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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5

        

         

       “일찍이 광야를 건너온 순례자가 있어 험난한 길을 걸었나니. 발 하나 간신히 디딜 좁디좁은 길을 지나고 절벽 틈바구니에 끼어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만나고자 하는 이를 만나 묻기를, 은수자(隱修者, hermit)님을 드디어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라 하였다. 그리고 고뇌가 가득한 얼굴로 묻기를 ‘은수자님 제가 옛적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천사께옵서 강림하였습니다. 새까만 하늘의 위에 불길이 넘실거리고 온 세상이 밝게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날개가 튀어나왔는데, 그 날개의 길이는 해가 지는 서쪽과 해가 뜨는 동쪽을 전부 덮어 태양이 뜨고 짐을 알 수 없게 만들 정도였고, 불길에 휩싸인 몸은 사람의 것과는 다르나 눈이 있어 저를 또렷하게 바라보았나이다. 그 시선에는 따스함 대신에 매서움이 있어 저를 아래로 깔아보았나니, 저는 그만 두려움에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은수자님, 외딴곳에서 기도와 고행을 하시는 분이시여. 제 물음에 답하여주십시오. 제가 과연 천사를 본 것이 맞습니까? 천사께옵서 저를 꾸짖고 가신 것입니까?’라 하였다.”

         

       “보뒤장(Voduisant)이 묻기를 사람의 세상과 로아 세상의 구분이 지어져 있는가? 오기 힘들다고 할지라도 길이 연결된 이상 그것은 구분이 되어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고립되어 고여있는 웅덩이는 구분이 된 것이 맞으나, 물길이 일어 다른 웅덩이와 연결이 되었다면 그것은 실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이 맞습니까? 물길이 연결이 된 웅덩이가 커지고 커져 둘이 합쳐지게 된다면 큰 웅덩이가 되고, 그것이 커지면 호수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닙니까? 그렇게 커다란 하나가 된다면 거기서 무엇이 구분되었고 무엇이 시작이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까?”

         

       끊임없이 진성과 가면에서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맺고 끊으며 차례대로 말하는 것 없이 제 할 말만을 행하는 둘의 말은 점점 섞이고 섞이며 알아듣기 힘들게 변하였고, 말과 같이 변화하고 있다고 속삭이기라도 하려는 듯 진성과 가면의 형상 역시 계속해서 변해갔다.

         

       가면은 또렷해졌다.

       불쾌한 골짜기를 한껏 자극하였던 앞선 모습과는 다르게 가면은 점점 또렷해졌고, 이제는 정말 사람의 얼굴을 도려내서 땅바닥에 떨구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혹은 할리우드에서 사용하는 분장용 특수 마스크가 이곳에 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진성의 얼굴은 점차 기괴하게 변했다.

       진성의 얼굴에서는 계속해서 벌레가 떨어져 내렸다.

       단단하게 결합하여 얼굴의 형상을 이루던 벌레는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렇게 떨어진 벌레는 본래 있던 곳으로 향하는 대신에 바닥에 있던 가면으로 향해 얼굴을 점차 또렷하고 세세하게 빚어내었다.

       그리고 얼굴을 만드는 재료가 점점 사라지는 얼굴은 벌레에게 파먹힌 벌레를 연상케 만드는- 아니면, 세월이 지나 망가지고 만 사람 얼굴 가면을 보는 것처럼 기괴한 모습이 되었다.

         

       “고행하던 은수자 이르기를, ‘여행자여 네가 본 것은 천사가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여 모두가 천사라 할 수는 없는 까닭이니라. 날개가 있다고 모두 천사라면 날짐승은 모두 천사이더냐?’라 답하였으니, 여행자는 그 대답에 더더욱 기이함을 느껴 그럼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은수자는 ‘여행자여 너는 악한 존재에게 홀린 것이다. 그것은 천사의 탈을 쓰고 나타나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고, 사람의 마음에 미혹을 불어넣어 신앙을 시험케 하나니. 너는 그 사악한 꾀에 빠져 지금까지 방황하며 신앙심을 단단하게 만들지 못한 것이다.’라 하였다.”

