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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6

    세레나는 예르나의 예상대로 모두가 머무는 것을 흔쾌히 승낙해주었고, 다행히 며칠동안 저택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여권이 무사한 것을 발견한 덕분에 재발급을 받을 필요도 없어져서 베리튼에 갈 준비는 끝이 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이 그렇게 단순히 마무리되진 못했다.

    특수한 체질인 루크가 탈 수 있는 전용 비행기가, 지금은 운용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다.

    루크는 심장에 너무나 큰 마력을 품고 있었고, 일반 비행기는 그런 루크를 감당할 수 없었다.

    현재 주어진 유일한 방법은 시루드쪽 가문의 전용기에 신세를 지는 것인데…….

    그러기엔 눈치가 보이기도 하거니와, 이미 시루드의 할아버지인 소리드가 탑승하고 다른 나라에 가 있는 터라 빌리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비행기가 아니면 베리튼은 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리튼은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내륙.

    또한 온 대륙의 세계수 기술 근간이 되는 압도적인 규모의 세계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마나에 이끌리는 몬스터 또한 루크 숲과 비견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기에 베리튼은 육로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나라였다.

    그것이 지난 몇천년동안 베리튼의 숲이 사람들에게 감춰져있을 수 있던 이유이고, 엘프들이 지금도 베리튼에 고립되어있다시피 한 이유였다.

    이는 현대에 와서도 그 압도적인 엘프 인구비율이 유지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전 대륙을 점령하고 개간해왔다 한들 아직 대륙의 70%는 미답사지역이며, 이곳은 다양한 몬스터가 생태계를 이루고 있으니까.

    그래도 요즘은 몬스터 통제기술이 좋아져서 웨이브가 끝나고 며칠동안은 육로가 열리긴 하지만, 역시 안전한 길은 아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루크는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아는 사람’은, 시에나였고.

    꼼꼼히 짐 정리를 하고 있는 루크를 향해, 예르나가 물었다.

    “루크, 내일부터 에이레스에는 혼자 남는데, 괜찮겠어? 그냥 엄마도 여기 남을까?”

    “아뇨, 전 괜찮아요. 그러니까 안심하세요. 그리고, 저도 어차피 나중에 따라 가게 될 텐데요, 뭐.”

    “하지만…….”

    예르나와 다이튼은 루크가 요즘 표정이 많이 좋지 않은 걸 알고 있었다.

    표정은 늘상 짓는 웃음이었지만, 어딘가 공허해보인다고 해야하나.

    종종, 악몽도 꾸는 것 같고.

    예르나와 다이튼은 서로를 바라보며 속닥였다.

    “역시, 그 일 때문이겠지.”

    “응, 아마 그럴거야.”

    그야, 당연히 멀쩡할 수 없겠지.

    대체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는가.

    “뭔가 기분전환을 좀 시켜주고 싶은데, 뭔가 없을까.”

    “음…….”

    뭐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던 다이튼은, 잔해 속에서 끄집어낸 멀쩡한 물건들 중에 ‘자전거’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

    “자전거는 어때? 창고에 멀쩡한 녀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자전거? 그거 꽤 괜찮은 생각인걸?”

    그리고 마음이 우울할 때는 역시 몸을 움직 이는게 최고라는 건, 예르나도 알고 다이튼도 아는 사실이었다.

    가족과 함께 신체활동을 하면, 분명 기분이 훨씬 나아질 것이다.

    “그러고보니, 루크가 자전거를 탈 줄 알던가?”

    “모르면 가르쳐주면 되지.”

    안그래도 나중에 예르나가 아이를 낳으면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빠로서 지닌 로망이었는데, 예행연습 좀 한다고 치고 이번 기회에 부녀관계를 좀 돈독하게 하면 좋지 않겠는가?

    —-

    “뭐? 자전거?”

    짐을 정리하던 도중들려온 다이튼의 뜬금없는 제안에 루크는 귀를 쫑긋거렸다.

    “그래, 자전거! 타본 적 있어?”

    “아니.”

    루크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자율동력을 이용하는 이륜구동 이동수단을 마법사가 굳이 탈 일이 대체 언제 있었겠는가.

    “배워두면 쓸만할 것 같지 않냐?”

    “음…….”

    루크는 예르나가 별안간 갑자기 자전거에 왜 꽂힌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자전거를 배워두면 쓸만할지도 모른다는 의견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든 배워두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리고, 자전거와 같은 기구를 활용한 운동을 하다보면, 아직 부자연스러운 육체의 조작에도 금방 익숙해질 수 있을 것이고.

    “뭐, 그렇군. 한번 배워보지.”

    그렇게 대답하자 다이튼은 곧장 인근 공터에 자전거를 가져왔다.

    우유를 담는 바구니가 앞에 달린 평범한 주부용 자전거였다.

    잔해에서 꺼냈을 땐 조금 불안한 모습이긴 했는데, 닦고 손질하니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이다.

    “음, 역시 아직 쓸만하구만.”

    오랜만에 꺼낸 자전거의 페달을 돌려보던 다이튼은 과거의 추억에 흠뻑 빠져있었다.

