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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8

    다음 날.

    시에나는 한가로운 오전의 고요를 만끽하며 단잠을 청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진작에 경찰서에 출근을 해야 했을 시간이었지만, 테러 사태를 일으킨 범인을 눈앞에서 놓친 일을 문책받고 정직을 당한 시에나로서는 평소의 출근시간따위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리웠던 백수의 삶이랄까.

    게다가 공교롭게도, 잡지도 못한 ‘테러리스트’가 ‘외딴 장소’에서 ‘사망’했음이 확인됐으니, 자신에겐 실수를 만회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지.

    하지만 안 그래도 요즘 사방에서 터지는 사건사고들로 과로에 시달려 피곤해 돌아가시기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에, 부족했던 수면을 마음껏 누리는 것 만으로도 이번 정직 및 감봉처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게 깎여나가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대로 쭉 오후까지 잘 수 있을지도.

    그러던 중, 돌연 시에나의 귓가에 거슬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삐삐삐삐삐삐–!

    휴대전화의 알림음이다.

    이는 전화를 놓치지 않도록 자신이 엄선해서 설정한 크고 시끄럽고 최대한 자신의 신경을 긁는 소음이었다.

    그러니 무시하고 계속 잠을 취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녀는 광고나 설문같은 용건이라면 곧바로 차단하고 수신을 거부할 생각으로 주섬주섬 그 신호의 발원지를 찾아 손을 뻗었다.

    일단 뭐가 되었든 알람을 끄긴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으음….”

    게슴츠레한 눈으로 환상화면을 바라보자 전화를 건 인물은 다름아닌 예르나였다.

    발신인을 확인한 시에나는 잠에 취해 도로 눈을 감은 채 통신을 연결시켰다.

    “아아…, 여보세요.”

    -아, 시에나. 지금 혹시 자고 있었어?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갈라지는 것으로 유추한 것인지, 예르나는 그렇게 물었다.

    딱히 부정할 이유도 찾을 수 없다보니 시에나는 그 말에 그저 긍정하며 물었다.

    “아, 하암…. 응. 왜 전화했어?”

    그러자 예르나가 자는 것을 깨워 미안하다는 투의 목소리로 답했다.

    -혹시 기억 나? 네가 루크를 잠깐 맡아준다고 했잖아.

    “아…. 그랬지.”

    시에나는 응얼거리며 대답했다.

    아무리 비몽사몽이라지만,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릴 정도로 잠에 취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러자 예르나는 다행이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게 오늘인것도 기억하는거지?

    “오늘…?”

    -응, 오늘.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해.”

    시에나는 그렇게 잠에 취해 타의적으로 웅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그래? 알겠어! 아 맞다, 그리고 혹시 양육비 같은 거 필요하면 아무때나 연락 줘. 얼마든지 낼 테니까.

    “됐어. 우리 사이에 양육비는 무슨…. 끊어.”

    시에나는 양육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예르나의 제안을 거절하며 전화를 끊었다.

    숲지기 월급이 요즘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예르나가 갑부는 아니지 않겠는가.

    쉬는 동안 봉급이 들어오지 않는 ‘정직’인지라 당분간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 신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집이 무너진 친구에게 돈을 받아야 할 정도로 생활에 궁핍함을 겪을 정도는 아니었다.

    대체 얼마나 주려고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예르나도 아이 셋 양육비에 저택 대출금에 수리비까지 힘들텐데 여기서 돈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시에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조금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다가, 세수나 할 겸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집은 손님을 받아도 될만한 상태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아, 잠깐만.”

    쓰고 대충 소파에 널어놓은 수건, 다 마신 맥주캔과 먹고 대충 쌓아놓기만 한 그릇들, 그리고 쉬면서 나갈 일이 없어 집안에 잔뜩 쌓아놓기만 한 쓰레기 봉투, 그리고 소파 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손 뻗는 곳에 인체공학적으로 배치되어있는 온갖 잡동사니들.

    이미 익숙해진 그녀에겐 특별할 것이 풍경이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손님의 눈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쓰레기장같은’ 꼬락서니였다.

    역시 이런 환경으로 아이를 맞이한다는 건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을까?

    결국 시에나는 곧장 전화기를 다시 들어 예르나에게 전화해서 말했다.

    “어, 미안 예르나. 루크한테 다음에 와달라고 해줄래? 나 오늘 잠깐 급하게 할 일이 생겨서….”

    그러자 예르나는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 그래? 루크라면 이미 나갔는데…. 내가 너한테 전화 건 시간에 이미 나갔어.

    예르나의 말에 당황하는 시에나.

    “뭐? 아까 전화한지 30분밖에 안되지 않았어? 그런데 벌써 짐 다 싸고 나왔다고?”

    예르나가 말을 이었다.

    -응, 이미 짐은 진작에 다 싸여있었으니까. 약속도 미리 했고 말이야. 뭔가 문제 있는거야?

    맞는 말이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올 짐을 미리 싸두었다면, 30분은 오히려 긴 시간인 셈이다.

    보아하니, 계속 늘어져있던 자신과는 달리 루크네 집은 이미 진작에 일어나서 아침을 맞이했던 모양이기도 하고.

    이것은 벌써 백수나 다름없어진 시에나의 생체리듬이 문제지, 루크나 예르나가 이상한 것은 딱히 아니었다.

