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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휴방 12일차.

         

        방송을 열심히 해보기로 다짐했던 내가, 예정하지 않은 휴방을 이렇게나 길게 가져가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진짜로.

         

        일단, 제대로 옷을 안 챙겨 입고 다녀왔던 1시간짜리 산책 이후로,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는게……감기몸살에 걸린 듯했다.

         

        몸살에 걸려 아파서 휴방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약해 보일까 봐 그럴 수도 없었고.

        

       인터넷의 심연을 잘 아는 입장에서, 생리로 인한 휴방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첫 방송 직후에 접속했던 갤러리에 도배 되어있던 글들은 아직도 뇌리에 제법 선명하게 남아있는 편이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위게더 게시판이……좀 재밌기도 했다.

         

        당장 대규모 시위라도 일어날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불타오르는데……사람인 이상, 이게 어디까지 불타오를지 궁금해지는 건 인지상정 아닐까.

        

       태울 소재가 부족해지면 자연스럽게 사그러들 거라고 생각했던 화력은, 안타깝게도 공지를 올린 날부터 폭발적으로 증대되기 시작했고- 그 원인은, 공지에 달린 100여개의 댓글이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 킬 수 있을 지 몰라서 미정이라고 했을 뿐인데. 억울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방송인에게는 솔직함이 미덕이 아니라는 작은 교훈을 얻은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깨달음과 무관하게, 화재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한글이라곤 한 자도 없이, 불 이모티콘으로만 도배된 게시글이 베스트에 올라갈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이모티콘을 좋아하는 줄은 정말 몰랐는데. 기억해야 할 지식이 늘었다.

        

       보고 있자면 제법 장관이어서, 하나의 축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섣부르게 방송을 켜서 축제 종료 선언을 하면, 시청자들도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한 편으론, 이 게시판의 모습 그대로 채팅창으로 옮겨온 방송을 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지만. 이렇게나 활발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도적 좋아를 외치게 만드는 방송을 해낸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결국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채 이런 저런 갈등을 하며, 다른 방송들을 구경하며 고민하고, 가볍게 술을 곁들이며 게시판을 구경하다가, 손이 굳지 않도록 게임도 조금 하다보면, 하루가 훌쩍 가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게시판은 수상할 정도로 화가 난 사람들로 가득 차고 말았지만, 이따금씩 이질적인 분위기로 등장해서 순진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존재했다.

        

       [작성자: 도적도적]

       [제목: 이분 방송 보통 언제 하나요?]

       [지튜브 유입인데 생방 보려면 언제 와야 되나요?]

       –     🔥🔥🔥🔥🔥🔥🔥🔥 🔥🔥🔥🔥🔥🔥🔥🔥 🔥🔥🔥🔥🔥🔥🔥🔥

       –     일반인은 냉큼 꺼져! 지금부터 여긴 전쟁터가 된다!

       –     우리도 몰라 시1발

       –     얘 지튜브도 있었음?

       –     ㄴ 아따먹 팬튜브 (링크)

       –     ㄴ 따아한잔 (링크) 이건 쇼츠 위주

       –     ㄴㄴ 본점도 없는데 뭔 팬튜브만 두 개야;

       –     ㄴㄴ 어둠의 팬튜브도 있어서 세 개임ㅋㅋㅋ 이건 알아서 찾아라

        

       팬튜브. 저 ‘아따먹 팬튜브’는, 기억하고 있다. 내 회심의 도적부흥운동 결투를, 괴상하게 편집한 사람이었지.

        

       어째선지는 몰라도 그 후에도 내 방송 영상을 꾸준히 편집하고 있는지, 그 지튜브를 타고 유입되는 시청자도 있는 듯도 했다.

        

       방송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입이 생기다니. 전쟁통에도 아이는 태어난다는 그런 걸까. 부디 저 시위대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착실히 도적을 연습하길.

       

       

        

       그렇게, 휴방 15일차.

        

       컨텐츠가 없으면 컨텐츠를 만들면 된다는 마인드가 생겨난 건지, 어느새 시청자들은 자기들끼리 흥겹게 캠프파이어도 하고, 영상도 돌려 보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나름 예리하게, 플레이를 분석하는 사람도 등장했고.

       

        [작성자: 클립노예계정]

        [제목: 좃같아서 걍 내가 쪄옴]

        [도댓 시점임.

         

        (영상 클립)

         

        이게 첫 교전. 내가 골레기라 잘은 모르겠는데 애초에 2타 공격을 중간에 캔슬한 거 같음.

         

        캔슬된 공격이라 막혔는데도 후딜레이 거의 없는 거 이용해서 뒤로 빠지면서 피한듯? 근데 이거 속도상 선입력인데 공격 어케 예측한건진 모르겠음.

         

        (영상 클립)

         

        여기서 공격 흘릴 거 예상하고 칼 일부러 놓아버린 거 같다.

         

        그리고 주먹 날릴 때 잘 보면 도댓 오른팔이 움직이고 있는데, 공격 모션 시작된 상태인 듯? 그래서 카운터 판정으로 넘어졌고, 그 상태에서 처형기 시전해서 끝낸 거 같음.]

        –     오

        –     이렇게 보니까 아따먹 존나 잘하네 진짜

        –     와 천천히 보니까 저거 진짜 칼 놓은 거였네? 미친년인가 ㅋㅋㅋㅋㅋㅋㅋ

        –     ㄴ 다음타 카운터로 못 넣으면 그냥 칼 없는 병신되는건데 ㅋㅋㅋㅋㅋㅋ

        –     ㄴ 얘 원래 하이리스크 ㅈㄴ 좋아함

        –     도적만 안 했더라면…….

