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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4

        

       단전 안에 옹기종기 모인 진기들, 주인의 형상을 취한 쪼꼬미 내공들이다.

       니 편 내 편 갈라서 속닥속닥, 한쪽에선 우르르 뛰놀고 한쪽에서는 투닥투닥.

         

       정종의 진기들은 볕 드는 자리에 떡하니 자리잡아 엄격 근엄 진지한 토론 중이다.

         

       단전 벽 근처 으슥한 자리에서는 사이한 것들이 연신 경계하는 눈빛으로 환희진기 어디 있나 또 쫓아와 괴롭히지 않나 눈치를 본다.

         

       오늘도 평화로운 청의 단전 나라.

         

       청의 진기들은 최근에 좀 숨통이 트인다.

       이제는 정종의 진기들도 제법 요령이 붙은 탓이다.

       어차피 인간 미만의 축생들이야 마음껏 살심이 뛰놀도록 놔두는 참이다.

       최근에는 오히려 부추기기까지 한다.

       애초에 도가 불가의 진기들 역시 근본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기예에 있는 것이라서, 어차피 막아도 차올라 넘치고 터질 살기라면 그냥 나쁜 놈에게 풀면 되겠다고.

         

       그렇게 한 번 제대로 피를 보고 나면 한동안은 걱정이 없다.

       애매하게 남은 흉성만 음심으로 돌려버리는 식으로 처리하니, 예전처럼 단전 비우고 총출동하여 상단전에 큰일났다 불 끈다고 부산하게 굴 이유도 없는 것이다.

         

       덕분에 마기들도 죽을 맛이다.

       정종의 진기들이 단전 가운데 딱 자리를 잡고 있으니, 눈치나 보며 숨을 죽이는 중.

       최근에는 불완전하나 사상의 발현으로 주인에게 마성을 속삭이기 딱 좋은 때지만, 눈치를 보느라 그마저도 꾹 참고 있지 않겠는가.

       정확히는 월녀진기의 눈치를 본다.

         

       푸른 옷 차려입고 무표정한 쪼꼬미 월녀진기의 비호가 아니었다면 마기들도 진작 소녀환희공의 진기융합에 녹아들어 사라지고 말았을 터다.

       하지만, 월녀진기는 마기들에게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소녀환희공의 흡수 통합은 엄격히 막아주고 있으니.

       그렇다고 해서 은근슬쩍 마성을 심어볼 수는 없다.

       그러다 들키면 월녀진기도 계속 현상 유지 정책을 펼칠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리하여 마기들은 시무룩하다.

         

       주인장은 그냥 아주 글러먹었어.

         

       무인으로 태어났다면 마땅히 본연의 실력으로 만인을 무릎 꿇리고 천하에 도전하는 패도를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피로 대지를 물들이고 슬픔과 비탄이 넘쳐 세상이 잠기더라도 그게 뭐 어때서.

         

       내 것이 아닌 평화로운 세상보다는, 인세가 지옥으로 불타더라도 내 것이 되어야 한다!

       멋진 말로 포장하면,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둘 수는 없다!

       딱 사파 놈들과 혈교 놈들, 그러니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도구로만 취급하는 인간 말종들의 사고방식이다.

       애초에 그러니 마기겠지만.

         

       어쨌거나 마기들은 참으로 슬프다.

       그러니 희망은 하나 뿐.

       전설적인 마공이라도 벌컥 문을 박차고 들어와 단전의 서열을 재정립해 줬으면.

         

       그러니 마기들은 습하고 싸늘한 음지로 밀려난 채, 온종일 단전의 문만 바라본다.

         

       그러다, 마참내! 벌컥!

       마기들이 몸을 벌떡 일으킨다.

       오오! 초강력한 전설의 마공 떴냐!?

         

       정종의 진기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손 덜어줄 친구 왔냐!?

         

       그리하여 새로운 친구 입성.

       앙증맞은 심장 그림이 땡땡이로 박힌 치마를 입고-

       정종의 진기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멀쩡한 도가 불가의 신공이라면 저렇게 요사하고 사악한 무늬를 쓰지는 않을 터.

