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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8

   알른 기사단과의 대전이 준비되었단 소식이 퍼져 나갔을 때. 제 1기사단에 속한 이들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품었다.

   

   지금 왕국의 기사로 속해 있는 자들은 모두 베네딕 알른의 영웅담을 들으며 자라왔거나 그의 활약상을 바로 옆에서 보아 온 이들이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에 서 있는 자들은 대부분 알른의 기사가 되는 것을 꿈꾸어 봤다. 왕국을 수호하는 영웅의 곁에서 함께 영웅담을 써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허나 이들의 꿈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알른 가문이 제한을 두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베네딕 알른은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대신 시험을 치르다 도망치고자 하는 이들을 붙잡지도 않았다. 되래 자신의 자존심을 내다버린 채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기에 알른에서 시험을 치렀던 기사들은 도저히 그 날의 정경을 잊지 못했다.

   

   며칠 밤을 세워가며 이루어지던 시험을.

   

   포기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으리란 확신이 들던 지옥을.

   

   그 지옥에서 빠져나온 후부터 매일 같이 패배감에 젖어 살던 자신을.

   

   차라리 시험조차 치르지 못하게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천재라 생각하던 스스로가 사실 별 것 없는 인간임을 몰랐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애초부터 왕국의 기사단에 들어오기 위한 시험을 치르고 충성을 다했다면 이런 패배감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분명 모두가 선망하는 위치에 선 기사들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패배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패배감은 길고도 긴 세월이 지나고서도 흐려지긴커녕 오히려 짙어져 열등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알른 기사단의 전설은 수십 년 전에 끝났다!”

   

   왕국의 기사단장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 누구보다도 베네딕 알른에 대해 깊은 증오를 지닌 이가 자신의 주먹에 힘을 더한다.

   

   “지금 우리와 겨룰 자들은 긴 세월 동안 제대로 된 실전 한 번 치러보지 못한 반푼이들 뿐!”

   

   기사단장의 말은 옳았다. 자신의 아내가 죽은 후로 칩거에 들어간 베네딕은 알른 가문의 기사들과 함께 자신의 영지에 갇혔으니까.

   

   그에 반해 왕국의 제 1기사단은 어떤가. 왕국을 수호하는 검을 자처하는 이들은 매일을 실전 속에서 살았다.

   

   “이번에 겨룰 승부는 개인의 강함이 아니다! 기사단으로써의 완성도다! 베네딕 알른이 아무리 괴물 같은 존재라도 결국은 하나! 홀로 기사단 전체를 완성시킬 순 없어!”

   

   기사단장이 핏대를 세워가며 외치는 것을 듣던 기사들은 마음속에 혹시나라는 감정을 품었다.

   

   과거에는 무너져 내렸던 자신들이라 할지라도 그 때의 패배감을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러 온 지금은 다르지 않을까.

   

   저들이 평온 속에서 저물어가는 동안 몸에 혈향을 새겨 온 자신들이라면 알른의 기사들을 쓰러트리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왕궁의 명예를 걸어라! 그대들은 이 나라의 정예다!”

   

   왕국의 기사단장. 타볼은 함께 목청을 드높이는 기사들을 보며 흥분이 서린 미소를 지었다.

   

   작년 파트란 가문의 파티에서 일어났던 일은 내게 큰 굴욕을 새겼다.

   

   자그마한 여자아이 하나에게 놀아난 병신이라 불리고, 가문의 사람들에게는 욕지거리를 들었으며, 여러 기사들에게 은근한 무시를 당했지.

   

   허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내가 여태까지 키워낸 왕국의 기사단이 베네딕 알른의 기사단을 짓누르는데 성공한다면 나의 유능이 증명될 터이니!

   

   베네딕 알른. 내 무력으로 그대를 이기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허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힘은 무력뿐만이 아니지.

   

   어디 한 번 보자꾸나. 수십 년 간 평온 속에 잠들어있던 기사 무리가 어떤 꼴을 하고 있을지 말이야.

   

   눈빛이 형형해진 기사들을 보며 히죽 웃은 그는 궁중의 공간술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얼마 전 소울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사건 당시 공간마법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 왕궁의 명예를 실추시켰던 공간술사를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자신들의 부하와 함께 마법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되었겠지요?”

   “무. 물론입니다. 제 1기사단장님.”

   “부디 실패하지 않길 빌겠습니다. 당신의 무능을 또 다시 고발했다간 여럿의 목이 날아갈 테니까요.”

   

   살벌한 웃음과 함께 순간이동의 진에 발을 들인 타볼은 푸르른 초원의 풍경을 눈에 담고서 혀를 찼다. 기왕이면 한 번 더 실패해주길 바랐거늘. 아쉽군.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었나.”

