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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3

    -찰칵.

    그렇게 적하장에서 볼 일을 마치고 마침내 자신의 인형점으로 돌아온 메를린은, 익숙한 손님을 맞이했다.

    “오, 이런.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는가. 밤이 꽤 늦었는데.”

    루크 이루시.

    오랜 과거에 모두에게서 잊혀진 대마법사와 같은 이름을 쓰는 소녀는, 자신을 마치 베어낼 듯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곤히 잠들어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아이들은 무사히 잘 돌아온 모양이지?”

    “……메를린.”

    루크는 잠든 아이들을 눕혀둔 침대에 기대어있던 몸을 일으키며 메를린을 향해 시선을 쏘았다.

    그녀와는 할 이야기가 많았다.

    밤을 전부 지새울지도 모를 정도로.

    루크의 그런 의도를 어느정도 읽어냈는지, 메를린은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할 이야기가 많아보이는데, 자리를 옮기지.”

    혹시나 아이들이 엿듣기엔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었으니까.

    —-

    아이들이 자는 인형점에서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도착한 둘은, 주변에 방음마법을 두른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 메를린은 말 없이 주머니에서 마력초 한갑을 꺼내 입에 물었다.

    새로이 알게 된 정보에 의해 머리가 복잡하기도 했고, ‘그녀’를 만나고 난 뒤라 피곤하기도 했으니까.

    “피울텐가?”

    혼자만 피우기가 민망했는지 루크에게 권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무반응이었다.

    굳이 남에게 강요할 생각따윈 없기에, 메를린은 권했던 마력초를 다시 품 안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그것이 대화의 신호탄이었다.

    “불에 탄 사진을 보았네. 그 사진의 주인공, 그대인가?”

    불에 탄 사진이라.

    루크가 말하는 사진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한 메를린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부끄럽군, 옛날 사진이라니. 어떻게 꺼내본건가? 꽤나 찾기 힘들게 숨겨두었을 텐데.”

    “묻는 말에나 대답해, 메를린.”

    상대가 도저히 농담이 먹힐 것 같지 않자, 메를린은 마력초를 입에 물고선 잠시 시간을 끌었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약간의 리바운드를 감수하더라도 거짓을 섞는 것이 좋을까.

    눈앞의 상대는, 비록 ‘육신’밖에 없는 상태일지라도 자신따위는 운명을 읽어낼 수 없는 상격의 존재.

    이는 즉, 운명을 보는 눈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생각만으로 그녀를 판단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줄 없는 번지점프를 하는 듯한 상황.

    그녀의 선택은 결국, 진실을 택하는 것이었다.

    “맞네. 내 옛 사진이지. 첫 아이들과 함께 찍은.”

    “그렇군.”

    메를린의 대답을 들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표식 또한 진실이겠군.”

    -서걱–!

    순간적인 섬광과 함께, 핏방울이 비산했다.

    그 핏무리의 근원은 다름아닌 메를린의 팔 절단면.

    목을 노린 참격이었는데, 아직 몸이 익숙하지 않아 약간 어긋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표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야.

    그 이름 ‘규율의 주시자’.

    사진 속 그녀의 팔에 새겨진 표식, 그것은 분명 마지막 드래곤 로드이자 시가르마타의 반려, ‘아타나시스’의 표식이자, 세계수의 대문에서 용이 자취를 감춘 뒤로 역사에서조차 사라져버린, 누구도 알지 못해야 할, 존재해서는 안되는 증표였다.

    그런데 현대에까지 그 표식이 이어져내려오고 있을 줄이야…….

    부디 그것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표식이 가지는 규칙성과 형태가 단순한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정확한 문법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루크는 반드시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루크는 그렇게 그녀의 잘려나간 팔로 다가가, 발로 팔과 함께 베어져 붙어있던 소매를 슬쩍 걷어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표식이 없었다.

    아니, 사실 없는 것은 표식 뿐이 아니었다.

    메를린의 팔에는 인간의 팔이라면 있어야 할 근육, 지방, 뼈와 같은 구조가 전혀 없었다.

    있는 것은 그저 강화소재 뼈대와, 피를 닮은 액체, 그리고 구체관절과 ‘실’이었을 뿐이다.

    그렇다.

    그녀의 팔에서 떨어져나온 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인형 팔이었던 것이다.

    메를린은 깔끔히 잘려나간 부위를 바라보며 감탄스럽다는 듯 마력초 연기를 내뱉으며 능청스레 입을 열었다.

    “멋지군. 내부에 합사를 둘렀는데도 이 정도라니. 정말 내 팔이었다면 꽤나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

    “표식은 어디있지?”

    메를린의 태연한 모습에, 루크는 그녀의 팔을 베어냈던 아트나이프를 들어 그녀를 겨누며 말했다.

    “사진 속의 그 ‘표식’을 누가, 어떻게 새겼는지 말하게.”

    부디, 그녀가 표식을 다른 식으로 새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녀의 답은 뻔하게도 루크에게 불편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딱히 말할 것도 없네. 조직의 표식이니, 당연히 한때 따르던 ‘그’에 의해 새겨진 것이지. 그러고보니, 그대가 본 사진 속에도 우연히 찍혔을텐데. 외모는, 그때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에 루크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알아선 안될 정보를 알게되는 느낌.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분명히 말하게, 그는 살아있었나?”

    “그래, 죽은 자는 아니었어.”

    메를린의 대답에 루크는 손에 들고 있던 아트나이프를 떨궜다.

    -땡그랑.

