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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안드레아의 드레스를 입고 파티장에 입장한 프란체의 파급력은 굉장했다.

         

       파티에 참여한 귀족들이 일제히 이쪽을 바라봤으며, 드레스에 관한 이야기와 의복 사업에 관한 이야기로 수군거렸다.

         

       “인상을 강렬하게 준 거 같네.”

       “이 정도면 대성공이군요.”

         

       프란체는 오만한 얼굴로 걸음을 내디뎠다. 또각. 또각. 정적이 흐르는 파티장에서 프란체의 구두 소리만 들려왔다.

         

       파티의 중심부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반겨준 건 제2 황자와 제3 황녀였다.

         

       “반갑군, 데카르트 공녀. 그 드레스가 어제 말했던 드레스인가?”

       “괜히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군요.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해요.”

         

       피식 웃으며 황실 예법으로 인사하는 프란체.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저희가 취급하는 의상이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겠나! 제국에서 이런 디자인을 가진 드레스는 본 적이 없네.”

       “가까이서 보니 더 대단하군요. 이 드레스를 만든 장인에게 제 드레스도 맡기고 싶을 정도예요.”

         

       연신 감탄세례를 이어나가는 황자와 황녀. 프란체는 이때다 싶어 새로운 정보를 풀었다.

         

       “저희 의류점의 모든 의복은 이 옷을 만든 장인의 지휘하에 만들어지고 있으며, 특별한 경우에는 장인이 직접 만듭니다.”

         

       프란체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황자님과 황녀님에게 선물을 드리기로 했지요? 데카르트 공작령 13번 구역의 프란체 의류점으로 오시면 그 장인이 직접 만들 겁니다.”

         

       오, 하며 고개를 주억이는 황자와 드레스에 시선을 빼앗긴 황녀. 작전대로 흘러가고 있다.

         

       “내 꼭 공녀의 의류점을 찾아가도록 하지.”

       “저도 가겠어요.”

       “많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이후 적당히 대화를 끝마치고, 프란체는 자리를 옮겼다. 대부분 어제 만났던 영부인들과 영애들이었다. 내용은 드레스 칭찬과 프란체 의류점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리고.

         

       “프란체.”

         

       공작과 마주쳤다. 프란체는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 드레스가 결과물인가?”

       “그렇습니다.”

       “프리다를 이기겠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구나.”

         

       무표정.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음에도 공작의 얼굴에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좀 웃어주기라도 하면 안 되나.

         

       “약속대로 사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

       “감사드립니다. 더욱더 기대에 부응하도록 증진하겠습니다.”

       “감사하기는, 네가 이뤄낸 성과다. 좀 더 자신을 가지도록.”

         

       딸과 아버지의 대화가 아니라, 사원과 부장의 대화라고 해도 믿을 판이다.

         

       ‘이 와중에 옆에 있는 에덴이랑 라인은 표정이 안 좋네.’

         

       프란체가 사업에서 성공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저놈들도 참. 동생을 응원해주지 못할망정, 저런 표정이나 짓고 있다니.

         

       “그럼 만날 사람들이 많아 이만 가보겠다. 앞으로를 기대하마.”

         

       공작은 다른 귀족을 만나러 자리를 옮겼다. 에덴은 잠깐 프란체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하다 공작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라인은 아니었다.

         

       “대체 그 드레스는 어디서 공수한 거지?”

       “제 사업장에서 만든 드레스입니다.”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말이냐?”

         

       라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관자와 팔자가 꿈틀거린다. 프란체의 사업이 당연히 실패할 줄 알았나 보지.

         

       “프리다에서 사 온 드레스를 네 사업장에서 만들었다고 거짓말하는 거겠지.”

         

       저건 또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제가 금방 들킬 거짓말을 하겠나요?”

       “배운 거 없는 너라면 가능성이 있지.”

       “말씀이 심하시군요.”

       “그만큼 말이 안 된다는 거다!”

         

       라인은 괜히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배운 것도 없고, 아무런 경험도 없는 애가 첫 사업부터 이런 걸 들고 온다고?”

       “제가 사업에 재능이 있었던 걸 수도 있죠. 보는 눈이 남다르다든가?”

       “…….”

         

       눈을 얕게 뜨고 프란체를 째려보는 라인. 분위기가 삼엄하다.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야. 페르시아 소 공작의 소문부터 시작해서 혼담을 깨트린 것도 모자라 이번 사업까지. 도저히 네가 했다곤 믿을 수 없는 수준이지.”

         

       뭐지. 저놈도 눈치챘나? 셀다스처럼 눈치가 빠른 놈으로 보이진 않는데.

