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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1

   어둠의 악신이 자리한 던전에 발을 들인 순간 에르기누스는 그 안에 자리한 악신의 기운을 느끼고서 입술을 곱씹었다.

   

   그의 기억에 남은 어둠의 악신은 끔찍하단 말 따위로는 형용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인간이 지닌 모든 감각을 앗아가는 악신의 권능은 희망을 짓뭉갰으며, 무력감으로 어깨를 짓눌렀고, 밝은 빛 아래에서 마주하게 될 광경이 두려워 차라리 죽기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어둠의 악신을 상대하던 그 순간에도 영웅들에게 희망은 크지 않았다.

   

   성기사 루엘이 자신의 미래마저 바쳐가며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분명 패했겠지.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어둠의 악신을 마주하러 가는 이 때. 에르기누스는 과거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눈을 빛냄과 동시에. 한 편으로는 벌벌 떨리는 손을 다잡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했다.

   

   “자. 허접 여러분. 알아서들 따라와요. 쓰잘데기 없이 이름값만 높은 당신들이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죠?”

   

   허나 루시는 달랐다. 어둠의 악신을 상대해보았으며 그 때문에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겼다는 그녀는 악신의 기운을 마주하고 있을 터인데도 태연했다.

   

   마치 공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맞다. 무능 왕자님은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후들대는 체력조루니까 못 따라오겠네요. 바보 파파 등에 업히실래요?”

   “헛소리! 예전의 빌빌거리던 내가 아니다! 날 무시하지 마라!”

   

   강한 체를 하는 것일까. 그렇겠지. 인간이 공포라는 감정을 모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허. 루엘 그 놈이 왜 저 아이를 아끼는 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아. 눈으로 보기엔 자그마한 등이 어찌 마음으로 보면 이리 커 보일 수가 있는지.

   

   “그래요? 마음대로 하세요. 나중에 힘들다고 징징대면서 바닥을 기시면 그 때 꾹꾹 밟아드릴게요.”

   “그럴 일 없다!”

   

   헌데 기이하군. 저 아이가 지휘를 맡는다는데 아무도 말을 더하는 사람이 없다니. 이 곳에 자리한 면면을 보면 다른 이들이 파티를 이끄는 게 낫지 않나?

   

   아무리 메이스 안에서 루엘이 조언해준다 치더라도 즉각적인 판단은 어려울 터인데?

   

   “어라? 알른 영애. 이 던전 공략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에르기누스와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검성 유덴이 의문을 표하자 루시가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아저씨 성애자. 바보 파파 구경하느라 뇌를 반쯤 놓고 있는 거야? 다른 허접들이 왜 아무 말 안 하는지는 생각 안 해봤어?”

   “제. 제가 누굴 구경했다고 그러세요! 저는 그런 적 없거든요!?”

   “푸흡. 푸하핳. 목소리 떨리는 것 좀 봐. 진짜 허접한 여자네. 그 나이 쳐먹고 소녀인 척 하면 부끄럽지 않아? 응?”

   “그만! 그마아안! 닥치고 있을게요! 닥치고 있을 테니까!”

   

   유덴이 비명 지르는 것을 본 에르기누스는 일단 닥치고 있어야겠노라 다짐했다.

   

   괜히 헛소리를 내뱉었다가 루시의 어깨 위에 자리한 여우가 인간의 형상을 취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테니까.

   

   몇 번이나 여우에게 교육을 당했던 에르기누스는 얌전히 루시의 뒤를 따랐다.

   

   “하하. 괜찮습니다. 검성님. 무인이 같은 무인을 신경 쓰는 건 당연한 일이죠.”

   “아니. 그게. 으. 흐아아앙.”

   

   그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에르기누스는 왜 다른 이들이 루시에게 당연하단 듯 지휘를 맡겼는지 이해했다.

   

   그의 허리춤까지밖에 오지 않는 자그마한 여자아이는 어지간한 군단의 지휘관보다도 깔끔한 지휘를 선보였다.

   

   던전의 풍경을 눈에 새기자마자 바로 길을 찾아낸다거나.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적을 예측하고 그를 상대할 방법을 말한다거나.

   

   함정을 역이용하여 던전의 공략 속도를 줄인다거나.

   

   심지어는 던전의 구조 일부를 붕괴시켜 아래의 까다로운 마물을 상대하기까지 했으니.

   

   에르기누스는 루시의 기행을 구경하며 우리 때에 이런 아이가 있었다면 이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이끌었던 용사가 나쁜 사람이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는 분명 용사라는 자격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내였으니.

   

   다만 용사가 지닌 실력과 성품과는 별개로 그의 지휘는 좀 끔찍했다.

   

   잘 들어맞지도 않는 직감에 의존해가며 온갖 개짓거리를 하는 용사를 보고 있자면 그라는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아도 욕지거리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랐지.

   

   더더욱 열이 받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자신의 실력으로 수습을 해놓고 자기가 잘못했다면서 먼저 머리를 박는단 것이다.

   

   그 놈의 바보짓 때문에 죽어라고 고생을 했는데!

   

   또 그 놈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 상황에서!

   

   뻔뻔하게 나오기는커녕 먼저 사과를 해버리니!

   

   우리는 대체 어디에 열을 풀어야한단 말이냐!

   

   “찐따마법사님. 뒤에서 여자애 엉덩이 구경하고 싶으신 건 알겠는데 최소한 따라오는 채라도 해주시죠?”

   “내가 그런 인간으로 보이나!? 난 그저 너 같은 녀석이 우리 파티에 있었으면 편했겠다 생각했을 뿐이다!”

