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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2

    <542 – 쌓이고 쌓여 일어난 기적>

     

    용사의 칼끝이 지척에서 심장을 겨냥한다.

    절체절명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대위기.

    파케 히우그마그는 보았다.

     

    지금, 자신을 돕고자 절박하게 달려오는 이는 아무도 없음을.

    그나마 그를 위해 힘을 발휘하는 궁중 수석마도사는 증오스러운 2황녀 매스각키의 수작에 발이 묶여 때에 맞추지도 못할 것임을.

     

    여기까지다.

     

    너무 많은 적을 만든 탓이다.

    조금만 더 수완이 좋았다면 다를 수도 있었다.

    고수들을 이 자리에서 모두 적으로 돌리지 않고 어떻게든 황권을 고수하며 시간만 벌었더라면.

    어중칠검.

    제국대장군.

    고공기사단.

    제국의 진정한 전력들이 수도로 복귀하고 그를 지킬 인의 장벽이 될 수 있었다.

     

    ‘그런가. 금기연구소를 약탈당하고 내 것을 빼앗긴 초조함에 눈이 먼 결과인가.’

     

    제국 4황녀 오크노디.

    혜성처럼 나타나 모든 것을 빼앗은 그 아이의 수가 끝내 자신의 목숨까지 빼앗는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아이.

    몬스터군단의 주인.

    매스각키의 친구.

    다크프린세스.

    이 자리에는 없지만 모여든 면면들은 모두 그녀를 위해 찾아온 이들이다.

     

    제2의 혁명가 젤지.

    혁명군 대장군 손오천.

    당대 용사 이슈타르.

     

    파케 히우그마그는 아직 모르나, 오크노디로 인해 출현한 방해꾼은 더욱 있었다.

     

    검술도둑 제토.

    그는 궁중병력의 발을 묶었다.

     

    최강의 휴학생 샤를로테와 하수인 우르가스.

    그들은 제국최강을 앞다투는 고공기사단 단장, 창공기사 드미트리를 저지했다.

     

    “폐하아아아!”

     

    일찍이 파케 히우그마그에게 줄을 섰지만 대세를 읽고 배신한 근위기사단과 달리, 끝까지 충심을 지켜온 사병조직, 황금돌격대.

    신임황제의 마지막 희망이었을 돌격대가 거리의 광경이 비칠 정도로 눈부시게 닦은 갑옷표면 때문에 꺾이리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을까.

     

    쿠당탕탕!

     

    거울을 매개체로 삼아 모든 종류의 공격을 모방, 반격할 수 있는 거울도둑 릴리아.

    광장중심가의 가게 하나를 통째로 임대한 그녀가 펼친 <돌진반사>가 기사단의 기마들의 다리를 동시에 모조리 꺾어버렸다.

    바닥을 구르고 갑옷에 균열이 일자 갑옷 경면을 매개로 반사를 펼치던 릴리아에게도 막대한 충격이 전해졌으나, 릴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넜어. 그렇다면… 적어도 혁명군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을 끝마쳐야 해. 혁명가가 옳았음을 믿었기에 배신했다면, 이것이 배신자가 해야만 하는 일. 내게 주어진 마지막 사명이야.’

     

    민중을 위협하는 미친 황제를 저지한다.

    선황만도 못한 차기 황제를 상대로 직접 습격을 벌이진 못하더라도.

    용사를 방해하는 황금돌격대의 돌진을 막는 일은 혼자서도 해낼 수 있었다.

    고작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디스트로이어의 제자이자 그녀에게는 사매가 될 오크노디를 볼 낯조차도 없지 않겠는가.

     

    ‘허망하구나.’

     

    가히 쌓아왔던 모든 인연이 용사의 일격을 돕는 오크노디의 진영과 쌓아왔던 악업 탓에 선황의 수하들이 모조리 막히는 파케 히우그마그의 진영.

    상반되는 전황 속에서 잠깐이지만 제국의 황제를 자처했던 사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끝이라니.’

     

    황제를 자처하며 누린 영광은 하루도 채 넘길 수 없었다.

    누구를 탓하랴.