   

   알른 가문의 기사들은 왕국의 기사단보다 먼저 이 곳에 자리를 잡은 채 몸을 풀고 있었다.

   

   저들 또한 이번 일에 긴장을 한 모양이지?

   

   하기야 오랜만의 실전일테니 굳은 몸을 푸는 것도 당연한 일.

   

   음?

   

   타볼은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이는 알른의 기사들을 보고서 순간 굳었다.

   

   왜 일개 기사가 휘두르는 검이 저토록 묵직한 것이지?

   

   얼굴을 보면 그리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 듯 한데 어찌 저런 기술을.

   

   아니. 저 뿐이 아니다. 다른 이들이 휘두르는 무구 또한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하나 쉬이 대응할 수 있는 게 존재치 아니해.

   

   …진정해라. 알른의 그 지옥 같은 훈련을 거쳐 온 괴물들이다.

   

   육신의 강도가 강한 것은 이미 예상한 바.

   

   분명 저들은 강하지만 그렇다 해서 우리와의 격차가 극심하진 않아.

   

   저들의 지옥과 같은 훈련을 반복했듯 우리도 지옥 속에서 살아왔다.

   

   이만한 차이라면 충분히 경험으로 좁힐 수 있어.

   

   기사들의 수준을 확인한 타볼이 침을 꿀꺽 삼키는 동안 그의 뒤를 따라 도착한 왕국의 기사들은 몸을 풀고 있는 상대를 살피며 손에 힘을 더했다.

   

   “루. 루시! 잠시 기다려 보거라! 정말 그 갑옷을 입는 게 맞느냐!? 최소한 위에 다른 무엇이라도.”

   “맞습니다! 아가씨! 아무리 전설적인 대장장이가 만들 물건이라 한들 그것은!”

   

   그 때였다. 훈련을 하는 기사들의 뒤편에서 알른 가문의 부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이라면 기사들의 시선은 모든 기사의 동경인 베네딕에게로 향했을 것이다.

   

   베네딕 알른이란 존재가 지닌 상징성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할 수준이니까. 그렇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본래 거구의 기사에게로 향해야 할 시선은 그 앞에서 통통 튀어다니는 여자아이에게로 향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의 현신이란 찬사를 받는 여자아이, 루시 알른은 품격 없는 모험가조차 입지 않을 기괴한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저걸 갑옷이라 불러야 하는가?

   

   반드시 가려야 할 부위만을 간신히 가리고 있는 저것이 어찌 갑옷인가.

   

   질 좋은 천을 갑옷 위에 걸쳐 피부가 드러나는 것은 막았다만 딱 그 정도.

   

   몸의 선이 훤히 드러나는 저 옷은 어딘가의 무희나 입을 법한 무언가였다.

   

   귀족 가문. 그것도 명성 높은 변경의 백작가인 알른 가문의 여식이 저런 옷을 걸치다니!

   

   왕국의 기사로써 교육 받아 온 기사들은 자신의 상식을 거스르는 모습에 눈을 끔뻑였다.

   

   다른 이들이 어찌 생각하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

   

   루시 알른은 제 1기사단을 발견하고도 태연하게 장난스런 웃음을 흘렸다.

   

   “응?♡ 다른 사람들한테 이런 모습 보여주면 안 돼?♡”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

   “왜애?♡ 왜 보여주면 안 되는데?♡ 내 귀엽고 멋진 모습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아?♡ 난 잘 모르겠는데에?♡”

   “그. 그것이.”

   “왤까아?♡ 무슨 이상한 생각을 했길래 보여주면 안 된다고 한 걸까?♡ 추잡하고 역겨운 입으로 꼭 들어보고 싶은데?♡”

   

   타볼을 포함한 왕국의 기사들은 저기에 대답할 말이 무엇일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귀족 여성으로써 지켜야 할 격식이 존재한다는 말이면 충분하단 사실을 말이다.

   

   허나 베네딕 알른을 비롯한 알른 가문의 사람들은 독선적인 여자아이의 말에 쩔쩔 맬 뿐 그녀를 다그치지 못했다.

   

   “허. 괜히 긴장했군. 알른의 기사단이 이 꼴일 줄이야.”

   

   왕국의 기사 중 누군가가 내뱉은 말에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무어가 대륙 최강의 기사단인가.

   

   건방진 여자애 하나에게도 충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 곳이 어찌 대륙의 두려움이 되는 존재들이란 말이냐!

   

   “이보시오.”

   “왜 그러십니까? 저희가 못 할 말을 했습니까?”

   

   비웃음을 들은 알른의 기사들이 기세를 피어올리지만 방금 전의 추태를 본 왕국의 기사들은 오히려 어깨를 폈다.