         

       “보뒤장(Voduisant)에게 답을 말해주기를 그것은 한 곳에 있지만 섞이지 아니하고 구분이 지어지고 있음이라. 통로가 있다고 하여 구분이 되지 아니하는 것은 집과 같은 것이라. 집 안에는 여러 방이 존재하고 그 방마다 문이 달려있지만, 누구도 방과 다른 방이 구분되지 아니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는 문이 통로이자 벽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며, 다른 요소들로 인하여 구분이 되어있음을 말하는 것과 같음이라. 그리하여 세상이라는 집 안에 로아의 세상과 인간 세상이 같이 있다고 한들 그것은 한데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단언할 수 있음이로다. 그리하여 제단과 기둥이 그 둘을 잇는 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니, 너는 나의 말을 단단히 새겨듣도록 하여라—하였다.”

         

       “여행자가 은수자의 말에 놀라 묻기를 ‘어찌 그것이 천사가 아니라고 하십니까? 꿈에서 본 존재는 거대한 날개를 가졌습니다. 가히 세상을 뒤엎을 기세였는데, 어찌 사악한 존재 따위가 그런 것을 가질 수 있습니까?’라 하였지만, 은수자는 답하였다. ‘악이 거대하지 않다면 어찌 세상이 이리도 악이 창궐할 수 있을까? 악이 날개를 가지지 아니하였다면 어찌 온 세상에 악이 퍼져있을 수 있는가? 악은 거대하고, 빠르고, 많다. 다만 그 힘이 선함에 미치지 아니하고 위대하고 또 위대한 신의 휘광을 감히 범하지 못할 정도에 불과한 것이니, 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신앙을 바로 세우고 굳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방언(glossolalia)에 가깝게 들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퍼지고, 또 퍼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

       둘의 입이 뚝 멈추고, 또르륵 눈알이 굴러 게데를 바라본다.

         

       하나는 해골에 가까운 형상의 몸뚱이에 붙어있는 눈이요.

       하나는 얼굴 가죽만 존재한 채 땅에 붙어있는 눈이라.

         

       그 기괴한 모습은 해골 모습의 게데에 전혀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스스슥.

         

       진성이 발걸음을 옮긴다.

       그 발걸음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을 때와 다를 바 없는 동작인지라.

       그렇다면 그 소리도 아까와 똑같이 울려 퍼져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듯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저벅거리던 소리 대신에 거친 바닥을 빗자루로 쓰는 듯한 소리가 났고, 발바닥이 바닥에 닿고 뜰 적에 바스락하는 소리나 바삭하는 단단한 무언가를 밟았을 때 나는 소리도 같이 울려 퍼졌다. 때로는 뿌직-하는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도 같이 나는 것이, 마치 벌레 밭을 맨발로 거니는 듯하였다.

         

       그리고 진성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가면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스크처럼 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그것이 살짝 떠올랐다.

       마치 부양이라도 하듯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새처럼 날아오른 것도 아니고, 귀신처럼 그저 공중에 둥둥 뜨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의 아래에는 무언가 가느다란 것이 나와 그것을 위로 띄운 것이었는데, 그것은 가느다랗고 길쭉하지만 단단한 것으로 휘감겨 있는 것이 마치 벌레의 것을 연상케 하였다. 그리고 그 가느다란 것 사이사이에는 관절이 존재하였는데, 그 관절은 각자의 모양에 따라 구부러지고 펴지기를 반복하며 가면을 움직이게 했다.

       그것은 소리가 없이 움직였고, 마치 개미 떼가 커다란 먹이를 힘을 합쳐 옮기는 듯 느릿하면서도 신속한 것이었다.