         

       “이번엔 운이 좋았던 거니 더이상 허튼 짓은 하지 마라. 나와 에덴 형님이 너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만일 사고라도 친다면, 그때는 정말 기회가 없을 줄 알아라.”

         

       휙. 자기 할 말만 하고 등을 돌려 갈 길 가는 라인. 얘네는 왜 프란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지. 그리고 지가 뭔데 기회 타령이야? 웃기는 새끼일세.

         

       ‘프란체를 싫어하는 데 다른 이유가 더 있나?’

         

       프란체는 말했다. 자신이 태어남과 동시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자신을 혐오하는 거라고.

         

       ‘그것만으로 이렇게까지 한다고?’

         

       성인을 지나고도 저 지랄을 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정말 그 이유만으로 아직도 혐오하고 핍박하는 거라면 심상치 않은 병신이라는 소리고.

         

       ‘알아볼 기회가 있을진 모르겠다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지 않아 프란체에게 물었다.

         

       “공녀님. 근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공녀님을 싫어하는 겁니까?”

       “전에 말했잖아? 내가 어머니를…….”

       “그런 이유만 있는 게 아닌 거 같습니다. 따로 짚이시는 건 없으신가요?”

         

       프란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게 아니라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내가 어린 시절부터 저랬으니.”

         

       음.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다. 에덴이나 라인의 머릿속을 들여봐야 알지.

         

       ‘공작이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을 쟤네들한테까지 쓸 순 없지. 프란체 키우기도 바쁜데. 골칫덩이밖에 안 되는 새끼들의 얘기를 알아서 뭐 하겠어?

         

       “근데 그건 왜?”

       “그냥 좀 이상해서요.”

       “이상하다니?”

       “아닙니다. 잊어주시길.”

       “뭐야, 궁금하게.”

         

       뭐,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알게 되겠지. 그렇다고 직접 그 기회를 찾아다니진 않을 거지만.

         

       “아무튼. 황제 폐하가 오실 때까지 시간 좀 남으니까, 다른 귀족들도 만나러 가자. 홍보는 제대로 해야지.”

         

       나는 예, 라고 대답한 뒤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

         

       처음으로 만난 귀족은 프리다 의류점을 자주 이용하던 영부인들과 영애들이 있는 곳. 백작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공녀님, 드레스가 정말 아름다우세요!”

       “어제 하셨던 말이 사실이었군요!”

       “저도 공녀님의 의류점에 가면 그런 드레스를 받을 수 있을까요?”

         

       연신 칭찬 세례를 쏟아부으면서 어떻게든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귀족들. 프란체는 피식 웃으며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프란체 의류점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방문해주시길. 영부인들과 영애들이 이용하기 좋을 거예요. 여러 드레스를 취급하거든요.”

         

       프란체의 말을 듣곤 얼굴에 화색이 도는 귀족들. 이후에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주제는 프란체의 의류점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저는 이만 자리를 옮겨볼게요. 다른 분들도 만나봐야 해서.”

       “아, 네! 감사합니다, 공녀님! 꼭 공작령 13번 구역에 방문할게요!”

         

       그렇게 다시 자리를 옮기고, 여러 귀족을 만나며 사업에 관한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한참 뒤.

         

       “후우, 이제 좀 쉬자꾸나.”

       “예, 마실 거라도 가져올까요?”

       “아니, 그건 괜찮아.”

       

       후아. 크게 숨을 내뱉으며 숨을 돌리는 프란체.

         

       “그런데 황제 폐하께서 입장을 안 하시네. 시간이 좀 지난 거 같은데.”

         

       그러게. 나는 품에 있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4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예정보다 훨씬 늦은 시간.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요?”

       “설마. 정말 그런 거라면 제국 전체가 흔들릴 거란다.”

         

       흠.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런데 태자 전하와 그 성녀도 보이지 않는구나.”

       “그렇네요. 분명 그 성녀라면 바로 말을 걸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황제는 입장하지 않았으며, 먼저 파티를 주도하고 있어야 할 황태자가 보이지 않는다. 덤으로 소미레도.

         

       ‘황제가 아직도 안 온 것과 관계가 있는 건가?’

         

       소미레까지 보이지 않는 건 좀 이상하다. 설마 뭔가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지? 괜한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최근 소미레 때문에 그런지 머리가 아프군.’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적당히 눈치를 살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귀족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데카르트 공녀가 대단한 드레스를 들고 왔군요.

       ―여러분은 어쩌실 건가요? 공녀님의 사업에……

       ―투자해야겠습니다. 지금이 가장 쌀 때니까요.

       ―저 데카르트 공녀는 소문대로 미친년이 맞아.