    문제라면, 오늘이 루크가 오는 날인지도 잊은 채 자빠져있던 잘못이었지.

    그렇게 시에나가 얼어붙어있자, 예르나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급한 일이야? 지금이라도 루크한테 돌아오라고 할까? 

    “…아냐, 이미 나왔으면 좀 천천히 오라고 해. 이미 힘들게 나온거 짐 가지고 다시 돌아가라 하기에도 뭐하니까….”

    시에나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냥 자신이 집을 좀 빨리 치우면 되겠지.

    대체 청소가 걸리면 얼마나 걸린다고.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후우, 이제 좀 나아졌…나?”

    거실의 상태는 처음과 비교하면 이제 어느정도 정돈된 모양새로 변화해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묵혀둔 설거지를 하고, 쌓아둔 세탁물을 세탁기에 던져넣는 것만으로도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던 거실은 슬슬 사람이 살고 있는 평범한 집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층 깔끔해진 거실의 상태를 보니 어딘가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이 정도면 일단 거실은 합격점이겠지.

    하지만, 이 언뜻 깔끔해보이는 이 거실의 모습도 결코 아무런 대가 없이 이뤄진 풍경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시간이 부족해 일단 치워두기는 해야겠는데 어디에 두면 좋을 지 모를 잡동사니들은 전부 일단 보이지 않는 안방에 처박아두는 방법을 취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 짧은 시간에 그 많던 잡동사니들을 모조리 치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쓰레기들 사이엔 버려선 안되는 문서들도 더러 있었고….

    게다가 물건을 둔 곳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다면 물건을 눈 닿지 않는 곳에 깔끔하게 치워두는 것이 더욱 동선이 낭비되는 일이라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던 그녀로서는, 어떤 물건을 어디에 치워놔야 보기 좋은지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애매한 것들을 전부 안방으로 던져넣은 결과, 거실은 정말 깔끔하고 미니멀하면서 모던한 느낌이 나는 모델하우스처럼 되었지만, 반대로 안방은 여전히 너저분하고 생활감이 넘치다 못해 난장판인 상태 그대로다.

    따라서 현재 거실의 깔끔한 풍경은 안방의 희생으로 의뤄낸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루크한테 안방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해야겠네….’

    그 순간이었다.

    -딩동, 딩동-.

    때마침 울리는 초인종소리. 

    루크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네에, 지금 나가요-!”

    그래도 혹시나 루크가 아닐 수 있으니, 시에나는 문을 열기 전 현관의 렌즈를 통해 상대를 확인했다.

    요즘 가끔씩 천사를 믿으라고 찾아오는 이상한 것들이 설치기 시작했다보니, 확인을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달까.

    그러나 다행히 렌즈 너머로 보이는 것은 예상대로 루크였다.

    평소에 즐겨입는 코트를 차려입은 채 문앞에 서있던 루크는 문 너머로 인기척이 났는지, 짐가방을 고쳐들고 추가로 가져온 캐리어에 손을 올리며 문이 열리면 들어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에 시에나는 마지막으로 거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하며 말했다.

    “아, 안녕 루크! 역시 혼자서 잘 찾아왔구나?”

    문을 열고 등장한 반가운 얼굴이었지만,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시에나? 겨울에 무슨 땀을 그렇게 흘리고 있었지? 혹시 난방기가 고장이라도 났나?”

    계절에 맞지 않는 다한에 의아한 루크가 묻자, 시에나는 어물쩡 대답하며 루크가 가져온 짐들을 집어들었다.

    “아아! 잠깐 운동을 좀 하느라! 이런건 신경쓰지 말고 얼른 들어와!”

    시에나는 생각보다 무거운 가방의 무게에 조금 놀라긴 했다만, 다행히 아주 들어올리지 못할 것은 아니어서 경찰의 체면을 구기진 않았다.

    루크는 어떻게 이런 걸 두개나 들고 왔던건가.

    그렇게 자신의 짐가방을 받아들고 들어가는 시에나의 모습에 루크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으음, 그럼 당분간 좀 실례하겠네.”

    그나저나 운동이라.

    정직으로 낙담하고 있을 법도 한데 저렇게 운동까지 하고 있었다니, 평소에도 꽤 부지런하게 단련을 하는 모양이다.

    그녀도 역시 예르나의 오랜 친구인 만큼, 예사로운 인물은 아닌거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말씀드렸듯이 수정 전 회차들을 비공개로 돌리면서 ‘진짜 나 이거 잘 한거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연해서 잘 몰랐는데, 그동안 해온게 무려 거의 반년치 분량이더군요…

    전 진짜 미친새끼였나 봅니다.
    이걸 되돌리겠다고 생각을 했다니…

    이걸 다들 어떻게 버티셨을까요…?

    바보짓을 해서 죄송합니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좀 길게 휴재를 할걸.
    힘은 힘대로 들이고, 혼란은 혼란대로 불러오고 말이죠.

    앞으론 절대 이런 짓 하지 말아야지 하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젠 정말로 끝까지 가야죠.

    그래도 그동안 그려놓은 삽화들은 너무 너무 아까워서, 제 낙서장에다 옮겨보도록 할테니 사라지는 삽화에 대해선 너무 걱정않으셔도 됩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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