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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4

        

         

       하지만 대처법이 연구되었다고 해서 쓸모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암살용으로는 여전히 쓸만하였고, 총과 같은 무기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지역에서는 꽤 쓸만한 주술이었으니까.

         

       ‘회귀 전에도 미국에서 종종 보았지….’

         

       회귀 전, 그는 미국 지역에서 마탄의 주술을 사용하는 이들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진성이 마탄의 주술을 보고 흥미로워했던 이유였다.

         

       마탄의 주술은 진성 역시 잘 알고 있는 주술이었다.

       아니, 마탄의 주술은 물론이고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주술까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주술 그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가 흥미를 느낀 것은 인권단체장이 마탄의 주술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흐음. 저자는 어찌 그 주술을 알게 되었을꼬?’

         

       주술은 정확한 방법만 알면 사용할 수 있는 이능.

       그렇기에 지식이 이어지기만 한다면, 기록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상한 것도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런데 어째서 관심이 가는 것일까?

       어째서 저 인권단체장이 저 주술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이리도 마음이 쓰이는 것일까?

         

       진성의 직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저자가 저 주술을 알게 된 것은 단순히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주술을 익히거나, 우연히 기록물을 발견한 뒤 주술을 습득한 일반적인 사례와는 다르다고. 분명히 진성이 흥미로워할 만한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진성은 직감이 속삭이는 소리에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음에도 별은 그에게 길을 제시해주지 아니하였다.

       속삭임도 없었고, 길로 인도해주는 것 또한 더더욱 없었다.

         

       그 까닭은 사람이 빚어낸 물건에 존재하였으니.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이 별들을 가리고, 교란하고,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라.

       인공위성은 별들의 속삭임을 차단하였고, 별과 사람이 이어질 수 없게 만들었다.

       별을 읽게 하지도 아니하였고, 별을 읽고 점을 치는 것 역시 막아내었다.

         

       하지만 진성은 하늘을 통해 답을 알아내지 못했음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점성술을 방해하는 인공위성이 하늘에 떠 있음은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 아니었는가.

       거기에 지금 하늘을 보고 있는 이 몸으로는 인공위성이 없었더라도 제대로 점을 치지 못했을 것이니, 애초에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하늘을 올려다보았느냐 하면-

       그건 그냥, 습관 같은 것이었다.

         

       “흐.”

         

       진성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반쯤 무너져 밖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벽에서 등을 돌리곤 발을 옮겼다.

         

       저벅.

       저벅.

         

       그가 걸을 때마다 발소리가 들린다.

       잘게 부서져서 모래처럼 되어버린 빌딩의 잔해가 그의 발에 붙었다가 떨어지며 소리를 자아내었고, 매끈했던 바닥을 긁으며 듣기 싫은 소음을 내기도 했다. 모래가 되지 못한 자갈 크기의 잔해들은 그의 발에 치였고, 돌멩이 크기의 물건은 구르거나 튕겨 나갔다.

         

       그렇게 그가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마치 산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이.

       사람이 움직일 때 으레 발소리를 내듯이.

         

       그렇게 진성은 소리를 내며 빌딩의 잔해 속에 파묻힌 무언가를 향해 걸어갔다.

         

       마침내 그가 도착한 곳에는 사람이었던 것의 잔해가 있었음이라.

       걸치고 있는 옷은 걸레로도 쓰지 못할 정도로 난자가 되었고, 한때 깨끗했을 하얀 뼈는 먼지가 잔뜩 묻어 더럽혀져 있다. 사람의 형상을 만들며 조립되어 있었을 뼈는 흩어져 있었고, 한때 멀쩡했을 뼈는 부러지거나 금이 쩍쩍 가 있었다.

       그리고 반쯤 으깨진 해골은 다 망가져 가는 파란 조명이라도 삼키기라도 한 듯 자그마한 파란 불빛을 반짝이고 있기까지 하였다.

         

       [ 오, 훙-건(houngan). 왔는가-? ]

         

       해골은 턱을 딱딱 소리가 나도록 움직였다.