         

       마기들은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다.

       심장! 딱 봐도 우리쪽 아니냐?

         

       그렇게 당당하게 입성한 섭심마기가 돌연 멈칫.

       양손으로 등 뒤에 맨 커다란 보따리가 단전 문에 콱 끼어버린 까닭이다.

       섭심마기가 바동바동, 낑낑 보따리를 끌어당기며 안간힘을 쓴다.

       쭈욱 늘어나는 보따리, 움찔움찔 꿈틀꿈틀 야밤에 사람을 보쌈이라도 해온 듯이 수상하기 그지없는 형상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뾱!!

       단단히 끼었던 거대한 보따리가 빠져나오니 그 서슬에 섭심마기가 데굴데굴 구른다.

         

       그리고 주변을 휙휙 둘러보다가 돌면 눈빛이 번뜩!

         

       섭심공에서 심장을 먹는 행위는 수단일 뿐, 본질은 다른 성질의 진기를 갈취하여 억지로 취하는 마공이다.

       새 집에 들어왔더니 이게 웬걸, 먹음직한 진기들이 아주 바글바글, 뭔가요? 내 생일인가요?

         

       그리하여 섭심마기가 입을 쩍 벌린다.

       동그란 입이 크게 벌어지며 뾰족뾰족한 상어 이빨이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흐으읍, 초강력 진공 청소기라도 감히 들이대지 못할 강력한 인력이 단전 안을 휘감아 빨아들이는 그 때-

         

       꽁!

       섭심마기가 두 바퀴 데굴데굴 굴러 제 머리를 감싸쥔다.

       커다란 눈물방울 달고 중원에 있지도 않은 물음표 여럿을 띄워 올리는 섭심마기의 얼굴 위로 어둑한 그림자가 진다.

       섭심마기가 위를 올려다본다.

         

       알몸 위에 겨우 끈 몇 가닥 몸에 두르고서는 도대체 부끄러움도 없이 다리를 쩍 벌리고 선 쪼꼬미가 제 주먹을 들어보이는 중이다.

       전설적인 탕녀 달기조차 하지 않을 음란한 꼴을 한 주제에 정통 도가의 선기를 품은, 단전의 폭군이자 포악한 군기반장인 환희진기다.

         

       섭심마기가 아르릉.

       환희진기가 갸우뚱.

       섭심마기가 움찔.

       환희진기가 씨익.

         

       환희진기가 섭심마기의 보따리 안으로 손을 쑥 쑤셔넣는다.

       이내 나오는 손에 붙들린 정제되지 못한 진기, 그래서 주인의 형상을 취하지 못한 둥근 혼불이 잡혀나와 바동거린다.

         

       환희진기가 서글픈 표정으로 그 혼불을 바라보다, 제 품으로 껴안아 감싸 안는다.

       혼불의 바동거림이 점차 편안한 꼴으로 일렁이다, 이내 환희진기 안으로 스르륵 녹아 자취를 감춰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에 섭심마기가 땀을 뽈뽈뽈뽈.

         

       그야 흡수의 공능을 가진 내공심법에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 아니겠나.

         

       억지로 심장을 취해 밀어넣고는 압축하여 소화하는 데에 기본 십 년씩 걸리는 섭심공이다.

       운우지락으로 서로의 진기를 교환하고, 기쁨과 사랑, 그리고 쾌락으로 빠르고 정순한 합일을 이루는 소녀환희공 중 누가 우위에 있는 것인가는 굳이 잴 필요가 있을까.

         

       환희진기가 척 구석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그에 섭심마기가 히잉, 눈물방울 뚝뚝.

         

       그러나 환희진기의 표정은 강경하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구석으로 향하는 섭심마기, 미련이 가득 담긴 눈초리로 간혹 빼앗겨 놓고 온 보따리를 흘끔흘끔 뒤돌아보면서.

         

       그에 마기들이 실망하면서도 서럽게 우는 섭심마기에게 우르르 몰려들어 꼬옥 껴안아준다.

