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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9

       *** ***

         

       “어후.”

         

       장이는 사방팔방에서 조여오는 사람의 압력에 곡소리를 토해냈다.

         

       유사시에 황군의 집결지로 쓰일 정도로 넓은 장소였지만 현재 포고대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려 있던 탓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겹치고 겹쳐 옆 사람이 뭐라고 말을 거는지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을 지경.

         

       이 정도의 인파를 처음으로 경험해 본 장이는 그저 쩔쩔매며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둥! 둥! 둥! 둥! 둥!

         

       이윽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북소리에 도무지 멈출 것 같지 않았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군중이 존재하는 장소에 찾아온 침묵. 결코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이질적인 분위기에 장이가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한 사람이 포고대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지?”

         

       장이는 포고대 위로 오르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렸다.

         

       먼 거리에서 보기에도 보통 귀품이 아닌 것 같은 붉은 비단. 그리고 그 비단 위에 수놓아진 황금 자수와 화려한 장신구 그리고 장이가 처음 보는 양식의 관을 쓴 여인이 무대 위에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찍찍!

         

       그런 여인과 손을 잡듯이 꼬리를 내어 준 관원 복장의 쥐 영물, 서공이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왜 금명월이 올라야 할 무대에 황족이 올라왔으며 그런 황족의 곁에는 왜 서공이 있을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들인 장이의 머리가 무언가 결론을 토내해기도 전에 발바닥이 찌르르 울렸다.

         

       쿵! 쿵!

         

       바로 포고대를 지키고 있던 황군들이 일제히 바닥에 창끝을 내려치며 내공을 흩뿌렸기 때문이었다.

         

       “유야 공주님의 행차시다! 모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라!”

         

       고막을 강타하는 우렁찬 사자후에 장이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장이는 황족이 행차하면 엎드려 절하는 것이 이 황국의 법도라는 것을 떠올렸고 지금 자신은 그 황국의 법도를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되었다.]

         

       “충!”

         

       그러나 장이가 움직이기도 전 유야 공주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대들을 이곳에 불러모은 것은 바로 나이니 그대들이 예를 취하지 않는 것도, 그대들이 나를 바라보는것도 허하겠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누군가가 외친 외침을 그대로 따라한 장이의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유야 공주가 이 포고문의 주인이었다고? 금명월이 직접 나와 해명을 하겠다는 소문은 잘못된 것이었단 말인가?

         

       장이는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장이가 현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 것과 별개로 유야 공주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내가 열 살 무렵이었다. 나는 이 황궁을 떠나 점창파에 가기로 결심했지.]

         

       …뭐라고?

         

       [그때의 나는 그저 황국에 분란을 일으키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현 황제이자 사적으로는 나의 오라버니인 폐하에게 짐만 될 바에야 차라리 무림으로 사라져 황실을 안정케 만들고자 했다.]

         

       연달아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태에 혼이 달아났던 장이는 그제야 유야 공주가 평온하게 말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 나직이 말하고 있음에도 어찌 그 목소리가 이리 귀에 쏙쏙 박혀든단 말인가.

         

       황군이 내지른 사자후보다도 더 고절한 수법이었으니 유야 공주의 무공 수위가 보통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렇게 나는 성별을 위장하고 혁기린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모두가 충격적인 발표에 숨을 삼켰다. 혁기린이, 유야 공주였다고? 황국의 공주가 성별을 위장하고 무림문파의 제자로 들어갔다고?

         

       황국의 역사에 다시 없을 일이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 그렇기에 증인을 초빙했다.]

         

       유야 공주이자 혁기린의 손짓이 이어지고 그 손짓에 한 사람이 단상에 올랐다.

         

       여일예.

         

       “천지신명과 원시천존, 그리고 후예의 이름을 걸고 이 여일예, 이곳에서 진실만을 말하겠다 선언합니다. 유야 공주님께서 혁기린의 이름을 쓴 점창파의 제자였다는 사실은 점창파를 대표하여 사실이라 밝힙니다.”

         

       공주의 앞이라는 사실조차 방금 밝혀진 진실의 충격을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군중들 사이에서는 그대로 술렁임이 터져나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술렁임이 조금 진정되자 여일예는 말을 이어나갔다.

         

       “또한 이 자리에서 무림에서 활동한 혁기린이라는 인물의 대역이 없었다는 점을 밝히겠습니다. 저의 대사형 혁기린은, 무림에서 옥룡신협이라는 별호를 지닌 혁기린이 보였던 그 모든 행동은 유야 공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러하다.]