         

       그렇게 두 개체는 게데의 앞에 다다랐다.

         

       [ 훙—건이 아니라 벌-레였군. 하-하-하! 그래, 시체가 있으면 그걸 뜯어먹는 벌레도 있는 법이지. 하지만 이봐, 나는 살점이 하나도 없어. 이런 놈의 몸을 무어 뜯어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 몰려들어? 심지어 먹을 것이 너무 남아돌아서 버리기까지 하는 곳이 이 나라인데—다른 걸 먹는 게 좋지 않겠어? ]

         

       벌레의 무리.

       그것을 눈앞에 둔 게데는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그 농담에는 천박함이 없었고, 여유가 없었다.

         

       마치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듯, 간신히 짜내서 던진 농담인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진성은 그 농담에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죽기 직전에 내뱉는 유언 비슷한 말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눈앞의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의 말을 한다고 그것을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인형이요, 무언가를 흉내 내 만들어낸 인공물이며, 가축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니.

         

       그렇기에 도축에는 망설임이 필요가 없음이라.

         

       진성은 천천히 손을 얼굴로 향했다.

       그리고 듬성듬성 뚫린 구멍에 손가락을 푸욱 꽂았고, 그것을 그러쥐고 양옆으로 힘껏 당겼다.

       마치 얼굴을 두 조각으로 찢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촤악-!

         

       그렇게 얼굴 깊숙하게 파고든 손가락이 쫙 펴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얼굴이 산산이 부서져 내라고, 두 조각으로 찢긴 얼굴은 먼지가 되듯 허공에 흩어진다. 마치 큰 충격을 받고 부서져 내라는 모래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목 위에 얹어져 있던 얼굴은 분해되었다.

         

       그렇게 분해된 얼굴은 최소 단위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분신을 이루고 있던 벌레들이 날갯짓하며 부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부유하는 것들은 벌레 떼(Swarm)가 되어 게데를 거침없이 덮쳤다. 뼈를 덮었고, 뼈를 덮은 벌레를 덮었고, 뼈를 덮은 벌레 위에 또 벌레를 덮었다.

         

       덮고, 덮고, 또 덮는다.

       마치 자신들의 몸으로 고치를 만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벌레들은 게데를 중심으로 단단하게 뭉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뭉친 벌레들은 의식을 행함으로써 얻게 된 에너지를 단단하게 품은 채 굳어버렸고, 주위의 벌레와 결속되어가며 돌덩이처럼 변해갔다.

       그리고 그렇게 굳고, 굳고, 또 굳고.

       그렇게 굳은 벌레들은 길쭉한 기둥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 형태는 말뚝과도 비슷하고 못과도 비슷한 형상인지라.

         

       우뚝 솟아있던 그것은 자연스레 뾰족한 끄트머리가 바닥에 박혀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위로 몰려드는 에너지를 힘으로 삼아 서서히 바닥을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파고들기 시작한 기둥은 점차 가속이 붙어 아래로, 아래로 더더욱 강하게 가라앉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마치 모래 늪에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갯벌에 빠지는 것 같기도 한 것이라.

       그렇게 기둥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저 아래로.

         

       그리고 기둥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자 진성은 머리 없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없음에도 주위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인지 팔을 뻗어 바닥에 놓인 가면을 주워 들었고, 가면을 본래 자신이 얼굴이 있던 곳에다가 올렸다.

         

       그러자 잘린 목에서 벌레가 솟아나며 텅 비어버린 머리를 채우기 시작하였고, 가면을 중심으로 형상을 만들며 사람으로 의태(擬態)하였다.

       다만 앞서 게데에게 적지 않은 수의 벌레를 사용하였기에 머리 안을 채우지 못하여 텅 비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으나.

         

       뭐, 지금 당장은 크게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화아아아아악-!

         

       기둥이 심어진 곳에서 수십 미터의 불기둥이 치솟기 시작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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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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