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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9

    <549 – 상대적 난이도(1)>

     

    리프가 터뜨린 구조요청 조명탄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매스각키 황녀와 손을 잡아 제국전력을 합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게 된 와이히엠하이 재단이었다.

     

    “투자금을 회수할 시간이군요. 금역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선황이 없는 제국의 금기 따위는 아무런 억제력도 없습니다. 비서실장.”

    “이미 지역군단 1개를 전진시켰습니다. 시설을 지키던 황제의 금역수호병들은 모두 패배하여 전사하거나 항복했다고 합니다.”

    “좋군요. 그럼 황제가 오래도록 꽁꽁 감추어왔던 선물상자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어디 열어볼까요?”

     

    제일 와이히엠하이.

    그를 지칭하는 말은 다양하다.

    재단의 이사장.

    오크노디의 파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간.

    그러나 지금, 그에게 가장 어울릴 정체성은 선물상자를 뜯어보고 싶어 신이 난 사람이었다.

     

    “제국이 감춘 강화의 비밀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재단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오늘 이 금지에서 또 하나의 비밀을 알아낸다면 재단은 저의 딸 아이를 되찾는 것을 넘어 다시금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겠지요.”

     

    금역으로 군단을 전진시키면서도 이사장은 다소의 희생은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오히려 아무런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금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위험이 잠들어있을지도 모른다며 경계가 더욱 커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지에서 나온 피해는 그가 납득하기 충분할 정도로 위험하지만, 동시에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하찮았다.

     

    “지역군단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시설 내에 지하로 향하는 거대한 출입문 존재. 현재 문의 너머로부터 미확인 몬스터가 계속해서 출현 중.”

    “호오. 몬스터를 봉인한 문이라… 이번 금지에는 키메라실험실을 숨겨둔 걸까요?”

    “…”

    “제국의 키메라공학술을 습득한다면 재단장학생들에게는 앞으로 보다 진일보한 인공신체를 이식할 수 있겠군요. 부득이한 사고로 신체를 잃는 학생들이 있다면 기뻐하겠습니다.”

    “신체결손이 있는 장학생을 우대하는 장애인 특별전형을 신설, 새로운 하부조직을 창설하여 예비장학생을 수급하겠습니다.”

    “요즘 들어서 멀쩡한 사람의 신체를 훼손하고 다니는 범죄조직이 많다는데, 먹고 살길이 막막한 이들에게는 재단의 행사가 참 감사하게 여겨지겠군요. 사회의 가장 뒤처진 걸음에 맞추어 한발 느리게 나아가는 재단이란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하하하.”

     

    굳을 대로 굳어버린 비서실장의 모습을 만끽하며 여유를 즐기던 도중이었다.

     

    “아무래도 평범한 배양시설은 아닌 듯합니다.”

    “무슨 일이죠?”

    “몬스터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군단이 나섰는데도 말입니까?”

    “군단의 살육속도 그 이상으로 더 많은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계속 몰려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퇴각을 개시하고 있으며 군단의 피해가 급격히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달콤한 핏빛 미래를 그리던 이사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좋지 않군요. 제 아이가 저런 위험한 곳에 들어가다니. 벌레 청소는 업체에 맡겨야 수월하죠. 적절한 제국업체를 수배해주시겠습니까?”

    “오색마탑을 호출하겠습니다.”

     

    재단은 언더월드의 대규모 군세에 맞서 제국 내 전력을 총집결하다시피 모으기 시작했다.

     

     

    * * *

     

     

    사실 이 게임은 원래 어린 여자아이여야 쉽게 깨는 게임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은신은 쉽고 맵에 어슬렁거리는 적들도 적었다.

    안 그래도 은신이 쉬운데 적의 숫자까지 적으니 언더월드의 <영원한 그늘>에 존재하는 뱀파이어 서식지의 중심부, <오래된 성>까지는 아주 손쉽게 나아갈 수 있었다.

     

    “손이 심심해.”

    “조금만 참아! 즈앙, 멋진 여자가 되려면 미리미리 참는 법도 배우고 중요한 때를 기다리는 법도 배우고 그래야 해!”

    “멋진 여자는 잘 참아? 때를 기다려? 뭐를 참고 어느 때를 기다리는데? 누가 그래?”

    “브론즈 교수님이 그랬어!”

     

    세계멸망루트가 확정될 때, 어떤 교수는 아카데미를 떠나 히히 세상 망했다. 다 망해라! 하면서 날뛰지만 어떤 교수는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추구한다.

    평화에 저촉되는 모든 악인을 단죄하고 불에 그을린 정장 외투를 어깨에 짊어진 채, 강의실에 나와 몇 안 남은 학생들에게 강의를 이어가기도 한다.

     

    -강의를 시작하지. 강의 후에 이어질 쪽지시험의 성적미달자는 전원 교수토벌전에 참여한다. 이 악물고 진도를 따라오도록.

