그 아이들을 필요로하지 않고, 단지 휘말렸을 뿐이니까.”

    그렇게 말을 마친 그녀는, 차를 한잔 마시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역시 서두르긴 해야겠지. 그녀는 변덕이 조금 심하니.”

    죽음을 항상 예측할 수는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

    서드의 등장 이후, 아이들의 공포는 빠르게 희석되고 말았다.

    서드는 인상은 나쁜 사람보다 더 나쁘지만, 확실한 자신들의 편이었으니까.

    “서드가 또 우리들을 찾았네! 정말 잘 찾는 것 같아!”

    “으, 응…. 그러게…….”

    적하장의 난리는 끝나지 않았지만, 파이리스의 해맑은 목소리에 디아나도 덩달아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긴장이 풀리니까 무언가 겁도 나지 않는다.

    단순히 서드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도착했기 때문인걸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모든 것이 가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컨테이너에서 덜덜 떨며 느꼈던 바로 그 처음의 공포가, 지금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달까.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무서운 장면은, TV나 책으로 읽었을 때에도 여전히 무서움이 느껴진다.

    예르나나 오빠 몰래 무서운 영화를 보았을 때,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했을 정도로 무서웠으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바로 눈앞에서 자행되고 있는데도 느낌이 다르다.

    분명 TV에서 방영되는 공포 프로나 무서운 이야기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현실적이고 현장감있는 광경이었지만, 묘하게도 지금은 오히려 그 때보다도 더욱 무섭지 않다.

    보여지는 풍경이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말이다.

    물건을 태우고 피를 뒤집어쓰고 춤추는 저 사람들이 마치 광기에 물든 살육을 자행하는 이들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거대한 퍼레이드를 위해 연기하는 연기자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태우고 있었던 걸까?

    인부들은 어째서 이렇게 적지?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이유를 잊어버려 마치 하나의 과장된 연극과도 같이 변해버린 광경에선, 그저 무미건조하게 사실만을 나열하는 문장처럼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오로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 없이 뇌광과 함께 길을 터주는 서드의 모습 뿐.

    “……이봐!”

    -파지직–!!

    “…….”

    또 한번, 서드의 앞을 막아서던 피에 물든 인부들이 쓰러졌다.

    서드는 스파크가 튀는 건틀렛을 고치며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꼬맹이들, 넋 놓고 있지 마. 위험하니까.”

    “네, 네에…….”

    그 모습은 분명 폭력적이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검고 붉은 풍경 속, 유일하게 푸른 광채에 감긴 서드의 모습은, 그야말로 다른 세계의 존재와도 같이 보였다.

    그의 손에서 푸르게 파직거리는 푸른 반짝임. 

    그건 마법의 화려함을 사랑하는 어린아이라면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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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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