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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8

       *** ***

         

       오늘은 무슨 날인가.

         

       바로 금명월이 순안감찰어사라는 소문의 해명을 하는 날이었다.

         

       와글와글!

         

       시끌시끌!

         

       국가의 정책을 포고하는 대연단 앞에 모여든 인파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을 지경.

         

       방음 성능이 높은 황실제 고급 천막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바닥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은 소음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천막 속에서 서공과 마주하고 있었다.

         

       혁기린이 혁기린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가장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천하에 단 하나뿐인 영물, 서공을 옆에 세워두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서공의 머리 위에 자그마하게 만들어진 서공 전용 관모를 올렸다. 무대에 올라갈 혁기린과 깔맞춤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결코 쉽지 않았다.

         

       찍!

         

       내가 서공의 머리에 복건을 올리기 무섭게 서공이 꼬리로 관모를 쳐냈기 때문이었다.

         

       “쓰읍, 가만히 있어!”

         

       내가 으름장을 놓아 보았지만 서공의 눈에 서린 반항적인 빛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니 사그라들기는커녕 코웃음을 치며 주둥이를 빳빳하게 치켜올리는 것이 아닌가?

         

       찍찍찍찍!

         

       그러면서도 앞발을 들어 삿대질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자리를 장시간 비운 일 때문에 화가 잔뜩 난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서공과 함께한 이후로 잠깐잠깐 떨어진 적은 있었어도 이렇게 아예 따로 지낸 적은 처음이었던가.

         

       연신 이리저리 손발을 파닥대며 몸짓을 해대는 녀석.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너가 이런 식이면 나도 주인 갈아타는 수밖에 없다!’라는 의사표현인 것 같았다.

         

       눈빛에서 엿볼 수 있는 건방진 기색을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서공은 현재 자신이 중원에서 인기만점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녀석 궁에 갇혀 있는 거 아니었나.

         

       하기사 화경 고수인 혁기린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도 번번이 사라지던 녀석이니 뭔가 수를 써서 빠져나갔겠지.

         

       어쩔 수 없나. 살살 달래는 수밖에.

         

       나는 품에서 영초 하나를 꺼내 서공의 앞발에 쥐여주며 등을 토닥였다.

         

       “야, 미안하다. 미안해! 근데 내가 뭐 나 좋자고 이러는게 아니잖냐.”

         

       찍!

         

       코웃음을 치는 서공. 사람이었다면 ‘그럼 이게 누굴 위한 일인데?’라고 반문했을 듯한 얼굴이었다.

         

       “어? 다 혁기린을 위해서 하는 일 아니냐. 너가 이런 것도 쓰고 잠시 갑갑해도 옷도 입고 해야 때깔도 좋고 일이 다 잘 풀린다 이 말이야.”

         

       찍찍.

         

       혁기린을 위한 일이라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기세가 한 풀 꺾인 서공. 하지만 가늘게 눈을 뜨며 나와 제 손에 쥐여진 영초를 번갈아 바라보는 모습이 결코 나를 향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것 같았다.

         

       하여간 눈치는 더럽게 빨라요.

         

       사실 혁기린의 옆에 서공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 그런 서공이 관복을 입었느냐 안 입었느냐는 계획의 성공여부와 별 관련이 없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었다.

         

       현재 중원에서 가장 절찬리에 판매되는 물품은 무엇인가?

         

       바로 서공 인형이다.

         

       혁기린일상집 역시 많이 팔렸지만 한 권 사면 끝인 혁기린일상집과 달리 서공 인형은 수집 목적으로 다양한 종류를 살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체 얼마나 팔렸느냐.

         

       만약 저작권법이 있는 시대였다면 내 별호는 뇌검낭인이 아니라 만금낭인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관원복을 입은 서공이 공식석상에 나타난다?

         

       그 모습이 인형으로 제작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관복 입은 서공 인형을 제작한 공방들은 자연스럽게 황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어디 저작권법이 없다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거꾸로일까? 을이 갑의 눈치를 보는 것은 세상이 이치이니 관과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면 업장에서는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수익의 일부를 관에 기증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 공방의 기부금을 받은 관에서는 어떻게 나올까. 태수 모가지를 쳐버린 일화로 유명한 순안감찰어사의 몫으로 들어온 기부금을 자기 목구멍에 털어넣을까? 그런 미친놈이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극소수일 것이다.