         

       단기간 내에 너무 많은 충격을 받은 것일까. 도리어 장이의 머릿속이 맑아졌다.

         

       금명월의 또 다른 신분이라는 소문이 났던 점창파의 혁기린은 유야 공주였다. 그리고 혁기린이었던 유야 공주는 ‘금명월이 직접 나서 순안감찰어사라는 소문을 해명하겠다.’는 사실을 공표하여 이곳에 수많은 사람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나는 무림에서 활동하기 위해 또 하나의 이름을 만들어냈다.]

         

       그러한 정황이 가리키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금명월이라는 이름을.]

         

       유야 공주가 혁기린이자, 금명월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밝혀지자 장내는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황국의 공주가 제 신분과 성별을 감추고 무림에 스며들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 나자빠질 일인데 또 다른 신분을 만들면서까지 무림에 깊게 개입했다니?

         

       이미 큰 충격을 받은 탓일까. 장이의 심적 충격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심적 충격이 가신 뒤에 마음 속에는 진한 의문이 솟아올랐다.

         

       어째서. 왜.

         

       황국 공주의 신분을 버리고 무림인 혁기린으로 살아가리라 결심한 유야 공주는 왜 또 황소월이라는 별개의 신분을 만들어내고, 무림영웅이 될 때까지 활약했으며 순안감찰어사의 권한을 휘둘렀는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이의 의문을 간파하기라도 한 듯한 유야 공주의 말이 이어졌다.

         

       [황실을 등지고 떠난 내가 어째서 순안감찰어사의 권한을 휘둘렀는가. 그리고 왜 금명월이라는 신분을 만들어가며 무림에 개입했는가. 지금부터 그 연유를 말하고자 한다.]

         

       유야 공주이자, 혁기린이자, 금명월.

         

       [모든 것은 사천성에서 한 낭인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그 생의 궤적이 유야 공주의 입을 통해 세상에 밝혀지기 시작했다.

         

       *** ***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지금 엄청 중요한 순간인데 굳이 지금 물으셔야겠습니까?”

         

       혁기린이자 금명월이자 유야 공주의 모험담은 분명히 몇 마디로 축약될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유야 공주의 이야기는 아주 길게 이어질 것이고 그 사이에 몇 마디 말을 나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천안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사마경휘의 물음에 건성으로 대꾸했다.

         

       “지금이기에 묻는 것이라네.”

         

       사마경휘의 물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호천안은 간신히 포고대에서 시선을 떼고 사마경휘를 돌아보았다.

         

       “무엇입니까.”

         

       “자네의 재주가 뛰어남은 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번 일에서는 그야말로 감탄을 금치 못했네. 동창 제독으로서 반평생 정보를 다루어왔으나 천하의 민심을 쥐락펴락 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여기지 않는데 말일세.”

         

       “공치사는 나중에 좀…”

         

       “그런데, 어째서 지금의 무대는 이렇게 기획하였는가?”

         

       사마경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민심은 곧 천심이라 하였다. 설령 아무리 높은 관직을 지닌 이일지라도, 그런 관직을 자유로이 하사할 수 있는 황제일지라도 결국 천하에 살아가는 백성들을 등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호천안은 그런 민심을 제 뜻대로 다스렸다.

         

       금명월이라는 이름 석 자를 세인들의 가슴에 깊이 박아넣었다. 세인들은 값비싼 책을 사가면서도 금명월의 일상을 알고자 했고 그러한 일상을 알고 웃음지었다.

         

       그 호감이 어찌나 깊이 뿌리박혔는지 금명월이 혁기린이라는 소문이 한 번 배신당하고, 금명월이 순안감찰어사라는 소문에 두 번 배신당하고도 금명월의 해명 한 번 듣겠다고 온 천하의 사람들이 낙양까지 달려왔다.

         

       이 얼마나 뿌리깊은 호감이란 말인가.

         

       막말로 금명월이 메주는 팥으로 쑤는 것이라고 말해도 믿을 지경의 호감이었다.

         

       그렇기에 사마경휘는 지금의 상황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공주마마께서 모든 일을 솔직하게 말씀하시도록 일을 꾸민 것인가? 금명월이 아니라 유야 공주님이라는 이름에도 혁기린이라는 이름에도 세인들의 호감을 자극할 요소는 충분했네. 그런데 그 부분을 이리 내 버릴 것이었다면 왜 자네는 지금까지 백성들이 금명월이라는 이름의 이토록 호감을 지니도록 조작해 왔느냔 말일세.”