    -쪽지시험에 합격하면 무얼 받냐고?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교수토벌전 대신 종말토벌전에 참여한다. 세계를 구할 영웅의 이름을 도둑질하는 영웅도둑이 될 기회다. 이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보다 뛰어난 대도적이 될 제군들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

     

    언제나 멋지고 당당한 브론즈 교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니 새삼 가슴이 벅차오른다.

    요일던전 <지하보물고 계단>을 깨려고 어쩔 수 없이 들었던 강의 교수님이 이런 멋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더욱 좋아졌지.

     

    “오크노디. 앞에 뱀파이어들의 모기가 있어.”

    “괜찮아. 숨만 참으면 날숨에 실린 이산화탄소를 감지하지 못하고 지나갈 거야!”

    “몇초 참으면 돼?”

    “3600초만 참아!”

    “…”

     

    머 이 정도야 못할 것도 없겠지.

    마나를 사용해서 피부 주변에 잔뜩 공기를 쟁여두면 되는걸!

     

    <은신>

    <마나제어술>

    <숨 참기>

    <잠행>

     

    부지런히 이 기능 저 기능 번갈아 가며 사용하자 뱀파이어들의 영역을 지키는 모기들의 숲을 넘어서 영원한 그늘의 고성지대에 도달했다.

    하늘을 뒤덮듯이 높다란 나무 사이를 벗어났지만 그 너머에는 우중충한 바위 아래에 자리한 고성지대.

    태양도 달도 뜨지 않는 어둠 속에는 커다란 붉은 구체가 대신 빛을 내었다.

     

    “블러디스퀘어야. 언더월드에서 죄를 지은 뱀파이어의 생명력을 모조리 쥐어짜내어 그 피가 마르는 마지막 날까지 빛을 내뿜도록 만든 인공태양이래!”

    “이사장은 그런 걸 알아서 어디에 쓰려고 그런 것까지 조기교육을 시켰대?”

    “몰?루. 그래도 저건 함부로 마시면 안 되는 피야. 영원히 불타며 빛을 내는 저주가 걸려있어서 저 피를 흡수하면 흡수한 사람도 피가 다 끓어올라 죽을 때까지 샤이닝파이어맨이 되어버려!”

    “안전장치가 없는 티토소가네.”

    “그런가?”

    “티토소가도 늘 빛나잖아. 자기 대신 조명대를 빛나게 만들지만.”

    “킥킥. 그런 것 같기두 해!”

    “그래서 저 고성은 어떻게 올라가?”

     

    무려 200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성벽.

    심지어 성벽에는 마법감지를 비롯한 온갖 감지마법과 공격마법이 새겨져 있다.

    마법을 사용하면 바로 발각되고, 감지마법에 걸리면 바로 공격마법이 날아든다.

     

    <감전>

    <신체구속>

    <끓는 물 투하>

     

    <결빙>

    <혹한의 바람>

    <파괴폭풍>

     

    <석화>

    <염동정지>

    <초고속낙하>

     

    하나같이 침입자를 죽이는 데 특화된 악랄한 콤보의 함정이 곳곳마다 다른 연계공격을 준비하고 있으니, 까딱 잘못하면 죽기 딱 좋은 뱀파이어들의 본진!

     

    “방법은 간단해!”

    “어떻게?”

    “감지마법은 마법사용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안술 3단계 <스파이아이>를 써서 모든 마법함정을 피하면서 성벽을 등반하면 돼!”

     

    스파이아이Spy eye, 일명 염탐안廉探眼.

    마력반응을 감추고 눈의 빛남 없이 상대를 견문하거나 관조할 수 있는 견문안과 관조안의 상위기술.

    원래는 3학년이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즈앙은 평범한 1학년이 아니다.

     

    “역시 오크노디도 쓸 줄 아는구나? 스승님한테 특급암살의뢰를 받을 때 사용하라고 배웠는데.”

    “이 정도야 기본이지!”

     

    황제가 호오, 하고 감탄했다.

     

    “요즘 아이들은 배움이 제법 빠르군.”

    “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도 아이들은 늘 빨랐지요. 비가 무릎까지 잠길 정도로 쏟아지던 날, 절벽으로 달리던 마차에서도… 이런, 저녁시간이 되었군요. 식사는 어찌하시겠습니까?”

    “거르겠다.”

    “일을 마치는 대로 식사를 준비해드리지요.”

     

    즈앙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시종장을 재촉했다.

     

    “말을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폭우 속에서 마차에 탄 애들은 어떻게 됐는데?”

    “허허. 다행히도 한 용기 있는 아이의 희생으로 마차는 절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어른보다도 빠른 행동이자 판단이었습니다.”