    모든 것이 성급한 자신 때문이었거늘.

    뒤늦게 후회도 들었다.

    자신에게 자격이 없다고.

    괜한 욕심을 접으라고.

    언제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만을 보내며 그를 핍박해왔던 선황께서는, 실은 자신이 이런 최후를 맞이하리라 예견했던 것은 아닌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순순히 두 팔을 벌리고 죽음을 맞이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파케 히우그마그는 고수들의 합동영역전개에 맞서 활짝 펼쳤던 <정신제압의 서>를 고쳐 쥐었다.

     

    ‘모두를 제압하여 새로운 천년의 역사를 만드는 것은 포기하겠다. 황제로서 살아남으리라는 기대조차도 포기하겠다. 허나 짐의 몰락을 앞당긴 그대, 용사만큼은 살려두지 않겠다!!’

     

    정신제압의 서의 모든 출력이 용사 이슈타르 단 한 명에게 집중적으로 투사된다.

    제국의 고수들이 대거 동원되어서야 간신히 평형을 이루던 신물임을 감안하면 이슈타르는 사실상 수많은 고수들의 합공을 홀로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궁지에 처한 상황!

    그녀도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글렀네.

    황제의 심장을 검이 파고듬과 동시에 정신제압의 서가 이슈타르의 정신을 파괴할 것이다.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양패구상의 구도.

     

    “이슈타르!”

     

    소꿉친구의 유피의 기도문이 일순간 이슈타르에게 힘을 더해주었다.

     

    <기도술 – 참수의 골고다>

    <참수자의 꺾이지 않는 마음>

     

    정의를 집행하기 위해 사람들의 목을 참수하는 참수자의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보태주는 정신계 버프신성마법.

     

    “좋아하는 사용법은 아니지만 거들어드리죠,”

     

    벽력성천신교의 수녀 니세의 기도술이 연이어 이슈타르의 등을 떠밀었다.

     

    <기도술 – 성광의 마데우스>

    <성급한 자의 순간적인 충동>

     

    찰나지간에 번뜩이는 번개처럼 내면의 충동을 단번에 실행에 옮기도록 돕는 정신계 강제발동마법.

    부적절한 순간에 부적절한 대상에게 사용하거든 예기치 못한 효과를 일으킬 저주나 다름없는 기도였지만, 지금의 이슈타르는 황제토벌을 꿈꾸는 자.

    어지간히 굳은 결심이 아니라면 그 결심이 다른 충동에 흔들릴 리가 없다.

     

    니세의 믿음과 판단의 근거였다.

    유피가 찰나를 벌고, 니세가 찰나를 앞당긴다.

     

    두 사람 모두 기도술을 펼치면서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 상상한 미래가 있었다.

    정신제압의 서에 당하기 전에 조금 더 빨리 손을 뻗을 시간을 만들고, 조금 더 빨리 파케 히우그마그를 토벌하는 미래.

    아마도 그것은 가장 보편적으로 찾아올 수 있는 미래일 것이다.

     

    용사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찰나지간에 엉뚱한 충동이 들지 않았다면.

    60%의 보편적 가능성과 30%의 다른 가능성, 9.9%의 비범한 가능성 중 무엇에 당첨되더라도 그 전개양상은 비슷했을 것이다.

     

    ‘오크노디라면 어땠을까.’

     

    죽음이 거의 확실시된 양패구상의 구도.

    찰나지간에 용사가 떠올린 것은 예전의 그녀라면 하지 않았을 아주 엉뚱한 상상이었다.

     

    용사라는 만인의 칭송을 받을 클래스를 입수하고 타인의 길을 궁금해할 이유는 없다.

    오크노디에게 패배를 겪기 전까지의 그녀는 그랬다.

    설령 당장 자신보다 앞서는 이가 있더라도 시간만 주어지면, 같은 나이에 상대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많은 일을 해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을 깨뜨린 아이.

    저 아이가 나와 같은 나이가 되거든 얼마나 더 대단한 일을 저지를지 두려움마저 일으킨 아이.