         

       없는 일을 꾸며내라는 말이 아니었다.

         

       금명월이, 유야 공주가, 혁기린이 밟아온 생의 궤적 중에서는 유야 공주의 호감을 분명 더욱더 부각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호천안은 그저 금명월의 일상들만 세인들에게 알렸을 뿐 그 외의 어떤 것도 알리지 않은 채 유야 공주를 저 포고대에 올렸다.

         

       그 점이 사마경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확실하고 더 유리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음에도 호천안은 어째서 그러한 수단을 택하지 않았는가.

         

       “길고 긴 구구절절한 개인적인 사연보다 더 확실한 설득력을 지닌 일화들을 저들의 머릿속에 때려박을 수 있었음에도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묻는 것이야.”

         

       사마경휘는 그 점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리고 그런 사마경휘의 의문을 들은 호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 수도 있었지요. 혁기린의 행동도 유야 공주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행동도 분명 세인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요?”

         

       호천안은 그리 반문하며 혁기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늘 팔랑거리는 꽁지머리는 오늘 정갈하게 다듬어졌으니 조금은 어색한 뒷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혁기린이 혁기린이 아니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제독께서는 오해하시는 게 있습니다. 뭐 제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서 이런저런 수작을 부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제가 제 뜻대로 천하인들의 마음을 조작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와서 그런 소리인가?”

         

       “그런 소리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다뇨? 그게 된다면 그야말로 초인이겠죠. 제가 한 것은 그저 금명월이라는 이름과 일화들을 세인들의 귀에 들어가도록 판을 깐 것 뿐이지,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자네는 어째서 이번 계획을 시작했나? 자네에게 그럴 힘도 자신도 없다면 성공할 도리가 없는 계획이 아니었나.”

         

       “하하, 왜 성공할 도리가 없습니까.”

         

       악양에서 낙양으로 올라오는 긴 여행길동안 호천안은 마부석에서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다.

         

       대체 혁기린의 신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도무지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난제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호천안은 결국 혁기린을 처음으로 만났던 순간까지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이자 미래를 기약한 반려이자 혁기린이 옆에 없는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힘었지만 그때만 해도 분명 호천안은 혁기린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남장여자이자 황실의 공주인 혁기린과 인연이 생겨봐야 골치아픈 일만 생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먹었던 호천안은 산적연합과 대면한 뒤 돌아갔던 객잔부터 시작해 몇 번이나 혁기린을 도왔고 결국에는 황실 한복판에서 깨달음까지 전수해버리고 말았다.

         

       “유야 공주님 본인 자체가 바로 성공의 도리인 것을요.”

         

       유야 공주는, 혁기린은, 황소월은 어떤 사람인가.

         

       사람 믿는 법을 모르던 흑묘의 마음을 단번에 비집고 들어간 자였다. 세상 삐딱하게 보는 당소열조차 뺨을 만지고 싶어하는 자였다. 독불장군 소천마 위서련이 아주 성가신 부탁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자였다.

       

       그리고 호천안의 속내에 시커먼 속셈이 드리워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 서공이 속아준 척 관복을 차려입게 만들 수 있는 자이기도 했다.

         

       혁기린은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였고, 동시에 만인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자였으니.

         

       “그러니 세인들이 공주님의 그러한 면모만 알게 되면 족할 일 아니겠습니까.”

         

       호천안은 혁기린의 힘을 믿어보는 쪽에 걸었다.

         

       *** ***

         

       유야 공주의 이야기는 길었다.

         

       황소월이 되어 암룡문에 잠입한 일이나 불명과 함께한 진법 속에서 있었던 일과 같이 공개하기 어려운 일들을 빼냈지만 그래도 길었다.

         

       장이는 그 긴 이야기를 머릿속에 받아들였다.

         

       사천성의 산적 토벌을 계기로 황실에 불려갔고 그 일을 계기로 공주의 의무도 다하고자 마음을 먹었다는 점에 감탄하고.

         

       또한 동시에 무림인 혁기린으로서 사천의 위기를 좌시할 수 없어 뇌검낭인 호천안을 도왔다는 마음을 이해했고.

         

       그 뒤 혈교의 준동을 눈치채고 혈사를 막고자 금명월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장이는 생각했다.