    “…그래? 의외로 정상적인 이야기였네. 다 같이 절벽으로 떨어져 죽고 요즘 애들은 옛날 애들에 비하면 덜 빠르게 죽는다는 얘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즈앙 양의 저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되어 참으로 슬프군요. 제국시종장으로 황제폐하를 위해 헌신의 세월을 보낸 저의 충의마저 그리 보일까 두렵습니다.”

    “오해해서 미안해, 시종장 할아버지.”

     

    즈앙의 솔직한 사과에 시종장은 허허 웃으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괜찮습니다. 아이들은 무언가에 사과할 이유를 만들면서 어른이 되는 법이죠.”

    “저요, 저요! 질문!”

    “4황녀전하께서는 무엇이 그리도 궁금하신지요?”

     

    나는 직전의 대화에서 즈앙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수상한 부분을 지적했다.

     

    “그래서 마차는 어디로 가고 있었고 애들은 그렇게나 비가 심하게 내리는 날에 왜 마차에 탔는데요?”

    “…진짜 그러게. 마차에는 왜 탔던 거야?”

    “허허허. 아쉽게도 대지가 진동하는 것이 대규모 군세의 이동이 느껴지는군요. 때를 놓쳐서 참으로 아쉽습니다만 서두르지 않으면 성벽을 넘기 전에 발각될지도 모릅니다.”

     

    이상하네를 넘어서 노골적으로 수상한 기분이 드는 오카시이네 시종장의 이야기!

    이러다 궁금해서 화병 나서 죽겠다 싶어도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점점 더 수상한 이야기가 될 것을 알기에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순순히 성벽을 올랐다.

     

    <도약>

    <멀리뛰기>

    <균형>

    <리듬감>

    <등반>

    <지구력>

     

    열심히 성벽을 오르고 나니 저 밑에서 즈앙이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황제랑 시종장은 달리 생각이 있는지 올라오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헤헹.

    그럼 내가 1등인가?

    얏호라도 외치고 싶은 기분을 꾹 참았다.

    몰래 올라와놓고 정복욕구를 이기지 못해서 동네방네 내가 왔다! 하고 소리치다니,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해버리면 뾰이나 모브도 오크노디가 멍청이가 됐다고 비웃겠지.

    멍청이 오크노디…

    흠.

    뭔가 재밌는 생각이 떠올라서 열심히 궁리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물었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열심히 하니?”

    “못된 장난을 칠 생각이요! 갑자기 멍청해진 척 연기하면 사람들이 절 속이려고 하거나 잘해주거나 하면서 평소 대하는 태도와 겉과 속이 같은지 다른지를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충성심테스트라. 제법 괜찮은 장난이구나. 하수인들은 끊임없이 검증해야 안전하게 오래오래 써먹을 수 있지. 훌륭한 생각이다.”

     

    근데 누구세요?

    생각을 마치고 돌아보니 어깨죽지 뒤로 커다란 박쥐피막이 달린 박쥐인간이 날개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으앙! 뱀파이어다!”

     

    올라오자마자 들켰다.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씨잉. 잠행은 완벽했는데. 마법도 안 썼는데. 왜 들킨 거예요?”

    “문 놔두고 벽을 타고 오르는 애가 있으면 신기하잖니. 그래서 처음부터 쭉 보고 있었지.”

     

    처음부터 들켰냐!

     

    “그럼 왜 화살 안 쐈어요? 마법은요? 함정은?”

    “애한테 그런 무서운 짓을 어떻게 하니? 너도 어린애가 그런 못된 소리를 하면 못써.”

    “죄송합니다…?”

     

    어째서인지 경비병 뱀파이어한테 꾸중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새 성벽을 다 올라온 즈앙은 무릎 꿇고 손 들고 서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성벽의 턱에 몸을 숨겼다.

    얄밉지만 친구를 팔아넘길 수도 없어서 모르는 체 해줬다.

     

    “안 되겠다. 애가 이런 위험한 짓을 하고 다니면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겠니. 부모님 불러오렴.”

    “헉. 부모님은 안 돼요!”

    “걱정을 끼칠 짓을 한 건 알고 있구나?”

    “겨우 이런 허접스러운 일로 붙잡힌 걸 알면 저를 비웃으실 거예요!”

    “범죄자 일가였구나? 더 안 되겠다. 부모님 사시는 곳 불러. 부모님은 어느 피 농장에 살고 계시니? 인간 농장? 엘프 농장?”

     

    뱀파이어의 엉뚱한 농장 타령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이 경비병은 오카시이네 시종장도 아닌데 왜 이상한 소리를 하시지?

     

    “부모님이 왜 농장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경비병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며 반문했다.

     

    “뱀피의 부모가 뱀파이어 피농장에 안 살면 어디 살겠니?”

    “뱀피가 먼데요?”

    “애기 뱀파이어. 너 말이야 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뱀피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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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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