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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7

        

       회오리치는 불꽃에서 무언가가 솟구쳐오른다.

       그것은 나무가 가지를 뻗듯이 자연스럽게 가로로 자라났고, 하나의 선이구나 싶을 때 다시 끝이 갈라지며 손이 되었다. 그렇게 손이 되었던 것은 조각되는 듯 또렷하게 형상을 이루며 근육을 만들고, 태를 만들고, 완전한 손의 형상을 이룬다.

         

       그렇게 조각되기 시작한 것은 불꽃을 재료로 점차 완전해진다.

         

       팔.

       다리.

       머리.

       몸….

         

       그리고 마침내 그것의 등에서 날개 같은 것이 돋아났을 때.

         

       자리에 있는 이들은 불꽃에서 나타난 것이 천사인 줄을 그제야 알았음이라.

         

       그것은 불기둥에서 태어났으며, 불꽃으로 된 날개를 지니고 있다. 사람의 형상과 흡사하되 그것은 사람보다는 신의 것을 닮았으니, 땅 위에 발을 디딘 자들은 그 형상의 이유를 감히 알지 못할 것이라. 불꽃의 날개가 일렁이며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고, 불로 빚어진 깃털이 하늘거리며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흔들거림에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하였으니.

         

       아, 아름답고 또 기괴하다.

       저 모습을 어찌 세상의 것이라 할까.

         

       불꽃으로 빚어진 몸의 가운데에 소용돌이치는 불꽃이 또 있으니.

       그것은 새하얀 불꽃을 바탕으로 삼고 그 한가운데에 창백한 점을 하나 가지고 있어 비로소 눈인 줄 아니.

       그 눈이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씌운 채 바라보니 아 그 시선이 매섭고도 매섭다.

       참으로도 매섭다.

         

       그 시선을 따라 의지가 울려 퍼지기를.

         

       『 두려워 말라. 』

         

       라 하였으니-

         

       [ …치지직. ]

         

       뭍에 사는 이들은 그것을 들어라.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 발로써 땅 위에 선 것, 날개를 지닌 것, 땅속에 사는 것은 그 말을 들어라.

         

       [ …치직…골…려. ]

         

       지느러미를 가진 것들, 비늘을 가진 것과 비늘을 가지지 아니한 것. 몸에 갑옷을 두른 것, 갑옷을 두르지 아니한 것. 모든 생물은 마땅히 저 소리를 들어라. 참으로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오직 경외를 품으라.

         

       [ —치직—퍼—! 골퍼—!!! 치직—려!!!! ]

         

       아, 저 불기둥은 곧 그분의 일부이자 충실한 종이니 어찌 그것을 두려워해야 하겠느냐? 죄를 짓지 않은 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이요, 죄를 지은 자는 그 죄를 씻고 진실로 후회하고 참회하며 새로워지기를 바라며 회개해야 할 것이니 지성 있는 것들은 마땅히 저 말을 따라 두려움을 버리라.

         

       [ 탱고 골—–치지직–치직! ]

         

       두려워 말라.

       저 불꽃은 너를 해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라.

       내면에서 그 어떠한 속삭임이 너에게 두려움을 심으려 할지라도.

       신이 보내신 종을 경계하게 하는 외부의 사악한 속삭임에 굴하지 말지어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라.

         

       [ ——퍼———–!!!!! 정신 차려———-!!!!!!!!!! ]

         

         

         

         

        * * *

         

         

         

       치지직.

       노이즈.

       노이즈가 낀다.

         

       TV를 틀고 자본 적이 있는가?

       리모컨을 들고 뚱뚱한 TV를 겨누면서 채널을 뒤적거리다가 결국 마땅히 흥미를 끄는 것을 찾지 못하였을 때 그냥 가장 무난한 채널에다가 딱 맞춰놓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딱히 무언가 보고 싶은 것도 없고, 하지만 습관처럼- 혹은 관성처럼 그냥 ‘TV를 보기 위해’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별 흥미도 없는 채널을 시청하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던 적이 있는가?

       싸구려 인조 가죽으로 만든 소파가 그렇게 폭신하게 느껴지고, 눈에는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감긴다. 그리고 귓가에 들리는 TV의 소리가 점점 멀게 느껴지고, 술을 마시다가 정신이 끊어지는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모호해진다. 그렇게 얌전히 잠에 빠져들고, 약간의 거슬림을 느끼면서 눈을 퍼뜩 뜬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노이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 노이즈가 가득 차 있는 TV 화면.

       거기서 들리는 치지지직- 하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

       용케도 저런 노이즈 속에서 잠을 잤다 싶으면서도, 묘하게 거슬리는 듯 안심이 되는 듯 모호한 그 소리 속에서 정신이 되돌아오는 그 감각은, 그래.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본 일이겠지.

         

       지금이 바로 그러했다.

       남자가 느끼는 감각이, 바로 그러했다.

         

       [ 탱고 골퍼! 후퇴하라! ]

         

       잠이 들었다가 깨기라도 한 것처럼 어지럽고 모호한 감각.

       몽롱하면서도 서서히 세상에 색이 돌아오는 듯한 그 느낌.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게 되고, 세상이 점점 입체가 되어 다가오는 그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가득 메우는 거슬리는 노이즈들.