    루크는 약간의 탈력감과 어지러움에 이마를 짚고 벽에 기대었다.

    ‘……맙소사, 아타나시스, 그가 정말 살아있었다니.’

    또다시 들려오는 5000년 전의 이름에, 루크는 이제는 더이상 반가워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설마하니 그가 이 모든 일의 배후가 되었다고?

    영혼시를 지닌 그녀가 보기에 죽은 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여전히 언데드가 아닌, 육신을 지닌 채 살아있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세계수에서 삭제된 생물인 ‘아타나시스’가 대체 무슨 수를 써서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살아남았다면 불길에 의해 모습이 지워진 사진 속의 남성은 아마도, 당시 ‘아타나시스’의 육신이겠지.

    그간 자신이 쫓아온 모든 일들의 배후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용의 육신이라니.

    그 전제를 놓고 보면, 지금껏 이해되지 않던 루체스트의 모든 행보가 마치 퍼즐처럼 맞춰져 이해되기 시작한다.

    루체스트가 그토록 기를 쓰고 드래곤의 파편들을 모으던 이유도, 자신에 의해 소멸한 드래곤의 권좌를 부활시키기 위함이었다면?

    루체스트가 굳이 회사의 무력을 증강시키기위해 현대의 수많은 효율적인 병기들을 놔두고, 비효율적인 본드래곤의 연구에 몰두한 것도 그것과 연관이 되어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동시에 마계와 관련된 사업에 엄청난 투자를 진행중인 것도 세계수에서 지워져 보호받는 운명을 잃은 그가 이 세계의 운명과 관련없는 타계의 성질을 이용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의도가 읽힌다.

    하지만 그는 잊혀질 전투, 그 때에 끝장을 냈던 게 아니었나?

    설마, 단지 잊히기만 했을 뿐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대체 어떻게 운명의 가호조차 없이 죽지 않고 5000년의 세월을 버텨온 것이지?

    레니에는 이 사실을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지?

    모든것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 때, 메를린은 남은 손에 들린 마력초를 입에 물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반지를 꺼내 루크에게 건넸다.

    “……이건.”

    어떤 기묘한 한기가 느껴지는 은빛의 무늬없는 반지.

    그것에는 마치 그 주인을 암시하듯, 죽음의 냄새가 뿌리깊게 박혀있었다.

    마를렌은 조용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그대에게 보내는 거래의 증표이자, 선물이라고 하더군.”

    “……이것이 증표라고.”

    루크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정말 이미 강림했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인가.’

    시가르마타의 ‘꿈’을 꾸게 된 타이밍으로 대략 예상은 했지만, 아이들이 본 ‘제물의식’은 ‘시가르마타’를 위한 것이 확실해졌다.

    부디 그저 궁지에 몰린 탓에 꾸게 된 망상에 불과하기를 바랬는데, 이래서야 애써 부정할 수도 없지 않은가.

    루크는 결국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에서 반지를 집어들었다.

    “그녀가 더 전한 말은 없었나.”

    “이미 전할 말은 다 했다는 모양이더군. 그대라면 모든 것을 기억할테니, 구태여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가.”

    루크는 그녀의 신탁의 내용을 떠올리며 침음했다.

    루크는 하는 수 없이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넣으려 했다.

    그러자, 마치 자석이 같은 극을 향해 밀어내는 것처럼 강한 반발력이 느껴져 끼워넣을 수가 없었다.

    루크는 그것이 끼워넣는 손가락의 위치에 관한 문제임을 깨닫고, 결국 반발력이 없는 왼손 약지에 끼워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영혼을 저당잡힌 듯한 가슴의 압박감과 함께, 불완전했던 서클이 온전한 형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육신에 남아있던 신성의 성질이 변환되었다.

    생명에서 죽음으로.

    아마도 그녀와의 ‘거래’를 이행하기 위해선, 이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지.

    헌데 굳이 왼손 약지라니, 그녀도 꽤나 악취미였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메를린은 이 상황이 마냥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일평생 모든 이의 결말을 미리 알고 살아온 메를린에겐, 이 상황이 매우 흥미로울 따름이었으니까.

    “과연, 흥미롭군. 결말을 모르는 연극이란건.”

    “……그런가.”

    아무래도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가 흥미롭기는 하다만, 자신은 깔끔하고 뻔한 이야기가 좋았다.

    마치 5000년 전의 그 영웅 서사시처럼.

    이어 루크는 벽에 닿은 몸과 꼬리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말했다. 

    “추적과 색적에 능한 인물을 찾아두게. 곧 연락하지.”

    “음, 알겠네.”

    메를린의 대답을 들은 루크는 곧바로 몸을 돌려 골목의 밖을 향했다.

    그러자 메를린이 루크의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결국 팔을 자른 것에 대한 사과는 없는 건가?”

    조금만 더 정교한 조작이 가능했다면 목을 쳐날려졌을 인물 치고는 퍽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에 루크는 그저 잠깐 걸음을 멈춰보이고는 말했다.

    “보호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아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 대가라고 생각하게.”

    루크의 대답에 메를린은 조금은 억울하다는 듯이 방음마법을 허물고 골목을 빠져나간 루크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녀’에 의해 아이들은 원래 그런 운명이었네만.”

    수인의 청각으로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루크는 잠시 그녀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봤어야지.”

    “…….”

    그녀의 말을 들은 메를린은 잠시 루크가 빠져나간 길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 피운 마력초를 바닥에 던지고는 떨어진 팔을 주워들었다.

    잠든 아이들이 깨기 전에 고쳐놓으려면, 조금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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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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