       그렇게 힘겹게 열린 턱에서는 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그 소리는 게데의 것과 닮아있었다.

         

       아니, 닮았을 수밖에 없었다.

       저 해골이 바로 게데였으니까.

         

       [ 오. 내 꼴을 보면 알겠지? 나는 말이야 참으로 처참하게 당했지. 하, 내가 여자도 아니고 남자에게 이런 꼴을 당할 줄이야. 마치 기진맥진한 새신부와 같은 꼴이 아닌가? 물론 그 상대가 여자라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하- 남자에게 말이야. 남자인 내가 남자에게 이렇게 당하다니, 이거 참 기분이 좋지 않아. 그것도 그냥 당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나지 않으니- 하-하-하! ]

         

       게데는 자신에게 다가온 진성에게 다짜고짜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다.

       물론 앞서 그러하였듯, 천박한 농담을 추가해서.

         

       [ 그거 아나, 훙건? 나는 살아있을 적 해적이었지. 오, 물론 보물을 탐한 건 아니었어. 나는 평범한 어부였는데- 음. 어느 날 갑자기 항구에 배가 떠억 들어오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곤 마을의 남자들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한다는 말이 해군으로 징발하는 것이라고, 이것은 합법적인 절차이며 합법적인 징병이라고 하였지. 그리고 나 역시 그 대상이었고 말이야. ]

         

       게데는 눈동자 대신 자리 잡은 파란 불빛을 움직여 진성을 바라보았다.

         

       [ 하지만 그렇게 강제로 끌려간 곳이 얼마나 행복한 곳이겠나? 그곳은 정말 끔찍한 곳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 하지만 어느 날 해적이 나타났고- 나는 그 일원이 되었네. 하하, 그리고 해적은-음. 내 취향에 상당히 잘 맞았어. 뭐, 적어도 해군보다는 나았지! ]

         

       게데는 묻지도 않았음에도 자신의 과거를 떠들었다.

       로아가 되기 전, 살아있는 사람이었을 적 자신의 과거를 말이다.

         

       [ 물론 배에서 생활한다는 건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지. 벌레가 들끓는 데다가 곰팡이도 잔뜩 피어있으며 벽돌보다도 단단한- 심지어는 망치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쉽 비스킷(Ship’s biscuit)에, 썩어가는 물, 너무 많이 먹어서 냄새를 맡는 것조차 역겨운 해산물들. 오, 거기에 잇몸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치아가 빠지는 괴혈병도 있지! 여자를 구경조차 하지 못하는 건 덤이고! ]

         

       그것은 마치 죽기 전, 전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 하지만 그곳에는 자유가 있었어. 그곳에서는 피부색으로 차별하지 않았고, 출신 지역으로도 차별하지 않았지. 어떤 종교를 믿건 자유였고, 심지어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더라도 그것을 존중해주었어! 그리고 그 자유는 나쁘지 않았지. 음,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면- 그 시절에도 이런 꼴은 당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지! ]

         

       게데와 진성의 눈이 마주쳤다.

         

       [ 이봐. 이름 모를 훙건. ]

         

       게데는 평소의 천박한 농담은 온데간데없이 진중한 말투로 물었다.

         

       [ 나를 어찌할 생각이지? ]

         

       그리고 그 물음에 진성은 방긋 웃으며 답하였다.

         

       “오, 위대한 로아시여. 제가 어찌 감히 로아에게 어떠한 일을 하겠습니까?”

         

       [ …훙건. ]

         

       눈을 크게 뜬 채 놀라며 반문하는 진성의 모습.

       하지만 게데는 그 모습에 속지 않았다.

         

       [ 이 빌딩은 묘지고, 묘지에는 죽음이 가득한 법이지. ]

         

       “당연한 이치입니다. 묘지는 죽은 자가 안식을 취하는 곳이니까요.”

         

       [ 그래. 그런데 말이야. 동시에, 묘지는 빈터를 용납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 묘지에 파인 구덩이는 관을, 시체를 요구하는 법이야. 그 빈자리는 반드시 채워져야 하고, 그 의지는 곧 죽음의 것과 같은 법이야….]