    ‘이 자전거도 오랜만에 보니까 옛날 생각도 좀 나네.’

    이건 부모에게서 떨어져서 혼자 힘으로 디아나를 책임지게 되었을 때, 매일 새벽 이 자전거를 타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우유를 배달하던 그 자전거였다.

    그때의 공기, 풍경, 그리고 마음가짐. 

    모든 것이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새록새록 떠올라 감상에 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그때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구나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조금 대견하게도 느껴찐다.

    그때 그 우유회사 아저씨는 아직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분도 나중에 한번 찾아뵈어야겠네.’

    그렇게 잠시 상념에 빠졌던 다이튼이 먼저 돌아와 루크에게 말했다.

    “자, 그럼 한번 타볼까?”

    “그러지.”

    루크는 다이튼의 제안대로 자전거에 올랐다.

    다이튼이 물었다.

    “어때, 안장 높이는 잘 맞아? 브레이크는 잘 잡히고?”

    루크는 혹시나 자전거가 부서지지는 않나싶어 잠시 몸을 위아래로 눌러보았다.

    다행히 자전거는 삐걱거리는 소리하나 없이 매우 견고했다.

    “괜찮은 것 같네. 타는 덴 문제 없겠어.”

    “좋아, 그럼 이제 천천히 페달을 밟으면서 앞으로 가봐. 넘어질 것 같으면 내가 뒤에서 잡아줄테니까.”

    “음, 그러지.”

    그렇게 루크는 긴장하며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휘청!

    “꺅!”

    그 즉시 넘어질 뻔 했다.

    그런 루크의 자전거를 빠르게 잡아세운 다이튼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 뭐야, 너 뭐든 잘하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자전거에는 재능이 없구나?”

    “…….”

    루크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루크의 뭐든 잘한다는 이미지도 사실은 이미 5000년 전에 쌓아올린 약 100년간의 압도적인 경험이 누적된 결과일 뿐이지, 시루드에게 다트를 지고 말았던 것처럼 완전히 생소한 감각을 새로 익히는 데엔 역시나 당연하게도 어느정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루크 본인은 철저한 마법사의 로직을 지닌 존재로서 운동신경은 그 괴물같은 지식 습득능력에 비하면 비교적 뛰어나지 못한 편이었다.

    게다가, 루크는 아직 ‘반지’라는 매개를 통해 신체에 명령하는 방식과 새로운 프로토타입 신체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니 루크가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하는 것도 굉장히 당연한일이다.

    그러나 다이튼에게는 상당히 재미있는 장면이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꺅!’ 이라니, 푸흡. 평소엔 더 무모한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녀석이 그거 넘어지면 얼마나 다친다고 그렇게 놀라?”

    다이튼은 그 무서운 롤러코스터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즐기던 루크가, 이제와서 고작 느릿한 자전거에서 넘어지는 걸 무서워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웃겼다.

    그렇게 다이튼의 웃음소리가 길어질수록 루크의 얼굴은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꼴사나운 모습이었기 때문에.

    결국 루크는 다이튼의 웃음을 퉁명스러운 쏘아붙임으로 끊어내었다.

    “다이튼, 이제 그만웃고 내게 뭔가를 좀 가르쳐주는 건 어떨까?”

    “아아, 미안 미안. 화났어?”

    “…….”

    루크는 대답이 없었지만, 아무리봐도 삐치기 일보직전인 모습이었다. 

    그에 결국 다이튼은 루크를 더이상 자극하지 않기로하고 자신만의 팁을 전수해주었다.

    “자전거가 원래 속도가 좀 나야 중심잡기도 편하거든.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좀 빠르게 밟아봐.”

    그러자 루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다가 그대가 내 속도를 못 따라와서 날 잡아주지 못하기라도 하면?”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더 멀리 나아가는 자전거의 특성상, 자신이 진심으로 페달을 밟았다가는 다이튼이 잡아줄 수 없을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될텐데, 그에 대한 대비책은 있냐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루크의 질문에 다이튼은 그게 무슨 대수라도 되냐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땐 어쩔 수 없이 넘어져야지 뭐. 그런데 너 다치지도 않는다며? 뭘 그렇게 걱정해? 다시 일어나면 되는 거 아냐?”

    “…….”

    다이튼의 반응에 루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잠시 후, 뒤늦게 아이들과 간식거리를 만들어 공터로 온 예르나는 루크가 위태롭게 자전거를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다이튼, 내 뒤에 잘 잡고 있는 거 맞지? 아까처럼 놓으면 바로 안다!”

    “아, 물론이지~ 잘 잡고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지금 내가 뒤를 못 돌아본다고 거짓말 하는 거 아닌가? 그대는 진실을 말할 때와는 억양과 심장소리가 조금 다르다는 걸 아나?”

    “그건 네가 그냥 너무 잘타길래 놀라서 그런게 아닐까? 진짜 놀란 상태거든!”

    “그래? 정말이지?”

    “기운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와 에피소드는 재활용되긴 했습니다만, 글은 거의 다 새로 쓰다보니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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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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