   

   “아무리 가문의 영애라지만 저 모습을 보고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다니.”

   “기사의 마음가짐은 도대체 어디에 내다버린 것인지.”

   

   대결이 시작되기도 전이거늘 기사단 사이에 전운이 피어오른다.

   

   누군가 신호를 하는 순간 그대로 투쟁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

   

   저 마다 자신의 무기를 쥐며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질 상황을 기다리던 그 때. 저 뒤 편에 있던 루시 알른이 왕국의 기사들 앞으로 튀어 나왔다.

   

   “야♡ 동정내 풀풀 나는 찌끄래기 기사♡”

   “…절 부르신 겁니까?”

   “용케도 알아챘네?♡ 너 말고도 비슷한 등신들이 한 가득인데 말야♡ 생긴 것처럼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본 찌질이였나봐?♡”

   

   맨 앞에 서 있던 기사는 저잣거리에서도 듣기 힘들 법한 욕설에 입술 끝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슨 용무이시죠?”

   “네가 알려준다면서?♡ 내 귀엽고 멋진 갑옷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모든 것이 문제이지요. 드높은 백작 가문의 영애께서 이런 갑옷을 입으시다뇨!”

   “저기♡ 저기♡ 내 말이 이해가 안 돼?♡ 지능이 낮아서 사람 말을 이해 못 하는 거야?♡ 난 분명 뭐가 문제인지 알려달라 그랬는데에?♡”

   

   무엇이 문제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노출.

   

   드러나는 곳이 너무도 많다.

   

   규중의 처녀라면 감추어야 할 곳들이 훤히 드러나 있다.

   

   허나 기사는 이 말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러기엔 루시 알른의 뒤 편에서 쏘아지는 베네딕의 날 선 시선이 두려웠으니까.

   

   “왜 말 못 해?♡ 우리집 개들한테는 난리치더니 왜 이젠 입을 다무는 거야?♡ 응?♡”

   “…”

   

   한시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길 기도하던 기사였지만 루시 알른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긴커녕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설마 나한테 욕정한 거야?♡”

   “무. 무슨 말을!”

   “푸흡♡ 푸하하핳♡ 당황한 것좀 봐♡ 그렇구나아♡ 왕국의 제 1기사단은 백작 영애의 살을 보고 싶어서 흘깃흘깃하는 변태들 집단이었구나?♡”

   “아닙니다! 저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아냐?♡ 아닌데 왜 눈을 못 마주쳐?♡ 왜 날 제대로 못 봐?♡ 응?♡ 응?♡”

   

   기사는 자신의 검에 맹세코 자그마한 아이에게 흥미를 가진 적이 없었다. 그는 분명 정상적인 성취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다만.

   

   그래. 다만.

   

   지금 그의 눈 앞에 있는 루시 알른이란 이름의 영애가 지닌 미가 규격을 벗어났기에.

   

   그리고 저 영애가 직접 욕정이란 단어를 내뱉은 탓에 의식을 해버렸기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할 뿐이었다.

   

   “와아♡ 아니네♡ 여기는 제대로 보고 있었네♡”

   “…예?”

   “풉♡ 미안♡ 너무 작아서 못 알아차렸지 뭐야♡”

   

   사과의 말을 전하면서.

   

   자신의 웃음을 가리려는 척 손을 가리면서도.

   

   웃음을 참을 생각은 전혀 없고.

   

   눈으로는 자신을 깔보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이성을 잃어버린 기사가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 주먹은 루시 알른에게 닿지 못했다.

   

   춤을 추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튀어오른 루시 알른이 가뿐히 기사의 주먹을 피했으니까.

   

   “고추도 허접♡ 주먹도 허접♡ 인성도 허접♡ 허접허접개허접기사♡”

   “영애…!”

   “이딴 게 어떻게 왕국의 기사가 된 걸까?♡ 단장이 머저리라 그 아래 있는 것들도 다 머저리로 구성한 거려나?♡”

   

   비웃음이 흘러퍼짐에 따라 왕국의 기사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진다. 그를 확인한 알른 기사단은 격돌의 준비를 했지만 루시 알른이 그를 가로 막았다.

   

   “더 안 해?♡ 나한테 처발릴 것 같아서 쫀 거야?♡”

   “후회하실 겁니다.”

   “뭐래?♡ 후회는 네가 해야지♡ 평생 여자애한테 처발린 병신 기사로 기록될 텐데 말야♡”

   

   박살난 상판이랑 어울리는 칭호란 루시 알른의 도발에 기사가 달려들고 루시 알른이 자신의 방패를 꺼내든다.

   

   그렇게 알른 기사단과 왕국 기사단 사이의 최초의 대결이 시작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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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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