         

       게데는 거기까지 말하곤 잠시 말을 멈췄다.

         

       [ 그런데 말이야. 그 의지가 나를 가리키고 있네. 어서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아, 참으로 불경한 의지로군요. 감히 죽음을 집어삼키려는 관이라. 어찌 그러한 버릇없는 묫자리를 선정하셨나이까.”

         

       진성은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웃었다.

       입가가 찢어질 듯이.

         

       “오, 성 토마스 아퀴나스 가로되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에겐 육신을 변형시키는 힘이 있다고 하였느니. 그들의 힘은 모든 물리적 힘을 능가하는 법이라! 아, 위대한 로아시여. 모든 물리적 힘을 초월하여 묘지를 벌하십시오. 감히 일해야 할 존재를 안식에 취하게 하려는 저 버릇 없는 것을 꾸짖고 일어서 움직이십시오!”

         

       미소가 짙어진다.

       입꼬리가 찢어진다.

       그리고.

       진짜로, 입매가 찢어졌다.

         

       “기둥이 우뚝 솟구쳐 오르매 그것은 땅에서 비롯된 것이라. 땅에 사는 것이 높게 솟은 구조물을 만들어 하늘을 감히 범하게 하고자 하니 이 참담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그것은 길이 되어 하늘에서 어떠한 것이 내려왔나니 그것은 인간과는 다르고 권능을 휘두르는 존재라. 오,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참으로 너는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

         

       찢어진 입가는 꿈틀거리며 부서져 내렸다.

       그렇게 부서진 조각은 땅에 떨어지고, 바스락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였음이라.

         

       그것은 사람의 육편도 아니고 인공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벌레였으며, 해를 끼치는 종류였음이니.

         

       땅에 떨어진 벌레들은 다시 뭉치며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그 형상은 얼기설기 만들어낸 가면과도 같았고, 다 썩어버린 사람의 얼굴 가죽과도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입가를 움직여 말했다.

         

       “어느 날 신도가 신실한 사제에게 물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되어 그분의 품에 안긴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옛이야기에서는 죽은 자들의 세상은 땅속에 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죽은 영혼이 떠나 자리 잡는 곳은 하늘입니까? 땅속입니까?”

         

       그리고 땅에서 말하는 그 소리와 함께, 진성은 말했다.

         

       “부두의 낙원이 있으니 그 이름은 기넹(Guinen)이라. 사람이 죽어 혼령이 되어 그곳으로 떠나는 곳이니, 아 그곳은 낙원이로다 참으로 낙원이로다. 다만 그 길은 치밀하고 험하기 짝이 없어 인간 세상에서 그곳으로 향하기는 어렵지 아니하나 다시 인간 세상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나니! 기둥, 연결축, 포토미탕(Poteau mitan)을 타고 이곳으로 오소서!”

         

       투둑.

       투두둑.

         

       진성의 몸에서 벌레가 떨어진다.

       떨어진 벌레는 가면의 형상이 되고, 입을 만든다.

         

       그리고 떠들기 시작한다.

         

       “죽은 자와 산 자에게는 엄격한 구분이 있으니, 그것은 셋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그렇다면 육신이 없고 정신과 영혼만 남아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천사가 내려왔으되 그것은 사람이 가진 것과는 다른 형태의 존재라. 만질 수 없는 육신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다면 천사는 죽은 자입니까 산 자입니까? 정신과 영혼만 남은 것이 혼령이고 귀신이라면 육신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천사는 과연 천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까? 만약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귀신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것은 날갯짓하지 아니하고 땅에서 기어 올라왔습니다. 그렇다면 연옥에서 빠져나온 망자와 무엇이 다를 것이며 유황불을 휘감은 마귀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신실한 질문에 부디 답하여 믿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하옵소서.”

         

       가면은 의문을 던진다.

       진성은 로아를 찬양하고, 기묘한 행동과 언행을 보인다.

         

       그것은 사람이 아닌 것이 행하는 의식처럼 보이는 것이라.

         

       [ 나를 제물로 쓰려고 불렀군. ]

         

       게데는 체념한 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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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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