         

       아, 잠에서 깬 것만 같다.

       피곤하면서도 나른한 느낌.

       장작을 가득 넣은 모닥불의 앞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의 바로 그 느낌이다.

       몸을 노곤하게 만드는 열기가-

         

       [ 탱고 골퍼! ]

         

       —빌어먹을.

         

       “Suck!”

         

       남자의 입이 뒤틀렸다.

       잃어버렸던 현실감이 확 차오르고, 노곤해진 몸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확 찾아온다. 잠시 전원이 꺼졌던 기계가 켜진 것처럼 몸 곳곳이 삐걱거리면서 작동하기 시작하였고, 누군가가 아주 약한 전기 충격기를 배때기에 박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이 번쩍거린다. 거기에 약간의 고통은 덤이고.

         

       “Suck!!!!”

         

       고통.

       그래, 신경에 전기를 흐르게 만드는 듯한 이 느낌.

       향정신성 약물이나 어떠한 수단에 당했을 때, 강제적으로 각성시키는 조치-

         

       -그가 무언가에 홀렸을 때 작동하는 ‘보험’이었다.

         

       남자는 눈을 크게 뜨며 뒤로 물러났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평소의 성격과는 다르게, 아주 다급한 몸짓으로 말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우습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런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뒤로 물러나기를 바랄 뿐.

         

       쿠웅-!

         

       그렇게 자신을 홀리게 만든 ‘그것’에게서 멀어진 남자는, 눈에 있는 필터를 작동시켰다.

       자신의 시야를 성능 나쁜 카메라처럼 만드는 것이기에 그는 그것을 그리 애용하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필터 없이 다시 그것을 바라보았을 때, 또 홀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남자는 필터를 씌우고,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나서야 자신을 현혹하던 그것의 형상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불꽃이었다.

       불꽃이었지만, 동시에 사악한 것이었다.

       사악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천사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타오르는 불꽃의 형상을 하고 있고 불꽃의 성질을 품고 있으되 성스럽지 아니하였으며, 귀신을 재료로 만들어낸 모형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이 섬찟함이란.

       저 뜨거운 불꽃에도 차마 숨기지 못하는 이 서늘함이란.

       육신을 뜨겁게 달구고 화상을 입힐 것만 같은 불꽃 속에서도, 영혼은 추위를 느끼며 덜덜 떨리게 만들고 소름을 돋게 만드니.

       저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님은 쉬이 추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천사의 형상으로 떠 있다.

       불꽃을 넘실대면서 날개의 형상을 이루며 방을 가로지르고, 방 곳곳을 불태우며 자신의 존재감을 밝힌다. 그리고는 위엄있는 척 허공에 떠 있지만, 차마 그 사악한 본성을 숨기지는 못하는 듯 불꽃의 끝이 갈라지며 넘실거린다. 마치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탐스러운 먹이가 제 입으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뻐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그렇게 불꽃은 혀를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그리고는 눈알을 굴려 먹잇감을 바라보고, 입이 없음에도 의지를 내뿜어 사람을 현혹한다.

         

       수도 없이 바뀌는 불의 온도.

       사람을 현혹하기에 충분한 화려한 색과 빛.

         

       아, 그 모든 것이 사람을 홀리고 있다.

       그 사악한 성질만으로도 사람을 홀리게 하기에 충분하거늘.

       저 거짓 천사는 자기 몸을 재료로 사람을 홀려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니, 그것은 벌레를 끌어당기는 식충 식물과도 같은 것이며,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과도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니.

         

       저것을 어찌 천사라 할 수 있을까!

         

       “아아- 불꽃의 천사시여. 메타트론이 이 자리에 임하심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보라.

       제가 가는 곳에 지옥의 유황불이 있는 줄도 모르는 저 어리석은 양을.

       저 양은 황홀에 빠져 비척비척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렇게 휘청이면서 움직이며 점점 불기둥에 가까워지고, 마침내 천사인 체하는 저것의 품에 포옥 안기니- 아, 끔찍하고 또 끔찍하다.

       천사의 형상이라 한들 그 몸은 불꽃이라.

       불꽃에 제 몸을 던지는 형국이니, 저자의 처지가 번제에 바쳐지는 새끼 양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을까!

         

       화르르륵!

       머리카락이 타며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몸을 감싸는 천이 타오르고, 가죽이 타오르고, 근육이 타오른다.

       몸이 녹고, 타오른다.

         

       아,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이 아닌가.

       어찌 사람이 저렇게 산채로 타오를 수 있을까!

         

       “오오, 메타트론이시여. 좁고도 좁은 천국의 문을 열어주소서. 이 자리에 불꽃으로 내려와 우리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시옵소서….”

         

       그런데도 저들은 불꽃으로 다가간다.

       앞서간 이가 산채로 타올랐음에도.

       불꽃 속에 몸을 감추고, 그대로 한 줌의 재가 되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저들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비척비척 걸어간다. 그리고 앞서 몸을 던졌던 이들처럼 불꽃에 안기고, 마찬가지로 녹아내린다….

         

       “…내가 저 꼴이 될 뻔했다고?”

         

       그 광경은 성스러우면서도 사악한 광경이며.

       동시에 제정신을 차린 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탱고 골퍼라 불린 남자는, 자신이 목숨을 가까스로 부지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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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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