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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4

    <544 – 흐뭇한 이야기>

     

    잠은 적당히 자면 개운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너무 많이 자고 일어나면 밀린 숙제를 몰아서 처리할 때의 고통이 신체에서 느껴진다.

     

    “으으응극! 뻐근해!”

     

    팔다리를 쭉쭉 뻗고 좌로 데굴 우로 데굴 몸을 풀어주고 나서야 눈이 번뜩 뜨였다.

    그래, 언젠가 배낭배낭을 벗고 쑥쑥 자라려면 미리부터 스트레칭도 하고 그래야지!

    230cm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몸을 뻗던 도중에 왠지 모를 요상한 느낌이 들었다.

     

    빠아아안히.

     

    마치 누군가가 근처에서 나를 지켜보는 기분이다.

    잠자리에서 느껴지는 이런 현상의 정체를 나는 알고 있다.

     

    “가위눌림? 린 또 너구나!”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자 마차 바닥에서 나사를 뽑으며 놀고 있던 린이 부스스 기어올라왔다.

     

    “…”

     

    린은 잘은 모르겠지만 니가 방금 나한테 시비를 건 것은 알았다며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삐져버리겠다는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군집체답지 않게 여아의 형체로 오래 지내는 동안 정신까지 자연스럽게 여아타락을 당해버린 허접유령의 모습이었다.

     

    “린이 쳐다본 거 아니었어? 흥. 평소에 스토커마냥 잠만 자면 빤히 쳐다보고 괴롭히니까 오해했지. 그니깐 너가 잘못한 거 맞아!”

     

    스물스물…

    열받은 린의 손끝에서 보랏빛 음에너지가 피어오르더니 빔이 날아왔다.

     

    <가짜 린 – 저주술>

    <과일을 먹은 후의 이 시림이 느껴지는 저주>

    <치즈포테이토피자를 먹은 후의 혈관이 힘든 저주>

    <바늘로 엄지를 찔러야 나아지는 체함의 저주>

     

    귀여운 여자아이의 외모와 달리 유령군집체의 본색을 드러낸 가짜 린.

    어떤 저주를 날려야 상대가 가장 큰 피해를 입는지 <사악한 본능>과 <심리예측>을 결합하여 괴롭히는 솜씨가 아주 심상치 않았다.

     

    <저주내성>

     

    히히. 그래봤자 저주작은 이미 해놨지롱.

    필사적인 괴롭힘, 저주내성 상승으로 전환되었다!

    보랏빛 빔에 휩싸이다가 슬슬 내성상승효과가 떨어졌다 싶을 즈음 벌떡 일어났다.

     

    “이얍!”

     

    [당신은 암흑마나 제어술로 가짜 린의 저주를 튕겨내어 술사에게 되돌렸습니다. 아쉽게도 가짜 린은 유령이라 저주의 효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저주내성 경험치+1]

     

    모닝내성작도 했겠다, 돌핀팬츠 언니들과 새벽마다 진행하던 달리기 기능작이나 하려고 외출준비를 하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옷장이 없는데.

    모지?

    아하.

    여기 아카데미가 아니구나!

    눈을 깜빡거리며 실내를 둘러보고서야 깨달았다.

    이곳은 확장마법이 걸린 공간.

    황제가 제국 곳곳으로 몰래 특별한 재료를 수집하러 돌아다닐 적에 사용하는 신물마차의 내부였다.

     

    “헉. 가짜 린이 아니라 황제님이 본 거였군요!”

    “아주 요란하게도 일어나는구나.”

     

    감출 생각도 없는지 방 전체에 황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확장공간의 출구로 벗어나는 트리거인 객실전화를 들어 번호를 삑 눌렀다.

    드르륵.

    열린 문 너머로 방금 나온 객실과 비슷한 장소로 향하는 문이 잔뜩 달린 복도가 펼쳐졌는데, 벽에 걸린 액자를 뒤집자 히든룸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자연스럽게 모든 객실을 감시하는 제어실에 들어가자 신물마차의 각 공간을 CCTV처럼 보여주는 수많은 마법패널과 그 앞에 앉은 느긋한 얼굴의 황제, 그리고 어째서인지 굉장히 분해하는 즈앙이 있었다.

     

    “즈앙 안녕!”

    “오크노디… 우리 절친 맞지?”

    “응? 절친 맞지!”

    “절친인데 어째서 상담하지 않았어? 매일 아침마다 유령친구의 풀리지 않는 한을 받으며 저주를 받는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고.”

    “딱히 괴롭지 않은데? 저주내성이 충분히 높으면 저주로 들어오는 데미지도 감소하거든!”

    “내성이 오를 정도로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이미 이상함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오래 당해왔다는 거네… 이 바보노디.”

    “힝. 나 바보 아닌데 왜 바보라구 그래!”