        –     ㄴ 너는 백퍼 밴이다 장담함

        –     ㄴ ㄹㅇ 욕한 새끼들 다 살아도 넌 밴일거임 분명

        –     ㄴ 왜;;

        –     이거 보니까 방송 안 하는 방장 더 패고 싶으면 개추 일단 나부터

        –     ㄴ ㄱㅊ

        –     ㄴ ㄱㅊ

        –     ㄴ ㄱㅊ

        –     ㄴ ㄱㅊ ㄱㅊ

       

       게시글에는 추천을 누르고, 도적이 안 좋다는 뉘앙스의 댓글을 남긴 사람의 아이디는 ‘지정 국선변호인 명단’ 메모장에 적어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댓글 하나 썼다고 바로 밴할 리가 없잖아.

        

       아무튼, 사람들은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며 행복하게 지내는 듯했다.

        

       [작성자: ㅇㅇ]

       [제목: 앜튜브에 듀오한거 영상 떴는데????]

       [(링크)

        

       비방 듀오 하면서도 보이스도 다 녹음했네 개꿀ㅋㅋㅋㅋㅋㅋ

        

       목소리 살살 녹는다 진짜

        

       방장 오더도 하는데 장난 아니네

        

       대가리 다시 깨질 것 같아……]

       –     이 왜 진

       –     일용할 양식……!

       –     감사히 바닥까지 핥아먹겠습니다

       –     진짜 아크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     ㄴ 프로의식 쩜 진짜

       –     난 이걸로 만족하기로 했어 5번 보면 1시간 방송 본 거랑 같잖아

       –     ㄴ 실례지만 뭔가 질질 흐르는 중이십니다.

       

        ……죽음의 5단계로 치면, 부정과 분노를 지나 타협까지 온 걸까.

        

       죽은 사람은 없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휴방 18일차.

       

        [작성자: 아메리카노는따뜻하게]

        [제목: 난 이게 제일 슬퍼]

        [왜 우리한텐 ㅈ 같은 도적만 맨날 보여주고

         

        도적 싫다고 하면 갑자기 커스텀 방으로 불러서 두들겨 패고

         

        도적 싫다고 안 했는데도 국선변호인이라고 커스텀 방으로 불러서 두들겨 패고

         

        그냥 조용히 도적이라도 보겠다고 했는데 니가 도적 방송하라고 강퇴하고

         

        그러면서 도댓 레반 아크 시청자들한테는 ㅈ간지 양손검 기사 보여주더니

       

       이젠 아예 방송을 안 키고 사라져……?

         

        왜……?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     눈물이 주르륵…….

        –     펑펑 울며 개추를 눌렀읍니다……

        –     진짜 무서운 건 방송을 켜도 또 똑같이 도적을 할 거란 거임

        –     ㄴ 이제 기사도 섞어서 하지 않을까??

        –     ㄴㄴ 너 방장 방송 다 안 봤구나

        –     내가 장담하는데 여기서 기사 찾는 새끼들 때문에 절대 기사 안 한다. 내가 보기에 얜 방송 목적이 그냥 도적하면서 시청자 꼴받게 하는 거임. 니들이 사흘 밤낮을 도적만 보고 싶다고 울부짖어도 모자랐을 판에 지금 이미 좆됨

       

       타협에 이어, 우울까지 도달한 글이 베스트 게시글 1등에 등극했다.

        

       ……저렇게 요약하니까, 좀……그렇긴 했다. 악마의 편집이라고 일갈하기엔 미묘한 죄책감이 느껴지는, 그런 요약이어서.

       

        기사를 또 할 생각이 없는 건 맞긴 하고……. 도적부흥운동회 게시판에서 기사기사 거리는 게 불쾌해서 더더욱 할 생각이 없어진 것도 맞긴 하고…….

       

        으음…….

         

        그래도 오해라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새로운 불씨가 되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를 살펴 보건대, 모두가 만족할 가장 확실한 대응은……새로운 공지를 쓰는 게 아니라, 방송을 켜는 거겠지.

         

        잘 알고 있었음에도 결국 방송 시작 버튼을 누르지 못한 건, 컨텐츠에 관한 고민 때문이었다. 길어진 휴방의 실질적인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되었든, 방송을 하는 입장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퀄리티 있는 컨텐츠는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목적이 정당하다고 수단이 무방한 건 아닌 법이니.

         

        하다못해 교회에서 전도를 할 때도, 초코파이는 하나씩 나누어주잖아.

         

        그래.

         

        나한텐, 초코파이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내 방송에 머물고 싶게 하는 매력.

         

        어떤 매력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사람들이 내 방송을 계속 보고- 또, 도적에 매력을 느낄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의외의 방송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약 나흘 동안 준비한 결과, 하나의 해답을 찾았음을 직감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휴방 19일차. 나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방송을 할 준비가 됐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님이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도적부흥운동 – 도적을 친근하게]

         

        * * * *

         

        [작성자: 갓따먹]

        [제목: 와 시발 뱅온!!]

        [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     낚시 밴 좀 해라 진짜

        –     ㄴ (대충 방송도 안 하는데 게시판 관리를 하겠냐는 댓글)

        –     ㄴ 진짠데?

        –     ㄴ 뭐야 진짜네;;

         

        [작성자: ㅇㅇ]

        [제목: 이거 무슨 소리임?]

        [나 존나 불안해 제발 이러지 좀 마]

        –     채팅은 또 왜 제한이야 씨발 진짜

        –     ㄴ 18일만에 방송을 켜놓고 이모티콘으로만 채팅칠 수 있게 해놨네

        –     나 진짜 가슴이 꽉 막힌듯 답답하면서 천불이 올라오는데 병원 가야되나

        –     ㄴ 정상임

        –     ㄴ 정상입니다 지금이라도 방송을 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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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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