         

       가장 많은 대화 주제는 프란체의 사업 얘기. 그리고 별거 없는 안부 인사뿐. 이 와중에 프란체를 욕하고 있는 아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딱히 이상한 건 없는데…….’

         

       그래도 경계심을 풀면 안 되겠지. 그 소미레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때였다.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덜컥! 거대한 아치형 문이 열리며 좌우로 황금빛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황제가 걸어왔다.

         

       사자의 갈기를 연상시키는 금발. 날카로우면서 어두운 눈매. 중년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커다란 몸집. 걸음걸이에서부터 느껴지는 위엄.

         

       ‘게임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 신기하네.’

         

       그래픽과 똑같이 생겼다. 황제에게 퀘스트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

         

       “드디어 폐하께서 입장하셨구나.”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하지 않습니까?”

       “공작님과 같이 가야 해. 너는 여기서 잠시 기다리렴.”

         

       프란체는 자리에서 일어나 데카르트 공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공작은 프란체를 환영하는 듯했지만, 에덴과 라인은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쟤네들은 한결같단 말이지.’

         

       뭐, 나머지는 프란체에게 맡기면 될 거다. 지금까지 해온 게 있으니 알아서 잘 할 수 있겠지. 게다가 황후가 먼저 드레스에 관심을 보일 거고.

         

       ‘나는 파티 음식이나 먹고 있어야지.’

         

       접시를 들고 고기만 챙겨서 테이블에 앉았다. 미친 듯이 입안에 음식을 욱여넣으며 프란체를 지켜봤다.

         

       ‘음?’

         

       인제 보니 황제 옆에 있는 황후의 뒤에 소미레와 황태자가 있다. 역시 같이 있던 건가. 이상한 짓을 꾸민 건 아니겠지?

         

       ‘혹시 모르니 대화를 들어봐야겠어.’

         

       나는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그러자 황제와 귀족들이 나누는 대화가 자세히 들려왔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반갑네, 페르시아 공작, 데카르트 공작.

         

       걱정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대화는 평범. 그냥 인사와 최근 근황만 묻는 게 전부였다. 황태자와 소미레는 인사만 하고 자리를 옮긴 걸 보니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은 모양.

         

       그렇게 제국 사회의 근간이 되는 공작들과 무난히 대화를 마치고, 옆에 있던 황후는 예상대로 뒤에 있던 프란체의 드레스에 관심을 가졌다.

         

       ―데카르트 공녀, 그대의 드레스가 정말 인상 깊군. 프리다에서 나온 신상품인가?

       ―아닙니다. 이번에 제가 시작한 의류 사업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그게 사실인가? 지금까지 봐왔던 드레스와는 수준이 다르군.

       ―황후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저희 의류점의 장인에게 말해 선물을 준비하겠습니다.

         

       대화의 흐름을 살펴보니 잘 풀리고 있다. 우리의 광고 모델은 황후와 제2 황자, 제3 황녀. 이 셋이다. 성공 못 하면 그냥 때려치워야지.

         

       이후에도 사업 얘기는 잘 풀렸다. 황후는 드레스에 큰 관심을 보였고, 선물까지 해준다는 말에 호감을 느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프란체는 미소를 지으며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잘 풀렸어. 황후 폐하께서도 우리 의류점에 방문하신다고 하셨어.”

       “대박이군요. 앞으로 사교계에 소문이 쫙 퍼질 겁니다.”

       “거기다 건물까지 보여주면 완벽하지. 이 제국에서 처음 보는 외형이니까.”

         

       드디어 돈을 쓸어 담을 시간이 온 건가. 첫 단추를 꿰매는 데만 많은 시간을 들였고,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 돈만 쓸어 담으면 되는군요.”

       “그렇지. 드디어 첫 사업의 결과를 보겠구나.”

         

       나와 프란체는 눈빛을 마주했다. 서로 환희가 터져 나오려는 걸 애써 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은데 파티장이라 못하네.”

       “그럼 잔이라도 부딪칠까요?”

       “그러자. 우리의 첫 시작을 기념하는 순간이니까.”

         

       짠! 우리는 샴페인 잔을 부딪치곤 그대로 원샷을 때렸다. 이 맛이지.

         

       “진.”

       “예?”

       “고마워.”

       “…갑자기요?”

         

       술기운이 조금 돌아서 그런 것일까. 얼굴이 붉게 물든 프란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느끼한 시선.

         

       “네가 오고 나서 내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어. 앞으로도 많이 달라지겠지.”

         

       느릿하게 다가오는 손길은 차분히 내 뺨을 쓰다 듬었고, 그대로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더니 쇄골까지 와버렸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만을 위한 왕자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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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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