   “푸하핳. 꼰대할배랑 똑같은 말하시네요. 용사란 분이 얼마나 개허접멍청이였으면 저처럼 귀여운 여자애랑 비교당하는 거죠?”

   

   자신의 옛 동료가 모욕당했단 사실에 입을 열려던 에르기누스였지만 차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용사가 지휘관으로써 벌였던 무능은 허접이란 단어로 요약할 수 없을만큼 거대했으니까.

   

   뒤늦게라도 루시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 에르기누스가 용사가 잘했던 지휘가 있나 돌이켜보는 동안 파티는 쉴 새 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1층에서 10층계까지 도착하는 데 단 한 시간이면 족했고. 여러 기믹이 추가된 10층에서 20층까진 한 시간 이십 분.

   

   그리고 20층에서 30층까지 도달하는 데엔 오히려 시간이 줄어 사십 분이 걸렸다. 중간에 루시가 베네딕을 시켜 던전을 마구잡이로 파괴해 시간을 단축시킨 것이다.

   

   “…이래도 되는 건가.”

   “찌질이 병신이 만든 던전엔 이 정도가 적당해요. 아니. 오히려 다 폭파시키지 못해서 아쉬울 지경이에요. 그 병신이 허탈한 표정 짓는 거 보면서 비웃어주면 완전 즐거울 것 같은데.”

   “허어.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군.”

   

   이러한 쾌진격은 30층에 도달해 어둠의 악신이 지닌 권능이 던전에 자리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저 마다 감각의 일부가 하나씩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루시의 지휘 아래에선 변수가 존재치 아니했다.

   

   어찌 해야 하는가 미래를 보고서 알아온 듯한 그녀를 감각 하나 빼앗는 것 정도로는 가로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채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46층에 도달한 루시는 에르기누스가 따로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어둠의 악신이 봉인되어 있는 장소를 보란 듯 찾아냈다.

   

   “무능찐따마법사님. 드디어 일할 시간이 왔답니다. 설마 자기 전문분야에서도 찌질한 모습밖에 못 보여주진 않겠죠?”

   “걱정마라. 이 계획을 검증한데에 들인 시간만 해도 백 년에 가까우니.”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전투다운 전투도 없었기에 몸의 상태는 최상에 가깝다. 정신도 멀쩡하고 마력도 풍부해.

   

   그러니 실수할 일은 없다.

   

   설령 그 어떤 변수가 있더라도.

   

   *

   

   ‘오늘도 찐따 아그라가 조용할 줄은 몰랐는데요.’

   

   자신의 아래에 있는 녀석이 위험해진 것이니 당연히 아그라가 개입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끼어들질 않네.

   

   허접 주신이 잘 틀어막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우리 전력을 보고 답도 없다 생각해서 힘을 아껴두고 있는 건지.

   

   개인적으로는 후자일 거라고 생각해. 작년 버로우 영지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힘 대부분을 잃은 어둠의 악신이 우리 앞에서 부활해봐야 즉시 퇴치당할 뿐이니까.

   

   <바꾸어 말하자면 때를 기다리고 있단 것이지.>

   ‘우리가 요정의 숲에 도착했을 때를 노리고?’

   <그래.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을 준비하는 것이 옳겠구나. 재앙이 다가올 게야.>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에르기누스가 마법진을 준비하는 걸 본다.

   

   그가 지금 그려내고 있는 마법은 나 따위의 지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여기에 함께한 다른 이들도 나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어디까지 이해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들 어느 순간부터 이해를 포기했지.

   

   개 중에는 처음부터 마법진에 눈길도 줄 수 없었던 사람도 있었다.

   

   여전히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아서가 그랬다.

   

   죽은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만큼 미동하나 없는 그는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발악했다.

   

   중간에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 싶은 순간에도 이를 악물고서 자기 다리로 우리의 뒤를 따랐지.

   

   나한테 허접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던 걸까?

   

   근성은 칭찬해줄만 하지만 저러다 무슨 변수가 생기면 되래 우리가 고생한다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

   

   <또 무슨 장난을 칠 생각이냐.>

   ‘어. 어떻게 아셨어요? 설마 제 옆에서 땀냄새 맡고 있는 얼빠여우마냥 변태처럼 제 생각을.’

   <네 표정이 누구 하나 골려주고픈 표정이었다.>

   

   별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저런 상태에서도 옆에서 재잘재잘거리고 있으면 화내려고 일어날까 보고 싶었을 뿐인데.

   

   못 일어나면 못 일어나는대로 잔뜩 괴롭히면서 스트레스를 풀까 상상했을 뿐이라고.

   

   여유가 생기자마자 종이를 꺼내서 내 옆모습을 그리기 시작한 변태사도 때문에 생겨난 짜증을 아서한테 풀려고 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잖아!

   

   결국 저 녀석을 배려하다가 기록 갱신에 실패해버린 부분에 화풀이를 하는 게 나빠?!

   

   내가 쟤한테 해준 게 얼만데!

   

   속으로 투덜투덜거리고 있으려니 주변에 서서히 어둠이 차올랐다. 어둠의 악신을 봉인해 둔 마법이 에르기누스의 마법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십시오. 이제 봉인을 건드릴 겁니다.”

   

   점차 주변의 어둠이 짙어져가는 걸 보던 나는 아서의 옆으로 다가가 신성을 끌어올려서 영역을 구성했다.

   

   어둠이 결코 잠식할 수 없을 장소를 말이다.

   

   그리고서 살짝 금이 간 봉인을 가만 바라보던 난 어둠 사이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살의에. 위기를 알리는 찌릿함에. 보란 듯 웃음을 지어보였다.

   

   안녕. 지하에 처박혀 있던 히키코모리 병신아. 햇빛 구경하러 갈 시간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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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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