     

    굉장히 오랜만에 즈앙에게 푸념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맞다. 나 잠깐 쓰러졌었지? 상태이상 걸린 지 얼마나 지났어?”

    “일주일.”

    “히에엑?! 말도 안 돼. 블랙아웃 지속시간은 한 시간 정도밖에 없었을 텐데!”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오크노디의 계산이 틀렸다는 허접스러운 변명이라는 건 알았어.”

    “윽. 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닷!”

     

    매스각키마냥 허접허접 놀려대면 어쩌나 끙끙 앓던 나는 몸을 덮는 체온에 깜짝 놀랐다.

     

    “알았으면 두 번 다시 그런 무리는 하지 마.”

     

    무색무취.

    마치 형체 없는 서늘한 베일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것처럼 와닿는 즈앙의 포옹.

    멍하니 응 하고 고개를 끄덕여도 즈앙은 놓아주지 않았다.

     

    “즈앙?”

    “…에잇.”

    “으걋! 아팟, 아파파!”

     

    초근접거리에서 펼치는 암살자의 <체술> <조이기> 콤보는 매우 아팠다!

     

    “아프라고 하는 거야.”

     

    고통차단의 기술인 무감無感을 사용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견딜 수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고인물의 느낌이 들었다.

    눈물을 쏙 뺄 정도로 시달리고 나니 즈앙이 괴롭힘을 멈추었다.

     

    [인물 <즈앙>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

    즈앙의 이해도

    배신금지(이해도 20) – 누군가 그녀를 배신한다면 그 사람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소유욕(이해도 40) – 감각과 감정을 비롯해 많은 약점을 잃는 훈련을 받아온 반동으로 손에 넣은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심이 생겼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수겠어(이해도 60) –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즈앙은 그것을 파괴한다. 물건도, 학점도, 어쩌면 친구마저도.

    증명해줘(이해도 80) –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는 때때로 서로의 관계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만일 그녀가 원하는 자극을 선사하지 못한다면…

    ━━━

     

    [인물 <즈앙>의 이해도가 20를 넘었습니다.]

    [1차 특전 <암살자의 친구>를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즈앙의 호감도 상승속도가 상승합니다.]

     

    [인물 <즈앙>의 이해도가 40을 넘었습니다.]

    [2차 특전 <베프 – 즈앙>을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즈앙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면 즈앙과 함께 하는 특별한 야간행동(잠행, 암살)이 가능해집니다.]

     

    [인물 <즈앙>의 이해도가 60을 넘었습니다.]

    [3차 특전 <무감파괴>를 감지합니다.]

    [인물 <즈앙>은 감각을 차단하는 기술을 통해 공포를 느끼지 않는 과감하고도 잔혹한 암살기술을 사용해왔습니다.]

    [하지만 무감의 편리함에 도취되지 않고 감각과 마주볼 용기를 내는 즈앙은 더욱 정교하고 치명적인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물 <즈앙>의 이해도가 80을 넘었습니다.]

    [4차 특전 <얀데레>를 감지합니다.]

    [인물 <즈앙>은 무감을 뚫고 전해지는 고통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누군가의 소중함을 실감합니다.]

    [당신이 그녀와 충분한 감정적 교류를 이루지 못할 시, 즈앙은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자 자신이나 당신에게 고통을 입히려 할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당신이 그녀한테서 멀어지려 할수록 즈앙은 더욱 큰 고통을 확인하려 합니다.]

     

    아항.

    고인물의 데이터베이스에 잠들어있던 즈앙의 얀데레 데이터가 본능적으로 떠올라서 그랬나 보다.

    이런 이해도 테크트리도 있었지.

    <되찾은 감정> 루트에서는 이렇게까지 귀찮고 성가신 성격은 아니지만 공격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얀데레> 루트가 좋다.

    캐릭터 이름을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조아해병>으로 지을 만큼 한방을 좋아하는 내가 폭딜 암살자 캐릭터의 공격력이 오르는 성격을 싫어할 리 없잖아?

     

    “그래도 너무 괘씸해!”

    “뭐가… 윽.”

     

    즈앙의 팔을 덥썩 붙잡고 입으로 앙 물었다.

    팔이 물린 즈앙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팔을 흔들며 내게 물었다.

     

    “오크노디. 뭐하는 거야?”

    “열심히 일하고 왔는데 이렇게 혼나면 억울해. 나도 즈앙 혼내줄 거야!”

    “킥킥. 무는 게 혼내는 거야?”

     

    무섭지?

    뽀얀 팔에 이빨자국이 날 거라고.

    먹이취급을 당하는 이 굴욕, 간단히는 잊지 못할 거야 즈앙!

     

    “킥킥. 정말 잊지 못하겠네.”

     

    어째서인지 즈앙은 한결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런 느낌으로 화목한 소통을 하고 있자니 황제가 손을 따악 튕겼다.