       그러다 쑥덕쑥덕, 속닥속닥.

         

       눈물을 쓱 훔친 섭심마기가 일어나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긴다.

         

       그에 한구석, 사람 눈동자가 올망졸망 새겨진 무복을 입은 채로 쪼그려 않은 쪼꼬미 파천마기가 인기척, 아니 기기척에 고개를 든다.

         

       이유 없는 폭력이 파천마기를 덮친다!

       강남에서 뺨 맞고 천산에서 화풀이!

         

       머리를 감싸 쥐고 웅크린 파천마기가 크큭, 애처로운 웃음소리를 흘린다.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계속 평화로운 단전 나라.

       오늘도 파천마기는 웃고 있다……

         

       

         

       —-

         

         

       “끄아, 어으윽, 끄으으……”

         

       연신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욕실 바닥에 기묘한 자세로 엎드린 섭심마희 유량이다.

       이마와 양 무릎, 발끝만 바닥에 닿아 엎드린, 절도 아니고 복종도 아닌 기묘한 자세.

         

       익어버린 환부가 어디든 닿으면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기에, 사고가 불가능한 수준의 격통 속에 본능이 취하고 마는 자세다.

       지면과 가장 접촉면이 적은 자세.

         

       청이 무심한 눈빛으로 그 꼴을 내려다보다, 이내 끓는 목탕을 바라본다.

         

       미묘하게 핏빛이 맴도는 것이, 아, 이런.

       생각해보니, 이 목탕은 더 못 쓰겠네.

       게다가 목탕에 물 채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객잔 분들에게 좀 미안한 짓을 했다 싶어서.

         

       “자아. 이제는 어쩌실 건가요? 설마, 이대로 옷을 벗기시려고. 이미 살이 의복에 녹아들었으니 피부 채로 홀라당 벗겨져버리고 만답니다?”

         

       “아니. 이걸로 끝인데? 재수가 좋으면 뭐 살 수도 있고, 뭐 이제부터는 지 팔자지.”

         

       말이야 그렇게 하지만, 의녀로서 청의 소견으로는 이미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꼴에 고수였다고 고통에 숨이 끊어지고 하지는 않는 것이 대단하다고 할까, 아니면 어차피 그 경지도 사람의 심장을 빼먹고 올린 것이라 자업자득 인과응보라고 하겠지마는.

         

       “어머,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시나요?”

         

       “자비는 무슨 자비. 이런 년은 편히 죽는 것도 사치야.”

         

       너도 마찬가지고, 청이 뒷말을 삼켰다.

       청의 흉흉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언연영은 그저 싱글벙글.

         

       “자비는 스스로 필요하기에 베푸는 것이랍니다? 서문 소저에게도 좋지 않아요?”

         

       “됐어, 이제 됐지? 나 간다.”

         

       이 흉악한 끝판왕을 놔둬야 한다는 점은 정말로 가슴이 쓰리지만, 그렇다고 어떠한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빨리 경지를 올리는 수밖에는.

       씨이, 그놈의 화경은 도대체 잡힐 듯 말 듯 약만 올리고, 진짜 금방, 쪼끔인데.

         

       “음. 매정하기도 하셔라. 혹시, 제게 무언가 궁금한 점이라도 없으신가요? 지금이라면 기꺼이 대답해드릴 수도?”

         

       그에 청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아무리 봐도 뻔한 수작질인데.

         

       “어머. 정말이랍니다? 서문 소저가 해준 목욕 수발은 실로 특별한 경험이었답니다. 뭐라고 말씀드릴까요. 간지럽지만 간지러움과는 다른?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청이 눈을 가늘게 뜬다.

       이년, 이거?

       청이 짐짓 퉁명스럽게 대꾸해 본다.

         

       “말을 해. 말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흐으음……. 어쩐치 열감이 피어오르고, 저도 모르게 숨이 가빠지면서 실로 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느낌이 들어서. 회음에서 독맥을 따라 뭉근하게 어떤, 무언가, 음,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이…… 모르겠답니다. 다만, 음. 모르겠어요.”