         

       당연히 황궁으로 진상되고 황궁에서는 그 금액을 나에게 주겠지.

         

       즉 나는 떼부자가 되는 것이다!

         

       편안한 노후! 불로소득!

         

       이 모든 것이 서공에게 옷을 입히느냐 마느냐고 정해져 있다!

         

       찍찍!

         

       연신 수상하다고 외치며 나를 요모조모 살펴보는 서공이었지만 이미 거액의 돈이 걸린 이 판에서 펼쳐진 나의 표정연기를 간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찌익!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영초를 입에 물고는 꼬리를 움직여 관모를 주워 쓰는 서공. 그런 나와 서공의 대립을 지켜보던 궁녀들이 재빨리 달려들어 서공의 몸에 관복을 둘러주었다.

         

       “어머 서공 공!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귀여워!”

         

       새된 소리를 내며 꺄악대며 좋아죽는 궁청전의 궁녀들. 내가 올때마다 싸늘하고 깐깐한 시선을 보내던 그 궁녀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알 수 없는 차별에 몹시 억울해졌지만 아무튼 서공 꾸미기에는 진심인 궁녀들을 보아하니 이쪽은 맡겨도 될 것 같았다.

         

       나의 사리사욕, 아니 노후보장, 아니 혁기린과 함께할 서공의 꾸밈새라는 중요 요소를 점검한 나는 동창의 인원들이 자리잡은 막사로 이동에 상황을 살폈다.

         

       “행사 장소의 확보는 완전히 이루어졌나?”

         

       “현재 예상보다 더한 극심한 혼잡함에 대원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잡상인으로 위장한 이들이 시비를 거는 인근 흑도들을 소탕하고 복귀중이라는 보고입니다!”

         

       “만에 하나 벌어질 실수조차 벌어져서는 아니 된다! 인근 관아에 신분을 밝혀서라도 잡배들을 모조리 감옥에 처넣도록!”

         

       “보고! 현재 낙양에서 금명월 대협을 찾아내겠다고 들쑤시고 다니는 거수자들이 다수 출현!”

         

       “그놈들도 다 관아에 잡아넣어! 제길 이제 곧 시작 시간인데 무슨 문제가 이렇게 많아!”

         

       그야말로 전쟁터에 떨어진 병사들처럼 악을 쓰며 뛰어다니는 동창 요원들을 지나쳐 사마경휘의 막사로 향했다. 천막에 들어가자 사마경휘와 흑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낙양이 터질 지경이니…정보원들과도 연락이 끊겨버렸네요. 이제부터는 도움을 드리기가 어렵겠어요.”

         

       “후, 금의위에도 추가 지원을 요청해야겠구려. 그 외에 특이사항은 없소?”

         

       “이제 지휘 자체가 무의미해졌으니 인파에 스며들어 소요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무인들을 감시할까 해요.”

         

       “그렇다면…”

         

       일이 잘 진행되고 있나 점검차 들렸는데 바빠 보이니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들린 곳은 현재 혁기린의 천막이었다.

         

       “어쩜, 이리 잘 어울리는지! 샘이 날 정도네요!”

         

       “그, 그렇습니까.”

         

       화기애애한 대화가 들려오는 쪽으로 발걸음을 하니 붉은 황복을 차려입은 혁기린과 그런 혁기린의 옷매를 다듬어주고 있는 독고이설과 모용연화 그리고 여일예가 눈에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어떻습니까? 혁기린 대협..아니 유야 공주님이 꾸민 모습 말입니다.”

         

       모용연화의 물음에는 내가 깜짝 놀라길 바라는 기대가 묻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혁기린이 황실의 의복을 입고 호화롭게 꾸민 모습을 이미 금의위 훈련교관 시절에 본 적이 있었기에 깜짝 놀라는 것은 좀 어려웠다.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그렇지만 혁기린의 모습에는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강렬한 붉은 비단에 황금실 자수가 입혀진 옷과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화려하게 꾸며진 모습은 혁기린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으니까.

         

       그 어울림은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던가, 미인은 무엇을 걸쳐도 빛이 난다는 그런 상투적인 말과는 조금 달랐다.

         

       자연스러움.

         

       있어야 할 곳에 응당 있어야만 한다는 느낌.