     

    “이맘때의 아이들이란 보기만 해도 즐겁군. 그래도 이 이상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오크노디, 재단의 아이여. 슬슬 <약속>을 이행하게 해주겠나.”

    “아 맞다. 20강 만드는 꿀팁 알려주면 황제님도 도와주기로 약속했었죠!”

    “어떤 도움을 원하는가.”

     

    제국의 황제한테 얻을 도움이라면 역시 그거지.

     

    “금서보관소에 숨어있는 <확정강화권>을 찾게 황실도서관 문 열어주세요!”

    “그러지. 단, 공간중첩은 마차에 무리가 가니 잠시 밖으로 나가도록 하지.”

     

    확장마법이 새겨진 복도의 창문을 열고 나가자 커다란 낡은마차가 뒤에서 삐걱거렸다.

    겉으로만 봐서는 짐마차와 다를 바 없는 비주얼이라 식별 불가능한 외관.

    제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0.1% 확률로 엉겁결에 타게 되는 황제의 마차다웠다.

     

    “오크노디. 금서보관소는 아카데미의 그 도서관보다도 위험한 곳이야?”

    “저기가 더 위험해! 아카데미는 교수님들이랑 선배님들이 정리라도 했지, 제국의 금서고는 사서도 없는 생지옥이야!”

    “…그런 곳을 자진해서 들어가겠다고? 또 정신제압의 서처럼 위험한 금서랑 마주치면 어쩌려고.”

     

    가면을 벗었는데도 쓴 것처럼 느껴지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의 즈앙.

    잔뜩 긴장한 즈앙을 달래주려고 이빨자국을 남긴 팔을 손으로 슬쩍 어루만져주었다.

     

    “!”

     

    정말로 긴장이 컸는지 흠칫 몸을 떠는 즈앙.

    긴장이 풀린 그녀에게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엔 황제님한테 도와달라고 했어. 이러면 금서열람판정은 하나도 없이 둘러볼 수 있어!”

     

    도서관까지 가는 길이 조금 성가시기야 하겠지만 그건 아카데미 도서관원정대에서 한 번 겪은 성가심이기도 하니 감수할만하다.

    황태자도 금기연구소가 엉망진창이 된 마당에 금서보관소까지 신경 쓰지는 못하겠지!

     

    “근데 금서보관소까지는 마차 타고 안 가요?”

    “그럴 필요는 없다. 금서보관소는 이미 털었으니.”

    “엥?”

     

    황제가 망토를 펄럭이더니 책 한 권을 꺼냈다.

     

    ━━━

    [금서보관소 출입명부]

    명부에 이름을 적은 자는 금서보관소에 입장할 수 있다.

    단, 명부에 새겨진 글씨가 지워지면 금서보관소에 잡아먹힌다.

    특별한 잉크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자.

    경솔한 호기심으로 보안술식을 가동시켜 잉크가 지워진 자.

    금서의 일부가 될지니…

    준비되지 않은 자는 함부로 출입하지 말지어다.

    ━━━

     

    금서보관소에 입장하는 출입명부!

    정말로 황제는 출입명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금서연구소는 황실보물고에 보관되어 있지 않았어요? 이건 왜 가지고 왔어요? 황제는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보물고에 드나들 수 있잖아요!”

    “아아. 의식을 잃어 모르고 있었던 건가. 짐은 더 이상 제국의 황제가 아니다. 전직황제, 선황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

    “엥?”

    “지금의 황제는 짐의 2황녀였던 매스각키이니 선황은 보물고의 출입이 금지된다. 하여 황궁을 나오는 길에 대업을 이루는 데 필요한 보물을 모두 가지고 나왔다. 보물고에 썩을 마도구들도 진정한 주인의 손에 들려서 필시 기뻐할 것이다.”

    “에에엥?!”

     

    이게 몬 소리야.

    넋 나간 내게 즈앙이 그간의 일을 들려주었다.

     

    “시치미도 잘 떼네. 어차피 재단의 비밀지령을 받은 오크노디의 계획대로 흘러간 거잖아. 손오천이 혁명군 대장군이 된 것도, 지젤이 제 2의 혁명가가 된 것도, 용사가 황제살해자가 된 것도, 매스각키가 여제가 된 것도 전부 계획대로 아니었어?”

     

    뭐야 그 개꿀잼 이벤트.

    왜 나만 모르는 이벤트가 나온 건데!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복받쳤다.

     

    “오크노디. 모두가 계획대로 성공해서 다행이라고 안도해서 눈물이 나오는 거야?”

    “훌쩍… 그런 거 아니야!”

    “킥킥. 오크노디는 의외로 수줍음이 많네. 알았어. 그런 거 아닌 걸로 알아둘게.”

     

    진짜 억울해서 훌쩍거리는 내 옆에서 즈앙이 훈훈한 이야기를 들은 나그네처럼 아주 흐뭇한 기색을 드러내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업을 성공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훌쩍노디(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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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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