       

       참고로 회음혈은 골반 아랫면의 정중앙, 독맥은 하면 척추를 따라 흐르는 큰 혈도다.

        

       언연영이 답지않게 중언부언, 정말로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어라. 이년, 이거 봐라?

       청이 끝판왕 공략의 실마리를 잡았다.

       청이 시치미를 뚝 떼고 또 퉁명스럽게.

         

       “그럼, 한번 더 해보면 알겠네.”

         

       “어머나아. 너무 반가운 말이지만, 저도 나름의 일정이 있어서요. 안타깝지만, 다음을 기약하도록 할까요? 당신께서도 빨리 돌아가고 싶으시잖아요?”

         

       이런, 아까비. 아예 보내버리고 겸사겸사 저승길도 보내버릴 수 있었는데.

       청이 아쉬운 속내를 꾹 참는다.

       더 권유하다 수상하게 여기면 아예 작은 가능성도 사라져버릴 테니까.

         

       어쨌거나, 유난히 기분이 좋아보이는 게 그거 때문이었나?

         

       “좋아. 그러면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시혈독인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해?”

         

       “어머. 반칙이랍니다? 그건 대답해 드릴 수 없어요?”

         

       “아니, 지가 대답해준다면서.”

         

       “자아. 그러면, 다음?”

         

       “시혈독인이라는게 정확히 뭔데?”

         

       “어머나. 자신의 일을 타인에게 묻고자 하시나요? 안 된답니다?”

         

       “아니, 뭔. 그러면 목적이 대체 뭐야? 왜 혈교에 들어가서 돕는 척을 하는데?”

         

       “개인적인 사정이라서요. 아무리 친애하는 당신이라 해도, 오히려 그렇기에 감추고 싶은 일이 있는 법이랍니다?”

         

       “혹시 약점 같은 거라도 있니?”

         

       “서문 소저를 향한 제 마음 정도일까요?”

         

       “혹시 기막힌 신공 같은 거라도 익혔니? 나한테도 좀 가르쳐 줄래?”

         

       “호신으로 익힌 언가권과 생심결이 전부랍니다. 하지만 빈말으로도 신공이라 하기에는 모자란 무공인걸요? 무림맹 서고에 ‘수당 시대 기록을 바탕으로 도검의 형태에 따른 인체학적 발달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비급을 숨겨두었으니 얼마든지 익히셔도 좋아요.”

         

       “아니, 제목을 지어도 그따위로. 음, 그래서 정확한 경지가 어딘데? 생사경? 그 이상?”

         

       “그건 대답해드릴 수 없답니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대답해드릴 수 없는, 대답이 존재하지 않는걸요.”

         

       그에 청의 이마에 핏대가 불끈!

         

       “아니, 뭐 하나 제대로 대답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왜 괜히 물어보라고. 하. 이럴 줄 알았지. 됐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진짜 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지.

       어쨌거나 짜증 나는 년이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된 정도를 빼면 손해 본 것도 아니고.

         

       “후훗. 그럼, 이제 충분하겠어요.”

         

       그리고는 발라당, 돌연 자리에 드러눕는 언연영이었다.

       동시에 욕실로 여인들이 들이쳐 언연영 곁에 척 달라붙더니, 뒤이어 율노의 시체가 둥둥 떠올라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쩌적, 기묘한 파열음과 함께 공중에서 산산히 분해되는 율노의 시신.

       그 아래에 있던 언연영과 여인 셋의 전신에 피와 살점, 내장들이 쏟아진다.

         

       “지금, 또 무슨 개짓거리를-”

         

       “크아악!!” “마마!?” “마희 님!!”

         

       순간, 구 층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온갖 목소리들.

       사람답지 않은 괴성도 있고, 소리를 높여 맞는 목소리는 분명 섭심마희 유량을 찾는 것들이다.

         

       그에 청이 아뿔싸.

       이년, 애초에 대답을 해주려는 게 아니라 혈교 놈들이 몰려올 때까지 시간을 끌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추가 / 노벨티콘 후보였던 파천마기입니다.. 이건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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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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