         

       어째서 나는 유야 공주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는 무림인도 아니였으며 관리도 아니었고 고귀한 신분은 더더욱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장이는 이내 그 답을 깨달았다.

         

       금명월일상집.

         

       금명월일상집 때문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금명월일상집의 일화에 녹아 있는 금명월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금명월일상집에 녹아 있는 금명월을 이해했기에 그런 금명월을 보고 웃음짓고 응원했기에.

         

       소연화와 어머니를 위해 순안감찰어사의 권한을 휘둘렀을 금명월이 얼마나 분노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이상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금명월이 얼마나 떨리는 마음으로, 얼마나 굳은 각오로 이 자리에 섰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긴 이야기를 마친 유야 공주는 천천히 군중들을 둘러보았다. 사람의 눈빛은커녕 얼굴조차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거리었지만 어쩐지 장이는 유야 공주가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야 공주가 포고대에서 내려가고, 포고대를 엄중하게 지키고 있던 황군들이 자리를 떠났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와 동시에 봇물 터지듯 입을 여는 군중들. 유야 공주가 전한 긴 이야기에 가로막힌 감상과 감정들이 쏟아져나오는 현장에 서 있는 장이는 그저 빈 포고대만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엇이 이 발길을 막고 있는 것일까.

         

       먼 길을 떠나 낙양에 온 보람은 차고 넘쳤다. 금명월의 정체를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알았으며 황족인 유야 공주의 존안도 직접 목격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리고 황국의 역사상 두 번은 없을 대사건의 현장에 서 있었으니 이만한 무용담이 또 있을까.

         

       장이는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렸다.

         

       도무지 금명월이라는 사람을 머릿속에서 떨쳐내지 못했던 장이었다. 그렇기에 금명월의 실물을 보고 그 정체를 명확히 알게 되면 이 마음 역시 명쾌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낙양에 왔다.

         

       그리 도착한 낙양에서 원하던 대로, 아니 그 이상의 진실을 들었음에도 대체 무슨 미련이 남았기에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왜 마음은 아직도 안개가 끼인 것처럼 흐리멍텅할까.

         

       장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자조적인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유야 공주님께서는 어찌 되시려나.”

         

       “전례가 없는 일이라 두고 봐야겠지만은…아마 좋은 일을 겪지는 않으시겠지. 황족이라 하여도 지킬 법도가 있는데 이를 크게 어기셨으니…”

         

       “하아, 역시 그렇겠지. 안타깝네, 안타까워. 선한 심성을 지닌 분 같은데 말일세.”

         

       우연치 않게 그 대화를 주워들은 장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였구나!’

         

       어째서 금명월이 광주 사람이 아니었음을 직감했을 때에는 식었던 마음이, 혁기린이라는 소문이 돌자 다시 불타올랐을까.

         

       악양의 소문으로 인해 금명월이 순안감찰어사이며 낙양 출신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면서도 그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미련을 지니다 기어이 낙양까지 올라왔을까.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고 난 후에도 왜 계속해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일까.

         

       장이는 귀에 들려온 대화에 그 답을 깨달았다.

         

       ‘나는 금명월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구나.’

         

       혈교의 준동을 막아낸 무림영웅 금명월은, 금명월일상집에서 묻어난 금명월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타인을 위할 줄 알고, 선량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으며, 그 일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포근한 볕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금명월이 광주 사람이 아니란 소문은 쉬이 받아들였다. 광주 사람이 아닌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서공과 지내는 혁기린의 일상은 변함이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금명월이 혁기린이라는 소문을 접했을 때 펄쩍 뛰며 난리를 피웠고, 금명월이 순안감찰어사라는 소문을 접했을 때 마음이 심란해졌다. 전자는 배신감을 느낄 이들의 행동이 걱정되었고 후자는 어느 쪽이든 안 좋은 결말이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유야 공주의 입을 통해 모든 것을 알았음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황실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전혀 모르는 장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유야 공주에게 좋지 않은 결말이 기다린다는 사실 정도는 직감할 수 있었으니까.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은 장이는 망설임없이 발을 움직였다.

         

       정녕 자신이 바라던 것이 금명월의, 유야 공주의 행복이었다면 결코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

         

       “이보시오!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겠소?”

         

       방금 전 장이를 스쳐 지나갔던 두 사람은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본의 아니게 두 분의 대화를 들었소. 본인은 미력한 힘이나마 공주마마께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혹시 도움을 줄 수 있겠소?”

         

       낙양을, 아니 천하를 움직일 불씨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구와악 많이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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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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