    무서운 가능성을 지녔음에도, 1학년의 모두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여길 무렵에도 기이하리만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았던 아이.

    용사에게는 해야만 하는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이룰 다른 방법이 있음을 몸소 보여준 아이.

    그리고 오늘, 황제타도라는 계획을 기어이 실현에 옮기도록 만든 아이.

     

    오크노디라면 어떻게 할까.

     

    그 물음은 최근 이슈타르의 주된 화두였다.

    쫓아가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아카데미에 출석하지 않은 오크노디를 상대로 부전승처럼 학년수석의 자리를 빼앗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모든 과제, 모든 시험을 수행하면서 늘 오크노디의 시점을 궁금해하였다.

    그런 고민이 찰나지간에 발동한 것은 어쩌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답’까지 함께 떠올려버린 것은, 적어도 이슈타르에게 있어선 천 번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놀라운 직관이었다.

     

    ‘검이 심장에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라면 책도 지척에 있겠지.’

    ‘홀리미러는 마음만 먹으면 일정범위 이내의 어디서든 펼칠 수 있어.’

    ‘물론 고마력반응이 발생하는 장소에는 쉽게 펼쳐지지 않지만 마력을 집중하면 수를 줄여서라도 생성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아.’

    ‘그렇다면.’

    ‘정말로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홀리미러를 <정신제압의 서>의 바로 위에 펼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오크노디의 테크니컬한 전투법, 상대의 최상의 전투력을 정면으로 상대해주지 않는 영리함, 그녀의 수법에 대한 오랜 연구와 이해.

    이 모두가 맞물려 찰나지간에 떠오른 ‘홀리미러를 정신제압의 서 바로 위에 펼친다’는 충동이 유피의 기도문이 만든 찰나 동안 니세의 기도문이 허락한 충동 실현을 통해 실제로 펼쳐졌다.

     

    <절초, 일격폐서一擊閉書>

     

    일격으로 책을 닫는다.

    한 번의 찌르기로 양패구상을 면하면서 우위를 점하는 최상의 결과를 부를 일격!

     

    “!!!”

     

    파케 히우그마그도 쌓아온 경험을 통해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깨달았다.

    양패구상조차 허락하지 않는 용사의 일격에 짐승적인 본능이 손을 뒤로 물려 책을 보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본능이란 언제나 정답만을 향해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티토비이임!!”

     

    특히나, 예상치 못한 빛이 중요한 순간에 용사의 홀리미러의 반사면을 통해 눈을 찌를 때의 본능이라면 더욱 정답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목숨이 아닌 눈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은 오히려 책을 쥔 손을 눈가로 가져가며 책의 펼쳐진 면적을 적게 만들었다.

    그런 책의 옆면에 용사의 검이 닿았다.

     

    툭.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 여겼던 정신제압의 서가.

    지척에서 펼쳐진 정신파괴의 트리거가.

     

    텁.

     

    활짝 연 속살이 검 끝에 떠밀려 닫혔다.

    금단의 지식으로 인간의 지성을 파괴하던 불길한 재액의 신물도 결국은 책의 형태로 강림했으니.

    책은 펼쳐져야 읽을 수 있는 것.

    펼쳐지지 못한 책은 그 진가를 드러낼 수 없다.

    제목, 표지, 소개글.

    그조차도 적지 않은 정신의 부담을 강요하지만.

    성검의 보호를 받는 용사의 정신은, 설령 성검이 없더라도 고작 그 정도로 검을 멈추거나 자해를 벌이기에는, 너무 많이 깨지고 붙으며 단련되었다.

     

    [용사 이슈타르가 제국황제 파케 히우그마그Fake Heugmag를 토벌했습니다.]

    [용사가 서브클래스 <킹슬레이어King Slayer>를 습득합니다.]

     

    즉, 용사는 과업을 이루고 살아남았다.

    혁명군은 환호하고 황제의 지지세력은 저항 의지를 상실했다.

    삼대거악이 노리던 진정한 주적, 선황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제국의 시민들이, 제국의 무수한 적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막타노디의 친구답게 은근슬쩍 경험치에 빨대 꽂는 날먹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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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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