         

       점창파 도복을 입고 늠름한 표정을 짓는 혁기린의 모습과 같이, 서공을 무릎 위에 올리고 빗을 든 금명월과 같이, 호화로운 복장을 입고 위엄을 뽐내는 유야 공주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내 마음 속 한 구석에서 나를 좀먹던 불안감이 사라졌다.

         

       정말로 나는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일까.

         

       내 결심이 올바른 것이라 치더라도 다른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만에 하나 내 계산이 틀리고 예상이 빗나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면 어떻게 할까. 천하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거늘 정녕 나는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절로 사그라들었다.

         

       설령 실패하여 죽어라 수습하고, 죽어라 수습해도 이 일을 수습하지 못할지라도…역시 이 길이 옳았다.

         

       지금의 혁기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혁기린은, 내가 아는 모든 신분의 혁기린을 합쳐야 비로소 혁기린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떨리는군요.”

         

       나만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있었던 게 아닌지 나를 바라보던 혁기린이 돌연 심정을 고백했다.

         

       “곧 저는, 제가 숨겨왔던 신분의 비밀을 모두 밝히겠지요. 금명월이 사실은 유야 공주이자 혁기린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

         

       금명월이 낙양에서 진행할 해명이자 내가 짠 계획의 마지막은 혁기린이 군중들 앞에서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금명월이 곧 혁기린이고 유야 공주라는 진실.

         

       “두려우십니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지요. 나 하나만 욕먹고 끝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첨창파도 큰 비난을 받을 것이고, 황실의 권위 역시 크게 실추될 일이지요. 물론 호 무사님께도 큰 폐를 끼치게 될 테니까요.”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담는 혁기린.

         

       그런 혁기린의 눈빛은 놀랍게도 참으로 온화했다.

         

       “허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두려움만이 아닙니다. 기대감 역시 제 마음을 떨리게 하고 있습니다.”

         

       기대감이라.

         

       “애인자인행애지 불여공불급.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 자격이 미치지 못할까 마음을 졸이지 말라. 호 무사님께서 저에게 주신 깨달음이지요. 포기했던 신분의 문제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한 것은 그때였습니다.”

         

       “결코 이어질 수 없는 오라버니와 선사님들이 한 자리에서 웃고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때는 그러한 경치를 꿈꾸었고 지금은…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한 자리에 함께 있기를 바라고 있지요.”

         

       혁기린의 마음을 파고든 이들은 누구일까.

         

       나나 일행들. 그리고 서공. 혹은 이 자리에 없는 당도연이나 당소열. 어쩌면 정을 깊게 주었던 서이령이나 당려아도 포함되어 있을까.

         

       그 외에도 내가 모를 이들이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

         

       “호천안 무사님께는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망상이나 다름없는 제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해 이렇게 불철주야 노력해 주셨으니까요.”

         

       “저만 노력한 것은 아니지요.”

         

       “예, 모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혁기린의 시선이 먼 곳으로 향했다.

         

       그 뱡향은 황궁이 있는 쪽이었으니 지금 이 자리에 동행할 수 없는 황제 유정을 떠올린 것이리라.

         

       그 뒤로 혁기린의 시선은 동창의 막사로 향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소문을 제어했던 흑묘와 사마경휘를 떠올린 것이리라.

         

       그 후로는 그저 막연하게 하늘을 보았다.

         

       그 얼굴에 저도 모르는 쓴웃음이 걸린 이유는 아마도 일상담을 퍼트려 준 소천마 위서련과 비천마차를 떠올린 탓이리라.

         

       혁기린의 시선이 방금전까지 자신을 치장시켜 주던 세 사람에게 닿았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독고이설은 나와 함께 독고영천을 악역으로 섭외했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모용연화는 모용서에게 금명월에 대해 언급해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여일예는 이제 혁기린과 함께 연단에 설 것이었다.

         

       “다들, 정말 고맙습니다.”

         

       둥! 둥! 둥! 둥! 둥!

         

       일행들이 혁기린의 인사에 무어라 대꾸하기 전, 포고가 시작됨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찍찍!

         

       관모와 관복을 장착한 서공이 혁기린의 발치까지 달려왔다. 관원 모습의 서공을 본 혁기린은 활짝 웃으며 서공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공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손에 꼬리를 얹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의 결말을 위해서.

         

       혁기린과 서공이 포고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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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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